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in 1907, 그 기억의 정치학

[맑스코뮤날레](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 한국기독교의 반민주세력화와 그 역사적 뿌리에 대하여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는 “한국기독교의 반민주세력화와 그 역사적 뿌리에 대하여: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과 성령의 정치”라는 제목으로 두 개의 발표와 토론을 진행했다.


발표회의 전체 사회를 맡은 정혁현 한살림교회 목사(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운영위원)는 2007년 현재 한국기독교가 대대적으로 기념하고 있는 소위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에 관한 새로운 관점의 해석을 제기하고, 이 평양대부흥운동을 둘러싼 기억의 정치학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문제제기하자는 취지로 이러한 주제의 세션을 준비하게 되었다고 설명하며 발표회를 시작했다.

한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는 이미 작년부터, 신학아카데미 탈/향을 통해 "성령, 위반과 순치의 정치 사이" 이라는 강좌를 진행하며 이 주제에 관한 논의를 주도해 왔으며, 지난 6월 11일에도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와 공동으로 1987년 이후의 한국 민주화 20년을 성찰적으로 점검하는 <민주화 20주년 비판과 전망 심포지엄: 민주화 이후의 퇴행하는 민주주의, 퇴행하는 기독교> 심포지엄을 개최하여 기독교사회운동현장과 교회현장과 신학교육현장을 포괄하는 현 시기 한국 기독교의 총체적 보수화 현상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과 비판적인 의제를 공론화한 바 있다.

발제는 모두 두 개로 제1발제는 ‘한국기독교보수주의의 기원과 성격’을 최형묵 천안살림교회 목사(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운영위원)가, 제2발제로 ‘성서 속의 성령과 한국교회의 성령의 도구화’를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이 발표했고,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와 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 기획실장이 각각 토론을 붙였다.

최형묵, “2007년의 'Again 1907'은 배반당한 성령의 정치일 뿐”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최형묵 목사는 한국 기독교의 보수적 기원으로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이 자리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현재의 한국 기독교는 이 사건을 ‘성령 임재’의 체험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기존의 강고한 질서에 균열을 내는 역사적인 성령운동과 달리 평양 대부흥운동은 오히려 자기중심적 배타성의 신앙과 체제에의 순응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제 2007년 그 사건의 100주년을 맞이하여 보수 기독교가 이를 대대적으로 기리는 것과 동시에 또 한편으로 적극적인 정치행동에 나서는 것은 긴밀한 내적 관계를 지니고 있는데, 사실상 이러한 움직임은 보수적 기독교의 자기중심적 욕망을 확장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최형묵 목사에 따르면, ‘성령의 임재’를 갈구하는 부흥운동의 종교적 형식을 취하면서도 결국은 자기중심적인 물질적 보상을 갈망하는 한국 주류의 기독교 신앙은 현실질서에 순응적이기보다 전복적이었던 진정한 성령운동과 거리가 먼 것이다.

장윤재, “1907년 사건을 새롭게 다시 기억할 가능성은 없는가?”

첫 번째 발표가 끝나고, 곧바로 이에 대한 논평이 이어졌다. 논평자로 나선 장윤재 교수는 최형묵 목사의 글이 ‘배반당한 성령의 정치’라는 다소 추상적인 내용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라는 의견과 함께, 한국 보수주의 기독교의 성령운동이 진정한 성령운동이 아니라는 주장에는 자신도 충분히 동의를 하지만, 한편으로 그 주장은 상대적으로 소수자인 진보진영이 한국 교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보수주의를 견제해나가기 위한 ‘의제화’의 과정에서는 다소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또한 장교수는 최목사의 글이 1907년 대부흥운동에 대하여 최근에 제출된 다양한 학술적 평가와 연구들이 많이 반영되지 못했고, 한국 기독교를 현재와 같이 보수화시킨 거대한 구조적 요인이나 평양 대부흥운동에 앞서는 역사적 사건들이나 계기들에 대해서도 치밀하게 분석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장교수는 평양 대부흥운동이 시대적 아픔과 분노를 단순히 성령운동이라는 종교적 카타르시스를 통해 ‘희석’하는 결과만을 가져왔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평양대부흥 운동에 잠재하는 다른 기억의 가능성을 평양 대부흥운동의 지도자라 할 수 있는 길선주 목사의 ‘말세삼계설’을 통해 찾을 수 있으리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장교수에 따르면, 길선주의 말세신학은 ‘지나가는 세대’를 옹호하는 보수적 원리가 아니라 ‘다가오는 시대’를 예비케하는 초월적 신앙의 힘으로도 충분히 재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평양 대부흥운동에서 간과되어왔던 긍정적 가치를 찾아내는 작업을 통해 보수주의가 갖고 있는 자기모순을 드러내 보이고 그것을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도록 만들어 도덕적 우위를 확보해나가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윤재 교수의 논평에 대하여 최형묵 목사는 1907년을 재해석할 혹은 전유할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이것을 자기중심적 교세확장을 위해 순치(脣齒)하고자 노력하는 보수기독교의 교권이 건재하고 있는 현재의 담론장 안에서는 그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전략적으로도 오히려 더 부적절하다는 반론을 폈다.

김진호, “바람 같은 영은 항상 우리의 인습화를 향해 도전해야”

휴식을 가진 후 두 번째 발표가 이어졌는데, 발표자로 나선 김진호 목사는 1907년의 평양 대부흥운동에 관한 많은 연구물들이 놓치고 있는 지점으로서, 1904년에 발발한 ‘러.일 전쟁’과 대부흥 운동의 연관성을 지적하는데, 이는 대부흥운동의 진원지인 평안도가 바로 ‘러.일 전쟁’의 배후지였다는 점 때문에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지적이라는 것이다. 김진호 연구실장에 따르면, 1907년의 사건은 한국기독교의 공통감각을 형성하는 초석이 된 사건이며, 신앙의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이 사건에서 코드화된 기독교적 위기관리의 장치가 작동되어 왔다는 것. 그리하여 한국교회의 신앙은 다양한 욕망, 다중적 주체를 참지 못해하는 심성을 일상화시켰고, 이러한 다중성을 조정하는 합리적 방식보다는, 카리스마적 지도력에 의한 통합을 선호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성서에 나타난 성령은 자폐적인 열광을 가리키거나, 혹은 이런 기조와 한패거리 개념인 영웅주의적 획일주의를 나타내기보다는 강자의 주권 이해를 가로질러 모든 이에게 열린 영, 그 누구에게도 독점되지 않는 영, 해서 차별의 근거 혹은 열기로서 도구화되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경계들을 해체하는 역설적인 도전이자 동력으로 해석되고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성령이라는 화두가 1907년 대부흥운동에서와 같이 그리고 지금 그것을 다시 소환하고 있는 한국 보수기독교에서와 같이 차별화의 질서로 혹은 배제의 근거이자 힘으로서 재설정되는 것에 저항하며, 위반의 영이 연대의 영과 마주하도록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양희송, "성령의 정치에서 삼위일체의 정치로"

이어서 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 기획실장이 김진호 목사의 글에 대한 "성령의 정치에서 삼위일체의 정치로"라는 논평문을 발표했다.

양희송 실장은 김진호 목사의 글 전체를 요약하는 문제의식이 “‘어게인 1907’의 슬로건 속에도 세상의 고통들을 돌아보기는커녕, 그러한 고통을 도구화하여 교회주의를 재강화하려는 전략이 숨어있음을 우려한다”라는 문장 속에 담겨있다고 지적하며 논평을 시작했다. 양희송 실장은 김진호 목사의 글에 대해 3가지 측면에서 비판적 검토를 가했다. 첫째로, 김목사의 평양대부흥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일반적인 즉 그 사건 자체의 원초적 경험과 그 이후의 동원되고 관리된 운동적 차원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나아가 사건 자체의 돌발적이고, 원초적이며, 불가항력적 속성을 너무 쉽게 배경사속에 함몰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둘째로, 성서에 나타난 성령론적 전개에 관한 다른 독법을 제시하면서 김목사의 논의는 지나치게 해체의 전략에 기울고 있음을 지적한다. 양희송 실장은 평양 대부흥운동이 원래적으로 갖고 있었던 이상과 그것이 이후에 좌절되고 왜곡된 것과는 별개임을 인식하고, 원래의 이상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싸움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희송 실장에 따르면, 평양 대부흥운동의 본질적 성격은 개개인의 죄책고백 즉 급진적 개인성이 담보된 도덕적 ‘회개’에 있다고 한다. 문제는 오늘날의 대부흥 100주년 기념행사들 대부분이 그러한 진정성있는 죄책고백을 담아낼 틀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양희송 실장은 김진호 목사가 ‘위반의 영’과 ‘연대의 영’을 연결시켜 주장하는 ‘성령의 정치’에 대한 대안으로 ‘삼위일체적 정치’의 구상을 제안한다.

즉, 김목사가 ‘성령의 정치’를 통해 옹호하고자 했던 ‘민주화’와 ‘다양성’이란 가치는 한국사회에서 ‘그리스도의 정치’로 기능한 성육신적(incarnation) 경험인 ‘민주화 운동’과 관련지을 수 있겠고, 이를 태동하게 한 좀 더 근본적 질서체계인 ‘하나님의 정치’의 이름으로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천명하고 있는 헌법을 불러낼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전체토론, “맑스코뮤날레와 ‘어게인 1907’의 관계는?”

발표와 논평이 모두 끝나고, 청중들과의 질의 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그 중 “맑스코뮤날레에서 왜 갑자기 ‘어게인 1907’이 주제로 다루어진 것인가”하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대해 최형묵 목사는 맑스코뮤날레는 우리 사회의 진보와 현실 변혁을 추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열려있는 자리이며, 비록 1907년 사건과 관련된 한국기독교의 보수화를 다루는 것이 대안적 지구화에 대한 전망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 보여도, 전망을 창안해 내가는 데 걸림돌이 되는 문제를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일도 중요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김진호 목사 역시 지금까지 맑스코뮤날레에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종교분야를 대표해 계속 참여해오면서도 막상 신학이나 종교분야의 직접적인 문제보다는 맑스주의 담론과 기독교 신학의 친화성을 모색하는 구색 맞추기식 참여에 그쳐왔음을 지적하고, 올해만큼은 기독교 내의 보다 중요한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이 유의미하리라는 판단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역사적으로 1907년의 성령 사건과 같이 대중의 고통을 증상적으로 보여주는 사건들이 다시금 도덕적 갱신이나 교리적 획일화, 교권의 강화로 순치되는 과정에서 확인되듯이, 기독교가 한국 사회에서 그간 수행해온 고통과 폭력의 체계의 공고화 및 그 사회적 오인의 메커니즘을 발본적으로 문제 삼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과제가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5시로 예정되었던 종료 시간을 한 시간이나 훌쩍 넘긴 6시 무렵까지 토론이 계속되었던, 이번 제3회 맑스코뮤날레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주관세션은 토론가치가 풍부한 의제설정이었다는 최종적인 평가와 함께 발표자들이나 논평자들, 그리고 청중들의 참여 열기에 있어서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했던 성공적인 행사였다는 평가를 받으며 막을 내렸다.
덧붙이는 말

이 기사는 정용택(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회원, 청년위원장) 님이 보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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