[논평] 일그러진 유시민

유시민 장관은 의료급여 개악을 중단하라

오늘 낮 12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는 의료급여 개악 중단과 본인부담금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사퇴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료급여법 개악 추진으로 보건복지부 수장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비판이다. 의료급여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은 빈곤층의 차별을 심화하고 인민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해칠 것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작년 12월 의료급여 수급자에 대한 본인부담금 부과와 선택병의원제 및 플라스틱카드제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의료급여법 개정안을 제출한 바 있다.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의 주요 내용으로는 △1종 의료급여 수급권자 외래 이용시 본인부담금 부담 △건강생활유지비 지급 △선택기관제를 통해 의료이용 제한 △파스 등 비급여 대상 분류 △별도의 플라스틱 의료급여증 관리 △장애인 보장구의 급여절차 강화 등을 담고 있다.

보건의료단체와 빈곤사회단체들은 의료급여법 개정안이 잘못된 통계에 기초할 뿐 아니라 빈곤층 건강권에 심각한 문제를 유발할 것이라 지적했다. 개정안이 적용되면 2-3천 원이라는 자기부담금이 발생, 급여수급자는 아파도 병원 이용을 못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며, 빈곤층 무료진료 제공이라는 공공적 성격도 바뀌게 된다. 또 의료급여 대상자를 별도로 관리하는 플라스틱카드는 인권 침해를 고착할 것으로 보인다.

유시민 장관의 발언과 '의료보험 혁신에 관한 대국민보고서'를 살펴보면 그의 철학이 어떻게 일그러져 있는가가 잘 드러난다. 유시민 장관은 수급권자의 의료이용 남용과 '도덕적 해이'에 따라 의료급여 비용이 증가했다는 점을 개정 근거로 이야기했다. 이를 정당화하려고 엉터리 통계도 제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가령 수급권자 외래진료비가 일반 국민의 3.3배에 달한다는 주장은 성, 연령, 중증도를 고려하면 절반도 안 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작년 한미FTA 추진 초기 KIEP가 내놓은 거짓 통계가 들통나고도 낯부끄러운 모습조차 안보인 적 있는데, 유시민 장관도 말하자면 목적을 위해 허위 통계를 동원, 사회적 약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신자유주의정치의 전형을 보여준 셈이다.

의료급여를 무상의료로 보는 저열한 인식도 딱한 노릇이다. 무상의료는 급여 범위의 포괄성과 급여 수준의 완전성, 즉 본인 부담 면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적용 대상의 보편성을 핵심으로 하는 개념이다. 보건복지정책의 최일선에 있는 장관이 취약계층 급여 제한을 부당한 차별로 여기지 않고, 국가는 빈곤층에게 사회적 최소수준을 제공하면 된다는 식의 사고를 갖고 있는 한, 오늘날 신자유주의 시장화로 인해 우리 사회구성원 대부분이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빈곤 문제에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 유시민 장관이 개악안을 강행한다면 사회적 빈곤 해결에 도움은커녕 빈곤층 건강권의 암적 존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자유주의자로서의 유시민 장관은 우리 사회 크고작은 쟁점에 날카로운 시각과 발언으로 숱한 파문을 일으켜온 사람이다. 저서 '거꾸로읽는세계사'는 교양교재로 널리 읽혔고, 1985년 항소이유서는 민주화 열망을 가득 담은 글로 회자되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마지막 문구는 뭇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도 했다. 먼 과거의 일이긴 하지만, 유시민 장관이 사랑했던 그 조국이 오늘날 의료급여법 개악으로 빈곤층의 건강권과 인권 침해의 원흉으로 돌변하고, 유시민 장관의 그 슬픔과 노여움이 의료급여 수급권자와 장애인과 우리 사회 빈곤층을 향해 칼날이 되어 꽂히고 있다는 것은 실로 아연실색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불행은 어찌 보면 자유주의자로서의 유시민이 신자유주의정치 한가운데 몸을 담으며 비롯된 건지도 모른다. 유시민은 노무현 대통령의 이라크 파병 결정 당시 "이라크 전쟁이 명분 없다는 것을 소신으로 한다"면서도 "내가 파병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거니와, 황우석 사태 당시에는 "PD수첩이 검증하겠다는 것은 자신이 검증하는 것과 같다"며 지배논리에 포섭된 자유주의자의 불안하고 분열증적인 모습을 노출한 바 있다. 당시 한 논객은 이런 유시민에 대해 "건달로 말하자면 김태촌에 해당한다. 언제나 자유주의적 양심과 게임의 룰을 말하지만, 실은 주먹 싸움에 회칼을, 그것도 등 뒤에서 사용하는 것"이라 빗댄 바 있다. 유시민 장관이 슬픔과 노여움으로 가로질러온 20년, 어찌 보면 그 세월을 지배해온 모순된 체제가 오늘날 저토록 일그러진 유시민을 생산하고 말았는지도 모른다.

유시민 장관이 철학과 소신이라 강조한 이상 의료급여 개악을 스스로 철회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파병이나 황우석 건처럼 시민사회를 향해 보편과 상식을 거스르는 발언을 내지른 것과 의료급여 수급권자와 빈곤층이 먹고사는 구체적인 문제에 칼날을 들이미는 발언은 반향과 저항의 결이 다르다. 유시민 장관 물러가라는 목소리에는 화가 나면 가장 무서운 빈곤층의 '슬픔과 노여움'이 담겨있는데... 이젠 그게 잘 안 보이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