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비정규직 60%, 그 비정규직의 70%가 여성

‘비정규직보호법’을 ‘비정규직권리법’으로

‘보호’라는 말은 상당히 수상한 말이다. 여자들이 밤길을 다니는 것이 위험하니 남자친구가 ‘보호’하기 위해 집까지 바래다준다. 밤길은 여자들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들이 보호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그 길을 다니는 것을 금하기도 한다. 그런데 보호하는 것도 남자요, 위협을 가하는 것도 남자다. 한 쪽에서는 보호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위협을 가한다. 이 둘의 공통점은 둘 다 힘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보호할 수 있는 힘은 위협할 수 있는 힘과 분리될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보호라는 말이 개인의 영역이 아니라 사회적 영역에서 사용되면 더 복잡한 양상을 띠면서 수상해진다. 국가는 국민을 법이라는 이름으로 보호한다고 한다. 특히 법에 ‘보호’라는 말이 더해지면 더욱 수상해진다. 비정규직보호법이 바로 그 예가 된다. 2007년 7월 1일부터 실시된 이 ‘보호’법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해고당하거나 용역화를 겪었다. 일부 큰 기업들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해고나 외주화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노동자들을 쫓아냈다.

보호를 한다고 할 때는 보호할 대상과 보호하는 주체와 보호해야할 사안이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보호법은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들이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실제로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들은 보호받지 못했고, 보호법이 생긴 지금도 보호받지 못한다.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되기 전부터 사회 곳곳에서 비정규직들이 해고되거나 용역화되었다. 노동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고당하거나 용역으로 전환당하는 비정규직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법안이 통과되었다. 사용자들이 멋대로 해고하고 용역전환하는 것으로부터 비정규직노동자들을 보호하겠다는 주체는 정부이고 정부의 법이다. 그렇다면 정부와 법은 말 그대로 비정규직을 보호해야 한다.

그런데 이랜드의 홈에버-뉴코아 사태는 어떠한가? 비정규직보호법 실행을 앞두고 이랜드는 800명 가량을 해고하거나 외주화했다. 뉴코아, 홈에버는 1주일 미만의 초단기 계약, 근로계약기간 변조, 계약직 노동자 대량해고, 계산원 업무의 외주화 등 비정규직 노동자 탄압의 상징적 ‘쇼핑센터’가 되었다. 이렇게 탄압받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을 법과 정부는 ‘보호법’이라는 말 그대로 보호해야 할 단계가 되었다.

그러나 정부와 법은 무엇을 했는가? 정부는 경찰이라는 공권력을 동원하였다. 여성경찰을 제일선에 서게 하는 치밀함까지 보이면서 공권력을 동원하였다. 강남 뉴코아의 2차 점거농성의 경우 197명을 해산하기 위해 4,600명의 경찰이 동원되었다. 홈에버 상암점 1차 점거농성도 경찰에 의해 강제해산 되었다.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고 법을 만든 주체로서의 정부는 자신들이 보호하겠다는 비정규직들에게 공권력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법은 사용자 측의 각종 고소고발과 가처분, 손배청구, 가압류 그리고 연행과 수감을 진행한다.

사용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싸움은 비대칭적이고 불평등한 싸움이다. 사용자가 계약을 연장하지 않으면 할 말이 없고, 업무를 외주화해서 기존 월급의 60%밖에 받지 못하게 되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황이다. 이 싸움에서 힘 있는 정부와 법은 누구의 편을 드는가? 사용자편을 들고 있다. 법을 악용하는 사용자편에 서 있다. 정부와 법이 사용자편을 드는 한 이 땅에서 무수한 제2, 제3의 이랜드들이 속출할 것이다. 아니 이미 오래전부터 비정규직 문제는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그리고 현재도 이랜드만이 아니라 여러 곳에서 비정규직의 투쟁은 진행 중이다. KTX여승무원들의 투쟁이 500일을 훌쩍 넘었고, 곳곳에서 경비, 청소 일에 종사하는 비정규직들이 투쟁하고 있다.

비정규직을 보호하지 못하는 보호의 주체인 정부와 법은 양날의 칼을 갖고 있다. 보호라는 이름과 처벌이라는 이름의 양날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 보호와 처벌의 주체인 정부와 법은 비정규직 중에서도 여성을 계속 사회적 ‘약자’로 내몰고 있다. 왜냐하면 60%가 비정규직이고, 그 비정규직의 70%가 여성이기 때문이다. KTX여승무원노조와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이 오늘 비정규직 투쟁의 최전선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울산과학대 청소미화 여성노동자들을 위시하여 여러 곳의 청소미화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투쟁에 앞장서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비정규직을 확산하는 자본은 애초에 가부장적이었고 지금도 가부장적이기 때문이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정부나 법이 비정규직보호법을 만들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노동자들, 그 중에서도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비정규직권리법’으로 이름을 바꾸어서 해고가 아니라 노동권을 보장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만들어야 한다. 정부와 법은 보호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노동자들을 약자로 만들면서 힘 있는 사용자편에 설 것이 아니라 더 철저하게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법을 개정하고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법개정 이전에 KTX여승무원과 이랜드의 ‘철도공사 직접고용’과 ‘해고철회와 완전고용’이라는 그들의 요구가 관철되도록 도와야 한다. 이 요구가 관철된다는 것은 60%가 되는 비정규직과 그 중 70%가 되는 여성노동자들이 불평등한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음을 상징한다. 불평등한 구조에 대한 싸움을 건 여성비정규직노동자들의 노동권 투쟁은 보호가 바로 위협이기도 한 가부장적 사회에 대해 권리로 당당하게 맞서는 싸움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말

고정갑희 님은 한신대 교수로, 본 지 논설위원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