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개성공단

[진보논평] 한미FTA 타결과 개성공단

진보전략회의(준)는 한국사회 주요 전략아젠다에 대한 진보적 정책생산을 목표로 모인 연구자, 활동가들의 전략네트워크이다. 사회운동의 통합적 활동이 가능하도록 운동과 운동을 이어주고 지역, 부문, 현장에서 운동기획을 자극하고 촉진하는 역할을 표방하고 있다. 진보전략회의(준) 회원들이 주요한 사안에 대해 발표하는 '진보논평'을 민중언론참세상에 게재한다.- [편집자 주]



한반도 평화협정의 조속한 체결과 미 제국주의의 대북 적대정책 및 군사전략 완전 중단, 이에 편승한 한국 정부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와 자주국방론 및 국방개혁2020 폐기, 한반도 생태의 지속가능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반도 사회구성원 모두의 균등한 삶의 질을 구현하기 위한 국가적, 사회적 전략 마련... 한반도는 좌파의 비전을 희구한다.

  개성공단 모형 / 조정민 기자

개성공단 생산 제품 원산지 인정 논란, 미국도 맞고 한국도 맞고

한미FTA 원산지 타결 결과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한국 정부는 △개성공단 등 북한지역 원산지 특례인정 근거 마련 △통일적인 원산지 판정기준 도입으로 역내교역 활성화 △글로벌 아웃소싱 확대 및 저비용 고효율성 무역환경 마련 등을 기대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 개성공단 생산제품의 특례 인정을 위한 구체적 근거를 마련했다"며 역외가공지역(Outward Processing Zone : OPZ) 지정을 통한 특혜관세 부여를 원칙적으로 인정했다는 부속서를 근거로 들었다. 협정 발효 1년 후 매년 1회 이상 한반도역외가공지역위원회를 개최, "심사, 결정을 통해 개성공단 및 또는 여타 지역을 OPZ로 선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한미FTA 타결 이후 바티아 부대표는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은 현재 한미FTA의 적용을 받지 않게 돼 있다"면서 개성공단 제품을 미국으로 수출할 때 한국산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 바 있다. 웬디 커틀러 역시 4월 11일 워싱턴의 헤리티지 재단이 주최한 한미FTA 토론회 연설에서 "개성공단 문제에 대한 합의문을 한미 두 나라가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면서 "노동과 환경기준,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 상황을 점검하고 나서 역외가공지역 제품의 한국산 인정 문제를 권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확인된 합의문으로만 볼 때 미국은 미국대로 개성공단을 명시하지 않았으므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가능하고, 한국은 한국대로 개성을 포함한 북 전역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미국도 맞고 한국도 맞는 기이한 장면이다. 그러니까 한미FTA 협상 초기에 개성공단 원산지 인정 문제가 정치적으로 다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정세분석이 정확히 맞은 셈이다. 한미FTA 협상에 있어 개성공단 원산지 인정 문제는 정세적으로 가장 민감한 부문이었고, 결과적으로도 가장 정치적인 형태로 정리되었다. 합의문에 작성된 한반도OPZ위원회가 발효 이후 어떤 기능을 하게 될지, 또 한반도 비핵화 진전, 남북한 관계에 미치는 영향, 노동.환경 기준 충족 등으로 표현된 세 가지 문제가 어떻게 될 지에 따라 개성공단 또는 북 생산제품 원산지 인정 여부가 최종 판가름 날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 진전' '남북한 관계에 미치는 영향' '노동과 환경기준'

'한반도 비핵화 진전'은 미국의 대북 봉쇄정책과 북핵 문제와 연동된 북미 또는 4자, 6자간 정치 협상의 문제이고, '노동.환경 기준'은 ILO기준 내지 글로벌 스탠다드 적용으로 북 체제를 고려해야 할 문제라고 했을 때 역시 정치적인 성격이 크다.

그런데 '한반도 비핵화 진전'에 대한 미국과 북의 입장은 확연하게 다르다.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 합의와 한미연합전시증원 훈련 등에서 확인되듯이 신속기동군화를 통한 대북 적대적 군사전략을 유지, 강화하는 추세다. 2.13 합의 이후 평화 무드가 확산되고는 있으나, 미국은 북핵 폐기를 전제로 하는 대북 적대정책과 군사전략을 명시적으로 포기한 적이 없다. 북 역시 한반도 비핵화를 천명하고 있지만 미국의 봉쇄정책이 지속되는 한 자위 수단으로서의 핵 실험과 보유를 포기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북의 비핵화 개념은 남의 전술핵무기를 포함한 미국의 핵우산 금지를 포함한다. 그러므로 한미FTA 타결 내용에 반영된 '한반도 비핵화 진전'을 어느 수준에서 이해할지 여부는 협상 내용이 모두 공개하고 나서야 판단 가능하고, 또 향후 정치협상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다.

또한 북미 수교나, 4자간 평화협정 체결과 같은 진전이 있을 경우 한반도 비핵화의 가능성이 커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경우에 따라 관계의 악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향후 정치 협상에 따라 유동적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노동.환경 기준'도 미국이 ILO기준을 적용하거나 내지는 글로벌스탠다드로 이해한다면 북의 조기 체제 전환과 연결돼 역시 단정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북은 배급제를 시행하고 있고, 임금의 일부를 현물로 대체하는 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 정부나 개성공단 진출 자본이 임금 직불을 노동생산성 향상 수단으로 이해하고는 있지만, 현금 임금 직불제의 전면적인 실시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개성공단 생산 제품 원산지 적용이 한미FTA가 발효되고, 한반도OPZ위원회가 가동되는 2010년 내지 3단계 개발계획이 마무리되는 2012년 즈음에 '노동.환경 기준' 적용을 전제하는 거라면 북의 급속한 체제 전환이 없고서야 논리적으로도 성립하지 않는다.

이렇게 볼 때 한국 정부가 한미FTA 협상 결과를 놓고 개성공단을 따냈다고 선전하는 것은 틀린 이야기도 아니고 맞는 이야기도 아니다. 정세에 따라 유동적이고 결과가 불분명한 정치적 협상의 문제인데다 미래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가 개성공단 생산 제품 원산지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처럼 기정사실화 한다는 데서 솔직하지 못한 문제는 분명히 있다. 현재로서는 협상 내용이 아무런 규정력을 갖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대화 공장 노동자 / 조정민 기자

한미FTA 추진의 핵심은 산업구조의 고도화, 규제의 선진화, 노동유연화

미국의 일반특혜관세 예외 적용 경우는 테러지원국가, 노동자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국가, 미국에 최혜국 대우를 부여하지 않는 국가, IMF에 미가입된 국가 등 네 가지다. 따라서 '한반도 비핵화 진전'과 '노동.환경 기준 충족'이 정치적으로 해결된다 하더라도 북의 경제체제 전반의 변화가 없는 한 일반특혜관세를 적용받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2.13 베이징 합의 이후 북미 수교 등 관계 개선에 따라 테러지원국 해제와 교역에 대한 적성국 적용 배제 조치가 이루어지는 것만으로도 북의 교역 환경은 한미FTA 협상과 관계없이 크게 바뀔 것이다. 예컨대 한미FTA가 없더라도 개성공단 생산 제품의 대미 수출길은 자연스럽게 열릴 것이고, 북 경제도 활성화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거꾸로 북핵을 둘러싼 북미간, 4자, 6자간 정치 협상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 경우, 한미FTA 타결 원산지 협상내용은 다양하게 해석돼 용도 폐기된 이면지로 취급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반도OPZ위원회 개요와 특혜 원산지 판정기준, 판정 보완기준, 역내 부가가치 계산방법까지 반영된 한미FTA 협상 결과를 놓고 볼 때, 한국 정부가 보여주는 호들갑은 십분 이해됨직 하다. 한국 정부와 자본이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개성공단에 거는 기대치는 자못 막대하다. 자본은 한미FTA 타결을 환영하는 가운데 주력산업의 재편을 포함한 차세대 성장동력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가 지속적으로 겪어온 저투자-저성장의 원인은 과잉중복투자에 따른 이윤율의 저하, 그리고 투기 시장을 떠도는 유동자금 문제 등에서 기인한다. 이윽고 자본의 투자의 관심은 차세대 성장동력과 연동된 산업구조의 고도화, 규제의 선진화, 그리고 노동유연화 문제로 집중되고 있다. 한미FTA 발효 시점이 2년 후이고, 사회 전 부문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기까지 2-3년이 더 걸린다고 본다면, 향후 5년간 산업구조의 고도화, 규제의 선진화, 노동유연화를 어떻게 안착시키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개성공단 자본 진출을 포함한 남북경협 문제는 여기에 직결된다.

자본에 있어 개성공단 진출은 북의 노동력에 대한 남의 산업체계로의 편입을 직접적인 목표로 한다. 개성공단은 현재 본단지 1차 5만 평 분양이 완료되어 시범단지 15개 기업과 1차 분양 23개 업체 중 7개 업체가 가동중이다. 북 노동자의 숫자가 1만2천 명이 넘었고, 07년 1월까지 총생산액이 1억불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2월 181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 따르면 73개 업체가 입주를 희망(40.3%)하고 102개 기업이 입주를 관망(56.4%)하고 있으며, 입주를 포기한 기업은 6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업체는 '통행, 통관, 물류비 증대 등 인프라 구축 미비'(33.2%)와 '정치적 위험성'(27.3%)을 가장 큰 애로사항이라고 답해, 이 두 가지 조건이 일정하게 해결된다면 자본 진출은 속도와 규모 모두에서 거대한 흐름 형성을 예고한다.

현대아산의 설명에 따르면 900만 평 전체 개발이 되면 북 노동자 35만 명 규모에 연간 총생산액 200억 달러 규모로, 북은 임금 수입, 중간재 판매 수입, 세금 수입, 관광 수입 등을 기대하고, 남은 총 86억 달러의 수입을 챙길 것으로 내다본다. 지금부터 1년 후인 2008년 상반기 1단계 입주 기업이 본격 가동되는 시기 개성공단에 필요한 노동자의 규모는 7만-1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한국 중소자본에게는 숨통이 트이는 규모이며, 남에 진출한 초국적자본에게도 환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2004년 현재 FDI가 77억 달러에 달하는 한국은 미국의 7대 교역국으로, 아시아에서 다섯 번째로 미국의 직접투자 규모가 큰 나라다. 2300여 명의 회원과 1000여 개 회원사를 거느리는 암참(주한미국상공회의소)은 지속적으로 한미FTA 협상을 추동하고, 작년 말 북핵 실험으로 한반도 정세가 경색된 상황에서도 동요하지 않고 직접투자를 늘리는 활동을 고무해왔다.

2.13 합의 이후 정부의 개성공단 지원도 발빠르다. 정부는 '민간 주도 정부지원' 방식으로 공단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국내 공단에 준한 기반시설을 지원하고 있다. 내부 기반시설은 남북협력기금에서 무상지원하고, 전력.통신 등의 투자비는 80% 선에서 대출하고 있으며, 시범단지 1차 5만평 입주 기업에 대해서는 초기시설 자금 70%까지 대출해왔다. 노무관리권과 관련, 임금 직불에 준한 임금제도 모색, 북측 노동자의 안정적 공급, 기업의 북 노동자 직접 채용.해고.배치.작업지시 방편을 마련중이다. 07년 1월 현재 개성공업지구법 및 16개 하위규정, 33개 사업준칙, 13개 남북합의서 등 63개 법규가 시행중이나 최근 북 노동자의 임금 인상 요구에서 보이듯이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는 양상이며, 향후 임금과 노동조건 등 북 노동자의 고용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개성공단 생산 제품 원산지 인정 논란, 새로운 계급투쟁의 장 예고

미국의 오랜 봉쇄정책과 북의 경제체제로 인한 북의 현실을 고려할 때, 북의 산업화는 필요악이며, 북으로서도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경협 자체를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2.13 합의 이후 형성된 평화 무드도 한반도 긴장을 영구 해소할 수 있는 평화협정 체결로 조속히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또한 현 시점에서 남북경협은 북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보다 호혜적인 방향으로 활성화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민간주도 정부지원'의 남북경협의 활성화 이면에 깔린 참여정부의 정치적 구상과 자본운동의 맥락을 간과할 수 없다. 한국 정부와 자본은 한미FTA 타결 이후를 본격적으로 대비하고 있다. 한미동맹에 기반한 신자유주의지배체제의 재편과 산업구조조정을 통한 경쟁력 강화 및 노동유연화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고, 시나브로 북 노동자의 한국 산업체제로의 편입에 지대한 관심을 표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FTA 협상에서 개성공단을 확실히 따내지 않은 점을 들어 한국 협상단과 정부를 비판하거나, 이를 실패한 협상의 주된 근거로 거론하는 것은 위험하다. 한미FTA 발효와 함께 개성공단 생산 제품 원산지 인정이 정치적으로 잘 풀릴 경우, 오히려 훨씬 심각한 상황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FTA 협상 내용 공개 과정에서 개성공단 생산 제품 원산지 인정 논란과 평가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한미FTA가 무효라고 주장하더라도, 한국이 이미 맺고 있는 FTA와 앞으로 맺을 FTA에서도 개성공단 원산지 인정 주장은 당연한 것으로 간주될 것이다. 자유무역협정의 흐름을 단절하거나 거스를 특별한 계기를 포착하지 않는 한 더욱 그리 될 것이다.

개성공단은 한반도 평화 허브로서, 남북경협의 상징으로서 이미 한반도 사회구성원들 앞에 성큼 다가섰다. 2.13 합의와 한미FTA 타결을 배경으로 개성공단 3단계 개발계획은 순풍에 돛단 듯 추진될 전망이고, 한반도 평화와 민족 공동의 번영과 이익이라는 명분 속에 가랑비 옷 젖듯 자본 진출이 이루어지게 된다. 개성공단 1만 노동자는 2009년에 7만으로, 2012년에는 35만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초국적자본 운동 흐름에 분단 한반도도 예외는 아닌지라, 미 제국주의와 북과 북 노동, 남과 남 자본, 그 복잡하고 새로운 계급투쟁의 장이 예고되는데, 한미FTA 협상 타결 개성공단 원산지 인정 해석을 둘러싼 논란은 그 시작에 불과할 따름이다. [진보전략회의(준) 07.04.18]
덧붙이는 말

유영주님은 민중언론 참세상 편집국장으로, 진보전략회의 회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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