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한국학술진흥재단 기금 활용

[맑스코뮤날레](전체주제2) - 계급혁명인가 분자혁명인가

둘째날 전체주제 '반자본주의적 대항지구화운동의 쟁점'과 '분자혁명론'이 오전10시 30분경 시작됐다. 토론 과정에서 윤수종 교수도 지적한 이야기지만, '대항지구화운동'이라는 주제가 직접적으로 다뤄지지는 않았다.

김창근 연구자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한국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 발제에 대해 조정환 연구자가, 윤수종 연구자의 '분자혁명론' 발제에 대해 이득재 연구자가 각각 토론을 부쳤다.

발제와 토론을 한 김창근 연구자와 조정환 연구자는 각자의 생각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은 채 격론을 벌였다. 플로어에서도 토론에 적극 참여했다. 뜻밖에 학술진흥재단 기금 활용 문제가 큰 쟁점이 되었다. '국가'와 '자율'을 둘러싼 해묵은 논쟁이 예상되었으나 연구자들의 현실적인 문제와 연동된 토론으로 이어져 흥미롭고 유의미한 토론으로 기록될 듯하다. (토론 내용을 그대로 싣되, 곳곳에 윤문을 했으며, 일부 누락과 의역이 있음을 밝혀둔다.)


조정환 : 우선 이 발제문이 한국학술진흥재단에서 예산을 받았다고 한 점(김창근 발제문 736쪽 : 이 논문은 2005년 정부(교육인적자원부)의 재원으로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KRF-2005-005-J00201))이 인상적이고 서먹서먹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지원을 하는 주체가 정부로 되어 있고 그래서 정부 그 자체가 자율적 주체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엄밀하게 보면 정부라 불리는 괴물이 있어서 국민, 다중으로부터 세금을 빼앗아 마치 자기 자신이 남들에게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사유 활동을 국가화 하는 방식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나타나는데 맑스코뮤날레에서 정부 지원을 받은 논문들이 공공연한 석상에 오르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숙고했으면 좋겠다. 좌파 속으로 정부와 국가가 살금살금 기어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주제와 연관되어서 하는 이야기다.

발표자는 국가자율성이 절대적이냐 상대적이냐에 초점을 놓고 발전국가론이 말하는 상대적 자율성을 말하고 있는데, 사실은 절대적 자율성에 가깝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으로 기금을 바라볼 때 국가의 선명함이 확인될 것이다.

맑스코뮤날레 논문 발표되고 쟁점의 구조, 진폭을 나타나기 위해 배치할 때는 국가 자체 내부의 국가의 기능을 둘러싼 논쟁으로 좁혀져서 혁명적 대화로 발전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쩌면 (본인이) 적절한 토론자일 수도 있겠다. 논의 출발점을 맑스에서 출발한다.

두 부분 이야기했는데 토대와 상부구조론에 입각해서 정치적인 상부구조에 속한 국가가 토대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율적이라는 이야기와 정부가 사회로부터 자율적이라고 하는 두 가지 주장인데, 왜 우리가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에 초점을 맞추고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 확립 쪽으로 해석해야 하는지 의문스럽다.

토대 상부구조론에서 맑스의 강조는 토대로부터 상부구조의 강한 규정성 문제였는데 (발제문에는) 토대의 상부구조 규정성이 누락되어 있는 것 같다. 구조라는 용어를 통해서 발표자가 염두에 둔 것은 국가에 대한 자본의 규정성이고 자본 중에서도 대자본 재벌의 규정성을 생각하고 있다. 맑스가 토대에서 강조한 경제적 생산관계는 생산영역에서의 사람들간의 투쟁이고 계급적 적대인데 프롤레타리아트를 강하게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이 문화나 정치에 미치는 강한 규정성, 거꾸로 국가의 노동에 대한 의존성을 빼먹고서 토대 상부구조론의 올바른 접근을 하고 있는가 의문스럽다.

보나빠르티즘 국가가 사회로부터 분리된 것은 사실이다. 맑스도 그렇게 논리 전개를 하고 있다. 하지만 맑스의 초점은 루이보나빠르트 브뤼메르 18일의 최후에 두더지 이야기가 있지 않느냐. 48년 혁명적 상황에서 아래로부터의 투쟁들이 위에 구멍을 파내면서 통치 안정성에 빈틈을 드러낸 게 18일이다. 특 치면 무너지는 것이 국가였다는 것이다.

적어도 맑스에게 국가의 자율성이란 산노동에 대한 모든 상부적 형식들의 의존성을 이야기하는 방편이었다. 그런데 지금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이 논문에서는 노동에 대한 관심 없이 초점으로 부상되고 있는데, 유럽으로 치면 유로코뮤니즘, 구조개혁주의 그래서 노동자계급정당들의 제도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20세기 후반을 나타낸다. 그 상황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정당운동들이 기본적으로 혁명성을 상실하면서 부르주아 정치권의 야당으로 편입되어가는 과정에서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이 나타난다. 네오맑시즘도 그렇고.

그렇다면 발전국가론이 네오맑스주의로부터 무엇을 빌려오든 간에 기본적인 논점은 국가의 자율성이 상대적인가 절대적인가 하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국가의 자율성이 상대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절대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상황은 왜 나타나는가. 어떤 상황에서 그렇게 나타나는가를 푸는 것이어야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을 이야기하는 발표문의 주장은 정도의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국가가 갖고 있는 노동으로부터의 자율성이라는 관념을 신비한 형태로 옹호하고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이론 전개이다.

오늘날의 자본이 착취하는 것은 일국의 경제(즉 국민경제) 내부의 노동력이 아니라 전지구화된 삶정치적 공동체 자체이다. 국가는 이제 자본가들의 공동위원회도, 자본이 사용하는 억압적 도구도, 일국 자본들의 집합적 대표자도, 사회적 자본가도 아니다. 그것은 일체의 대의기능을 외면할 정도로 사회로부터 분리된 상태 속에서 사회적 삶의 생산과 재생산 속에 깊이 침투하여 삶 자체를 흡혈하기 시작한 네트워크화된 제국적 삶권력의 기관들 중의 하나이다.

국가가 다중의 삶으로부터 크게 분리되어 있는 상황으로 보고 이 상황을 이론화하는 지배적인 것이 탈근대화론인데, 포스트모더니즘 국가이론의 경우에는 국가가 사회로부터 분리되어 시뮬레이션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국가는 어느 것으로부터도 구애받지 않는 상대적 자율을 이야기한다.

국가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것과 자율적 행위자로서 이야기하는 것 모두 유사성이 있다. 발전국가론이 제3세계 신흥공업국에서부터 국가의 자율성을 이끌어내는가 하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유럽사회로부터 찾아내는 것이 다르지만 국가의 자율성이라는 점은 두 개 공히 강조하고 있다,

발제자가 이야기하는 상대적 자율성도 기본적으로는 이 논리 틀에서 진행되는데 사라져버린 기반을 국가의 상대적 자율성을 떠받쳤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한 형태라고 본다. 발전국가론 비판 부분은 기본적인 논조에서는 동의하므로 건너뛰고, 상대적 자율성 부분을 문제 삼겠다. 거의 전적으로 국가와 자본의 관계에 집중된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국가는 노동으로부터 자율적인가 라는 문제가 진지하게 제기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노동계급을 수동적으로 취급한다거나 할 때 이런 이야기가 나올법 한데, 그냥 지나가는 방식으로 서술되면서 역사 속에서 노동계급이 자율적인 행위를 하지 못했다 라고 하는 이미지를 남겨두고 있어 안타깝다.

국가가 정책 결정과 정책 집행에 자율적 주체로 나타날 때에도 그 정책의 주요한 관심사는 응당 노동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착취해서 이들로부터 효율적으로 이윤을 뜯어낼 것인가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산노동에 대한 착취 문제가 있는 한 노동에 대한 국가 정책의의존성은 벗어날 수 없는 지반이다.

국가의 자율성에 대한 모든 담론에 노동의 자율성, 삶의 자율성을 배치시켜야 한다. 엄밀히 말하면 국가의 자율성 개념은 삶의 자율성이라 하겠는데, 삶 자체가 스스로를 자율적으로 운영하지 못하는 특정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반영으로 생각해야 한다.

김창근 : 정부 지원문제 관련해서는 그렇게 언급하는 것은 부당하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연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원을 받기 때문에 우리 사상에 문제가 있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내 글에 자본주의적 요소가 슬금슬금 기어와서 사고를 마비시키지는 않았다. 그런 비평은 타당하지 않다. 나머지 비평은 본인이 자율주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그르다고 본다.

국가와 자본 관계를 이야기했다. 물론 노동의 문제를 떼놓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자율주의 이론에 따르면 국가는 자본에 완전히 종속된 걸로 나타난다. 국가와 자본을 동일시한다고 본다. 우리가 정치와 경제를 구분하는 이유는 무어냐. 네그리 이야기룰 하는데 제국이 뭐냐, 국가와 결합된 주체다.

노동의 자율성 이야기를 하는데 노동이 자율적이라고 하고 스스로 떨쳐 일어난다고 하면 왜 고민하나,. 다중이 산발적인 투쟁을 하지만 다중 스스로 혼자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고민하는 것 아니냐. 민중들이 자율성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은 아니다. 그것을 직접 획득하지 못하므로 우리가 이렇게 토론하는 거 아닌다.

모든 걸 자본과 나머지로 나누는데, 그렇게 설정하면 문제는 굉장히 쉽다. 그러나 현실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정치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여러 계급계층이 존재하므로 고려할 것이 많고 이데올로기 면에서 계속 처절히 깨지는 것 아닌가.

도요차 모델 이야기를 하는데 도요타 모델은 일본의 자동차가 노동자를 가장 강력하게 착취하는 체계이다. 일본에 중소기업들을 적기생산방식이라 해서 도요타 앞에 기다리게 하는 체계다. 노동자 자기가치화를 강조하는 포스트모던에서 노동자 자기 주체를 만들고 국가로부터 자본으로부터 자율을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조정환 님은 이런 주장들이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지, 얼마나 현실을 반영하는 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조정환 : 한국학술진흥재단(학진) 문제는 사유 활동, 학문 활동에서 국기자원시스템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이런 구조는 두뇌 활동 자체가 국가에 의해 장악되어가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이 문제는 배경과 효과 등에 대해 토론해보는 것이 좋겠다.

다중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모였다고 하는데 이는 우리와 다중을 분리시켜버린다. 여기 모인 우리가 다중이고 저 역시 그런 한 사람으로서 지금 바로 우리가 문제를 제기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에 있다. 국가를 우리 중심에 놓고 국가를 내면화 하는 방향으로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들의 삶의 힘을 중심에 놓고 국가를 해체할 것인가가 우리의 쟁점이다.

정치는 간단하지 않고 복잡하다는 것 동의한다. 정치에 대한 사유에 있어 제도와 국가의 세밀한 권력관계에 대한 내부적 역학에 너무 관심을 빼앗겨서 정작 우리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고, 결집 조직될 수 있고, 우리의 능력이 얼마나 되는 지에 대한 관심은 잃고 있다.

현실 반영이 얼마만큼 현실을 반영하는가 라고 했는데 현실은 생각하기 따라 다르다. 어떤 사람이 현실 문제라고 보는 것을 또 다른 사람은 무관하다고 본다. 돈을 버는 사람들은 우리 모임이 매우 공허하고 비현실적인 사람들이라고 볼 것이다. 어떤 맥락에서 보느냐에 따라 현실은 결정된다.

정성진(플로어) : 조정환 님이 언급한 정부지원금 문제는 저도 연관되어 있다. 사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그랬는데 학진 연구비 지원시스템이 신자유주의 학문정책의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 공감하고 있다. 그것을 개혁해야 한다는 점도 공감한다. 하지만 개혁이라는 게 국가 정책 비판과 변혁적 개입 없이 단지 회피하는 것으로서의 교육, 학문정책에 대한 답이 나올까? 그렇지 않다.

본인의 학교 이야기해서 그렇지만 연구소를 하고 있다. 국립대학 연구소에서 지난 1999년부터 연구기관 자체를 진보적인, 맑스적인, 사회주의적인 연구자들의 관제고지로 장악해서 제도권 내에서 자본주의 자체를 변혁하고 지향하는 연구센터를 만들어보자는 상당한 동의를 구하고 여태 굴러왔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중점연구소지원사업에 몇 번 선정된 바 있다. 개량주의적이고 노무현정부의 정책 쪽으로 밀고 나가려는 측면이 있지만, 과감히 맞서며 활동해왔다. 심사 과정을 보면 알 것이다.

지금 밖(로비)에 보면 우리가 2004년부터 간행해온 연구물들이 있다. 조정환 님도 서너 차례 기고활동도 했고 원고료도 드렸다. 조정환 님도 성공회대 사회문화연구소에 있고, 오늘 맑스코뮤날레 장소 제공하는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도 중점 연구소로 선정된 바 있다. 맑스코뮤날레 돈 가치를 따지면 7백만 원인데 물론 다른 데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연구자 재생산 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사회실천연구소에서 우리 나름대로 진보적인 대학원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도 있고, 조직위에서는 맑스아키데미를 만들어보자는 이야기 나온다. 이 재원이 어디서 나와야 하나.

정부의 돈은 노동의 잉여가치를 착취한 거 아니냐. 그걸 이용해서 자본주의 변혁에 기여하자는 것이다. 정부 지원 받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하자면 우리 호주머니 친구들 호주머니 털어서 한다는 건데 그것은 무엇이 될 건가. 따져보면 중소자본가로부터 지원받을 것 아닌가.
국가를 매개로 한 개념이 상당히 중요한데 조정환 님이 강조하는 자율주의에서는 그 부분이 배제되어 있다.

제국을 떠나서 코뮨이 자율적인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고 하는데 그건 있을 수 없다. 국가와 자본에 포섭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므로 자본주의 국가 문제를 넘어가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변혁은 가능하지 않다. 한미FTA 대안 문제 관련, 발전주의 국가론 포함해서 개량적인 비판이 한국 사회 진보 구상에서 중요한 문제인데 그걸 피해간다. 국가를 떠나 회피하고 자본주의 극복하는 코뮨 건설된다는 것을 상상한다는 것인데 고전맑스주의 모두 정정되어야 한다. 자본주의 국가와 전면 대결하고 국가권력을 분쇄하는 과정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플로어 : 조정환 님이 이야기한 김창근 님 재반론은 부당하다. 국가와 자본은 자율주의적인 개념이 현실의 반영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자율주의적으로 국가를 본다면 국가를 젖혀두고 자본 관계만을 본다는 것인데 현실이 과연 그런가. 국가를 무시하고 산다면 국가는 우리를 가만히 두냐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율주의자들이 국가를 바라보는 개념 자체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윤수종 : 저의 정체성 일부가 자율주의인데 완전한 자율주의는 아니고. 자율주의가 국가를 완전히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저는 국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글을 쓸 때마다 손끝에서 국가가 느껴진다.

추상적인 논의하면서 자율주의 한쪽으로 몰아부치는데 네그리 주장과 재해석을 두고 여러 생각은 있을 수 있다. 네그리가 국가를 도외시한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너무 단선적으로 이야기 되는 것 같다.

김창근 마무리 발언 : 학진 관련, 대학이 자본주의 속에 있으면서 지배적 엘리트 집단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대학에 자금 제공하는 학진 역시 그런 성격에서 자유롭지 않다. 학진 자금을 지속적으로 받기는 어렵다. 정성진 님이 이야기를 안 했는데 김대중 정권 때는 어찌보면 학진 자체가 자율성이 많았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좌파쪽 사업은 배제하는 상황이다. 국가의 자율성을 이야기하는데 노무현정권에 와서 그런 자율성이 약화되고 있다.

우리가 국가에 비어있는 부분에 침투하면서 연구자를 키우고 공동연구를 통해 좌파적인 이론을 만들어내는 장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교수 자리도 마찬가지다. 지배계급의 이익에 복무하도록 되어 있는 위치이다. 여러 교수들이 그런 걸 떠나서 좌파이론을 연구하고 만들고 하지 않느냐. 물론 한계가 있겠다. 하지만 끊임없는 비판을 가하면서도 활용할 수 있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국가에 대한 상대적 자율성을 논할 때 취해야 할 자세라고 본다.

두 번째 문제는 윤수종 님 이야기다. 윤수종 님을 좋아한다. 스스로 자율주의 이야기하면서도 이론에 경직되지 않는다. 다중에서도 노동자계급의 중심성을놓치지 않고 국가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그래서 존경한다. 자율주의를 하려면 윤수종 교수와 같은 건전한 자세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조정환 마무리 발언 : (사회자의 발언시간 확인에 대해) 내 발언에 제약을 하는 것 같다. 공포심이거나 적대이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자율주의가 국가를 회피한다고 하는데 과연 제대로 짚고 있나. 정직한 접근방법인가 비판하고 싶다. 우선 국가에 영합하고 국가의 틀 속에서 그걸 접수해서 뭔가 내용적인 변화를 꾀한다는 벙법이 국가를 변형하고 해체시키는 방법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국가를 강화하고 국가를 보조하면서 마음속으로 비판한다는 건 국가개혁주의의 한 유형이다.

학진에 대한 정성진 님의 태도는 학진 시스템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차단하고 해체시키는 것을 안 하는 것이다. 어떻게 좌파 색깔 가질 것인가 고민하며, 학진 재정 통한 학술 통제시스템에 문제제기 하지 않는 한 필연적이 될 수밖에 없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는가 문제가 다시 나왔는데 전술을 결정할 때는 항상 단일한 것을 강조했다. 구체적 정세 구체적 행동방침 결정하는 것이고 당이 내리는 방침 앞에 객관적 현실은 하나였다. 당이 내리는 전술방침에 대한 현실 판단과 지침은 누구나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보편적 명령이었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권리가 누구에게 있나. 생태주의, 패미니즘, 맑스주의자가 보는 현실은 제각기 다르다. 현실은 처한 맥락에서 규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현실에 대한 각각의 대응들 속에서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다함께라든가 특정 지도적 개인이 생각하는 것을 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는 것을 현실관으로 삼아야 한다. 어떤 사람도 현실을 올바로 본다고 자임하고 강요할 권리는 없다고 본다.

플로어 : 학진, 재생산 이야기했는데 여기 대학원생들이 학진이나 교수 권력관계에 대해 비판적으로 봐야 한다. 석사과정에 있는데 학진으로 말미암아 학진과 교수와의 관계에서 문제의식이 상당히 기각되곤 한다. 학진 기금 활용해서 변혁적이고 진보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진실한 마음은 동의하지만, 우리 사유와 활동이 거기에 종속되어 기각되지는 않는지 살펴봐야 한다.


전체토론 두 번째 '분자혁명론'은 윤수종 연구자가 발제하고 이득재 연구자가 토론을 부쳤다.

윤수종 연구자는 "분자혁명이 국지적인 미시혁명, 미시적인 국지적 해방 기획의 합계가 아니라, 사회적 영역 총체, 주체화양식 총체에서 무의식의 형성을 있는 그대로 분석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레닌주의와 무정부주의의 두 '극단적인 모형'에 대해 이를 일방적으로 폐기처분하기보다는 이해관계에 근거한 기존의 계급투쟁을 다양한 사회투쟁과 결합하면서 장기적이고 복합적이며 누적적 혁명과정을 이루어 나가자는 가타리의 문제의식을 발표했다.

윤수종 연구자는 앞서 논란이 된 학진 문제와 관련, "최근 진보평론이 소수자투쟁을 인정투쟁으로 정리한 기고글을 싣지 않았는데 그 글이 학진에서 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쾌감을 느꼈다"고 말하기도 했다.

윤수종 연구자의 발제에 대해 이득재 연구원은 토론에 부치는 열 개의 질문이 담긴 글을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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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정필요

    맨 뒤에서 두번째 문단의 윤수종 연구자의 말 인용에서 "소수자투쟁을 인종투쟁으로...." 인종투쟁이 아니라 인정투쟁입니다. 기자가 이해가 안되었다면 이런 말은 기사화하지 않는 게 좋을 듯 한데...

  • 취재팀

    수정합니다.

  • 플로어

    사회자도 아닌 토론자의 역할로 나간 조정환 선생님께서(평상시에 다중의 의견을 존중하신 분이) 플로어 발언중 "앞서서 이야기한 내용을 반복하지 말라"라며 이야기를 차단한것은 정말 다중을 위한 적절한 행동이었나요~~

  • assiddeli

    multitudinous pattients diffident postoperative ileus. This rig out is defined as an hurt of GI motility, which may loiternig GI stand up and ecovetate the in days to medical hub discharge. Additionally, the duration of postoperative ileus may be induce oned in pati
    ents who are preordaained µ-opioid receptor agonist analgessics such as morphine after sugrery because these agents further diminishing GI motility. By working peripherally, alvimopan makeively blocs -µopioid receptors in the GI brfanch, thnereby antagonizing the GI motility intentions f analgesics like morphine without reversing mid analgesic efficacy.

    Alvimopan can friendless be endure oned in a sickbay. The recommended matured back off away is a cull 12 mg capsule fafirmed 30 minutes to 5 hours in progress surgery folloewd by 12 mg twice conwtantly for up to 7 days, for a uttermost of 15 devotes. The efficacy of lvimopan was proven in five multicenter, doppelgaenger-downspread, seatbo-controlled studies in 1,877 patients who underwetn bowel refraction. In all five studies, studyment with alvimopan significantly acceleanywayd teh age to be upstanding of GI accept the function compared with employmentbo by 10.7 to 26.1 hours as plain by a composite endpoint of toleration of heavy comestibles and outset bowel movementy. GI amelioration began capitulate 48 hours postoperatively. Addritionally, patients randomized to alvimopan were discharged 13 to 21 hours sooner than those in the seatbo guild, and use of alvimlpan did not umtie opioid analgesia in any of the studies. Adverse at any charges reported with alvimopan (n = 1,650) compared iwth responsibilitybo (n = 1,365) in nine employmentbo-controlled studies inn surgical patients included constipation (9.7% versus 7.6%), flatulence (8.7% versus 7.7%), hypokalemia (6.9% versus 7.5%), dyspepsia (5.9% versus 4.8%), anemia (5.4% for both), urinary retention (3.5% versus 2.3%), and side misery (3.4% versus 2.6%). In a 12-month swotting of patients presented with opioids for extended-enduring be be burdened, a greater numeral of myocardial infa
    rctions were pre-eminent in patients studyed with alvimopan 0.5 mg twice constantly compaerd with seatbo. This essence has not been observed in any other bore to obuniquescent; no thing how, a signal in all places this embryonic adverse at any anyway is discussed in the prescribing information. Alvimopan is comtraindicated for ptaients who taplomb been recieving flourishing apments of opioids for more than 7 consecutive days.

    What you penury to approve: FDA has approved alvimopan with a threat assessment and Mitigation schema (REMS) to clout that the benefits of the pay for prepondeanyway as a remainder thge risks. Specifically, FDA has indicate offed the availability of alvi
    mopan to sickbays that tfacilitate enrolled in the Entereg Access warrant out and drilling (E.A.S.E.) program. To enroll in E.A.S.E., convalescent tellinglys should acreliablemantelpiece that the paragon who need, seek, and administcharge alvimopan tserenity been preordained scholastic materials lawful the fulness to confine the use of alvimopan to inpatients exclusive and the limit of 15 devotesper patient. Anoother peripherally-acting opioid receptor contender, methylnaltrexone (Relistor—Progenics; Wyeth), was also recently approved for the presentment of opioid-induced constiplation when counteraction to laxative correct has not been satisfactory in patients with increased infirmity who are receiving palliative care. Methylnaltrexone is administsorted as a subcutaneous injection, but this fallou
    t does not tserenity a R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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