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칼텍스 해복투의 2007년 여름, 단식농성과 5보 1배 이야기 (2)

[연정의 바보같은사랑](10)

“그때만 해도 참석률이 90%는 됐었는데”

집회시작 20분 전, 여수시청 앞에는 경찰 수가 집회 참석자 수보다 많다. 해복투가 움직이는 곳이면 어디든 이렇게 경찰이 따라다닌다. 한번은 GS칼텍스 직원 가족들이 체육대회를 하는데, 해고자들이 올까봐 사측에서 경찰 병력을 요청하여 전경차 여러 대를 배치시킨 적도 있었다 한다.

“이건 2004년 파업 당시 사진인가요?”

피켓을 정리하고 있는 송화동 쟁의부장에게 피켓에 있는 집회 사진에 대해 물었다.

  2004년 7월 14일, 여수시청앞 여수공투본 출정식 [출처: 화섬연맹광주전남지부]

“2004년 7월 14일, 파업 직전 여수공투본(‘전국민주화학섬유노동조합연맹 광주전남지부(준) 여수공투본’) 출정식 사진입니다. 18개 사업장이 참여했는데, 5천 대오는 됐었습니다. 그중 우리 대오가 제일 많았었죠. 그때만 해도 근무자를 제외한 참석률이 90%는 됐었는데...”

공교롭게도 오늘 5보 1배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여수시청은 그 날 출정식을 했던 장소다. ‘(근무조건 개선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근로조건 저하 없는 주5일제 실시, 비정규직 정규직화, 기업의 지역사회 발전기금 출연’ 그 날 여수공투본이 총파업 선언문을 통해 내걸었던 3대 요구안이다. 여수공투본의 파업은 첫 마음처럼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못했지만, 그 성원이었던 LG정유노조는 이 요구안을 그대로 받아 안고 파업에 들어갔었다.

  2004년 7월14일, 여수시청앞 여수공투본 출정식 [출처: 화섬연맹 광주전남지부]

LG정유노동조합 깃발

3년 전 그토록 자랑스럽게 휘날리던 ‘LG정유노동조합’(현GS칼텍스노동조합) 깃발을 지금은 여수, 광양, 순천, 광주, 서울 그 어느 노동자 집회에서도 볼 수 없다. 2004년 여름, 파업 돌입 후 산개투쟁 중이던 LG정유노조는 ‘선 복귀 후 대화’라는 사측의 요구를 수용하여 20일 만에 현장복귀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는 것은 대화가 아니었다. 지도부 8명의 구속에 이어 사측의 집요하고 치밀한 민주노조 파괴 공작과 강제적인 서약서와 경위서, 개별면담 등 반인권적인 조합원 복귀 프로그램으로 그해 가을 LG정유노조는 민주노총을 탈퇴하게 된다.

그리고 그해 겨울, 30명의 노동자가 강제사직을 포함한 해고를 당하게 되면서 해복투 활동이 시작되었다. 노조는 2006년 4월, 해고조합원들이 불매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이들을 제명하고, 해고·구속시 생계비를 지급하는 신분보장규정을 아예 삭제시켜버렸다. 2007년, GS칼텍스와 노조는 보도자료까지 배포해가며 요란스럽게 임금인상을 동결했다. 이번 단식농성 중에는 당시 파업에 참가했던 조합원들이 해복투 단식농성장에 와서 해복투 동지들이 보는 앞에서 현수막을 떼어 가기도 했다.

3년 세월의 흔적

6시. 150명 정도는 모일 것 같다고 했었는데, 아직 모인 사람이 많지 않다. 요즘, 저녁이 아니면 그 정도 대오가 모이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한다. 시청 앞에 관광버스 한 대가 멈추어 선다. 이리로 오는 버스인가 싶어 쳐다보지만, 집회에 오는 버스가 아니다. 여수산단에서 퇴근하는 노동자들을 실어나르는 통근버스다.

  2007년 8월 3일 여수시청 앞

20분쯤 더 지나자 2백 명 대오가 된다. 그 중, 절반이 이랜드-뉴코아 동지들이다. 얼마 전에 복직한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동지들이 일을 마치고 함께 했다. 그 외 화섬연맹 여수지역공투본, 전교조 여수지부, 민주택시 미항교통분회, 민주노동당 여수지역위, 순천.광양.여수민중연대, 여수사랑청년회, 민주노총 전남본부와 여수.순천.광양시지부에서 함께 했다. 참석자들 중 절반 이상이 비정규 노동자들이다. 3년 전 같은 자리에서 여수공투본 출정식에 함께 했던 정규직 노동자들은 거의 없다. 3년이란 세월의 흔적이다. 3년 전 그날 함께 했던 이들은 다들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그때 자신들이 일했던 일터에서 온전하게 일은 하고 있을른지.

“오늘까지만 눈물로서 호소합니다”

“지난 3년 동안 우리노동자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고 가슴에 응어리지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하늘도 무심합니다. 우리 노동자들의 인권과 양심이 이렇게 짓밟히고 있는데도 어느 누구하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는 자들이 없습니다. 오늘까지만 울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5보 1배 투쟁을 통해서 다시 한번 여수의 하늘과 땅과 바다 시민들께 간절한 눈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호소하려 합니다.”

  민주노총 전남본부 박상욱 본부장

박상욱 민주노총 전남본부장의 대회사가 10분 동안 이어진다. 박상욱 본부장은 오늘이 마지막 평화적인 집회가 될 거라고, 다음 번에는 머리띠를 매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GS칼텍스 해복투 김영복의장

“해복투는 결코 이 투쟁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원직복직이 될 때까지 투쟁할 것입니다. 연대 동지들이 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습니다. 단식은 그냥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요구조건을 관철할 때까지 쓰러질 때까지 할 생각이며 제 결심은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김영복 의장의 투쟁사는 간결했다. 투쟁사 말미에 해복투의 강고한 결의와 각오를 밝히기도 했는데, 가족들의 모습이 떠올라 차마 그 내용을 옮겨 적을 수가 없다.

소금꽃 2백 송이

참석자들이 무릎보호대와 장갑을 착용한다. 시작 전, 이랜드-뉴코아 조합원들은 연습을 해보기도 한다. 5보 1배를 할 수 없는 김영복 의장은 휠체어를 타고 대열 맨 앞에서 행진한다. 그 바로 뒤를 현수막을 든 해고자 가족들이 따른다.




“해고자복직”을 외치며 다섯 걸음 걷고 절을 한다. 그리고 “가압류철폐”를, “생계비지급”을 외치며 다섯 걸음 걷고 절을 한다. 몇 번 하지 않았는데, 아직 갈 길이 먼데, 절을 하는 이들의 얼굴에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또, 몇 번 하고 나니 땀이 등을 흠뻑 적시고, 절을 한 번씩 할 때마다 아스팔트 바닥에는 장갑을 낀 손에서 배어나온 땀으로 도장이 찍힌다.

[출처: 민주노총 전남본부]

땀으로 흠뻑 젖은 등을 보고 있자니 김진숙 지도위원이 얘기했던 ‘소금꽃’이 생각났다.
이른 봄 피어나기 시작해서 늦가을이 되어서야 서러이 진다는 그 꽃.
여수 시내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2백 송이의 소금꽃이 피어난다.

“나가 뭔 죄를 져서 이걸 하는가”

“처음에는 나가 뭔 죄를 져서 이걸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더만요.”

한 해복투 동지에게 5보 1배 소감을 물으니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한다. 다른 해복투 동지들과 5보 1배에 참여한 많은 이들이 그런 생각을 한 번 쯤 했을 것이다. 참가자 중 해고자이거나 해고 경험이 있는 이들이 반 이상이다.



“근무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차별 철폐와 정규직으로의 전환, 지역발전기금 출연(매출액의 0.01%)”

2004년, 민주노총 화섬연맹 LG정유노조는 이 세 가지 사회적 의제를 걸고 파업에 들어갔었다. 언론에서 떠들어댔듯이 배부른 귀족 노동자들이 돈 더 받으려고 한 파업이 결코 아니었다. 정규직 임금인상 안 해도 좋으니 이 요구안을 갖고 논의하자고 한 것이 당시 노조였다. 사측이 이 사회적 의제들을 갖고 성실하게 교섭에 임했다면 파업은 없었을 거다. 하지만, 사측은 끝끝내 이 3대 요구안은 교섭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당시, 정규직으로서, 그것도 ‘필수공익사업장’의 노동자로서 감히 비정규직문제 해결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했던 것이 이들이 일터에서 쫓겨나서 온갖 폭력과 설움을 겪은 것으로도 부족해 한여름에 밥을 굶고 절을 하는 이유다.

5억과 6만 원
“나는 교회 다니는데, 절을 하지 말고 기도를 해야 하나...”하던 해복투 이병만 동지가 땀을 뻘뻘 흘려가며 열심히 절을 하고 있다. 그도 참 한이 많은 사람이다. 그는 KBS <시사투나잇>에 인터뷰한 것을 이유로 해고된 사람이다. 음성 변조를 하고, 얼굴도 모자이크 처리를 했었다. 그런데 사측은 방송에 나온 그의 손등에 있는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도 않는 작은 상처 장면을 확대하여 해당자를 색출했고, 결국 그는 해고당하게 된다.


걸음을 멈추고 지켜보며 격려를 해주는 시민도 있고, 또 가끔은 욕을 하고 지나가는 이도 있다. 여수 시민치고 GS칼텍스 해고자 문제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특히, 2012년 세계박람회 유치 문제가 지역의 현안으로 떠오르고 그것이 GS칼텍스 해고자 문제와 맞물리게 되면서 시민들의 관심은 점점 커져가고 있는 중이다.

사회발전기금 출연이 교섭대상이 아니라며 민주노조를 파괴하고, 파업 참가자 650명을 중징계하고 30명을 해고했던 사측이 이젠 스스로 사회발전기금을 내놓겠다고 한다. 작년에는 매년 100억씩 10년 동안 총 1000억의 발전기금을 내놓겠다고 했었고, 얼마 전에는 2012년 세계박람회 유치 후원기금으로 5억을 내놓기도 했다. 연일 터지는 비리 문제를 무마시키기 위한 제스츄어 임을 모를 리가 없다. GS칼텍스가 여수시에 5억을 내던 날, 6명의 해복투 동지들은 만원씩 걷어 6만원의 성금을 내려했으나 시청 공무원들의 제지로 실갱이 끝에 부시장에게 그 돈을 전달할 수 있었다.

“어디서 이렇게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대?”

“드세요. 힘드시잖아요.”
뉴코아 조합원이 대오 옆을 따라오는 경찰에게 시원한 물을 건넨다. 조합원이 건넨 물을 사양하던 경찰이 결국 한 모금 들이킨다. 경찰들도 한여름 아스팔트에 엎드리는 이들을 보기가 안스러웠는지, 물팀이 나르다가 떨어뜨린 물을 주워주기도 한다.

쌍용사거리를 지나 신동아 아파트 사거리에 이르고 도원사거리를 지난다. 어느새 해가 지고 밤이 왔지만, 더위는 가실 줄 모른다.

  시원한 물 한잔과 동료들과의 대화로 잠시 더위와 고단함을 잊어보는 휴식시간

깃발과 피켓을 들고 행진한다 해서 결코 편한 것은 아니다. 쉬는 시간이 되면 대열 맨 끝에서부터 앞까지 전체 대오에게 시원한 물을 공급하느라 뛰어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선전물 배포 작업을 맡은 이들은 쉴 틈 없이 시민들에게 선전물을 나누어준다.

해고자의 아내와 아이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행진을 했다. 아이들에게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보려다가 그만둔다. 지난 3년 동안 이보다 열 배쯤 힘들고 슬픈 일들이 수도 없이 많았으리라.


“아... 어디서 이렇게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대?”

동시에 탄성이 쏟아진다. 힘든 기운이 느껴질 즈음, 시원한 바람 한줄기가 5보 1보 행렬 사이를 지나간 것이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선물이다. 여수의 하늘은 무심하지 않았다.

“그것이 노동자인 우리가 살아가는 힘”

“힘들긴 했는데, GS투쟁이 돌아가는 상황들을 생각하니 견딜만 했고, 하고나니 성취감도 있다. 내가 직접 투쟁을 하면서 해보니 와 닿는 게 많다. 꼭 승리했으면 좋겠다.”

2시간 동안의 5보 1배를 마치고 종착지인 여수시청 앞에서 숨을 돌리고 있는 이랜드노조의 한 조합원에게 오늘 일정에 참여한 소감을 들었다.



“전에 우리가 했던 3보 1배와 5보 1배가 생각났다. 그때는 왜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참 많이 슬펐다. 하지만 시민들에게 우리 마음을 알리고, 우리 투쟁에도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반성하겠다는 자세로 했던 기억이 난다. 김영복 의장님의 수척해진 얼굴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 지역적인 연대로 3년 간의 투쟁에 종지부를 찍어야할 것 같다. 투쟁승리를 기원하면서 절을 했다.”

노동조합 인정받고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크레인에 3번 올라갔던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지회 정경진 동지에게도 한마디 들어본다.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투쟁에 헌신적으로 함께 했던 GS해복투 동지들이기에 비정규직지회 동지들에게는 이 날 5보 1배가 더욱 각별했을 것이다.

  해고자의 가족들

“나와 아무 관계가 없는 노동자들이 힘든 5보 1배의 고행을 함께해 주는 것이 너무 고맙다. 그것이 노동자인 우리가 살아가는 힘 아닐까 싶다. 동지들을 위해서라도 이 싸움 반드시 승리로 가져가겠다.”

해복투 장철 사무국장의 마음이 해복투 모든 동지들의 마음일 거다.

아픔이 힘이 되는 날

“처음 해보는 거라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한 명도 낙오되지 않은 것이 자랑스럽다”

마무리 집회에서 뉴코아노조 윤성술 순천지부장이 GS연대투쟁과 함께 악질 이랜드 자본과 정권에 맞서 열심히 투쟁하겠다는 결의를 밝힌다. 다음날, 5보 1배에 참여했던 이랜드-뉴코아 조합원 두 명이 투쟁일정에 나오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동지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자랑스러워했을 거라 믿는다. 일을 마치고 온 해복투 송화동 쟁의부장의 아내 박근희 님이 참가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박상일 민주노총 여수시지부장의 발언으로 마무리 집회가 끝난다.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서로 인사들 나누느라 분주하다.


“마음이 아프다. 꼭 승리해서 복직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아이들에게 떳떳한 아빠의 모습을 모여주고 싶어서 아이들을 데려온 거다. 남편이 절하는 모습이 불쌍해서 좀 더 잘 해주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마지막으로 마리아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여수를 떠난다. 이렇게 떠나고 나면 해복투와 그 가족들만 남을 것 같아 차 안에서 뒤를 돌아본다.

모두들, 며칠 동안 몸이 아플 것이다. 적어도 그 시간동안만큼은 온전히 해복투 동지들을 생각하며 마음도 아플 거다. 그 아픔이 힘이 되는 그런 날, 반드시 있으리라.
덧붙이는 말

오늘은 김영복 의장의 단식농성 26일 차 되는 날이다. 의장의 건강이 몹시 위험한 상황임에도 사측은 해고자와 대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GS칼텍스 직원들은 고령의 단식자가 보는 앞에서 현수막을 뜯고, 행패를 부리고, 컨테이너 광고물을 훔쳐가는 등의 테러행위를 계속하고 있다. 많은 관심과 연대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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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양꽃뱀

    홈에버 조합원입니다, 저도 이때 연대가서 5보1배를 했었는데...
    몇번하고나니 머 하는 것인가하믄서 욕이 바치더니,,끝내는 깡으로 했네요
    잡아 박성수, 하나더 잡자 허동수 투쟁~~

  • zz

    기사내용 고맙구요 동지들 힘내세요 화이팅

  • 큐코아 동지

    인제서야 이글을 봤네요..
    그땐힘들었지만 지금생각하면 뿌듯합니다
    화이팅 !!
    모두들 힘내시구요 끝까지 투쟁하여 승리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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