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구현, "자본 지구화 지양하는 계급정치 펼쳐야"

[맑스코뮤날레](진보평론/노동자의힘) - 신자유주의와 21세기 사회주의

제3회 맑스 코뮤날레 진보평론과 노동자의힘 공동세션은 29일 오후 2시부터 서강대 다산관 301호 강의실에서 열렸다. 주제는 “신자유주의와 21세기 사회주의”다.

  김영수,박영균,박성인,이성백,윤수종,이광일,남구현

남구현, "확고한 계급적 관점 아래 지양의 정치를 펼쳐야"

김영수 선생의 사회로 진행된 이 날 토론에서 첫 발제자인 남구현 선생은 [신자유주의, 지구화 그리고 지양의 정치]라는 제하의 논문을 발표했다. 남구현 선생은 “신자유주의의 문제는 우리에게 새로운 지형에서 ‘계급적’인 문제를 전면에 제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변화된 지형에서 신자유주의와 지구화에 대한 대응/지양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 남구현 선생은 우선, ‘신자유주의’와 ‘지구화’에 대해 엄밀한 개념을 사용할 것을 요구했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지배전략’이라는 점, 그리고 그간 ‘세계화’로 일컬어졌던 것을 보다 분명하게 ‘자본 지구화’로 개념 규정해야 함을 말했다.

남구현 선생에 따르면, 신자유주의 지배전략은 고전적 자유주의와 달리 ‘작지만 강한 국가’를 대동하여 표출되는데, 그것은 자본에 대한 규제를 철폐한다는 점에서는 ‘작은’ 정부론의 부활이지만, 복지국가를 해체하는 데서 야기되는 노동자의 반발을 억누른다는 의미에서 ‘강한’ 국가인 것이다. 또한 자본 지구화는 무한 자본 축적의 기본적인 경향과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에 의해 비롯되었으며, 이것은 제국주의의 새로운 형태이지 그 본질을 벗어난 다른 무엇은 아니다. 신자유주의 지배전략의 전면화와 자본 지구화는 자본의 모순을 노동과 복지의 모순으로 뒤집으려는 시도로 말 그대로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노동자 민중의 저항에 직면하게 되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지배전략과 자본 지구화에 대한 대응은 그 모순을 ‘지양’하는 정치를 통해서 가능한데, 남구현 선생은 사민주의적/케인즈주의적 전략이나 사회안전망 설치 등은 대안이 될 수 없으며 토빈세, 지구적 시민권, 글로벌 거버넌스, 공정 무역 등 지구화 반대운동 내에서 주장되는 대안들도 모순을 지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남구현 선생은 모순의 지양을 위해서는 ‘국제주의적이고 혁명적인 계급정치의 전망’ 속에서 기존 대안을 넘어서는 전략 전술을 발전시켜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공격으로 나아가야 하며, 이 관점에서 개량투쟁을 적절히 발굴하여 전술로 배치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계급적 연대를 중심으로 전민중적 연대를 형성해야 함을 강조했다. 생존권 투쟁, 소유 문제, 무역 문제 등도 이 같은 ‘지양의 정치’ 관점에서 전략을 세우고 전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논평자로 나선 이광일 선생은, 신자유주의가 자본의 새로운 지배 전략이라는 데 공감하면서 이것에 대한 대응을 위해서는 몇 가지 지점에서 좀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논평했다. 특히 자본 지구화를 제국주의의 새로운 형태라고 할 때, 그 새로운 형태라는 제국주의 메카니즘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해야 하며, 신자유주의의 수많은 모순이 노동자 민중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를 세밀하게 살펴야만 ‘지양의 정치’의 전략과 전술이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광일 선생은, 신자유주의는 단지 경제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치를 내포한 개념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것은 자본과 정권은 정치 투쟁, 경제 투쟁을 구분하여 노동자들의 투쟁을 호도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 스스로도 그 속에서 혼란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대한 경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치, 특히 민주주의에 대해서 민중적인 재구성이 필요하다고 논평했다.

이성백, "신자유주의에 짝하는 해방 기획은 네오모더니즘으로 설정해야"

이성백 선생은 [네오모더니즘과 사회주의]를 발표했는데, 그는 이 논문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은 복지국가 단계에 조응하는 문화 논리이며, 신자유주의는 복지국가와 다른 자본의 새로운 단계인데, 이에 조응하는 문화 논리로 네오모더니즘을 설정해야 함을 주장했다.

복지국가 자본주의 단계에서 노동해방이란 의제는 기각되고, 다른 한편 여성, 환경, 소수자 등으로 의제가 확장되게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바로 이러한 복지국가 자본주의 단계란 사회적 조건 속에서 출현한 해방적 사유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단계에서는 이에 상응하여 좌파의 이론이 당연히 재구성되어야 한다.

이성백 선생은 “복지국가 자본주의가 노동계급 포섭적 성격을 지녔다면, 신자유주의는 노동계급 배제적 성격을 지녔다. 이로 인하여 ‘중산층론’이 위기에 처하고, 그 대신 ‘빈곤층론’이 담론의 전면에 부상한다. 복지국가 자본주의의 조건에서 기각되었던 노동해방, 정치경제적 거시담론이 다시 해방의 의제로 복귀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복지국가 자본주의 단계에 조응한다면, 이제 신자유주의 단계에 조응하는 해방적 사유의 새로운 문제설정을 “네오모더니즘”이라 부르고자 한다. 네오모더니즘은 맑스의 사유에서부터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해방적 사유를 역사적으로 반성하면서, 신자유주의의 단계에 필요한 새로운 해방적 사유를 모색하려는 문제설정이다”고 설명했다.

이성백 선생은 신자유주의 단계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갖는 한계를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 ‘정치적 허무주의’를 지적했다. 즉,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있어서 이렇게 사회 자체를 억압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한, 이는 무정부주의와 정치 허무주의를 벗어날 수 없”으며, “탈권위주의적 정치 조직화의 현실적인 길은 무정부주의적인 탈주의 정치가 아니라, 민주주의적 원리에 의거한 정치 조직화에 있다.”

이성백 선생은 네오모던적 조건으로부터 “사회주의는 정치경제적 사회주의와 문화적 사회주의를 포괄하는 삶의 총체적 해방을 사유하는 사회주의로 확대되어야 함”을 주장했다. 신자유주의 단계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사유는 이전까지 제시된 사회주의 이념과 의제를 넘어 신자유주의가 초래하고 있는 새로운 문제들을 의제로 확보하여야 한다. 예컨대, 신자유주의가 ‘노동해방의 새로운 측면’을 구체적인 일정에 올려놓고 있는데, 그것은 노동시간의 단축이다.

“‘노동시간의 단축’은 노동자들의 삶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며, 노동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직접적인 이해와 관계되어 있는 공산주의의 실질적인 내용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단축된 노동시간을 통해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주체적인 능력계발을 위해서는 그것에 상응하는 문화적 조건이 마련돼야 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능동적이고 자율적인 문화를 창출하는 문화운동이 좌파의 주요한 실천 과제가 된다.

노동시간 단축이 가능한 것은 바로 드림 테크놀리지라고 하는 정보기술의 발전이다. 정보기술은 인간노동력을 대체하는 기술이기 때문에, 인간은 더 이상 직접 노동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단계에서 정보기술은 대량실업을 초래하는 기술적 원인이 되고 있다. 이성백 선생은 바로 이 정보기술을 통해서 노동자들을 필요노동으로부터의 해방으로 전화시켜 나가는 일이 앞으로 사회진보의 역사적 과제라고 주장했다.

논평자로 나선 윤수종 선생은, 현실 사회주의 역사에서 오염된 ‘사회주의’라는 용어 대신에 ‘공산주의’나 ‘코뮤니즘’을 사용하는 것이 어떤가, 그리고 ‘네오모던’이 아니라 ‘안티모던’이 돼야 하지 않는가를 제기했다. 그는 이성백 선생이 포스트모던에 대해서 일면적인 측면을 과장해서 비판한다고 말하면서, 포스트모던은 이성 대 욕망과 같이 이원론적 대립항을 두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강조하는 일원론이며, 정치적 허무주의가 아니라 어떤 정치를 하느냐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윤수종 선생은, 소수자 운동 전략에 기초해서 구체적인 현실에 개입하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수많은 지점과 영역, 조직에서 함께하려는 노력들을 기울여 왔음을 강조하면서 이성백 선생이 포스트모던적 경향을 지나치게 폄하한 것은 아닌가를 되물었다.

재미난 점은, 두 선생의 대화가 마치 어린아이들이 자기 것이 서로 더 좋고, 니 것은 나쁘다고 싸우는 식으로 티격태격 토론함으로써 좌중의 웃음을 끊이지 않게 했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와 21세기 사회주의’라는 ‘근엄’한 주제에 어울리지 않은(?) 톡톡튀는 토론이었다.

박영균, 대중의 집합적 권력의지를 창출하기 위해서 당을 건설해야

박영균 선생은 [이행의 아포리아와 21세기 사회주의]를 발표하면서,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의 원인을 규명하면서 새로운 세기의 전략적 좌표를 다시 설정해야 하며, 87년 이래로 진행되어온 위로부터의 ‘수동혁명’과 그것을 통한 지배코드화를 분석해야 함을 말했다. 그리고 오늘날 신자유주의가 모순을 다원적인 측면으로 펼쳐져 있음에 주목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제안을 하는 것으로 발제를 대신했다.

첫째, 오늘날 남한 사회의 좌파를 전통적인 맑스주의냐 아니냐로 구분할 것이 아니라 제도적이냐 비제도적이냐를 가지고 구분할 것을 제안했다. 제도냐 비제도냐, 혹은 반제도냐가 왜 중요한가 하면, 바로 자본의 지배코드는 제도를 통해서 작동되며 대상을 포섭하기 때문이다.

박영균 선생은, 80년대 이후 남한 맑스주의의 3가지 조류로 탈산업사회에 대해 그람시를 우경적으로 해석해서 형성된 신사회운동으로서 시민운동, 탈현대성에 기초한 포스트모던적 맑시즘, 또는 스피노자 맑스주의, 그리고 맑스주의적 사회주의가 있음을 말했다. 시민운동은 제도적으로 포섭되어 자본의 자유주의 지배블록의 하위 파트너가 되었으며, 포스트모던적 맑스주의는 철저히 반제도적이며 제도에 대해 발본적인 비판을 한다. 맑스주의적 사회주의는 제도와 반제도를 아우르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비제도적 좌파는 바로 맑스주의적 사회주의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의회주의와 시민운동과 같은 제도적인 경향은 대개 국가에 대한 도구론적 관점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 관점에서 국가주의 전략을 수행한다. 이것이 그간 맑스주의의 함정이기도 했다. 포스트모던은 이것에 대한 발본적인 비판과 해체를 수행한다. 그러나, 철저한 반제도인 포스트모던적 맑스주의는 ‘생산의 사회화’를 간과했는데, 생산력의 핵심은 다른 것이 아니라 사회적 협업이며 그것은 곧 노동의 사회화를 낳는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의 사회화에 조응하여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기획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이행의 아포리아’가 발생한다. 바로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관리하는 것은, 현실 사회주의에서 국가가 대행했던 것이고 그 형식은 전체주의적이었다. 여기서 계획이냐 시장이냐 등 경제학적 문제 설정으로 이행의 문제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국가의 성격을 어떻게 만드느냐이며, 그것은 국가장치의 문제이다. 바로 이행을 가능하게 할 새로운 대체권력의 형성, 낡은 국가장치를 대체할 새로운 국가장치의 문제가 핵심이다.

따라서 두 번째 제안은, 이행의 문제에서 경제학적 설정을 폐기하고, 정치학적으로 재설정하자는 것이다.

세 번째 제안은, 국가소멸, 즉 반제도를 전략으로 설정하고, 전술적으로 제도적 영역에 대한 개입을 다양하게 설정하여 실행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대체권력을 형성할 대항 헤게모니의 구축이다. 대중의 집합적 권력의지를 창출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이며, 바로 이것을 위해서는 다원적인 모순들을 반자본 대항 헤게모니 구축을 위해 다양하게 접합시켜 전선을 만들어내는 실천이다. 바로 이 실천을 최우선적인 정치목표로 수행하는 조직이 곧 당이다.

이에 대해 토론자 박성인 선생은, 지난 수년간 함께 논의한 내용이므로 큰 틀에서 공감함을 말하면서, 지금 바로 그와 같은 이론을 어떻게 하면 실천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중임을 말했다. 맑스코뮤날레의 여러 이론들이 가두에서 총궐기 투쟁하는 대중들의 실천에 어떻게 접목시킬 것이며, 그것을 위해서 대단히 구체적이고 고도의 정치가 필요함을 역설했다.

플로어에서 나온 의미있는 이야기들

여성노동자운동을 한다고 소개한 한 활동가는, 계급을 주장하면서 연대를 하고자 할 때 그것이 과연 진정한 연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회의를 가지고 있음을 피력하면서, 진정한 연대란 타자의 입장에서 서야 가능함을 이야기했다. 계급보다는 때로는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가 더 소중함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는 것이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의 한 선생은, 당을 건설한다고 해서 사회운동 전영역을 포괄할 수 있느냐는 제기를 했으며, 이에 대해 박영균 선생은 사회운동 전영역을 당이 다 포괄하자는 것은 아니며, 전국적이고 전세계적 관점을 갖고 다기한 사회운동 영역과 접합을 통해서 대중의 집합적 권력 의지를 형성하기 위해서 당이 필요하며, 그것을 할 수 있는 조직 형식이 곧 당이라고 답변했다.

백원담 선생은, 늦게 와서 전체 토론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대체로 오가는 이야기들이 4년 전 첫 대회와 엇비슷하다는 소회를 피력하면서, 물론 많은 고민들이 있을 것이지만, 현실과 역사과정에 대해서 내면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서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당은 언제든지 깃발들면 건설할 수 있겠지만, 바로 이 지점을 놓쳐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으로 발표자들의 분발을 요청했다.

사회자 김영수 선생은, 21세기 사회주의를 구상하는 좌파의 노력은 현실 정치를 민중적으로 재구성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하며, 바로 그 관점에서 오는 대선에 대한 행보도 뒤따라야 할 것임을 이야기하면서 전체 토론을 마무리했다.
덧붙이는 말

이 기사는 진보평론/노동자의힘 주관단위에서 보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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