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한미동맹이 빚은 비극

즉각 철군으로 아프간 민심을 돌리는 방법 외에 없다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 결국 벌어지고 말았다. 조희용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된 우리 국민 중 한 명이 25일 희생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바뀐 것은 없다. 피랍된 한국인은 아직 풀려나지 않았고, 협상을 벌이는 정부의 입장이 무엇인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일도 탈레반의 만행을 규탄하는 일도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예견된 비극이 현실이 된 지금, 미 제국주의 전쟁에 동참한 나라의 국민으로, 반세기 한미동맹에 따른 역사적 죄과를 치르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면 쏟구치는 분노를 억누를 길 없다.

진실은 하나 뿐이다. 미 제국주의의 중동 침략정책과 노무현정부의 파병정책이 배형규 씨를 죽음으로 몰았다. 미 제국주의와의 동맹의 운명을 깨뜨리지 못한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의 불행이다. 김선일 씨에 이어, 윤장호 씨에 이어, 배형규 씨의 죽음 앞에 다시 깊은 애도를 표하며, 이제 이 죽음의 행렬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하지 않을 수 없다.

미 제국주의의 중동정책은 폭력으로 점철되었다. 미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에 개입하여 아랍의 반발을 불렀다. 9.11 사태 이후 대량살상무기를 이유로 들어 이라크를 침공했고, 민주주의를 약속했지만 내전이 지속되고 있을 뿐이다. 이란은 '문명간의 대화'를 요청했지만 미국은 손을 내미는 이란을 '악의 축'으로 지목했고, 결국 이스라엘과 이란의 분쟁을 확산시켰다. 이라크, 팔레스타인, 레바논 침공은 무슬림 뿐 아니라 아랍 민중 전체를 적으로 간주하며 벌인 추악한 전쟁이다. 미국의 중동정책은 실패하고 있다. 전쟁을 통해 만들어지는 민주주의는 없으며, 중동 전역에 반제국주의 저항이 확산되고 있다. 작년 11월 치러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참패했고, 미국 여론 60%가 철군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정권의 중동청책을 포함한 외교정책의 정치적 파산을 의미하는 것들이다.

참여정부가 미 제국주의의 침략전쟁에 참여한 것 자체가 불행의 씨앗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 첫 선물로 이라크 전쟁 참여를 선언했다. 아부그라이브 수용소 만행이 알려지고, 석유를 빼앗기 위한 침략전쟁이라는 사실이 명백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익'과 '국제사회와의 약속'과 '이라크 재건활동' 따위의 명분을 들어 파병을 강행했다. 아프가니스탄 동의.다산부대와 2003년 4월 서희.제마부대 파병으로 시작된 이라크 파병, 이후 계속되어온 파병 연장과 레바논 파병까지 참여정부는 미국의 제국주의 전쟁에 확실한 동원부대 노릇을 자임했다. 참여정부는 한때 세계 3위 규모의 이라크 파병을 자랑했다.

미 제국주의의 중동 침략과 참여정부의 전쟁 참여는 우리 국민 모두를 침략자로 바뀌놓았다. 이라크에서 김선일 씨가, 아프간에서 윤장호 씨가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 돌아왔을 때 제국주의 전쟁 참여의 죄를 짓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불행한가가 확인되었다. 그때 종지부를 찍어야 했다. 그때 제기된 파병 중단, 철군 요구를 기꺼이 실행했어야 했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거꾸로 걸었다. 한미동맹을 강조하며 한미FTA 협상을 추진했고, 미국의 파병 요구를 한 차례도 뿌리치지 않았다. 오히려 파병 연장을 획책하기 바빴다. 그 파병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했던 국회와 행정부는 지금 어떠한 책임도 코멘트하지 않는다. 평화와 개혁을 강조하며 다시 뭉친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의 대다수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이 공포의 현실 앞에서 참여정부가, 신자유주의 개혁세력들이 말하는 평화가 어떤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미동맹의 사슬에 묶인 채 얼마나 더 미 제국주의 신민으로 살아갈 것을 강요받아야 하나. 이 죽음과 절망의 공포 앞에서 얼마나 더 이성과 냉정을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지금까지 정부의 협상은 노력 여부와 관계없이 실패했다. 이후 협상도 불투명해 보인다. 특사 파견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제한적이다. 정말 더 이상은 안 된다. 22명의 피랍 한국인이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미 제국주의 전쟁 참여를 진심으로 참회하고 즉각 철군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전쟁으로 피해받은 아프간,이라크,레바논 민중의 마음을 돌리는 것 뿐이다. 더 이상의 불행을 막기 위해, 22명의 시민을 안전하게 돌아오게 하기 위해 참여정부는 즉각 참회의 철군 의사를 분명히 밝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