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이명박의 정상이데올로기

사회적 소수자 권리 실현의 교훈 삼아야

이명박 전 시장은 지난 12일 한 인터뷰에서 "인간은 남녀가 결합해서 서로 사는 것이 정상"이라며 동성애를 비하하고, 낙태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기본적으로는 반대인데, 불가피한 경우가 있다. 아이가 세상에 불구로 태어난다든지, 이런 불가피한 낙태는 용납이 될 수밖에 없는 거 같다"고 말해 장애인과 시민사회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이 발언으로 이명박 전 시장은 사회적 소수자 문제에 대한 최소한의 기초 인식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성소수자에 대해 '정상/비정상'을 가르는 것은 인간의 다양한 성적 지향과 자기결정권을 무시하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남성, 이성애 중심의 가부장적 지배이데올로기를 승인한다. 따라서 성소수자에 대한 '정상/비정상' 구분은 보편적인 인권 침해이자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고 적대적 관계를 고착하는데 기여하게 된다.

이명박 전 시장의 장애인 낙태 발언은 정상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극단적이고 적대적인가를 보여준다. 대통령 후보로, 공인으로서의 정치인인 이명박 전 시장이, 더군다나 장애인단체의 고문까지 역임했던 사람이 이성애를 정상으로, 동성애를 비정상으로, 그리고 장애인을 비정상인으로 사고하고 있다는 점은 참으로 암담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낙태에 대한 보수적, 진보적 입장은 오랜동안 논란이 되어왔고 또 얼마든지 논쟁할 수 있는 문제다. 대통령 예비후보의 입장에서 낙태에 반대한다는 보수적인 입장을 갖는 것도 얼마든지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낙태를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를 넘어 장애인일 경우에는 낙태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은 증폭된다. 이명박 시장은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인권의 보편성 자체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에 대한 정상이데올로기의 횡행은 장애인은 비정상인이라는 계급적 이해에서 비롯된다. 손상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장애로 되고, 장애는 사회적 억압의 다양한 형태를 띤다. 그런 점에서 정상이데올로기는 장애인과 사회적 소수자의 존립과 생활을 위협하고, 장애에 대한 사회적, 국가적 실천을 지연, 지체시키게 된다. 사회적 소수자의 존립은 사회적, 국가적 억압의 결과이므로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 실현은 당사자의 노력도 노력이거니와 사회적,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가령 동성애에 대한 법적 제도적 결합과 동성애 가족 인정은 시나브로 전 세계적으로 상식으로 이해되고 있다. 사회적 편견도 약화되는 추세이고,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 금지는 국가인권위원회법에도 공식화되어 있다. 장애도 개인의 손상의 문제로 인지하고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국가적 차원에서 장애인의 권리를 실현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를 가로막는 가장 위험한 사회적 요인이 바로 정상이데올로기이다. 정상이데올로기는 남성, 이성애, 정상인 중심의 가부장적 인식을 재생산함으로써 우리 사회 주류적이고 지배적인 계급의 이해와 결탁한다. 이명박 전 시장이 장애인은 낙태해도 된다는 저질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은 분명 돌이키기 어려운 발언이지만, 장애인의 권리를 사회적, 국가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정치인이 이처럼 위험한 정상이데올로기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은 실로 치명적인 것이다.

이명박 시장이 해명이라고 내놓은 입장을 보면 사태는 점입가경이다. 이명박 전 시장은 15일 "낙태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의 내용을 압축해서 표현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하고 "서울시장 재임시절 장애인을 위해 펼친 정책들을 아시는 분들은 오해에서 비롯된 일임을 이해하리라 믿는다"며 유감을 표했다. 그런데 '본의 아닌 오해'라는 해명에는 아무런 내용이 없으며, 재임시절에 펼친 정책을 들어 오해라고 주장하는 것도 회피 논리에 불과하다. 이 유감 표명으로 미루어 볼 때 이명박 자신이 현 사태의 본질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사회적 소수자를 적대시하는 근본적인 철학을 갖고 있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사회적 소수자 권리 실현을 위한 사회적, 국가적 실천에 있어, 공인으로서의 정치인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공인으로서의 정치인은 진보와 보수를 떠나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지금까지 침해 당해온, 지금도 침해당하고 있는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 문제를 정확히 인지하려는 자세를 기본으로 견지해야 한다. 따라서 이명박 전 시장의 이번 발언의 배경과 이후 사태 수습 과정이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이명박 전 시장이 정상이데올로기를 부정하지 않음으로서 사회적 소수자를 적대시하는 길을 계속 갈 것인지, 진정한 반성과 함께 정치인의 길을 갈 것인지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가 예의주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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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mon

    태아도 맥박이 뛰고 생각이 있는 살아있는 생명체다. 헌데 몸에 장애가 잇으면 죽여도 괜찮다 면, 장애인으로 태어난 어른들은 죽여도 죄가 안된다 얘기나 같지 않은가? 모름지기 인간이라 면 최소한 측은지심이라는 것을 가져야 한다. 그게 없으면 동물이라는 얘기니라

  • 아마

    대통령이 될까봐 두려운가보다
    스스로 낙선운동을 벌이고 있군 !
    바람직하다. 계속 드러내다오.

  • leehwang

    모두가 만족시킬 수 있는 공약이 있을 수 없다. 최대한의 많은 사람이 우선이 되고 그 다음 소수가 인정받는 사회가 옳은 사회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