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는 대자본의 쓰나미, 문제는 국민이다!

[진보논평] 몽환에서 깨어 나야할 때

진보전략회의(준)는 한국사회 주요 전략아젠다에 대한 진보적 정책생산을 목표로 모인 연구자, 활동가들의 전략네트워크이다. 사회운동의 통합적 활동이 가능하도록 운동과 운동을 이어주고 지역, 부문, 현장에서 운동기획을 자극하고 촉진하는 역할을 표방하고 있다. 진보전략회의(준) 회원들이 주요한 사안에 대해 발표하는 '진보논평'을 민중언론참세상에 게재한다.- [편집자 주]


2007년 2월 3일 기습적인 한미FTA 협상 개시 선언 시 공표했던 협상시한을 이틀 넘긴 4월 2일 한미 행정부는 협상타결을 선언했다. 성대가 타들어가는 와중에서도 한미FTA 협상중단을 외쳐댄 허세욱씨의 절규도 아랑곳 않은 채 협상시한을 넘기면서까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기에 바빴던 협상 결과에 대해 사사건건 노무현을 물고 늘어지던 보수언론들은 오히려 “제3의 개국” 운운하며 찬사를 보내고 있다. 조선일보 사설은 노무현의 말을 인용하며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면서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에 전념하는” “대통령다운 대통령”의 자세를 칭찬하고 있다. 물론 노무현과 보수언론들이 운운하는 “국민”에는 700만 명이 넘는 빈곤층과 경제활동 인구의 50%를 넘는 비정규직, 350만 명에 달하는 농어민 대부분은 포함되지 않는다. 한미FTA 협상타결로 이들의 “먹고 사는 문제”는 문자 그대로 파탄지경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좋아질 이들은 협상타결 환영광고를 쏟아내는 전경련과 대한무역협회와 은행연합 등 대자본을 주무르는 극소수 국민들에 불과할 따름임은 명백하다. 한미FTA 협상타결로 한 나라 두 국민으로의 분할, 20% 국민을 위해 80% 국민이 착취당하는 사회로의 진입이 이제 지배세력의 입으로 공식화되고 있는 것이다.

IMF 구조조정 이래 한국경제는 성장과 분배, 수출과 내수의 연결고리가 끊긴 채 오직 자본의 이윤 극대화라는 일방통행로를 따라 질주해왔다. 그럼에도 자본-관료연합은 이 일방통행로의 폭이 좁고 속도가 늦다는 이유로 쓰나미 같은 초강력 외부 충격이 필요하다며 한미FTA를 주문해 왔다. 물론 이들이 내세운 한미FTA명분은 우리 경제의 70%가 수출에 의존하고 있고, 미국이 우리의 제1 수출국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대외경제연구원의 보고서조차 한미FTA로 대미무역흑자가 줄어들 것이라는 통계가 나오자 초기에는 통계조작으로 물의를 빚다가 급기야 노무현이 나서 “외부충격을 통한 구조조정”이 실제 협상의 목표라고 뻔뻔스럽게 공표한 바 있다. 초기에 물의를 빚던 4대 선결 조건 허용 문제 역시 8월에 들어 노무현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 있다. 게다가 금년 들어서는 대미수출의 비중이 중국과 유럽연합에 오히려 뒤처지자 문자 그대로 이들이 내세운 한미FTA의 명분은 모조리 사라지고 말았다. 게다가 협상시한 마감을 넘기면서까지 끝까지 달라붙은 미국의 끈질긴 압력에 발목 잡혀 얻고자 했던 것은 하나도 얻지 못한 채 광우병 쇠고기 검사와 스크린쿼터 미래유보, 유전자식품 관련 조항 등을 포함한 마지노선마저 모두 내주고 말았다. 그렇다면 과연 한미FTA로 우리에게 어떤 실익이 남게 되는가? 자본-관료 연합이 그토록 갈망하던 구조조정이라는 일방통행로의 폭을 대폭 확장하고 그 속도를 배가하는 것 이외에는 말이다. 경제적 실익을 계산하면 마이너스인데도 국익을 증진하고 국가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명백한 이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그야말로 어리둥절할 뿐이다.

협상타결 하루 후인 4월 3일 한겨레의 여론조사결과는 바로 이런 당혹스러움을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있다. 우선 협상타결 찬성 여부에 대해서는 찬성이 56.7%(매우 잘한 일 5.3%, 잘한 일 51.4%), 반대 32.5%(매우 잘못된 일 5.4%, 잘못된 일 27.1%), 무응답 10.8%인데 반해, 이 협상결과가 한미 국익을 균형 있게 조정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미국 국익에 유리하게 조정되었다는 답변이 52.4%, 비교적 균형 있게 조정되었다는 답변이 32.8%, 한국 국익에 유리하게 조정되었다는 답변은 4.9%에 불과한 상반된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 결과만 비교해보면 미국 국익에 유리하게 되었기 때문에(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FTA에 찬성한다는 이상한 논리가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이상한 점은 국가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보는 응답은 50%인데, 내 소득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답변은 55%나 되고, 사회양극화가 심해질 것이라는 답변은 46%에 이르고 있다는 점이다. 종합해 보면 미국의 국익 증진이 곧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며, 내 소득에는 변화가 없고 사회양극화는 심화될 것이라는 것이 대다수 국민의 의견이라는 셈이다. 이 네 가지 의견은 논리적으로 전혀 상반된 의미를 갖고 있기에 문법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절대로 결코 하나의 주장으로 연결될 수 없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국민들이 이를 하나로 연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국민 다수가 정신분열 상태이거나 또는 뭔가 괴기한 충격이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모두가 미쳤을 리는 없으므로 현재 우리 국민들 다수가 한미FTA라는 쓰나미를 맞아 모순에 빠졌다는 얘기가 된다. 이 기이한 순간의 영상을 슬로우 모션으로 분석해 보자.

3년 전 인도네시아 해변에서 쓰나미를 맞던 사람들은 멀리서 바다가 벽처럼 갑자기 일어서는 기상천외한 광경을 넋이 나간 채 구경했지만 그 해일이 조만간 자신들을 덮칠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이런 상태가 아닐까? 난항 속에서 극적으로 타결된 한미FTA 협상은 마치 잔잔하던 바다에 거대한 쓰나미가 솟구쳐 오르는 광경처럼 황홀해 보이는 듯하다. 바로 이 순간 정부가 수십억 원을 쏟아 부어 날조한 "한미FTA, 미래를 향한 도전“이라는 푸른 상공을 가로지르는 이미지 광고가 겹쳐지며, 십여 년 간 뇌리를 울려온 ”국가경쟁력 증대“라는 슬로건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곧이어 한국의 국익은 미국이 좌우한다는, 몸에 배인 주입식 지식이 한미FTA는 비록 미국의 국익에 기여하겠지만 결국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내레이션으로 번역되며 갈채를 받는다. 하지만 결국 그런 멋진 광경이 나의 소득변화와는 무관하다는 낙담, 또 만연하는 사회양극화는 이제 대세가 되어 누구도 돌이킬 수 없을 거라는 절망감이 쓸쓸한 독백으로 깔리며 페이드 아웃된다. 게다가 내가 바로 쓰나미가 가져올 대재앙의 희생자가 되는 마지막 장면은 무의식적으로 삭제된다. 이보다 비현실적이고 모순적인 환영이 있을까?

그러나 환영은 환영일 따름이다. 국민들이 환영에 사로잡혀 있는 시간은 쓰나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이다. 해일이 가까이 밀려드는 순간 환영은 사라지고 악몽이 시작될 것이다. 한미FTA 협정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미국 의회의 타당성 검토에도 3개월이 소요될 것이며 한국 국회에는 9월이나 되어야 상정될 수 있다. 모순에 가득 찬 순간적인 환영이 6개월 동안이나 지속될 수는 없는 법이다. 국민들 다수가 순간적 환영에서 깨어나 쓰나미의 실체를 인식하게 될 때 여론조사의 결과는 반전될 수밖에 없다. 이 몽환 같은 환영이 지속되는 이 순간에조차 한미FTA의 실상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국민은 10.7%에 불과하다. 이중에서 매우 잘했다는 답변은 5.3%이고 매우 잘못되었다는 답변은 5.4%이다. 다수 국민이 환상에서 깨어날 때, 미국의 국익 증진에 도움이 될 거라고 보는 52.4%, 내 소득 변화와 무관하다고 보는 55.2%, 사회양극화가 늘어날 거라고 보는 45.8% 중 상당 부분은 실상을 알고 나면 무응답이나 찬성에서 반대로 돌아설 것이다. 실상을 모르며 찬성하고 있는 51.4%와 실상을 모르며 반대하는 27.1% 중에서 실상을 알고 나면 찬성에서 반대로 전환할 수가 반대에서 찬성으로 전환할 수보다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한미FTA에 대해 실상을 알고 찬성하는 비율은 찬성표(56.7%)의 9.3%에 불과한 5.3%이며, 이에 속한 노무현과 자본-관료연합은 자본의 이익 증대를 위해 쓰나미를 의도적으로 불러오고 있다. 그에 반해 반대표(32.5%)의 16.6%에 달하는 5.4%는 국민적 대재앙을 예견하며 이를 막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감행하고 있다. 전자는 권력과 자본으로 쓰나미의 이익을 홍보하지만 후자는 거듭되는 소환과 수배에도 불구하고 맨몸으로 쓰나미의 재앙을 국민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그렇다면 조만간 협정문이 공개되고 국민들이 실상을 알게 될 경우 누가 더 승산이 있을까?

협상타결 후 미국은 개성공단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음을 강조하면서 쇠고기 수입을 문서로 공식화하지 않으면 국회 비준을 거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또 협상타결과 동시에 해결될 것으로 보이던 BDA 송금 문제 역시 난항을 겪고 있다. 미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6자회담이 마무리되기가 어려우리라는 중국측 관측은 한미FTA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복잡하게 꼬여가는 중미관계로 인해 남북문제와 한미FTA를 일괄타결하려는 노무현식 계산법에 차질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국이 아무리 복잡해도 또한 자본-관료-보수언론의 삼각동맹의 음모와 공세가 아무리 치열해도 최종적으로 판세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국민들이다. 문제는 지난 1년 동안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국민 다수가 한미FTA라는 거대한 쓰나미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구경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의 주력을 이루는 민주노총 구성원들 역시 이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한미 대자본의 축제인 한미FTA가 초래할 거대한 쓰나미의 재앙에 희생양이 될 것인가 아닌가를 결정할 주체는 결국 국민 자신들이다. 이제 더 이상 시간이 없다. 몽환적 환영에서 깨어나 쓰나미를 막기 위해 국민총궐기에 나서야 할 때이다. (진보전략회의(준))
덧붙이는 말

심광현 님은 문화연대 정책위원장으로, 진보전략회의 회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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