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투쟁 없이는 현장으로 돌아갈 수 없다”

[연정의 바보같은사랑](7) -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투쟁 ④

2007년 5월 4일 0시. 2005년 11월, 11일 간의 크레인 농성으로 구속되었던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박정훈 지회장이 1년 6개 월 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사랑하는 동지들 곁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5월 13일 합의서 작성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듯 했으나 사측은 복직하는 조합원들을 시설·경비업체로 배치하여 노조 무력화의 술책을 드러냈다. 비정규직지회의 끈질긴 투쟁으로 지난 4월 13일, 전원 현장배치 내용을 담은 추가 합의서가 작성되었다. 이는 지회장 출감 전에 복직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고자 하는 조합원들의 강한 의지의 결과물이다. 그 뒤로도 사측은 호시탐탐 노조 무력화를 기도하고 있으나 조합원들의 단결된 힘으로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박정훈 지회장이 출소 한 달 전에 조부 상으로 잠시 귀휴를 받았던 당시 써두었던 인터뷰 내용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 <필자주>

“안녕하세요!”

첫 인사를 건내고 ‘아차’싶었다. 조부상 중인 이에게 적절한 인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안한 마음을 전하자 박정훈 지회장은 소탈하게 웃으며 이야기한다.

“괜찮습니다. 사람이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건 자연스런 일인걸요.”

순천교도소에 수감 중인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박정훈 지회장이 만기 출소 한 달을 앞두고 조부상을 당해 1박 2일 귀휴를 받아 1년 5개월 만에 감옥 밖 봄 기운을 느끼고 돌아갔다. 1박 2일 이라고 해봐야 3월 27일 밤 9시부터 28일 오후 5시까지였으니 하루가 채 못 되는 20시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20시간이 지회 조합원들과 지역 동지들에게는 몇 달에 비유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시간이었다. 할아버지를 먼 곳으로 보내드리는 안타까운 이별의 시간이기도 했지만, 그리운 이들 곁에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는 만남의 시간이기도 했다.

  조합원과 이야기나누고 있는 박정훈 지회장 [출처: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제공]

[출처: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제공(조합원 핸드폰 촬영)]

박정훈 지회장은 조합원들에게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가슴이 아프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우리 조합원들을 만나게 해주셨다.”는 소회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한다.

소식을 접한 많은 조합원과 지역 동지들이 빈소에서 밤을 새고, 장지까지 함께 했다.

3월 28일 오전, 장지로 가고 있는 박정훈 지회장과 짧은 전화 인터뷰를 했다. 그는 인터뷰 중간 중간 “부끄럽다.”고 했다. 소박하고 겸손한 박 지회장의 성품을 느낄 수 있었다. 오죽하면 박 지회장 옆에서 전화 내용을 듣고 있던 GS칼텍스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김영복 의장이 잠시 후에 전화를 해서 “박정훈 지회장이 자꾸 부끄럽다고 하는데, 너무 겸손한 말”이라고 한다.

28일 오후 5시, 20시간의 짧은 해후를 마치고 다시 순천교도소로 들어가는 지회장을 조합원들이 배웅했다. 사랑하는 동지들을 남기고 또 다시 차가운 감옥으로 들어가는 지회장을 사진으로 보았다. 궂은 날씨에 조부상을 치루느라 봄 기운을 느끼지도 못했을 지회장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출처: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제공]

[출처: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제공]


- 한미FTA 저지 옥중단식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건강은 어떠신가?

단식은 일주일간 진행을 하고 끝냈고, 건강은 괜찮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30일 까지 했으면 싶었는데, 함께 하고 있는 분들의 의견을 존중해서 따르기로 했다.

- 조합원들은 많이 만나셨나? 조합원들을 보니 어떠신가?

조합원뿐만 아니라 지역의 모든 동지들을 다 본 것 같다. 기쁘고 고마울 따름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지회를 지켜준 조합원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 최근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투쟁 상황은 들으셨나?

민주노총 전남지역본부를 통해 (복직 조합원들을 조업 현장이 아닌 경비업체로 배치한 것)간단하게 전해 들었다. 최근, 사측이 전환배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정몽구 회장의 실형 선고며 현대그룹 세무조사, 그리고 우리 조합원들이 정몽구 회장을 끈질기게 쫓아다닌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난 시간 사측의 행태로 보았을 때, 지금의 모습도 믿을 것이 못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투쟁하지 않는다면 저들은 결코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거다. 우리의 투쟁 없이는 현장으로 돌아갈 수 없다.

- 다른 장투 사업장에 대해서도 알고 있나?

KTX, 기륭전자, 하이닉스 등 오랜 시간 싸우고 있는 장투 동지들이 많이 있는 걸로 안다. 1년, 2년 흘러갈수록 회사의 탄압이나 방패, 곤봉보다는 생계 때문에 떠나가는 동지들이 생겨나는 것이 가슴 아프다. 또, 공감도 된다. 모두가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이 클 것이다. 하지만 그 마음만 갖고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없다. 투쟁은 이 억울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힘이다. 나오면 동지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할 것이다.

진실 되게 살고자하고 노동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의지가 세상의 벽에 부딪힐 때,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뛰어들면 나만 손해 본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 걱정이다. 모든 동지들이 회사로 복귀하여 노동자로서 떳떳하게 살고 원했던 일들을 하면서 살아간다면 세상이 조금씩 좋아질 거다.

- 기타, 하고 싶은 이야기

크레인 점거를 하면, 몇 명 구속이 되면, 우리 복직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저들은 우리 투쟁을 무력화하기 위해 73명의 조합원들을 집행유예자로 만들었다. 그것이 조합원들에게 미안하다. 그럼에도 버텨주고 싸워준 조합원들이 고맙다. 반드시 현장노동자로 복직해서 우리 싸움의 계기로 바꾸어 나갔으면 좋겠다. 현재 조합원이 아닌 비정규 노동자들도 우리 조합으로 들어오게 해서 노동자로서 당당하게 살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얼마 후 나간다 해도 다시 감방으로 들어오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웃음) 그 길이 내 길이라 생각한다면 그 길을 가겠다. 물론, 내가 다시 들어가면 우리 가족들의 고통이 있을 거다. 하지만 한 가정이 겪는 것이 더 많은 가족들이 겪을 고통을 최소화하는 길이라면 한 가정이 겪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이럴 땐 뭐라고 해야 하는 건지, 이 부분을 글에 넣어야 하는 건지 고민이다.)

함께 싸워주신 지역의 많은 노동자들과 시민단체가 항상 고맙다. 그 은혜를 죽을 때 까지 갚을랑가 모르겠다. 그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살아가겠다. 그것이 노동자와 사람의 도리이다. 조합원들이 절대 집회 연설 하지 말라고 했다. (웃음) 부끄럽다. 겨우 1년 반 있었을 뿐인데, 이런 말을 하려니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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