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참여정부 한미FTA 타결 이후

개혁세력 10년의 지배구조와 단절해야

중동을 순방중인 노무현 대통령이 30일 오전에 귀국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협상 상황을 보고받은 후 오후에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열어 타결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두 꼭지' 더 따기 위한 막판 힘 겨루기가 될 경우 31일 새벽 타결도 점쳐진다. 일부 언론은 이미 타결을 기정사실처럼 보도하고 있고, 노무현 대통령은 4월 1일 대국민 담화를 발표할 예정이다.

작년 3월 초 어이없는 공청회 소동 이후 딱 13개월 만에 이처럼 높은 수준의 자유무역협정 타결을 이루어낸 양국 협상단에 경의를 표한다. 시시때때 개방의 필연성을 교양해준 노무현 대통령도 고생 많으셨다. 다 내 주고도 이긴 것처럼 득의양양해하는 대한민국 협상단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빌트인, 네거티브리스트, 비위반제소, 래칫, 투자자국가제소 같은 협상 전문 용어를 국민 모두 알기 쉽게 해준 국정홍보처의 노고도 치하하는 바이다. 이 모두가 신자유주의 정치가 이루어낸 일관되고 지속적인 국정 수행의 결과이다.

노무현 정부는 이제 한미FTA를 통해 거듭나게 된다. "개방으로 망한 나라 없다"는 억지와 오만, "서비스업이나 농업에 충격이 있어야 구조조정이 된다"는 분열증 따위가 맞물려, 대한민국은 지금 돌이킬 수 없는 역사를 쓰고 있다.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며 푸념을 늘어놓던 개혁의 수장은 시나브로 초국적자본의 지배 하에 대한민국이 가진 가치의 전부를 넘겨주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한미FTA 타결 후속 조치, 개헌 발의, 남북정상회담 추진 등 세 개의 카드를 쥐고 향후 국면을 주도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한미FTA 타결에 따른 여론 부담은 자본의 지지를 바탕으로 개방과 선진국 선전으로 돌파하고, 개헌 발의를 통해 보수세력과 차별을 꾀하는 한편 남북정상회담 추진으로 본격적인 대선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그림이다.

이처럼 한미FTA 타결은 노무현 대통령이 향후 정치적 행보를 하는 데 있어 불리한 문제만은 아니다. 한미FTA 타결은 한국 사회 보수 반동화와 자본의 부귀영화를 동시에 보장하고, 개방 자신감 선동은 오히려 노무현 대통령과 개혁세력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관건은 여당에서 이탈한 개혁세력과 한미FTA 저지 운동진영이 4월 이후에 어떻게 싸우느냐에 있다. 한미FTA 타결 이후 싸움을 어떻게 벌이느냐에 따라 87년 호헌 반대, 직선제 쟁취 이후 20년 만에 전국민적인 찬반 국론을 형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개헌 발의는 노무현 정부가 자신의 지지세력을 결집하기 위해 펼치는 효과적인 정략으로 이해된다. 개헌 발의로 개헌 논의에 반대하는 보수, 진보세력 모두로부터 차별성을 꾀할 요량이다. 문재인 비서실장은 오늘 기자브리핑을 통해 개헌 발의를 분명히 예고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4월 10일 경 개헌을 발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개헌이 미완의 87년헌법을 보완하는 민주주의와 개혁 과제임을 강조하는 이데올로기 공세는 이후 60일간 계속될 것이다. 60일 되는 날은 절묘하게도 6.10항쟁 20주년 기념일이다. 가히 정략적인 구상이 아닐 수 없다. 6월항쟁의 정신조차 신자유주의정권의 정치적 안녕을 위한 수단으로 삼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남북정상회담 추진은 참여정부의 행보에 탄력을 부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 해 10월 비선 라인 가동을 통한 남북정상회담 추진 사실이 확인된 데다, 이해찬 전 총리의 방문, 정동영 의원과 한명숙 전 총리 등의 발언으로 미루어 남북정상회담은 이르면 6월에, 늦어도 대선 전에 어떤 형태로든 성사될 전망이다. 남북정상회담은 한미FTA 반대 여론을 일거에 집어삼킬 정치적 이벤트로 자리잡을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처럼 중요한 남북정상회담을 FTA정권과 그 수장인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한다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고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7일 한 여론조사 결과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25%까지 올라갔다는 보도가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몰락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안정적인 지배세력으로 변신하고 있다. 한미FTA 타결을 계기로 지금부터라도 참여정부와 시민사회 및 사회구성원 전반에 연결되어 있는 일상의 모든 연대의 고리를 끊는 싸움이 필요하다. 개혁세력 주도의 10년의 지배구조를 청산하는 반신자유주의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한미FTA를 둘러싼 국민적 전선 형성은커녕 한미FTA 저지 싸움의 성과조차 제대로 남기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