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9일 오후, 구청 앞에는 용산동5가 세입자 두 분이 얇은 비닐 한 장을 덮고 내리는 빗줄기를 고스란히 온몸으로 받으며 누워있다. 한 분은 오늘 병원에 실려 가셨다 한다. 지난 토요일에 “구청 앞이 편해.”라고 하셨던 분이다.
▲ 용산구청 앞에서 단식노숙투쟁중인 세입자들 |
“사진 좀 찍을께요. 죄송합니다.”
규찰부장님이 희미하게 웃으며 비닐을 내려 얼굴을 보여주신다.
비닐 위에는 빗물이 고여 있다. (말로 더 설명할 수 없어 사진으로 대체한다.)
용산구청에서 취사도구와 쌀을 빼앗아가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단식이 27일 째다. 용산구청 직원으로 보이는 이가 정문 뒤에서 연신 사진을 찍어댄다. 쓸데없이 화분을 갖다놓은 인도는 우산을 든 시민들이 지나가기에 비좁기만 하다.
기자회견이 시작된다. 모인 인원은 20명 정도로 철거민연대 회원과 해고 노동자들이다. 세입자 분들은 가끔 몸을 뒤척이는 것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확인시켜 준다.
“전쟁터에서도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킨다”며 연대사를 하는 한 해고노동자가 울분을 표한다.
“돈벌레들아!”로 시작되어 “사회발전에 분투하는 언론, 기자들의 취재와 실체보도를 요청합니다.”로 마무리되는 기자회견문 낭독을 끝으로 취재진이 한 명 뿐인 기자회견이 끝난다. 기자회견에 참여했던 이들이 세입자들의 손을 꼭 잡고 인사를 한다.
“자주 와야 되는데, 못 와서 죄송해요.”
빙그레 웃음으로 대답하는 규찰부장님.
한 분은 손을 잡더니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린다.
“왜 그래? 나 건강해.”
철거민연대 한 회원이 누워계신 부녀회장님의 얼굴에 귀를 바짝 갖다 댄다.
“뭐라고 하세요?”
“언제 실려 갈지 모르니까 돈을 좀 달라고 하시네요.”
“중추가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소서.”
용산구청 건물 정면에 걸려있는 대형 현수막은 마치 농성자들을 조롱하기 위해 붙어있는 것만 같다.
“이거 1번으로 저장하는 거 하실 줄 아세요?”
철거민연대 회원 한 분이 나에게 부녀회장님의 핸드폰을 보여준다. 혹시라도 연대 동지들이 없을 때, 위급한 일이 발생하면 단축번호를 눌러 상황을 알릴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한참을 핸드폰을 이리저리 눌러보았지만, 끝내 1번 저장을 해드리지 못했다. 이 날 내내 비가 왔다. 어디를 가도 마음이 편치 않다. 어떻게든 해드렸어야 했는데...
다음날(9월 20일) 부녀회장님이 납치되어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녀회장님은 농성 중인 세입자들 중 연세가 가장 많은 분이다. 구청 측은 부녀회장님의 행방을 묻고자 용산구청 건물 계단을 올라가는 철거민 동료들을 집어던져 졸도시켰다 한다. 도대체가 사람 집어던지고 버리는 것을 밥 먹듯이 하는 이들이다.
“어떻게 해야 하죠?”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전화한 내게 전화 받는 분이 묻는다.
‘어떻게 해야 하죠? 어떻게 해야 하죠? 어떻게 해야 하죠?’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