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보호법안' 허울 단박에 드러낸 이랜드 노동자

뉴코아-이랜드 투쟁과 민주노조운동의 과제

지금 이랜드 노동자의 매장 점거농성 투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6월 30일 시작된 투쟁은 비정규 관련법이 시행된 7월 이후 전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천민자본, 전근대적 종교자본의 성격을 띤 이랜드자본의 막가파식 노동탄압은 이제 노동자들의 거대한 분노와 반격 앞에 부딪혔다. 그 분노는 단지 이랜드 노동자들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치를 떨면서도 숨죽이고 지낼 수밖에 없었던 전국의 875만 비정규노동자들이 함께 내지른 절규였다. 또 고용불안과 국가 자본의 노동탄압 앞에서 고통 받고 있는 1,500만 노동자들의 아픔을 대변하는 함성이었다.

‘비정규노동자 보호법안’이라는 허울로 노동자를 기만하던 노무현정부는 단박에 드러난 진실 앞에서 대책 없이 허둥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장관은 이랜드 자본이 ‘성급했다’며 생색을 내더니 어느새 ‘법과 원칙’, ‘공권력 투입’이라는 낡은 레퍼토리를 되풀이하고 있다. ‘성급했다’는 것은 좀 더 여유를 갖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정리해고 하고 외주로 돌렸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또 공권력 투입, 구속과 수배로 비정규노동자들을 보호하겠다는 웃을 수도 없는 발상도 여전하다.

현재 이랜드 노동자들의 농성투쟁이 어떤 결말을 맺을지는 알 수 없다. 또 그 투쟁의 의미와 역사적 의의가 드러나는 데에는 아마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구조적 위기 앞에서 위축된 민주노조운동의 입장에서 보면 이랜드 투쟁은 이미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그 속에 민주노조의 미래가 담겨있을 지도 모른다는 예감은 지나친 것일까? 향후 보다 본격적인 분석이 필요하다는 점을 전제로 몇 가지 단상을 정리해본다.

먼저 금번 이랜드 투쟁은 그동안 가장 조직되기 힘든 부문이라고 평가되었던 서비스유통산업부문에서 폭발한 투쟁이다. 거기다 대다수의 조합원이 육아나 가사노동의 이중 부담을 진 주부 여성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조직되기 힘든 사업장에서 거대한 조직화가 일어났고 전 사회적으로 커다란 충격을 준 파업이 일어난 것이다. 시민과 항상 접촉하는 판매서비스직 직종의 성격 때문에 시민들의 호응성이 높은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고립되어 탄압받았던 제조업노조 파업의 한계를 보완할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취업노동자 중 과반이 훨씬 넘는 노동자가 서비스산업에 고용된 현실을 한탄하고 조직률 5%의 민주노조의 미래가 어둡다고 단지 자탄할 일만은 아닐 것이다.

둘째, 주지하듯이 금번 파업의 가장 중요한 성격은 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한 비정규노동자 파업이었다는 점에 있다. 파업을 주도한 이랜드일반노조와 뉴코아노조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나의 노동조합에 조직되어 있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회사가 추진하는 구조조정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였고 비정규직 조직화에 함께 나섰다. 자본의 분할지배를 넘어 정규 비정규의 연대를 투쟁을 통해서 실현해내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기업별 노조의 울타리를 막 넘어서기 시작한 산별노조의 질적 발전은 그것이 정규 비정규노동자를 묶는 연대의 대량생산공장이 될 때 이루어 질 것이다.

셋째, 소위 ‘비정규노동자 보호법안’으로 정규 비정규노동자의 분할지배구도를 제도적으로 완성하고 차별을 고착화하려는 국가 자본의 전략에 커다란 파열구를 낸 투쟁이었다. 비정규 관련법 시행 하루 전에 시작된 이랜드 파업은 비정규법안의 기만성과 반 노동자성을 가장 쉽게 그리고 광범하게 선전, 교육하는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여타 직종 비정규노동자들에게도 그것은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아가 비정규 법안의 전면 재개정을 위한 향후 노동법 개정투쟁의 필요성과 근거를 대중적으로 마련한 것은 이랜드 파업의 중요한 성과가 될 것이다.

넷째, 민주노동당 지역 조직과 시민사회의 진보적 사회운동단체들이 조직적으로 연대한 파업투쟁이란 점도 중요하다. 농성투쟁의 중심인 홈에버 상암점의 조직화는 민주노동당 서대문 마포 은평 용산 4개 지역위원회의 사업에 힘입은 바 컸다고 한다. 또 북부지역의 노원점과 중계점에도 노조와 함께 정당 조직과 사회운동 단체의 지원이 있었다. 인천 홈에버의 경우에는 인천 지역 사회운동단체들의 기여가 중요하였다고 한다. 이 밖에도 7월 8일의 전국적 점거투쟁과정에는 지역의 사회운동 조직이 다수 참여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와 같은 조직화와 투쟁 양상은 좁게는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사업의 방향을, 그리고 넓게는 새로운 민주노조운동의 전략적 방안을 예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연대의 확장은 노동계급 내부의 비정규노동자들을 넘어 시민사회로 나아가야 하여 양자는 하나로 결합되어야 함을 이랜드투쟁은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비정규직 조직화와 투쟁은 난제 중의 난제에 속한다. 그러나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구도에서 한국의 자본은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초과착취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또 국가가 비정규노동자의 분노를 차별 법제화로 왜곡하고 기만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지속적으로 드러낼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그 결과는 다양한 방식으로 정규직의 비정규직화 추세가 확대되는 것,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착취 강화로 나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향후 상당기간 동안 비정규 노동자들의 자연발생적 투쟁이 폭발하는 것은 필연의 일에 속한다.

또 위기에 처한 민주노조운동, 조직 노동에게 비정규노동자와 함께 하는 산별노조 건설 외에 달리 답이 있을 수 없다. 나아가 대체노동 투입, 필수공익사업장 확대로 파업권을 완전히 봉쇄하려는 것이 국가와 자본의 전략적 목표라는 사실이 이제 분명해졌다. 이는 차기 정부에 더욱 강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비정규 관련 노동법을 포함한 전면적인 노동법 개정이라는 전 계급적 전선으로 대응하는 것 외에 달리 방도가 없다. 결국 정규와 비정규노동자들이 함께 하는 수많은 이랜드 투쟁이 들불처럼 번질 수 있을 것인가는 온전히 민주노조운동의 올바른 대응 여부에 달려있다.
덧붙이는 말

노중기 님은 한신대 교수로, 본 지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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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 , 비정규직투쟁 , 비정규법 , 민주노조운동 , 뉴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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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동자

    잘 읽었습니다.

  • 뉴코아-이랜드 투쟁 꼭 승리하고, 이후 서비스분야 파업들로 번져나갈 수 있음 좋겠네요, 더 큰 투쟁을 만들어갈 투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많은 동지들 싸우고 있던데,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공간에서 목소리 내고 연대해야해요! 화이팅~~~~

  • 장동지

    글 읽기가 역겹습니다.
    민주노조운동의 과제라....
    노동해방을 외치면서도 정작 자기 현장에서는 비정규직 탄압을 방조하는 일이 적지 않은 현실에서..
    용역, 비정규직이 정말 많은 대학에서 교수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 교수노조라는 단체는 무얼하는지..
    이른바 민주교수라는 사람들이 학생운동을 탄압하던 한신대학교 교수인 노중기 교수같은 사람에게 지금의 어려운 시기의 과제를 들어야 하는 현실이 정말 우리 노동운동의 위기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 대한 수차례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노중기 교수같은 사람으로 부터 주요한 시기의 '과제'를 청하는 참세상도 참으로 가슴을 답답하게 합니다.

  • 뭐야 이 인간은? "장동지"? 밑도 끝도 없이 근거없는 비난과 인신공격을 날리는 이유가 도대체 뭔데?
    역겨우면 안 읽으면 될 거 아냐.

  • 노중기

    장동지씨. 할 말이 없군요. 계속 그렇게 살기 바랍니다.
    노중기.

  • 현장

    시의적절하고 정치한 글입니다. 이랜드 노동자 꼭 승리하시길...

  • 장동지

    교수님의 글을 보고 전 좀 흥분했었는데 교수님의 리플을 보니 역시나 흥분하셨군요.

    한신대 재학시절 소명의 기회조차 박탈당한채 부당한 징계를 받은 저로써는 당연히 아직 할 말이 많습니다.
    그냥 잊고 지내보려고도 하였지만 (잠시나마 차라리 그게 운동에 도움이 되는 거라 생각해서) 가능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계속 말 하려고 합니다.

    당시 그러한 상황을 방조 아니, 학생운동탄압에 동조했던 '노중기씨'로써는 당연히 할말이 없어야 합니다.

    --------
    PS. 당시의 상황을 구구절절하게 이곳에서 다 적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좀 뜬금없는 이야기로 들리시는 분들께는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신대에서 벌어진 수년간의 학부제 관련 투쟁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전 얼마전까지 전국건설운송노동조합(덤프, 레미콘)에서 조직국장으로 일한 장형창입니다. 현재는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와 노동전선 회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승리

    글 잘봤습니다. 이랜드 투쟁이 반드시 승리하길 멀리서나마 기원합니다.

  • 김동환

    장동지 님. 뜬금없는 자리에서 말고 적절한 장소에서 말씀하시면 더욱 적절할 듯 같습니다. 교수님을 찾아가 말씀을 나누는 것이 최선이겠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 에밀리오

    아주~ 옛날 글이기는 하지만... 장동지님 99년 학부제 투쟁 때 징계 받으신 분이신가 보네요? 근데 제 알기로는 99년도에 노중기 선생님이 막 사회학과 교수가 되신 걸로 아는데, 귀하들의 의제에 손을 들어주지 않아서 노동탄압 하는 악질 교수가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귀하들은 보면 꼭 그렇게 사업하더라구요. 그 안 좋은 방식은 후배들한테 유산으로 고대로 물려주고 졸업하고 말이에요.

    그러니 결과적으로 다수를 지향하면서 언제나 범주화하고 소수화되고 그렇게 지내는거 아닌가 싶습니다.

    편향이 쩐달까? 그런 느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