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노동자가 소원이었던 진짜노동자 박정훈, 동지들 품에 안기다

[연정의 바보같은사랑](7) -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투쟁 ③

2007년 5월 4일 0시. 2005년 11월, 1차 크레인 점거 농성으로 구속되었던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박정훈 지회장이 1년 6개 월 간의 옥고를 마치고 동지들의 곁으로 돌아왔다. 현재, 박정훈 지회장은 6월 4~5일 임원 선거를 통해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제2기 지회장에 당선되어 완전한 현장 복직과 임단협 체결투쟁, 연대투쟁 등으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2007년 5월 4일 0시, 그 날의 설렘과 기쁨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 <필자 주>

“나온다!” “빨리 두부 먹여~!”

박정훈 지회장의 출소를 10분 남겨둔 5월 3일 밤 11시 50분. 순천교도소 앞에 많은 지역동지와 조합원, 조합원 가족들, 서울에서 축하해주기 위해 내려온 여러 동지들이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 나누며 기다리고 있다. 순천에서 열리는 노동자 국제학교 참석을 위해 내려왔던 미국노총 간부도 지회장의 출소를 축하하기 위해 왔다. 늦은 시간, 함께 한 이들이 2백 명 가까이 된다. 모두들 ‘늦은 시간이라 사람이 많이 안모이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온 듯 하다.




“나온다!”
“와아~”

자정에서 10분을 넘긴 시간, 우렁찬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온다. 티셔츠와 면바지에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조끼를 입은 박정훈 지회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1년 6개월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교도소를 6번 옮겨 다녔다고 한다. 지회장은 오늘 나오려고 나오기 전에 두 번 샤워를 했는데, 나오기 30분 전에 또 샤워를 했다고 한다. 가족들이 양복을 넣어 주었는데, 지회장의 요청으로 그동안 지회 사무실 캐비넷에 보관해 두었던 평상복과 투쟁 조끼를 조합원들이 영치품으로 넣어 주었다고 한다. 이 투쟁 조끼가 얼마나 입고 싶었을까.



“빨리 두부 먹여~!”
행여나 두부를 안 먹이면 큰 일 날까, 정문 앞을 지키고 있던 동지들이 지회장이 나오자마자 두부를 먹인다. 조합원과 지역 동지들에게 인사를 하느라 교도소 문을 나선 지회장이 몇 발자욱 나오지 못하고 있다. 사회자의 사태 수습으로 겨우 앞으로 나온 지회장이 어머니와 포옹을 한다.



“직접 멕여 주십시오잉~”

어머니가 두부를 지회장에게 먹여주신다.

“고맙습니다...”

겨우 이 한 마디를 던진 어머니의 얼굴 깊이 패인 주름살에 눈물이 고인다.

“노동자는 하늘, 노동자를 믿고 싸운다면 꼭 승리할 수 있다”

환영식 중에 한 조합원이 할 말이 있다며 나와 마이크를 잡더니 분노감과 술기운이 반반씩 섞인 목소리로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동지들의 이야기를 한다.

이 날은 장기투쟁을 하고 있거나 해본 경험이 있는 노동자들에게 슬픈 날이었다. 이 날, 오후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 동지들의 총회에서 32억 원 위로금 합의안이 가결되었다. 그 날 나도 청주에서 광주를 거쳐 순천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내내 총회가 끝난 후에 절망적인 표정으로 흩어지던 하청지회 동지들의 모습과 지금도 거리에서 투쟁을 계속 하고 있는 동지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 박정훈 지회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이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는 하늘이라는 것 노동자를 믿고 싸운다면 꼭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조합원 동지들을 통해서 그리고 지역의 많은 동지들을 통해서 배웠고 확신을 하였습니다..... 제가 혹시나 부족한 점이 보이고 건방지고 겸손하지 못할 때 여러 동지들이 저를 꾸짖어 주십시오. 그리고 절대 믿음을 버리지 않고 동지들과 함께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 되는 그날까지 꼭 함께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 정희성 전 민주노총 광주전남본부장, 김영재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장 등 지금도 감옥 안에 있는 동지들에 대한 미안함 마음과 이들이 못 다한 투쟁을 현장에서 여러 동지들과 실천하며 열심히 싸워가겠다는 결의도 밝힌다.

참석한 이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조합원들이 힘껏 헹가래를 하는 것으로 출소환영식 1부가 마무리 되었다.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제공


3에 시작해서 3에 승리한 비정규직지회

“2005년 6월 13일이 무슨 날입니까?”
“지회 설립일 입니다!”
“10월 23일에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1차 크레인 점거 농성)갔습니다!”
“11월 3일에는요?”
“내려왔습니다!”
“5월 13일에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합의 했습니다.”
“4월 13일은요?”
“보충합의서 작성 했습니다!”
“5월 3일은 무슨 날입니까?”
“박정훈 지회장님 출소했습니다!”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제공


하이스코 비정규직 투쟁으로 옥살이를 하면서도 하이스코 동지들에 대한 뜨거운 애정의 끈을 한시도 놓지 않은 전남지역본부 박상욱 본부장이 환영사를 시작하자마자 질문을 던진다. 조합원들의 대답 소리가 우렁차다.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는 3에서 시작해서 3에 살고 3에 승리 했습니다. 비정규직지회가 더욱 발전하고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지회장님 출소를 축하합니다.”

박상욱 본부장의 사려 깊은 애정이 돋보이는 환영사다. 출소환영식 2부가 시지부 사무실에서 계속된다.

“제자이지만, 동지라 부르기로 약속 했습니다”

“작년 연말에 연하장을 받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그 때 저는 박정훈 지회장이 출소하면 제자이지만 동지라 부르기로 약속했습니다. 지역의 노동운동을 같이 하는 동지로서 열심히 활동할 것을 약속합니다. 환영합니다.”

“이제 지회장도 가정을 이룰 때가 되었습니다. 저는 책임지고 선을 주선하겠습니다. 당에서 책임지고 박정훈 지회장의 소개팅을 5번 주선하겠습니다.”



지역에서 교육운동을 하는 순천대 정영철 교수와 민주노동당 순천시위원회 이수근 위원장이 많은 이들 앞에서 약속을 한 가지 씩 한다. 그냥 말로만 축하하는 환영사가 아닌 구체적인 실천을 수반하는 환영사들이다. 이수근 위원장은 약간은 뒷 감당이 안 되는지 뒤풀이 자리에서 S.O.S. 요청을 하기도 한다.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은 약속 안 지키는 사람을 겁나 싫어한다.



가족대책위 회원들이 나와 환영 인사와 함께 노래 한 곡을 선사한다. 노래 제목은 “어머나~!”

비정규직지회 조합원과 가족들은 투쟁 초기부터 함께 울고 웃고 하다보니 서로 허물이 없다. 아이들이 오면 조합원 너나 할 것 없이 함께 챙기기 때문에 처음에는 아이들의 진짜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기도 했다. 구속 동지의 아이들을 다른 조합원 가족이 데려다가 돌보기도 했었다. 때때로 가대위 언니들에게서 더 과격한 면모가 보이기도 한다. 힘겨웠던 지난 2년 간의 시간을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이들은 이렇게 단련되어 왔다.



“굉장히 좋죠. 애틋하기도 하고... 우리를 대신해서 들어간 분인데, 나오시니 짐을 덜게 된 느낌이에요. 그동안 잘 안나오던 조합원들도 오고,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예전에는 비정규직으로 살면서도 문제의식이 별로 없었는데, 이 투쟁을 통해 내 삶도 180도 달라지게 되었어요. 남편과 조합원들을 보면서 나도 비정규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동안 많이 당하면서 살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후회는 없습니다. 그동안 이런 세상을 모르고 산 것이 안타깝죠. 내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것에 만족해요. 저는 지금 제 일이 좋아요.”

유통업 비정규노동자로 일하다가 조직 활동가 교육을 받고, 현재는 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하고 있는 가대위 이형순 회원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저는 요즘 변화된 제 모습에 행복합니다”

“존경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습니다.”

1차 크레인 점거농성 당시, 지회장과 같은 동에서 점거 농성을 했던 정채만 조합원이 지회장님께 드리는 편지글을 낭독한다.



“확약서가 체결되고 모두 경찰서에 갔다가 풀려났을 때 지회장님이 그렇게 긴 시간 계실 줄 알았으면 조금이라도 더 잘해드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미안함에 가슴 아팠습니다. 어느덧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 오늘 이렇게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기분 좋습니다. 저는 요즘 어디를 가더라도 길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변화된 제 모습에 행복합니다. 비정규직으로 살아온 제가 언제 이렇게 좋은 지인들을 만날 수 있고, 이렇게 좋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을 생각이나 해봤겠습니까. 이 모든 것이 노동조합 하나 만들었을 뿐인데 조합에 가입만 했을 뿐인데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이렇게 좋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좋습니다. 박정훈 지회장님 출소를 환영하며 헌신적이며 모범적인 모습에 감사하며 처음에 우리들이 했던 마음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 모든 조합원의 한 사람으로서 이 글을 바칩니다.”



깊은 성찰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며칠 동안 고민하며 썼다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닌 것 같다. 그는 2차 복직자 중 한 명으로 경비업체에 배치되었던 조합원이다. 사측의 회유와 협박을 이겨내고 지회를 믿고 동지를 믿은 끝에 그는 이번에 현장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사측의 공작으로 바로 현장 근무가 이루어지지 않기도 했지만, 씩씩하게 투쟁해서 지금은 현장에서 해고 전에 했던 기계정비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노동조합을 인정받고 노조활동을 보장받는다 하더라도 지회 방침을 뒤로하고 개별적인 행동을 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어렵고 힘든 길을 가야한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지회를 다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조합원들도 책무를 다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박정훈 지회장님의 출소를 축하하며 현장에 복직된 조합원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조합 지침에 의해 성실히 이행하며 모든 조합원의 모범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정훈이는 평생 소원이 진짜 노동자가 되는 것이었어요”

환영식 자리에는 지회장의 학창시절 친구들도 참석해서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정훈이는 평생 소원이 진짜 노동자가 되는 것이었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하이스코에 다니는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니 학교 다닐 때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우리 운동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노동자고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고 한다. 특히, 그는 ‘노동자 전투부대’에 깊은 감흥을 받았던 모양이다.

이 정도면 박정훈 지회장은 평생 소원을 이루었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물론, 박정훈 지회장은 자신의 소원은 아직도 진행형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입니다”

“희망이 깨질까봐 많이 두려웠습니다. 다행히 여기까지 왔고, 우리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다른 투쟁을 면밀히 준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합원들이 준비한 음식과 술이 나오고 환영사와 건배 제의가 계속되는 가운데 그동안 투쟁을 함께 해 온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정준현 조직부장이 이야기한다.

“우리 조합원들께 배우고 지역에 있는 많은 동지들께 배우고 좀 더 우리 동지들에게 지역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는 사람으로 헌신하는 사람으로 열심히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가 현대하이스코에 깃발을 꽂아 조합원 동지들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가 함께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하종강 선생님이 하신 말이 생각납니다.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입니다.”



지회장이 인사말에 이어 노래를 부르라는 참석자들의 뜨거운 요구에 부흥하여 <동지가>를 선창하고, 참석한 모든 이들이 힘차게 팔뚝질을 하며 부른다.

“동지여 내가 있다. 투쟁 투쟁!”

“휘몰아치는 거센 바람에도 부딪혀오는 거센 억압에도 우리는 반드시 모이었다 마주보았다”
2부 행사는 새벽 3시가 다 되어서야 <파업가>를 부르며 마무리가 되고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자리를 옮겨 3부를 진행했다. 밤새도록 울고 웃으며 지난 시간들을 회고하고 격려하며 결의를 다졌다는 후문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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