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이 실종되다

[진보논평] 신자유주의 시대, 변화가 필요한 시민운동

진보전략회의(준)는 한국사회 주요 전략아젠다에 대한 진보적 정책생산을 목표로 모인 연구자, 활동가들의 전략네트워크이다. 사회운동의 통합적 활동이 가능하도록 운동과 운동을 이어주고 지역, 부문, 현장에서 운동기획을 자극하고 촉진하는 역할을 표방하고 있다. 진보전략회의(준) 회원들이 주요한 사안에 대해 발표하는 '진보논평'을 민중언론참세상에 게재한다.- [편집자 주]


언제부터인가 시민운동이 보이지 않고 있다. 몇몇 의제를 중심으로 뛰고 있는 소수의 활동가들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대선 때문인지 아님 아직도 어디로 갈지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2007년 현재 시민단체에 대해서 ‘정부의 2중대’라는 비판적인 평가가 김대중 정부 이래 지속적이다. 영향력은 커졌으나 국민의 비판은 오히려 늘고 지지기반마저 줄었다는 평가다. 그 동안 시민운동은 명망가와 활동가 중심으로 1987년 이후 민주주의 심화에 많은 기여를 했지만, 시민운동의 민주적 ‘토대’가 약하다는 지적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지난 2000년 16대 총선 때의 ‘낙천.낙선운동’을 정점으로 자기 성장의 동력을 상실한 듯 지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다. 당시 총선연대의 활동에 대해서 민주노총과 전교조·전농 등 민중운동의 참여를 배제하고 ‘도덕적’ 차원의 네거티브 운동에 그침으로써 오히려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방해하고 정치불신을 가중시켰다는 비판이다.

아마 급변하는 사회 환경과 정세 속에서 스스로 혁신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의 시민운동이 위기이든 아니든 중대한 한계와 도전에 부딪혔다는 것은 명확해 보이며, 현재의 위기는 갑작스럽고 놀랄만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예정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태생의 한계와 본질

최근 한국사회에서는 사회운동을 시민운동과 민중운동 모두를 포괄해서 사용하곤 한다. 그 정도로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적 시민운동과 진보적 시민운동의 분화는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이라는 이분법을 무색케 하고 있다. 이는 시민운동의 민중운동으로의 관심과 연대라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민중운동 내의 교란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부정적이다. 또한 개념의 모호성과 혼돈이 시민운동에 대한 평가와 판단에 오류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한국 시민운동은 시작부터 기존의 사회운동과 달리 ‘국민들의 삶과 직결된 현실과제의 해결’을 제시하였고 사회운동의 목표를 계급이익이나 민중이익의 실현이 아니라 공동선의 추구를 통한 공공영역의 확장 및 점진적 개혁에 두었다. 이처럼 시민운동은 자유주의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그 한계 역시 자유주의적이다. 94년 진보적 시민운동을 기치로 내건 참여연대가 등장했음에도 시민운동은 ‘민중운동의 자유주의화, 탈계급화, 부르주아적 시민화’를 지향하였다. 공익을 추구하는 단체로서의 동질성을 부각시키며, 계급 운동을 이익집단운동으로 주변화시키고 우리 사회의 구조적이고 체제적인 문제를 특정한 정책과 그것의 담당자 문제로 왜곡시켰다. 그런 면에서 시민운동은 전문가 집단과 사무관리직의 상층, 금융자산계층의 논리에 근거하고 자유주의와 실용주의, 법률주의 등과 이념적 친화성을 갖는 것이다.

한국의 시민운동은 성장 초기부터 서구의 신사회운동과 달리 증대된 탈물질적 관심을 반영하거나 급진적 개혁을 시도하기보다는 “시민권운동이자 민주화운동, 그것도 합법적 민주화운동이라는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절차적 민주주의조차 가로막혀있는 조건에서는 영향력을 가지지만 정치적 접근성이 더 커질 경우 제도내로 흡수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는다.

초창기 절차적 민주주의조차 정착되지 못한 조건에서 시민운동은 노동운동과의 거리두기를 통해 성장한다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문제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대되면 될수록 자유주의적 성격의 시민운동은 제도 내로의 포섭위기에 직면하게 되며, 또 가장 강력한 조직세력인 노동운동과의 연대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자유주의적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노력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였고 또 시민운동의 성장 결과 노동운동을 상대화시키고 부문운동으로 위치 지우는 효과를 가져온 것이다.

시민운동의 성장과 위기

87년 민주화 운동 이후 법과 제도를 통한 문제의 해결 능력을 고양해 나감으로써 사회운동을 주도해 나갔던 시민운동은 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되면서 시민운동은 위기의 징후를 보이게 된다. 시민운동은 민주화 국면을 토양으로 삼고, 이 토양을 개량하는 것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87년 이후 국가권력을 장악한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비판적 지지의 태도를 취함으로써 자유주의 세력이 약속한 사회개혁을 완성하고자 했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사회변화 속에서 나타난 것은 대중의 삶의 위기이며, 광범위한 대중적 이반 속에서 형성된 신자유주의 지배체제의 위기와 함께 이를 주도했던 개혁적 시민운동 역시 위기가 나타난 것이다. 2000년대 들어서 시민운동이 더 이상 대중의 전폭적 지지를 받지는 못하게 된 것은 신자유주의 지배질서의 민중의 삶의 질 저하, 사회적 배제 야기, 사회양극화 초래 등의 결과에 협조했기 때문이다.

사회적 쟁점이 다원화되고 이념적·정책적 차이가 드러나면서 시민운동에도 내적인 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진보적 시민운동을 표방한 참여연대의 등장과 김대중.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지는 상대적 개혁정권이 등장하자 위기감을 느낀 보수세력들이 개혁적.진보적 시민운동을 비판하면서 보수적 시민단체들을 결성하기 시작하였다. 그럼으로써 기존의 개혁적 시민운동의 정당성 근거마저 훼손되기 시작하였다.

시민운동 위기의 핵심은 시민운동의 시스템에서 나타나는 한계이다. 즉 시민운동의 운동노선과 현실과의 괴리는 민중들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경제정의를 주창하였지만 반대로 국내외 자본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고, 참여민주를 얘기 했지만 시민들의(특히 젊은 층)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는 더욱 팽배해졌다. 공공선을 이야기했지만 사회양극화는 더욱 깊어만 가고 있고 사회부조리는 과거의 행태를 답습하는 듯 보여주고 있다. 낡은 시스템과 현실과의 충돌로 인한 위기이다.

그 동안 시민운동은 시민들과 함께하려는 치열함과 진정성이 부족했다. 부동산·주택 문제로 고통 받는 서민들과 함께 하지 못했고, 수백만 명의 자영업자들이 호소하는 신용카드사의 과도한 수수료 문제에 적극적이지도 못했다. 또 민중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대중교통, 각종 공공서비스, 정보.통신, 생활현장의 문제 등에도 천착하지 못하였다. 특히 홍보적 시민운동에 적극적이었던 일부 환경단체와 몇 개의 유명 단체는 홍보효과를 통한 기업 등의 후원기금을 마련 자체하여 사옥을 확보하고 재단을 만드는 등 사실상 시민사회에서의 귀족 단체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민운동 노선의 개혁이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비교적 순항해온 것은 신자유주의 개혁을 측면 지원해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 결국 시민운동은 신자유주의 지배질서의 구축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으며,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응전질서를 구축하는데 결과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현재의 위기는 신자유주의에 조응한 지배세력의 재편과 경제구조의 전환, 노동시장의 재편 및 생존방식의 전환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전환기 속에서 나타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결과이다.

신자유주의에 의해 포획되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는 금융자본을 필두로 한 초국적 자본의 공세로서의 의미와 함께 세계적 자본과 연합한 국내재벌 및 관료에 의한 자본공세가 대대적으로 증폭되는 또 다른 측면도 갖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의한 자본공세는 정리해고, 구조조정의 형태로 ‘노동’을 공격하면서 출발했지만, 고용의 불안정화, 공공부문 및 사회복지의 축소, 획일적이고 전면적 개방, 성장제일주의와 환경파괴, 빈곤과 실업 등 전사회의 재생산 기반을 동요시키는 성격을 갖고 있다. 이는 사회적 재생산 기반을 해체시키고, 사회 전반에 걸친 지속가능성의 위기를 야기한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사회는 그만큼 많은 불안정성과 위기요인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의 공세 속에서 저항할 수 있는 영역과 공간의 구분은 희박해 진다. 즉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영역구분이 모호해 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접촉면들이 확대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시민운동의 태생적 한계이자 본질이며, 이의 연장선상에서 신자유주의에 의해 포획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참여정부 들어와 시민운동은 정권유지와 확장을 위한 역할을 해 왔다. 경제영역에서 이들은 재벌개혁과 투명성 강화, 소액주주 운동을 했지만, 이는 금융개방을 요구했던 해외 초국적 자본의 이해와 정확히 일치했다. 개별자본과의 대결에는 능했으나 소유지배구조의 개선을 통해 재벌의 자산을 공공의 것으로 돌리기보다는 국내외 초국적 자본의 먹잇감으로 돌려놓았을 뿐이다. 파병반대를 외치다가도 탄핵국면에서는 노무현 정권 구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17대 총선에서 총선연대는 이라크 파병과 FTA, 새만금 문제, 부안 핵폐기장 문제, 비정규직 문제, 양극화 문제 등 핵심적인 정책의제를 제외시키고 부패청산과 탄핵찬성을 기준으로 낙선운동을 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여성, 노동자,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 대다수 민중의 권리가 유린되고 박탈되는 상황에서도 사회적 대타협을 주창하며 노동자 권리의 양보와 비정규직의 고착화를 지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민중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그 동안 시민운동 진영이 민중운동과의 연대에 소홀히 했거나 무관심한 것은 헤게모니에 취했기 때문이며, 정치권력의 문제에 집중해서 시민들의 일상적 문제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작년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투쟁과 한미FTA 저지투쟁을 통해서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소중한 연대를 경험하였다. 문화연대처럼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을 넘나드는 것을 보면서 작은 가능성을 목격하였다. 한국의 시민운동은 이념적 유사성과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해 연대의식이 강한 편이다. 또한 여성과 환경 등의 많은 영역들이 서로 경계를 넘어 연대를 해온 경험이 많아서 민중운동과의 폭넓은 네트워크 강화를 통한 연대전략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래서 한국사회의 시민운동이 진보성을 유지하려 한다면 한국 자본주의 변화의 상과 그 속에서 재생산되는 시민사회의 경향적 변화 등을 고려한 급진화 전략이 필요하다. 즉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항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만 하며, 기존의 중간층 중심의 운동에서 민중 또는 하층 중심의 운동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신자유주의 논리를 수용하고 자유주의 정권에 대한 협조 속에서는 민중운동과의 공조와 연대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한국사회와 세계질서의 급변속에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대응을 위한 변화 모색에 실패하게 되면 한국사회의 전망은 더욱 불투명해지고 민중들의 생활은 궤멸적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그래서 ‘급진적’ 시민운동·시민단체로서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신자유주의 질서의 완성과 이에 따른 민중들의 생존권 투쟁, 전반적인 민주주의의 후퇴에 맞서서 적극적인 엄호와 연대를 실현시켜 나가야 한다. 지금보다 치열한 삶과 진정성 그리고 발상의 전환이다. - [진보전략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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