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6% 만족, 조용한 혁명

[정혜주의 바리오 아덴트로](3) - 바리오 아덴트로의 초기 성과

20세기에 우리가 직접 보고 그리하여 깨달아야만 했던 진실은, 잘 사는 나라만 국민들에게 의료나 교육과 같은 기본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국제보건기구 WHO에서 찬양했던 일차의료의 빛나는 예들, 케랄라나 쿠바와 같은 나라들이 그 명확한 예가 될 것이다.

필자는 과거 한 친구에게서 구 소련에서 유해물질인 페놀을 어떻게 취급했는지 들은 적이 있다. 작업장에서 페놀의 허용치가 0%였다는 것이다. ‘그런 비현실적인 기준이 어딨나’라고들 많이 이야기한다지만, 이는 오히려 노동자의 건강에 대한 국가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일단 경제발전을 해야 선진복지국가가 온다던 발전주의가 동원이데올로기에 불과함을 몸소 보여준 20세기의 가난한 복지국가들은 그러한 의지를 통해 건설되었고, 그 의지가 변질된 그 곳에서 또 무너져갔던 것이다.(사실 이런 서술은 조금 민감한 면이 있는데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므로 길게 다루지 않겠다.)

  카라카스 내 카티아(Catia) 지역에 설립되어 있는 누클레오 엔도헤노(Nucleo Endógeno). 사진에는 바리오 아덴트로 II 의 민중 클리닉과 뒤쪽 붉은 지붕의 방직 협동조합(co.op), 그리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광장이 보인다. 이 곳에는 신발공장(역시 협동조합)도 있고, 광장, 문화센터, 진단센터 등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 건물들은 모두 지역 주민들이 직접 지었는데, 전문적 기술습득을 도와줄 건축학교도 만들어지고 있다.

  누클레오 엔도헤노 내에 있는 민중약국, 보티카 포퓰라르(Botica Popular)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바리오 아덴트로는 21세기형 가난한(선진국 수준은 아니라는 의미에서) 복지국가의 새로운 예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쿠바 당국자들조차도 바리오 아덴트로를 새로운 의료시스템의 예로서 평가하고 있는데, 최근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적 변화에 힘입어 바리오 아덴트로는 볼리비아로, 또 다른 나라들고 수출되고 있는 중이다. 니카라구아에서 예전 산디니스타 당시 건설됐던 의료전달체제를 복구하고 발전시키는 작업 또한 바리오 아덴트로와의 연관성 하에서 진행 중이다.

바리오 아덴트로가 시작된 것은 2003년이므로 이제 햇수로 5년 째에 접어들었다. 그 성과를 논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시간적으로 아직까지 그 성과를 논하기는 이른 시점일 뿐 아니라,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는 바리오 아덴트로가 포괄적 사회정책의 일환으로서 시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바리오 아덴트로에 의한 성과와, 예를 들면 식량수급이 쉬워졌다거나 더 좋은 주거환경에 살게 됨으로써 생겨나는 건강 상의 이익을 분리해서 평가하기 힘든 점이 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PAHO(Pan‐American Health Organizatio)에서는 2006년 말, 바리오 아덴트로의 다양한 측면을 묘사한 자료집을 한 권 발간하였다.(자료집은 이곳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http://www.ops‐oms.org.ve) 이 자료집을 통해 우리는 바리오 아덴트로의 초기 성과를 엿볼 수 있다.




먼저, 보건지출이 지난 6년간 급격히 늘어났다. 2000년에는 6%에 불과했던 것이 2005년 최고수준인 31%를 거쳐 2006년에는 26%에 이른다. 바리오 아덴트로 참여민주주의의 핵심인 건강위원회 (Comités de Salud) 또한 지난 3년 사이에 4배 이상 그 수가 늘어났다. 환자들 또한 질환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환자모임에 참여하여 바리오 아덴트로의 운영에 참여하고 있고, 건강증진을 위한 운동모임, 자치적 정보공유를 위한 라디오 방송국 등도 크게 증가 중이다. 의료진의 경우 특히 의사인력을 아직도 쿠바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서 쿠바의사는 1만4천 명인 반면 베네수엘라 의사는 1천 명만이 바리오 아덴트로에 참여하고 있다.


위 표는 일차의료를 책임지는 바리오 아덴트로 I의 주요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진료소 수가 기존의 사적 시스템에 비해서 적음에도 불구하고, 바리오 아덴트로가 5배에 아까운 인구수를 포괄하고 훨씬 많은 의료진을 확보하고 있으며, 다양한 건강증진 및 예방활동에 참여함과 동시에 103개 필수의약품은 무상공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기적의 작전(Misión Milagro)의 성과를 살펴보기로 하자. 안과수술을 통해 백내장 등으로 앞을 못 보던 사람들의 눈을 띄어주는 이 프로그램은 2004년 약 120만 명을 치료한 반면, 기존의 안과시스템은 15만 명을 진료하는 데에 그쳤다.


그렇다면 건강지표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영아사망율과 같은 기본적인 지표는 베네수엘라에서도 꾸준한 하락세를 보이지만 이것은 다른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에서도 동일하므로 바리오 아덴트로의 성과로 보기 어렵다. 바리오 아덴트로의 성과는 각종 질환의 진단율과 사망율을 비교함으로써 엿볼 수 있다. 아래 네 그래프 모두에서 바리오 아덴트로가 시작된 2003년에서 2004년 사이 질환의 진단자 수가 급격하게 증가한 반면 같은 시기 사망자수는 급격히 감소되었다. 이것은 폐렴이 증가했다기 보다는 병원에 가는 것이 훨씬 쉬워졌기 때문에 초기 단계의 환자들이 병원에서 진단되게 되었고, 따라서 사망자수를 크게 줄일 수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맞겠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성과를 보이고 있는 바리오 아덴트로를 베네수엘라 민중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아래 자료는 PAHO 리포트가 아니라 반‐차베스파에서 보수주의적 여론조사 기관에 의뢰해 시행한 한 설문보고서에서 인용한 것이다. 원래는 차베스 반대의 근거로 삼으려 했을 것인데 사회프로그램에 대한 민중들의 지지가 워낙 높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보고서이다. 1,3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미션 중 어느 것이라도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은 42.2%. 이 중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은 식료품 보조정책인 Misión MERCAL (47.2%), 자신의 뿌리를 찾아주는 Misión Identidad (25.1%), 그리고 1차의료 Misión Barrio Adentro (20.9%) 순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용자의 수가 많을수록 이에 대한 만족도도 높아서, 이들 프로그램에 만족한다고 대답한 응답자수는 순서대로 무려 72.8%, 65.7%, 그리고 바리오 아덴트로는 64.6%로 나타났다. 사용하는 인구의 비율이 10%에 못 미치는 다른 미션의 경우에도 거의 가장 낮은Misión Marte의 25.5%부터 대부분이 5, 60% 이상의 만족율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재선 성공 및 통합 사회당 논의 등을 거치면서 차베스 정권의 향방에 대해 우리 나라에서도 많은 토론이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 행보가 어떤 식으로 결과하던 간에, 복지제도라고는 전혀 존재하지 않던 나라에서 50%가 넘는 빈민 및 민중 부문에 기반해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이 조용한 혁명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어 나가고 있고, 또 나아갈 지 꼼꼼히 관찰해볼 필요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다음부터는 3회에 걸쳐 바리오 아덴트로 성립과 진행과정에서 참여민주주의가 어떻게 실현되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덧붙이는 말

필자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 칼럼을 오랫만에 재개하게 된다. 이 글을 기다리셨던 독자가 있다면 진심으로 죄송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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