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가를 제대로 부르기 전에 이 파업이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연정의 바보같은사랑](8) - 이랜드일반노조 홈에버 월드컵몰 농성 5일차 이야기

1박 2일을 예정으로 했던 이랜드일반노조의 홈에버 월드컵몰 농성이 어느덧 17일 차를 맞이했습니다. 지난 8일부터 시작한 뉴코아노조의 킴스클럽 강남점 농성은 내일이면 열흘이 됩니다. 이제 이 동지들의 팔뚝질은 별로 어색하지 않고, “투쟁~!” 소리도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율동이며 노래도 얼마나 멋지게 잘 하시는지 모릅니다.
암흑 같은 지난 며칠이었습니다. 어제 저녁, 농성장 앞에서 교섭 재개 소식을 접한 이랜드 동지들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았습니다. 오늘 교섭이 끝난 후, 이랜드-뉴코아 동지들이 자신들이 수놓았던 꽃보다 더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지난 시간들을 추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띄웁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립니다. 빳빳하게 다려놓은 유니폼은 장마비 때문에 눅눅해져 새로 다려야할 것 같습니다.
- [필자 주]

“본조에 취재 허가 받으셨어요?”

“어디서 오셨어요?”
“본조에 취재 허가 받으셨어요?”

7월 4일 오후, 홈에버 월드컵몰 농성 5일차. 나는 “비정규직 철폐”가 시원하게 써있는 하늘색 티셔츠를 입은 그이들이 이랜드노조 조합원인줄 알지만, 그이들은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 본조 간부가 있는 곳으로 가서 직접 만들어서 갖고 다니는 명함을 내밀었다. 거기서도 우여곡절 끝에 취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주에는 조합원을 가장하여 집회 정보를 염탐하던 경찰이 적발되기도 했었고, 오늘 아침에만 해도 수상한 사람(?)이 사진을 찍은 일이 있었던지라 조합원들과 집행부는 바짝 긴장하고 있는 듯 했다. 농성장 취재를 해가도 회사 측 얘기만 내보내고, 진실을 왜곡하는 보도를 하는 언론에 대한 조합원들의 불신도 한 몫 했으리라. 그 뒤로도 드나들 때, 두어 번 출입 제재를 받아야했다. 좀 더 부지런히 다니지 못한 내 불찰을 인정하며 취재를 시작한다.

“오늘 무슨 일 있어요?”

1층 매장에서 문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노가바도 하고, <희망의 노래>와 <단결투쟁가>도 배워본다.


일부 조합원들이 멈춰진 계산대를 사수하고 있다. 2층에서도 조합원과 연대하는 동지들이 계산대를 사수하고 있다. 카트로 쳐놓은 바리케이트 뒤 진열대 사이로 사측이 고용한 용역들이 가끔 모습을 드러낸다.

“오늘 무슨 일 있어요?”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내내 여기저기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끊이질 않자 한 간부가 조합원들에게 묻는다. 5일 간의 농성으로 피곤하고 긴장되기도 하련만, 노래와 율동을 배우는 조합원들의 목소리와 몸짓에는 열정이 넘친다. 조합원들에게 수다를 떨고 웃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한 쪽에서는 고객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선전물 작업이 한창이다. 고객들에게 투쟁을 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하는 내용이며 ‘비정규직 보호법’을 통과시킨 의원들에게 항의하는 내용의 글을 매직을 꾹꾹 눌러가며 정성스레 쓰고 있다.

5, 6, 7, 8, 9, 10

“순진한 여린 내 마음 노무현 너마저 몰라주면 나는나는 어쩌나~ 아~ 비정규직 애만 태우는 비정규직 악법”

농성장 곳곳에는 공동창작시와 노가바, 농성 수칙 등의 대자보가 붙어 있다. 어제 기자회견 때, 조합원들이 꽃으로 수놓은 “일하고 싶어요” 현수막도 걸려있다. 곳곳에서 조합원들의 흔적과 목소리, 몸짓을 느끼면서 문득문득 기륭전자분회 동지들을 생각했다. 3일이면 끝날 줄 알았던 기륭 동지들의 55일 간의 현장 농성 중에 날이면 날마다 밖으로 날라 오던 배꼽 잡게 하던 노가바와 기발한 구호들. 수학여행 온 여고생들처럼 설레던 마음으로 3.6.9를 하며 파업에 들어갔던 2년 전 기륭 동지들의 파업 첫 날 모습이 떠오른다. 1박 2일을 예정하고 들어왔던 이랜드 동지들의 농성도 어느덧 5일 차에 접어들었다.


간부 한 명이 바닥에 몸을 숙이고 “파업농성 5일차”를 쓴다. 그러더니 6을 쓴다.
‘내일 것만 미리 써두려나 보다...’
나의 예상은 빗나간다. 숫자는 7, 8, 9, 10까지 이어진다. 10일차면 7월 8일 민주노총의 전국 이랜드 유통매장 타격 투쟁 다음 날이다.

“그게 어디야”

문화제 중에 5시에 사측과 만남의 자리가 마련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와~”

순간 분위기가 술렁인다. 행여나 나중에 조합원들이 실망할까 염려되었는지 앞에 나온 김경욱 위원장이 “정식 교섭은 6일이고, 오늘은 우리의 요구를 확실하게 전달하고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면서 문제 해결의 물꼬를 터보는 자리”라는 설명을 해준다.



“그게 어디야.”

조합원들은 사측과 대화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이는 모양이다.

“잘해~!”

“투쟁!”

면담장으로 가는 동지들의 어깨 위로 조합원들의 격려가 쏟아진다.
문화제는 계속된다. 학생동지들이 나와 <바위처럼>과 <내일의 노래> 율동 지도를 한다.

“나는야 까대기의 마술사”

비정규직 해고하는 이랜드그룹 회장은 얼마짜리 바코드냐 찍찍... 가격도 안나오네
롤러! 가격알아와 미등록상품이야 그런데 왜 홈에버에 있냐?
성수는 성수는 우리 상품이 아니야 잘못 들어왔으니 반품해버려

- 조합원 창작시 <찍순이> 中에서 -

텅텅 비어 있는 매대를 보며 작은 설레임과 기쁨을 느낀다.
아! 오늘도 나를 필요로 하는 저 공간들이여 멋진 작품을 만들어야지
나만의 작품을 연출하며 행복을 느낀다..... 나는야 예술가 나는야 까대기의 마술사!!!

- 조합원 창작시 <까대기> 中에서 -

분회별로 조합원이 한 명씩 나와 창작시를 낭송한다. 어디에 가서도 볼 수 없는 귀한 작품들이다. 계산을 멈추고 판매를 멈춘 파업 농성장에서는 펄펄 살아 뛰는 노동문화들이 생산되고 있었다.



‘찍순이’와 ‘까대기’는 유통 노동자들의 ‘전문용어’다. ‘찍순이’는 계산대에서 바코드를 찍으며 계산일을 하는 노동자를 호칭하는 말이다. ‘까대기’는 박스에 들어 있는 물건들을 매대에 진열하는 일을 말하는데, 때에 따라 그 일을 하는 사람이나 물건을 담는 상자를 ‘까대기’라 부르기도 한다.

내가 ‘까대기’라는 말을 처음 접한 것은 김성만 선배가 만든 유통노동자의 노래 <까대기>를 통해서였는데, 이제야 ‘까대기’의 진정한 의미를 알 것 같다.

우리가 차곡차곡 우리가 하는 거야. 노동이 아름답게 다시 쌓아야해. 우리가 하는 거야. 우리가 힘을 모아 세상을 다시 한번 까대기 하는 거야.
- 김성만 글·곡 <까대기> 中에서 -

“이것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저는 비정규직으로 작년 11월 23일에 입사했습니다. 처음에 석 달 계약을 하고, 다시 6개월 계약을 했습니다. 8월 재계약을 앞두고 비정규법이 시행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법 철폐가 아니라 비정규직들의 고용안정을 해달라고 점거에 들어갔습니다. 아줌마 아가씨 모두 함께 하고자 까대기 박스를 깔고 새우잠을 자고, 노조비가 부족해서 각자 도시락을 싸와서 먹고 있습니다. 이것은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여러분과 나를 위한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 자녀들과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 아닙니까? 망설임이 있었습니다. 승산이 있을까? 이랜드가 우리 요구를 들어줄까, 말까? 하는 생각에 (노조에) 들까 말까 망설였습니다. 월드컵 점에 아줌마 부대들이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뭔가 다음세대들을 위한 것이 있으니까 여기서 까대기에서 새우잠을 자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음 세대를 위해 동참해 주십시오. 남편과 자녀들이 다치지 말라며 도와주고 있습니다.”


당당하고 씩씩하게 마이크를 잡고 발언을 하던 목동분회의 한 조합원은 끝내 울먹이며 말을 잇는다.

“많이 힘듭니다. 여론도 우리 편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 마음을 돌려야하지 않겠습니까? 단결과 동지애로 힘을 내서 우리 월드컵 점 무기한 파업 끝까지 해봅시다.”

“아직도 네야?”

내가 농성장에 잠시 머무른 4시간 남짓한 시간 중에도 많은 연대동지들이 다녀갔다. 신호제지와 코스콤 노동자들, 보건의료노조 경희대지부와 세종병원지부 노동자들이 와서 격려사도 하고 힘찬 율동으로 힘을 북돋워주었다. 투쟁기금도 전달을 한다.


글쎄, 이랜드 동지들...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하는 투쟁인데, 왜 이토록 많은 이들이 관심 가져주고 방문해서 힘을 주고, 돈까지 주고 가는지 아직은 희미한 느낌으로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문화제는 건설노조 타워크레인분과 풍물패 하늘채의 등장으로 절정에 이른다. 하늘채는 풍물 공연에 이어 해방춤을 가르쳐준다.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둘 씩 짝을 지어 <님을 위한 행진곡>에 맞춰 춤을 추자 농성장은 금새 후끈 달아오른다.


“한 번 더, 한 번 더!”
“한 번 더 해볼까요?”
“네에~!”
“또 네야?”
“투쟁!”

좀처럼 입에 찰싹 붙지 않는 “투쟁”이다.조금은 어색한 팔뚝질도, 노래 가사집을 들고 노래하는 모습도, 그 어떤 서투른 모습도 싫지 않다.

“파업가를 제대로 부르기 전에 이 파업이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6월 24일 이랜드-뉴코아 3차 공동총파업 때, 지하 계산대를 점거했던 이랜드노조 조합원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했었다. 이 날, 투쟁 550일을 눈 앞에 두고 있던 이옥순 르네상스노조 위원장님은 “노련화 되지 마십시오. 미숙한 게 좋은 겁니다.”라고 했다. 5백일, 6백일, 7백일, 몇 년을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장투 동지들의 노련함, 그리고 세상을 꿰뚫는 안목과 성찰은 자랑스러움인 동시에 모진 세월 속에 켜켜이 쌓인 서러움과 아픔이기 때문이다.

“어떤 국이든 두부는 꼭 들어가요.”

오후 문화제를 마치고 ‘식사투쟁’에 들어간다는 안내 멘트가 떨어지기 무섭게 조합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도시락을 꺼낸다. 재정이 넉넉지 못해 조합원들이 도시락을 싸오고 있다. 조합원들이 결의한 거라 한다. 집에 가서 자고 오는 조합원들이 전 날 집에 못 들어간 조합원들이 먹을 밥까지 싸와 함께 먹고 있다. 도시락이 없는 조합원이나 연대 온 동지들을 위해 월드컵분회를 중심으로 식사조를 편성하여 국을 끓여 함께 밥을 먹고 있다. 이렇게 해서 드는 식사 비용은 하루 30만원 정도다.




한 사람이 잡곡밥에 반찬 한 두 가지 씩만 꺼냈는데도 열무김치, 고추, 상추, 감자조림, 부침개, 콩나물무침, 방울토마토 등 농성장 밥상은 금새 푸짐해진다.

농성장 밖에서 조합원들이 준비한 밥을 먹었다. 김치와 콩나물에 멸치, 두부를 송송 썰어 넣어 끓인 시원한 김치콩나물국에 밥을 말아 훌훌 먹는다.

“우린요. 어떤 국이든 두부는 꼭 들어가요.”

나중에 월드컵분회 조합원에게 들은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미역국에도 두부가 들어갔었다.

“뭐 하나라도 더 멕이고 싶으셨나 봐요.”
“그렇죠. 두부에 단백질이 많으니까요.”

“7월 8일 이후가 걱정”

저녁을 먹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한 정규직 여성 조합원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하고 싶습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그 조합원의 첫 마디다.

“차라리 까르푸 때가 나았어요.”

그녀는 까르푸 때는 까르푸만 아니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랜드가 들어오고 나서 더 힘들다고 했다.

“조합원 중에는 7월 8일 결정 날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우리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흩어지는 조합원들을 어떻게 감싸야할지 걱정이에요.”

한숨만 나온다고 했다. 집에 들어가 있어도 함성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농성장이 침탈될까봐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했다.

"이제 곧 판매직에는 정규직 타이틀이 없어질 것 같아요."

“4년 이상 근무했는데, 그만둘 수 밖에 없었어요.”

부당한 인사이동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둔 동료의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닦는다. 정규직 중에는 “왜 맨 날 비정규직 얘기만 하냐?”며 불만스러워 하는 사람도 있다 한다. 왜 없겠는가. 조합원 한 명이 그 비슷한 얘기를 했을 때, 김경욱 위원장이 강경한 어조로 탈퇴하라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제 곧 판매직에는 정규직 타이틀이 없어질 것 같아요.“

이랜드-뉴코아 투쟁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하는 투쟁이다. 어쩌면 정규직들이 이번 투쟁에 함께 하는 이유가 그리 거창하지 않을 수도 있다. 평 조합원들에게는 비정규직 투쟁의 정당성이나 정규직으로서의 역사적 사명감보다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정규직의 생존권과 직결되어 있다는 절박함이 더 크게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승진 때문에 노조 가입을 꺼리는 남성 정규직노동자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기도 했다.

“영업 안해요. 직원들이 많이 짤려서요...”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야기 하고 있는 중에도 여러 명의 손님들이 매장 앞에서 발길을 돌린다. 파업 중이지만, 근무 중에 일상적으로 했던 인사말들이 자연스레 튀어나온다. 가끔은 자신들이 농성을 하는 이유를 이해 못하고, 쇼핑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손님들이 서운하게 생각될 때도 있다.


“얼마 전에 정규직만 응시할 수 있는 승진시험이 있었는데, 저도 응시를 했어요. 승진기대감에 일주일 이상 밤새워가며 공부를 했는데, 몇 글자 쓰지도 못하고 나왔어요. 우리 지점에서만 몇 십 명 지원했는데, 2명 합격 했더라구요. 그때 제 생각이 짧았어요. 그 당시에는 그 시험이 비정규직은 자격이 없는 시험이라는 것을 생각 못했어요. 이기적이었죠. 합격 안 되길 잘했죠. 나중에 시험에 응시 못하는 분들을 생각하니 얼마나 미안하고 죄스럽던지... 되게 감사하다...”

지나가던 한 시민이 투쟁기금을 넣어주고 간다.
“유니폼 다 다려놨어요. 출근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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