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어제, 오늘, 내일

[맑스코뮤날레](개인발표 세션1) - 다양한 혁명 담론, 그리고 가능성

28일 점심식사 시간 후인 오후 2시, 주관단체 및 개인발표 세션이 진행되었다. 최갑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서양사학과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개인발표 세션1은, 벤야민의 인간학적 유물론, 68혁명운동의 교훈을 통한 21세기 혁명의 이행, 민족국가의 전략적 의도 고찰과 같이 자본주의와 혁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고찰하는 자리였다.

토론에 앞서 최갑수 연구자는 조직과 비조직간의 차이를 맑스와 바쿠닌의 인간적 면모의 차이를 통해 설명함으로서, 이번 개인발표 세션을 비조직적인 특성을 지닌 것으로 비유하여 장내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벤야민의 혁명론

“벤야민에서 혁명과 인간학적 유물론”이란 주제로 최성만 이화여대 독문과 교수에 의해 개시된 토론은, 윤미애 중앙대 한독문화연구소 교수의 반론으로 진행되었다.

최성만 연구자는 벤야민을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 문학과 예술, 미학, 철학, 사회학, 정치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회의 현실과, 그 속에서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냉철한 성찰을 전개한 인물”로 표현하고, 21세기에도 벤야민이 유효할 수 있는 까닭을 설명함으로서 발표를 시작하였다.

  최성만, 윤미애 연구자

최성만 연구자는 벤야민 혁명론의 특징을 “하나, 중단의 정치학, 둘, 의식보다 감성에 지향하는 정치학, 셋, 부르주아적 개인의 자율적 주체를 벗어나는 집단의 신경감흥”으로 정리하였다. 실제로 벤야민은 중단의 모티브를 통해 자본주의의 꿈에서 깨어나고 역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것을 촉구하였는데, 최 교수는 이와 같은 중단의 모티브를 통해 진보에 대한 부르주아적 환상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그 때의 정치는 “정신/의식/인식 대신 신체/감각/경험이며, 의지 대신 이미지, 부르주아적 예술 대신 기술”의 정치학이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최성만 연구자의 발제를 논평한 윤미애 연구자는 “벤야민 사후 60년 이상 지난 오늘날에도 벤야민에 대한 연구가 끊임없이 지속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벤야민의 역사철학적 사유 및 중단의 모티브, 초현실주의(아방가르드)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하였다.

최갑수 연구자는 “벤야민 사상에 대한 논의는 상당히 난해한 경향을 지니고 있지만, 탈근대사회의 자본담론에서 상당한 비중을 지니고 있다”고 정리했다.

투쟁양상의 분수령, 68혁명운동

이어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의 혁명과 반혁명 : 68혁명운동의 의미와 교훈”이란 주제로, 정병기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와 송태수 한국노동교육원 박사의 토론이 진행되었다.

“2008년은 68혁명운동이 일어 난지 꼬박 40년째 되는 해이다”란 말로 운을 뗀 정병기 연구자는, 68혁명운동의 용어적 정리를 통해 68혁명운동의 역사적·정치적 중요성을 상기시켰다.

먼저 정병기 연구자는 68혁명의 가장 큰 특징을 “일상성의 민주주의와 반권위주의적 생산자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로 정의하였다. 그것은 관료적 권위주의, 여성과 청소년에 대한 가부장적 권위주의, 소수자에 대한 다수자의 권위주의, 자연에 대한 인간과 문명의 권위주의, 약소국에 대한 강대국의 권위주의 등에 반대함으로서, 일상에서 권위주의를 탈피한 해방된 삶을 지향한 운동이라는 점에서였다.

특히 정병기 연구자는 “재화의 분배와 소유의 평등에 관심을 보인 68혁명운동 이전의 세대는 경제주의 내지는 물질주의적인 경향을 지니며, 68혁명운동 이후의 세대는 소비사회의 물질주의를 비판하고 물질주의를 넘어서 탈물질주의를 지향했다”고 말하였다.

나아가 정병기 연구자는 신자유주의가 더욱 급속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21세기에는, 혁명을 위해 좌파들이 궁극적으로 탈물질주의적인 좌파로의 전환을 이루어야 할 것을 주장하였다.

  정병기, 송태수 연구자

한편 토론에 나선 송태수 연구자는 “정 교수의 발제문이 68혁명운동의 의미를 되새겨보는데 커다란 의미를 지니지만 탈물질주의 좌파의 요구가 결국 물질주의 사회의 고민들로 귀결될 우려가 있으며, 서구 68혁명운동의 시대적인 상황과 우리 나라의 현 상황과의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고 지적하였다.

최갑수 연구자는 68혁명운동 이후 서유럽의 정치적 변화 및 벤야민의 눈으로 바라본 68혁명운동을 토론 참가자들에게 질문한 후, 오늘날 68혁명운동이 갖는 의미를 중심으로 정리했다.

부르주아의 전략인 민족국가

마지막 토론은 “자본, 민족국가, 그리고 부르주아적 망각의 무대에 대한 역사과학적 성찰 - 역사유물론의 공백지대에서 역사유물론 새롭게 쓰기”란 주제로, 중앙대 문화연구학과 석사과정중인 고태경 씨와 조형근 문화과학 편집위원의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고태경, 조형근 연구자

고태경 연구자는 “중세도시의 성격은 오늘날 국가의 그것과는 상이하게 달랐으며 봉건제에서는 자본, 민족, 국가의 세 가지 항이 각각 분리되어있다”고 말하였다. 따라서 그는 부르주아 체제가 자본주의 경제와 민족국가간의 결합을 통해 구성된다는 전제 아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민족국가를 필요로 했음을 주장하였다.

고태경 연구자는 르낭의 말을 빌려 “민족은 하나의 영혼과 집단적인 공통의 기억을 갖는다”고 말한다. 즉 민족의 현재는 고통을 공유하고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의지의 결속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광의 기억이나 상실한 삶의 흔적이 민족감정으로 전환될 때, 부르주아는 계급투쟁을 자신의 통제력 속으로 전유할 수 있다. 고태경 씨는 이 점에서 “민족개념이 단지 도래하지 않는 미래이자 박탈된 과거의 신화를 표상할 경우, 자본의 축적과 계급투쟁의 부르주아적 전유로 연결되며, 부르주아 지배로 귀결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토론의 조형근 연구자는 고태경 연구자의 발제문이 “참신한 발상과 문제의식이 돋보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 된다”고 평하였다. 반면 최갑수 연구자는 “고태경 씨의 시도는 의미 있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새로운 주장을 제시할 때에는 방대한 참고문헌과 깊은 연구가 필요한데 고태경 씨의 논문에서는 그것이 결여되었다”며 아쉬움을 전하기도 하였다.

끝으로 최갑수 교수는 “1, 2회 코뮤날레와 더불어 이번 코뮤날레는 맑스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대안을 상상할 수 있었으며, 다양한 사람들이 토론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자리였다”고 소감을 밝히면서, 총 네 시간에 걸친 개인발표 세션 1을 마무리 하였다.
덧붙이는 말

이 기사는 이한솔 님(aforlee@empal.com)이 보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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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토론에서 최갑수 교수의 사회는 정말이지 꼴볼견이었습니다.
    발표자가 석사과정생이라는 이유만으로 발표내용과 별 관계 없이 무시하더군요. 마지막 고태경씨의 발표는 역사적인 내용들이 많이 포함되긴 했지만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민족의 관계를 세밀하게 분석한 논문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최갑수씨는 그런 내용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시종일관 발표자를 무시했습니다. 논문에 문제가 있다면 선배학자가 아니라 대등한 연구자로서 그 내용을 문제삼아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고태경씨가 논문에 문제가 있다면 무엇이 문제인지 토론해 달라고 요청하자 그것을 회피하며 젊은학자의 기를 꺽을 생각은 없다며 토론을 회피하더군요. 토론에서 나이나 직책이 무슨 문제가 될까요? 학문적인 토론은 학문적으로 풀어야 하는게 맞는 것이지요. 당시 이 토론에 참가했던 저는 개인적으로 최갑수씨가 역사학자로서 학문적 깊이가 있는지는 몰라도 사회과학자로서는 학식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고태경씨 논문의 독창적인 면모를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기도 했고, 최성만씨 발표 때는 "벤야민이 좀 난해하던데 도대체 자기가 무슨말하는지는 알고 한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등의 말을 하더군요.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이해할 수 없으니 비난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역사학을 제외하고는 학자로서의 자세도, 인간적인 겸손함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보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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