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유시민 장관 사표는 수리되어야 한다

사표정치로 국민연금개악 밀어붙이려는 술수 그만둬야

국민연금개혁 관련 쟁점이 뜨겁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발의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명분으로 유시민 장관이 ‘사퇴’ 카드를 꺼내고 난 이후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건의할 예정이라 하고,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한테 국민에게 세금부담만 안겨줄 기초노령연금법안만 통과시킨 무책임한 정당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어느 언론은 한나라당한테 ‘포퓰리즘 정치’를 그만두라고 공세를 펴기도 했다. 마치 국민연금법을 부결시킨 것이 국민들에게 커다란 죄를 짓고 짐을 안겨준 모양새가 되어버린 꼴이다. 이런 분위기를 타서 열린우리당은 재차 국민연금 개정법안을 상정할 태세이다. 언론이 시시각각 전하는 기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덧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국민연금 개정법안은 국민부담을 덜어주는 ‘훌륭한’ 법인데, 이를 부결시킨 국회가 잘못이라는 관념이 형성되게 되는 어이없는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다시 한 번 분명히 하자.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부결을 애석해 마지않는 국민연금개정법안은 ‘더 내고 덜 받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개정안이 통과됨으로 해서 국민들이 얻을 것은 보험료 부담이 늘어나는 것이요, 잃을 것은 미래 국민연금 급여액수가 줄어드는 것이다. 재정안정화를 도모함으로 해서 미래세대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냐고,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를 재고할 수 있지 않냐고 강변할 지 모르지만 정부안 대로 하더라도 시점만 늦춰질 뿐 연금기금 고갈이 진행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재정불안정 때문에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생긴 것이 아니라 국민연금이 노후소득보장을 할 만큼 충분한 보장성을 지니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고, 5년마다 실시되는 연금추계시마다 ‘재정불안정’이라는 요소만을 부추기면서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안겨 준 정부 때문에 야기된 것이다.

그리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기초노령연금법이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사각지대를 해소한다는 취지를 실현시키기에도 모자랄 뿐 아니라, 연금이라는 ‘노후보장’의 성격을 담보하는 제도라고 보기 힘들다. 대상자 층을 60%로 한정하게 되면 사각지대 해소라는 명분으로 도입되는 기초노령연금이 자칫하면 기초연금 수급자와 국민연급 수급자라는 ‘두개의 계층’을 만들어내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이는 현재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계층이 40% 이상임을 감안할 때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아울러 5%에 묶인 기초노령연금 급여율은 2008년 기준으로 8만 원 정도에 불과하여 ‘연금’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도 무색하다. 사각지대를 해소하기에도 불충분하다. 연령과 무관하게 노동을 통한 소득획득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 가사노동 등 비공식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등 기존 사회보험으로 포괄할 수 없는 계층이 점점 늘어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를 보완하는 제도적 모색이 필요한 사항이다. 이런 법안임에도 정부가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건의한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법이어서가 아니라, 국민에게 세금부담을 안겨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국민연금개악과 연동하여 이를 밀어붙이려는 의도에 다름 아니다.

열린우리당은 큰 틀에서는 자기들의 안과 커다란 차이가 없다는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의 수정안마저 부결시켜 버렸다. 수정안은 보험료 수준만 현행을 유지할 뿐 열린우리당의 내용과 질적인 차이를 갖고 있다고 보기 힘든 내용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의 ‘그대로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개정법안과 충분히 협의 가능하도록 열려있다고 언급하고 있기 조차 하다. 그러면서 서로를 향해서는 날선 비판을 서슴치 않는다. 이들에게 국민의 부담은 정치적 이익을 챙기기 위한 수사일 뿐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다.

유시민 장관은 ‘사표정치’를 통해서 국민연금개악을 밀어붙이려는 정치적 술수를 그만두고 깨끗이 장관에서 물러나는 게 옳다. 여러 시민사회단체는 보건복지부 수장으로서 유시민 장관은 자격이 없다며, 이미 ‘불신임’을 결의한 바가 있다. 그가 그동안 진행시켜 온 여러 개혁안은 그에겐 장관으로서 업적일지 모르지만 이 땅의 빈곤층과 저소득층에겐 부담과 고통을 안겨줄 뿐이다. 의료급여 수급권자에게 본인부담을 늘임으로써 의료접근권을 악화시킨 의료급여 개악, 보건의료의 시장화, 상업화 경향을 부추기는 의료법 개정 시도, 장애인단체와 약속한 활동보조서비스 실시지침을 헌신짝 내버리듯이 무시하는 작태, 저소득층에게 병원문턱을 높이는 건강보험 본인부담 강화조치 등을 추진해 왔다. 또한 보건복지부는 최근 한미FTA관련해서 가장 큰 쟁점이 된 의약품 분야에서 피해를 축소하기에 급급하면서, 한미FTA 중단을 주장해 온 사회운동단체에게 ‘괴담’을 퍼뜨리지 말라고 주문하고 있기도 하다. 사표를 수리하기가 정부는 부담스러울 것이다. 왜냐하면 유시민 장관만큼 국민에게 부담되는 여러 개악 조치들을 소신있게 밀어부친 장관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이상 국민에게 부담과 고통을 안겨주기 전에 사표를 즉각 수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