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정치에 중립의 잣대가 무어냐

노무현 대통령 발언이 갖는 진짜 심각한 문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18일 노무현 대통령의 원광대 강연(6월8일), 6.10항쟁 기념사, 한겨레신문 인터뷰(6월13일) 등이 대통령의 선거 중립의무를 위반했다는 요지의 결정문을 발표했다. 공무원의 선거에서의 중립의무를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9조(제9조① 공무원 기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기관.단체를 포함한다)는 선거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의 행사 기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를 위반했다는 결정이다. 한편 선관위는 법적 처벌로 이어질 수 있는 선거법 제254조의 사전선거운동 여부에 대해 판단 유보 결정을 내림으로서 지난 7일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정에서 한 단계 나아갔다.

선관위는 노무현 대통령이 8일 원광대 강연에서 선거법 9조의 위헌성을 강하게 제기하며 "(이명박 전 시장의) 감세론 절대로 속지 말라" "대운하를 민자로 한다는데 진짜 누가 민자로 들어오겠나"라는 발언, 6.10항쟁 기념사의 "군사독재의 잔재들은 아직도 건재하여 역사를 되돌리려 하고 있다" "지난날 독재개발의 후광을 빌려 정권을 잡으려 하고 있다"는 발언, 14일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 중 "한나라당은 지역주의로 아예 굳어진 정당" "'잃어버린 10년'이 있다면 한나라당이 만든 재앙"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은 성립 불가능" 등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열린우리당 내 친노 성향을 제외한 여권과 야당은 일제히 선관위 결정에 동조하며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에서 중립을 지킬 것을 주문했다. 민주노동당 역시 "임기말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대선에 개입하거나 국민 여론을 호도해 불필요한 정국 혼란을 일으키지 말고 선관위 요구에 따름으로써 국민을 안심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선관위의 결정은 공무원법상 대통령의 정치활동 허용의 문제와 공직선거법상 선거 중립의무 위반 사이에서 후자가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현행법상의 문제와 현실 정치활동 사이의 괴리의 문제다.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현행 선거법상 '위반' 결정은 그 자체로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정무직 공무원으로서의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거나 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판단할 일은 아니다. 대통령이 행하는 국정 업무 어느 하나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 없으며, 대통령의 발언, 동선, 행위 어느 하나 정치활동이 아닌 것이 없다. 선관위가 선거 중립 위반으로 문제삼은 발언도 그렇다.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자유주의적 정치인이자 대통령 신분으로서의 노무현의 정치적 소신이 담긴 것으로, 발언하는 그 자체로는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 다만 대통령이라는 어마어마한 공적 권력을 동원한 정치활동이라는 점에서 책임과 심판의 문제는 분명히 가려야 한다.

공무원의 정치활동의 제한(국가공무원법 제65조 정치운동의 금지)이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공직선거법 제9조 공무원의 중립의무)은 사회구성원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문제의 소지를 갖고 된다.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제한하는 국가공무원법은 공무원노동자의 정치활동을 제약하는 독소조항으로 작용한다. 지금도 공무원노조는 허용되지 않고 있으며, 공무원의 단체행동권 등 노동3권도 심각하게 침해되는 실정이다. 또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규정한 공직선거법은 공무원 일반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는 현실과 부딪힌다. 가령 한미FTA 협상이 거짓과 왜곡으로 진행되는 동안 농림부, 정통부, 외통부, 문광부 등의 고위 공무원 중 어느 누구 하나 양심선언을 하고 나선 일이 없었다. 현실에서 공무는 수구적이고 친자본적인 형태로 수행되고 있으며, 그 자체로 정치적 성격을 갖는다. 선거 시기라도 마찬가지다. 현실에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하며, 존재한다 하더라도 미비한 수준일 따름이다.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선거법 위반으로 문제삼기보다는, 반한나라당 따위의 공세를 통해 집권 후반기 지지세력의 결집과 이를 바탕으로 한 신자유주의정치의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정치활동의 반사회적 효과에 주목해야 한다. 정치활동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가 초래하는 비극적 현실이 더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은 불가능하다"고 하는데, 과연 대통령만 중립이 불가능할까. 공무원노동자는 지금도 국가공무원법 제65조에 발목을 잡혀 정치활동에 심대한 제약을 받고 있다. 더군다나 공무원의노동조합설립및운영에관한법률(공무원노조특별법)은 헌법에 보장된 공무원노동자의 결사의 자유와 교섭권을 침해하고 노조활동을 위협해 국제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다. 공무원노조를 불법단체로 몰아 경찰과 용역 깡패를 동원하는 일조차 비일비재한 실정이니 더 거론해서 무엇하랴. 교사노동자 역시 정당의 가입과 활동, 선거운동, 선거 출마 따위가 모두 법(교육기본법 제6조, 제13조)으로 금지되어 있고, 기본적인 참정권을 행사한 교사노동자는 응당 교사직 박탈이라는 봉변을 당해야 하는 형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활동의 자유만큼 모든 공무원의 정치활동의 자유도 보장되어야 한다. 굳이 따지자면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정치활동의 자유(제21조 ①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를 갖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정치활동은 사회구성원으로부터 엄정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