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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처럼 쑥쑥 자라는 쑥

[강우근의 들꽃이야기](51) - 쑥

쑥은 이름처럼 쑥쑥 자란다. 쥐불을 놓아 검게 그을린 논이나 밭둑은 어느 사이 쑥 빛으로 바뀌어 버리고 만다. 쑥 새싹은 옆으로 뻗어나가는 땅속줄기 군데군데서 자라나온다. 그러니 쑥 새싹은 한두 개 띄엄띄엄 자라는 게 아니라 한꺼번에 수북이 무리지어 자라 올라와 눈 깜짝할 사이 쑥밭을 이루는 것이다.


꼭 시골에서 자라지 않았어도 누구나 한번쯤은 쑥을 뜯어 먹어 보았을 것이다. 손수 해 보지 않았어도 쑥국이나 쑥떡을 먹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게다. 사람 사는 곳 가까이서 자라는 쑥은 단군신화에도 등장하듯 예부터 들나물 가운데 가장 많이 먹어왔고 또 가장 널리 약재로 쓰여 왔던 풀이다.

바로 뜯어다 된장을 풀어 쑥국을 끓여먹고, 죽을 쑤어 먹고, 밥에 넣어 먹고, 떡도 해 먹고, 차로도 마셨다. 소꼴을 베다 낫에 베이기라도 하면 쑥을 뜯어 붙이고, 코피가 나면 콧속에 넣어 피를 멎게 하기도 했다. 지혈뿐 아니라 해독, 혈액순환, 강장, 강정, 진통, 면역, 소염, 식욕부진 따위에 만병통치약처럼 쓰였다. 그러니 쑥의 가장 약효가 좋다는 단오 무렵엔 너도 나도 쑥을 뜯어 널어 말렸다. 한여름엔 허리까지 자라난 쑥대를 베어다 모깃불을 피워 모기를 쫓았고, 재래식 화장실에 두어 냄새를 없애기도 했다.

유럽이 원산지인 쑥은 오래 전 농경이 시작되면서 곡식이나 농기구에 묻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예부터 인간 역사와 함께 해온 것이다. 그러기에 그리스 신화에서부터 아메리카 원주민의 전승에 이르기까지 쑥은 곳곳에서 그 모습을 나타낸다. 흔히 잡초라고 불리는 풀들은 대개 농경이 시작되고 농작물이 들어올 때 섞여와 농사짓는 둘레에 자리 잡고 농작물 생활 주기에 적응해가며 살아왔다. 농사 역사는 어쩌면 잡초와의 싸움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베어내고 뽑아내도 잡초는 억척스럽게 자라난다. 독한 제초제를 뿌려대도 잡초는 내성을 키워 다시 자라 올라온다. 제초제까지 동원한 이 무모한 싸움에서 농사꾼이 얻는 것은 없다. 땅을 죽이고, 몸을 망가뜨리고, 제초제를 만드는 자본을 살찌울 뿐이다.

잡초마저 자라지 않는 땅은 죽은 땅이다. 그곳은 아무것도 살 수 없는 사막인 것이다. 망가진 자연은 스스로 치유하는데, 회복해가는 과정에서 처음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잡초들이다. 버려진 밭이나 폐허가 된 농가는 망초 따위 일년생 잡초 밭이 되었다가, 몇 해 지나지 않아 쑥대밭으로 바뀐다. 다시 여러 해가 지나면 작은키나무들이 들어와 자라고 이어서 큰키나무가 자리 잡으면서 서서히 숲으로 바뀌어 간다. 당연히 잡초들은 이 숲에서 자라지 못한다. 잡초를 없애는 단 한 가지 방법은 자연한테 맡기는 것이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농사를 지으려면 잡초와 함께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얼마 전 시골에 사는 아는 분을 찾아갔다가 논둑에서 나물을 뜯었다. 그 집 아주머니께서 와서는 논둑에다는 워낙 제초제를 많이 쳐 대니까 거기서 자란 풀은 먹을 수 없단다. 한 바구니 캔 나물을 다 버렸다. 잡초는 가꾸지 않아도 얻어지는 좋은 먹을거리이다. 특히 봄나물은 무기질과 비타민이 풍부해서 면역력을 키워주고 감기도 예방할 수 있는 좋은 약이기도 하다. 달리 보면 잡초는 자연이 사람한테 베풀어 준 최고의 선물인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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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근 , 들꽃 , 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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