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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의 복잡한 사위사랑, 사위질빵

[강우근의 들꽃이야기](59) - 사위질빵

한여름에는 어디를 가나 무성하게 자라는 덩굴식물을 볼 수 있다. 환삼덩굴이 개천가 밭둑을 완전히 점령해 버렸다. 나무를 타고 올라간 칡넝쿨은 나무를 통째로 뒤덮더니, 아예 둘레에 있는 숲까지 모조리 뒤덮어 버렸다.

전봇대를 타고 올라간 둥근잎나팔꽃이 뻣뻣한 전봇대를 꽃으로 꾸미고 있다. 사람들이 심어 놓은 수세미오이나 호박 덩굴도 전봇대를 타고 올라가 전깃줄을 따라 계속 뻗어나간다. 늦여름쯤에는 전깃줄에 수세미 열매가 주렁주렁 달릴 것이다. 모양도 비슷한 댕댕이덩굴과 마가 사이좋게 철망 울타리를 타고 오른다. 박주가리도 슬그머니 끼어들어 울타리를 타고 오른다.


울타리를 좋아하는 덩굴식물 가운데는 사위질빵도 있다. 울타리를 타고 올라간 사위질빵이 막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제 곧 울타리 위는 흰 눈이 내린 것처럼 사위질빵 흰 꽃으로 덮일 것이다.

덩굴식물들은 대개 햇볕을 좋아하는 양지식물이다. 더 많은 햇볕을 받기 위해 덩굴식물이 택한 방법은 덩굴줄기를 뻗어서 다른 것을 타고 오르는 것이다. 스스로 줄기를 세우지는 못하지만 다른 것에 기대어 자라는 덩굴식물은 햇볕을 향해 위로 위로 자라 올라 다른 식물보다 빨리 햇볕을 차지할 수 있다. 덩굴식물이 가진 장점인 덩굴줄기는 또한 약점이 되기도 한다. 줄기가 가늘기 때문에 끊어지기 쉽다. 그렇지만 덩굴줄기는 가늘어도 보기와 달리 그렇게 약하지 않다. 칡이나 등나무는 타고 오른 나무를 조여서 죽이기까지 한다. 가늘면서 질긴 덩굴줄기는 쓰임새가 많다. 광주리나 바구니 따위를 엮기도 하고, 물건을 감고 묶는 끈으로 쓰기도 했다.

덩굴줄기가 다 질긴 것은 아니다. 사위질빵 덩굴줄기는 질기지 않다. 줄기가 약해서 칡이나 댕댕이덩굴처럼 쓰이지 못하다 보니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도 그 덕에 재미있는 이름을 얻었다.

사위질빵 이름은 사위가 무거운 것을 짊어지는 게 보기 안쓰러워하던 장모가 사위의 ‘질빵(지게 끈)’을 잘 끊어지는 사위질빵 줄기를 써서 짐을 적게 짊어지게 했다는 옛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 그래서 사위질빵을 보는 사람은 누구나 장모의 사위 사랑을 떠올린다.

장모의 사위 사랑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딸을 볼모로 잡힌 어미는 미우나 고우나 딸을 위해 사위를 씨암탉까지 잡아가며 떠받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위는 항상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백 년 손님’인 것이다. 사위질빵과 뒤엉켜 자라는 며느리밑씻개를 보면 생각은 더 복잡해진다. 무시무시한 가시가 돋친 그 풀로 며느리에게 밑씻개를 하라는 모진 시어머니가, 바로 사위에게 적은 짊어지게 하려는 장모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덩굴식물들은 다 타고 오르는 재주가 있다. 칡이나 박주가리는 줄기로 감고 올라가고, 청미래덩굴과 머루 따위는 덩굴손으로 감고 올라간다. 담쟁이덩굴은 빨판으로 붙으면서 타고 오른다. 사위질빵은 잎자루를 덩굴손처럼 쓴다. 긴 잎자루로 감으면서 오르는 것이다. 사위질빵은 줄기가 약하지만 잎자루는 제법 질기다. 그래서 한여름 땡볕에도 잎이 늘어지는 법이 없다.

사위질빵은 꽃잎이 없다. 그래도 사위질빵은 꽃받침과 수술로 다른 꽃이 부럽지 않은 예쁜 꽃을 피운다. 꽃잎처럼 보이는 것은 꽃받침이 바뀌어서 된 것이다. 꽃 가운데에 길쭉한 수술이 한 가득 피어난다. 이런 꽃이 여러 개 뭉쳐서 흰 꽃 사태를 이루어 낸다.

가을에 여무는 사위질빵 열매에는 암술대가 바뀌어 된 깃털이 달려 있다. 이 깃털은 겨울바람은 타고 멀리까지 씨앗을 날려 보낸다. 사위질빵은 칡처럼 억세지 않고 환삼덩굴처럼 거칠지 않지만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우리 둘레에 잘 적응해서 살아가는 친근한 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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