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좌파지식인들은 어디에 있는가

자본 위탁경영과 대학 외주경영, 혼연일체로 아수라장

나는 공범자다. 나의 소비를 통해 자본주의는 지금도 굴러간다. 영화 <매트릭스>는 매트릭스 안에서 누구든지 자본주의의 요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자본주의의 목줄을 끊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물길을 터주는 나는 자본주의의 공범자다. 1999년 교수계약제 관련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으로 우리 대학에는 비정규직 교수들이 봇물처럼 늘어났다. 이것을 호기로 삼아 대학은 교육 하청사업을 벌였고 비정규직 보호법안이 시행되기 전부터 이미 비정규직 교수, 정규직 교수들은 노동자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소비자로 ‘등극’했고 대학이라는 동일한 공간 안에 노동자.소비자가 공존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BK21인지 뭔지 국가가 주도권을 잡으면서 정규직 비정규직 가릴 것 없이 교수들은 자본의 노예로 전락했다. 그러나 가만히 이제껏 이루어진 일들을 반추하다 보면 국가가 헐값의 비정규직 교수들을 사들여 그들에게 대학교육을 위탁했고 하청을 주었던 것이다. 비정규직 교수 연간 강의료가 1080만 원으로 2006년도 최저생계비 기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얘기는 이제 신물 나도록 들었다.

문제는, 국가와 자본이 옆의 동료들에게 교육 하청사업을 벌이는 동안 손 놓고 있었던 나는 국가와 자본의 공범자였던 것이다. 방송에서만 프로그램을 외주 주고 기업에서만 아웃소싱 했던 것이 아니라 대학에서도 그동안 버젓이 교육아웃소싱이 벌어지고 있었고 위탁경영을 해왔던 것이다. 말로는 신자유주의 비판한다면서 정작엔 대학이라는 교육의 공간 안에서 신자유주의가 이렇게 활개치고 다니는지 눈치 채지 못했던 나는 알게 모르게 공범자로 살 수밖에 없다. 내가 공범자인지 의식하지 못하고 사는 동안 자본은 민자유치사업 방식으로 대학에 노골적으로 침투했다. 고대 서강대 서울대 등 B O T 등의 민자유치사업이 대학 안으로 밀려들고 있다. 국가와 자본이 개입하고 노동자.소비자가 공존하는 대학은 한 나라의 미니어쳐라 부름직하다.

내년부터 건설직 일용직 노동자들은 4대 보험 적용을 받는다는데 대학의 비정규직 교수들은 파견직 노동자로 살면서 일용직 노동자보다 열악한 노동 조건에서 살아가게 될 형편이다. 청주대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투쟁이 과연 강 건너 불구경 할 일일까?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스스로를 지식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청주대 사건을 남의 일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더 더욱 심각한 문제는, 물질적인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은 투쟁하는데 비물질적인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은 토론회나 하고 세미나만 하면서 투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68혁명은 멀티튜드였는가 하는 이론적이고 관념적인 사고가 우리에게 과연 필요한 것일까? 60년대의 남미혁명가 체 게바라는 이런 말을 남겼다. "머리는 우리가 발을 움직이지 않으면 축구공일 뿐"이라고. 축구공은 발로 차야 득점으로 연결되는 것 아닌가? BK21 사업이 대학의 진보세력의 씨를 말렸다고 말하는 우리는 왜 국가와 자본에 대해 현장에서 저항하지 않는가? 축구공에 불과한 머리가 왜 나의 발을 작동시키지 못하게 하는가? 학생운동이 죽었다고 하면서 운동을 학생들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오늘날 우리 대학의 현실은 지식생산기지로서의 역할은 일찌감치 물 건너갔고 자본의 위탁경영사업과 대학의 외주경영사업이 혼연일체가 되어 아수라장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사회는 사회대로 비정규직 보호법안이 채 시행되기도 전에 제3의 왜곡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뉴코아 - 이랜드 계산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생존투쟁을 벌이고 농협중앙회 노동자들이 싸우며 성신여고 행정직 비정규직 여성노동자가 음독자살을 기도하는 동안에, 좌파는, 좌파지식인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늦었다. 너무 늦은 감이 든다. 국가와 관료와 CEO들과 자본과 대학은, 그리고 언론은 미래로 줄달음치고 있는데 좌파는 의자에 앉아 투쟁을 안 하거나 구태의연한 투쟁 형태만 반복하고 있다. 좌파는 교과서적인 새로운 지식에는 민감하면서 ‘지금.여기’의 현실에는 너무 둔감한 것 아닌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나온 <대한민국 지식생태계리포트>에서도 자극을 받자. 자본은 조직과 경영혁신, 6T 등으로 끊임없이 이윤율의 증가를 꾀한다. 국내 자본만 그런가? 2002년 상반기 달러가 미국으로 환류한 스톡의 양은 2294억 달러였다. 2001년의 5228억 달러에 훨씬 못 미치는 숫자다. 그 양은 점점 줄고 있다. 그러니까 한미자유무역협정은, 그리고 미국이 일방적으로 세계 각 국에 강요하는 자유무역협정은, 결국 그 스톡의 환류 량을 늘리려는 음모 아닌가. 전쟁상태 또한 밖에 있는 달러가 돌아오는 기회를 증가시킨다.

늦었지만 시작하자. 각각의 운동이 각재 약진하여 네트워크를 구성할 때까지 좌파 중심의 아이디어 전략회의가 절실히 요청된다. 투쟁의 아이템을 모으고 아이템별로 투쟁의 포트폴리오를 만들며 국가를 규제하고 자본을 통제하기 위한 투쟁의 주기, 투쟁의 일정표를 짜자. 국가와 자본의 공범자에서 해방되는 길을 찾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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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 좌파 , 좌파지식인 , 전략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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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생

    학교에 다니면서 민교협에도 가입되어 있고 때로는 교수노조에도 가입되어있는 선생님들을 봅니다. 하지만 강사노조에게 무관심하고 학생운동이 이제 별로 학생들의 공감을 못산다는 이유로 청산적인 이야기를 일삼고 세상의 변화에 대한 치열함이 지나간 세기의 것인듯 굴때가 많아요. 그럴때 더 힘들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선생님이 뱉는 그 이데올로기가 신자유주의세력의 공격보다 학생들에겐 더 침투적이거든요. 지식인에게도 자신의 현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굴레를 벗고 입장을 갖고 사는 지식인, 행동하는 지식인이 정말 요청된다고 생각합니다.

  • 신현욱

    장애XX

  • 흐흐

    세상이 자본에 잠식 되엇는대 어떤힘이 있어 자본에 반한 야기를 하리오
    그런 양반이 있데요...

  • 흐흐

    세상이 자본에 잠식 되엇는대 어떤힘이 있어 자본에 반한 야기를 하리오
    그런 양반이 있데요...

  • 임금주

    내용을 입력하세요.

  • young

    정일이 한테 가 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