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현실로! 늘 처음처럼!”

[연정의 바보같은사랑](7) -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투쟁 ①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이하 ‘비정규직지회’) 제2기 집행부가 출범했다. 비정규직지회는 지난 6월 4일~5일, 임원선거를 실시하였다. 5월 4일 만기 출소한 박정훈 지회장이 조합원들의 뜨거운 지지 속에 다시 지회장에 당선되었다.

2006년 5월 13일.

이 날은 비정규직 투쟁의 새로운 역사가 만들어지는 날이었다.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일터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이 노조를 인정받고,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합의서가 체결된 날이었기 때문이다.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지만, 그 상식적인 것을 위해 많은 이들이 얼마나 힘겹게 싸우고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현장으로 돌아가는 길은 멀고 험난했다.

2007년 1월, 타결 된지 8개월 만에 이들은 눈 쌓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앞에 다시 피켓을 들고 서야했다. 2차 복직이 이루어진 1월 2일, 사측이 복직자 32명 중 27명을 이들이 원래 일했던 조업 현장이 아닌 시설경비업체로 배치한 것이다. 이미 1차 복직 때도 10명을 경비업체로 배치했었기에 조합원들이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그동안에도 노조무력화를 위해 계속 ‘장난질’을 쳐온 사측이 자신들의 의도를 본격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측이 집요하게 노조 사찰을 해온 행위가 발각되기도 했다. 힘든 3개월이었다. 아직도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많은 장투 동지들이 있기에 힘들다는 말조차 편히 할 수 없었다.

  2007년 1월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앞


“우리가 이럴려고 크레인에 올라 간 게 아닌데...”
술에 잔뜩 취해 전화한 조합원의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크레인에 3번 올라가면서, 크레인에서 생쌀을 씹어 먹고 대테러 무기로 진압을 당하면서, 눈이 녹아 질퍽거리는 강남거리에서 절을 하면서 이들이 꿈꾸었던 것은 그저 노동조합 인정받고 원래 일하던 공장에서 일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사측은 두 번이나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기만적인 행위를 했다.

  2005년 10월 24일 1차크레인점거농성장면 [출처: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2006년 4월 19일 2차 크레인점거농성 [출처: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2006년 2월 7일 서울 본사 부근에서 5보 1배를 하고 있는 장면 [출처: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정몽구 회장이 징역 3년을 선고받던 2월 5일,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몽구 회장이 지나가는 법원 로비에서 약속을 지키라고 절규 했다. 미리 와있던 현대·기아차·현대하이스코 직원들의 폭력에 의해 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의 시위는 채 십 분을 넘기지 못하고 끝났다.

  2007년 2월 5일, 정몽구회장 징역3년 선고받던날 서초동 법원에서


이들이 승리하던 순간을 함께 했던 내가 이들이 다시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추운 서울 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있고, 법원에서 처절한 투쟁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정말 속상한 일이었다. 내 속이 이런데 조합원들과 그 가족들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5.13 합의서가 체결되고 일주일이 지난 2006년 5월 19일, 지역 승리보고대회 때, “승리가 실감 나냐?”는 질문에 “첫 월급을 타갖고 와서 놀이공원이라도 다녀와야 실감이 날 것 같다.”고 했던 조합원 가족의 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했다.


다행히도 4월 13일, 6월 말까지 복직하는 전 조합원을 10월 말까지 현장으로 배치한다는 내용의 보충합의서가 체결되었다. 정몽구 회장을 ‘한국사회 공공의적’으로 규정한 민주노총 전남지역본부가 정 회장의 재판 일에 법원 앞에서 열기로 한 ‘현대자동차 정몽구 구속 촉구 1차 결의대회’를 나흘 앞둔 날이었다.

보충합의서 작성에는 원·하청, 원·하청 노조가 참여하였다. 양재동 일인시위와 선전전, 2차례에 걸친 정몽구 회장 재판 투쟁, 조합원들의 단결된 투쟁과 한결같은 연대의 성과였다.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투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고통과 아픔이 있었다. 특히, 지역에서 총집중 투쟁을 하면서 27명이 구속되고, 구형량 250년, 100년이 넘는 실형이 선고되고, 수 백 명이 다쳤다. 하지만 누구 하나 원망하거나 후회하는 이를 보지 못했다. 지난해 4월 27일, 덤프연대 전남지부 광양분회 조합원들이 면허정지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집회 장소에 흙을 퍼 나르고 이 흙과 차량으로 바리케이트를 쳐주었다. 농민들은 각 마을마다 한 되 두 되 모은 쌀로 주먹밥 2천 개를 만들어 날라주고, 음악을 크게 틀어주며 함께 했다.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투쟁의 승리는 강고한 주체들의 의지와 함께 연대 투쟁의 결과물이다.

5월 4일에는 2005년 1차 크레인 점거농성으로 구속되었던 박정훈 지회장이 1년 6개월 만에 동지들의 곁으로 돌아왔고, 6월4~5일 임원 선거를 통해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제2기 집행부가 출범했다. 그리고 비정규직지회는 많은 장투 동지들이 꿈에 그리는 임단협 체결 투쟁에 들어갔다.

  2006년 4월 27일 집회 도중 덤프연대전남지부 광양분회 조합원들이 흙으로 바리케이트를 치는 장면

그러나 아직도 가야할 길은 멀고, 할 일은 많아 보인다. 사측은 호시탐탐 노조 무력화를 위해 잔머리를 굴리고 있다. 조합원들은 6월말 3차 복직하는 조합원 모두가 현장에 배치될 때까지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할 것이다. 또, 현장 조직화, 임금이나 근무형태 등 노동조건 개선도 고민해야 한다.

6월 7일, 집단교섭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협력업체들은 개별교섭 희망 공문만 발송하고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며칠 전 열린 3차 교섭에서는 총 11개 업체 중 4개 업체가 참석하였으나 여전히 개별교섭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2기 지도부의 공약은 단협 체결로 고용안정 쟁취, 현장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에 복무하는 투쟁 등 지극히 상식적이고 소박한 내용들이다. 지도부가 그 소박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거라는 것을 지도부도 조합원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섣부른 절망도 좌절도 하지 않는다.

나는 안다. 이들은 한다면 하는 이들이다. 1기 비정규직지회의 슬로건은 “한다면 한다”였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출처: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박정훈 지회장은 “이번 선거 유세를 하면서 우리의 승리를 ‘상처 남은 승리’라고 이야기 했었다. 조합원의 3분의 2가 집행유예자가 되었고, 우리의 기대가 아직 현실이 되지 않았기 에 조합원들 가슴에는 흉터가 남아있다. 이 점에 대한 반성과 함께 나는 해결사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다. 동지들이 함께 할 때, 그 흉터도 없어지게 될 거라고 했다. 처음 노조를 만들 때 가졌던 희망을 현실로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박정훈 지회장은 “희망”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한다. 그는 옥중에서 조합원들에게 “희망을 꿈꾸는 자 반드시 희망을 이룹니다”라는 글을 네잎 클로버를 붙여 보내기도 했었다. 얼마 전, 지회장이 조합원들에게 띄우는 글에서도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동지들의 ‘희망 찾기’가 느껴진다. 그 희망은 ‘희망’에 그치는 것이 아닌 현실로 이어지는 것이다.

“정성이 깃들면 바위에도 꽃이 피듯이 정성으로 조합원 동지들을 대하면 어떤 난관과 장애가 조성이 되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여깁니다.”

“희망을 현실로! 늘 처음처럼!”
제2기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의 슬로건이다.
힘 내시기 바란다.

  출소후 첫집회인 평택 이젠텍 집회에서 박정훈 지회장(왼쪽), 입고있는 바지는 가대위에서 선물한 것이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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