뿐만 아니라 이라크 현지에서 인간방패를 자임한 이라크평화팀(IPT)와 같은 한국에서는 시도되지 않았던 다른 형식의 운동도 진행되었다. 하지만 4년 째 미국의 이라크 전쟁이 여전히 진행 중인 현재, 한국의 이라크 점령 반대운동은 매 년 열리는 대규모 반전 집회와 몇 안 되는 소그룹의 활동에서 겨우 그 맥을 잇고 있을 뿐이다.
31일 사회운동포럼에서는 ‘2003년 이후 반전평화운동을 이야기하다’라는 주제로 지난 4년간의 반전평화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평가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모색하는 워크숍이 열렸다.
▲ 31일 진행된 사회운동포럼 '2003년 이후 반전평화운동을 이야기하다' 워크숍 모습 |
사회운동포럼의 반전평화 기획단을 꾸린 이소형 사회진보연대 활동가는 “2003년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을 통해 한국운동에서 반전평화라는 가치가 새로이 등장했으며, 현재에도 미국의 대테러전쟁은 반전평화운동의 가장 중요한 이슈“라고 이번 워크숍의 주제를 설명했다.
워크숍은 김완(문화연대 활동가)의 사회로 진행이 되었고, 미니(경계를넘어 활동가)가 발제를 맡았고 셀림(평화운동가), 이소형(사회진보연대 활동가), 보라(전쟁없는세상 회원)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4년간의 반전평화 운동을 되돌아본다
미니 활동가는 발제에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란, 이라크, 레바논, 팔레스타인의 예를 들어 제국 지배의 역사를 설명하고 반제국주의 운동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특히 우리의 운동이 갖고 있는 제국주의적 세계관을 지적하면서 “미국은 물론 활동가들마저 그리는 ‘무능력한 이라크’의 이미지와는 달리 이라크인들은 자신의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싸우고”있음을 강조하였다.
또한 미국이 아무리 세계 최강대국으로서 대테러전쟁을 자신 있게 외치고 있지만 이미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세가 밀리고 있으며 이란과 다른 국가들에서도 미국의 뜻대로만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며 “반제국주의 운동이 어떻게 진행되는가에 따라서 우리 사는 세계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미니 활동가는 지난 4년간의 한국의 반전평화운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였다. 국가와 개인이 세계체제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음에도 운동이 민족적,국가적 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한 점에서 국제주의적인 관점이 필요하며, 제 3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동정과 물질적 지원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 그리고 언론의 보도에 따라 운동의 의제가 설정되는 점 아울러 서로의 운동 방식에 대한 비판, 관심 등을 지적하였다.
2003년의 반전운동에 있어서 이라크의 현지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다. 당시 미국의 반전 활동가 캐시 켈리의 주도로 사람들이 인간방패를 자임하며 이라크에 들어가 현지 활동을 벌였고, 한국에서도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 전쟁을 반대하기 위해 ‘한국이라크반전평화팀’을 꾸려 이라크로 떠났다.
현지에 직접 가서 활동을 한다는 것이 한국 운동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라 그 만큼 언론과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았고 이 후 반전운동에 있어서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2003년에 이라크에서 현지 활동을 했던 셀림 활동가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현지 활동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였다.
셀림 활동가는 이라크 평화팀의 현장 활동에 직업과 연령이 다양한(소위 운동권이 아닌) 사람들이 참여했던 것은 긍정적이었지만 준비가 충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라크로 떠나 시행착오가 많았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현장활동이 없었다면 과연 한국의 반전운동이 지금의 자리에 와 있을 수 있는가에 대해 아니라고 확신한다”며 현장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현지의 활동가가 직접 한국에 전하는 현지의 소식을 통해 현장과 한국의 거리감이 줄어들 수 있으며 현지의 이라크 인들에게 그들이 소외된 것이 아니라는 감동과 희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셀림 활동가는 현지 활동 이후의 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의 질문에 대해서는 자신의 경우에도 한국에 돌아온 후 현지의 활동이 개인적인 경험으로 축소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경험이 객관적이고 체계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 31일 사회운동포럼 ‘2003년 이후 반전평화운동을 이야기하다’워크숍에서 미니 경계를넘어 활동가가 토론을 하고 있다. |
이소형 활동가는 토론에서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이란, 아프가니스탄 등의 지역이 끊임없는 폭력과 저항의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에 대해 반전평화운동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가가 중요한 쟁점이 된다”고 지적했다. 발제에서는 문제의 원인을 제국주의의 식민통치에서 찾고 있지만 이들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석유와 자원의 약탈에 저항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제국의 식민 통치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자본의 세계화에서 배재된 것에 대한 저항이 폭력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미니 활동가와는 다른 관점을 제시하였다. 이소형 활동가는 “점령중단을 넘어서 이 지역에서의 경제, 사회적인 조건이 평화가 가능한 조건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소형 활동가는 반제국주의 운동이 민족국가의 건설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맞는가에 의문을 던지면서 “온전한 분리주의적인 국가의 완성이 목표가 아니라 지금 존재하고 있는 정치공동체를 변형하여 새로운 정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즉각적인 전쟁 반대 운동을 넘어서는 반전운동의 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미니의 국제주의적 시각의 제안에 대해 보라 활동가는 인간이 타인을 인식하는 것은 ‘자기’와의 관계에서 유발되기 때문에 “슬픔과 고통 즉 운동의 의제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의 문제는 그 슬픔에 동참하는 ‘나’에 대한 질문”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나’에 대한 “질문을 동반하지 않고 ‘인간 동등성’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는 추상적인 당위로 이를 대체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반론을 제기하였다.
또한 “‘국제주의’라는 것이 세계 체제의 분석을 추가하고, 운동 의제를 세계적 범주로 늘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보라 활동가는 이 “이 두 가지의 인식론 모두 자기가 ‘선 자리’를 잊게 하는 구조라는 점에서 비판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선 자리’를 대상화하고 뒤흔드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발제와 토론에 이어 워크숍 참석자들의 질의응답과 의견이 한 시간 정도 오고 갔다. 참석자들은 개인적인 실천을 어떻게 대중으로 확장할 수 있는가, 소규모의 자족적인 평화운동과 대중운동이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장 많이 던졌다.
워크숍이 끝나가며 한 참석자는 “이 자리에 모인 것은 반전평화운동을 잘 하고 싶은데 안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할 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의견을 냈다.
결국 문제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전쟁과 점령이 계속되고 있고, 오히려 그것이 더욱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비록 이번 워크숍에서 이에 대한 해답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지난 4년 동안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왔으며 활동을 통해 어떠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가에 대해 소통할 수 있었던 자리의 의미가 컸다.
사실 지금까지의 반전평화운동에 대하여 진솔하고 깊이 있는 평가와 반성의 자리가 부족했다. 이번 사회운동포럼의 반전평화 워크숍을 계기로 반전평화운동 내의 토론이 더욱 활성화되고 운동의 질적, 양적 성장을 가져오기를 기대해 본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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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제공한 수진 님은 '경계를넘어'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