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연재 >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농사꾼 대추리 할머니의 마음이 담긴 풀

[강우근의 들꽃이야기](49) - 벼룩나물


벼룩나물이 코딱지 만한 잎을 닥지닥지 달고 줄기를 뻗으며 논둑을 뒤덮고 있다. 작은 잎이 마주 달린 줄기 끝에서 언제부턴가 조그만 꽃들이 다닥다닥 피고 있다. 워낙 줄기가 가늘고 잎새가 작아서, 이 조그만 꽃송이조차 벼룩나물한테는 버거워 보인다. 같은 석죽과에 속하고 모양새도 비슷한 별꽃이나 점나도나물이 바로 옆에서 같이 자라고 있다.

별꽃이나 점나도나물은 줄기가 조금 굵고 잎도 더 크다. 꽃받침 잎도 커서 꽃이 그다지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다. 벼룩나물 꽃잎은 별꽃보다 더 도톰한 데다 잎새가 자잘해서 한창 피어 있을 때는 하얀 꽃만 드러나 보여 마치 꽃꽂이용 안개꽃이 피어 있는 것 같다.(안개꽃도 벼룩나물과 같은 석죽과에 속하는 코카사스 원산 원예종이다)

벼룩나물이라는 이름이 딱 어울리는 볼품 없는 잎새는 그래도 겨울을 버티어낸 것이다. 꽁꽁 언 들녘에서 차가운 겨울바람을 견뎌냈다는 것을 알면 여리고 자잘한 잎새 하나 하나가 녹록치 않아 보인다. 벼룩나물은 벼를 베어내고 물을 뺀 가을에 싹이 터서, 추운 겨울을 넘기고 벼가 자라기 전에 꽃 피고 열매 맺어 한살이를 마무리한다. 농사가 시작되면 논바닥에서 자라던 것들은 갈아엎어져 흙 속에 묻혀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벌써 절반은 꽃 피고 열매 맺은 뒤다. 모내기 할 때쯤이면 벼룩나물은 이미 다 자라 버린다.

모내기철이 돌아왔다. 그렇지만 평택 대추리 주민은 농사를 지을 수 없다. 황새울 들녘은 철조망으로 둘러쳐졌다. 대추리 주민은 일제강점기에 이미 땅을 빼앗기고 쫓겨났었고, 50여 년 전에도 미군의 불도저에 밀려 쫓겨났었다. 그런데 맨손으로 일구어낸 땅에서 또다시 쫓겨나고 있다. 이번엔 같은 나라 정부한테 쫓겨나서 아픔이 훨씬 더 크다. 대추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삶은 정말 잡초처럼 뽑히고 또 뽑혀온 삶이다. 신자유주의 정권에게 대추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하찮은 잡초쯤으로 밖에 보이지 않나 보다. 무성하게 자란 벼룩나물을 잡아뜯어내고 또 뜯어내도 이듬해 벼룩나물은 그만큼 다시 자라 올라온다. 논둑에 핀 벼룩나물 하얀 꽃은 그저 내 땅에서 농사지으며 살고 싶다는 대추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품은 소박한 바람이 피어난 것 같다.
태그

강우근 , 들꽃 , 벼룩나물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강우근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기획연재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