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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에게 가장 귀한 속속이풀

[강우근의 들꽃이야기](56) - 속속이풀

속속이풀 꽃대에 쪼르르 열매가 달리고 있다. 열매를 보니까 속속이풀이랑 개갓냉이가 확실히 구별된다.

지난 봄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속속이풀이라고 가르친 것들이 다 개갓냉이였다. 두해살이풀인 속속이풀이나 여러해살이풀인 개갓냉이는 뿌리에 붙어나는 잎을 달고 겨울을 지내는데 그 뿌리잎 모양이 서로 빼닮았다. 둘 다 봄에 노란 꽃을 피워서 더 닮아 보이다가, 꽃대에 열매가 달리기 시작하면 비로소 쉽게 구별할 수 있게 된다. 개갓냉이 열매는 길쭉하고 속속이풀 열매는 개갓냉이 열매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개갓냉이와 속속이풀(왼쪽부터)

속속이풀은 '갓냉이'라 불리기도 하고 개갓냉이는 '졸속속이풀'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래저래 닮은 두 풀은 불리는 이름도 닮아 있다. 개갓냉이는 마른 땅에서 잘 자란다. 아파트 둘레나 길가에서는 속속이풀보다 개갓냉이를 더 많이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도시를 가로지르는 개천가에 가면 개갓냉이보다 속속이풀을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속속이풀은 낮은 땅 습기 있는 곳에서 더 잘 자란다. 속속이풀은 개갓냉이에 견주어 잎 가장자리 들고 낢이 더 규칙적이다. 줄기에서 자라난 잎을 보면 개갓냉이는 거의 갈라지지 않았지만 속속이풀은 줄기잎도 깊이 갈라져 있다. 팍팍한 땅에서 살아가는 개갓냉이보다 습기 있는 땅에서 자라는 속속이풀이 더 섬세해 보이는 것이다.

도감에는 속속이풀 꽃이 5월에서 6월에 핀다고 나와 있지만, 7월에도 노란 꽃을 피워 내고 있다. 여름 내내 꽃을 피워 낼 기세다. 속속이풀은 자꾸 잇따라 속속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것일까? 여기저기 구석구석 속속들이 자라나서 그렇게 불리게 된 것일까? 유래는 알 수 없지만 그 이름을 한 번 들으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개갓냉이를 속속이풀로 잘 못 가르쳐 준 걸을 얘기했더니, 어떤 게 속속이풀이고 개갓냉이인지 알지 못했지만 속속이풀이라는 이름은 다들 기억해냈다. 개천가에 흔히 자라는 속속이풀도 어떤 이에게는 가장 좋아하고 귀하게 여기는 풀이 되기도 한다.

"속속이풀은 필자가 가장 좋아하고 귀하게 여기는 식물로서… 재배한 채소보다 월등하게 우수한 해독제 작용이 있으며 섬유질은 재배한 것보다 더 적절히 들어 있다.… 무척 맛있고 먹기 좋으며 영양 물질이 넉넉히 들어 있는 이 속속이풀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으면 한다."(「산야초 동의보감」장준근)

속속이풀이나 개갓냉이 따위처럼 둘레에서 흔히 자라는 풀을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한편에서는 멸종 위기 종을 되살린다는 복원 작업이 많은 돈과 인력을 들여가며 진행되기도 한다. 사람들 이목을 끄는 이런 이벤트 성 사업에는 그래도 돈이 모이나 보다. 하지만 사라진 것들을 복원하는 일들은 성공하기 힘들다. 생태를 총체적으로 복원해 내지 못한다면 복원했다고 한 들 또 다시 사라질 게 뻔하다. 이미 사라진 것을 복원하는 것에 쏟는 노력만큼 우리 둘레에 흔히 자라는 것들을 제대로 알기 위해 노력한다면 더 많은 것이 사라지는 것을 미리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거기서 이미 사라진 것들을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망가진 자연을 회복하고 병든 몸도 살리고 자연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열매가 여물 즈음 아이들을 데리고 풀밭으로 간다. 풀들을 툭툭 쳐 대면 씨앗이 톡톡 튄다. 살짝 건드려도 씨앗이 사방으로 후두둑 튄다. 열매 껍질이 돌돌 말리면서 씨앗을 멀리 튕겨내는 것이다. 아이들은 막대기 하나씩 들고 씨앗 폭탄 놀이에 흠뻑 빠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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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근 , 들꽃 , 속속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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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보았습니다

    이름없는 것들의 원래 이름을 돌려주시는 강우근님의 글 매번 잘 보고 있습니다. 언젠가 책으로 묶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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