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 다른 두 만찬사

[남북정상회담] 답례 만찬사 비교

3일 오후 10시10분에 시작해 자정이 넘도록 계속된 답례 만찬. 남북측 인사 200여 명이 함께 했지만 김정일 위원장은 아리랑 공연 관람에 이어 답례 만찬장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만찬장에는 김만복 국가정보원장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공동취재단의 보도에 따르면 “노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에 서명할 합의문 작성 때문에 불참한 것으로 안다”고 전해졌다.

정상회담 일정 조정 제안과 철회, 3시간 51분에 걸친 장거리 회담, 6자회담 합의 등이 화재에 올랐고, '선언'에 어떤 내용이 담길 지 온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답례 만찬에서 발표된 두 만찬사를 비교하면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바라보는 남북간 인식의 차이가 발견된다. 단순히 큰 의제를 놓고 무게 비중만 달리 한다고 지나치기에 어려운 요소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건배를 하고 있다. '벽'을 허무는 건배임에는 틀림없으나... [출처: 공동취재단]

한마디로 노무현 대통령의 만찬사는 '경협과 남북경제공동체'를, 김영남 위원장의 만찬사는 '통일과 민족'을 키워드로 하고 있다.

가령 같이 6.15공동선언을 거론하고도 노무현 대통령이 "2000년 6.15 공동선언은 남북관계가 화해와 협력의 길로 들어서는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라고 한데 비해, 김영남 위원장은 "우리에게는 6.15 공동선언이 있으며 민족공동의 정신을 거듭해 나가는 우리민족끼리 믿음이 있습니다. 6.15를 여는 길에 통일된 우리 민족의 미래가 있습니다."라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만찬사에서 '평화' '공동번영' '화해와 협력' 문제를 두고 진솔한 대화가 이루어졌고, 더 깊이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다고 밝혔다. 3일 오찬에서 '개혁 개방'과 같은 단어를 두고 김정일 위원장과 큰 인식 차이가 있었다고 밝힌 대목을 들 수 있다. '벽'에 대한 이해일 수 있다. 미국의 봉쇄정책이 지속되는 가운데 고난의행군을 거쳐 7.1경제조치 등을 통해 '민족의 자주적 진로'를 모색해온 북의 입장에서 '개혁개방'은 체제의 문제로 인식될 수 있다는 점이고, 여기에 '개혁개방=남북경제공동체' 식의 인식을 갖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이 '벽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노무현 대통령이 개성공단 사업을 들어 "경제공동체는 평화의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이미 개성공단 사업에서 확인했듯이, 경제적 협력관계는 신뢰를 쌓고 긴장을 완화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입니다. 경제협력이 평화를 다지고 평화에 대한 확신이 다시 경제협력을 가속화하는 선순환적인 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라고 한 대목은 평소 '평화번영정책'에 대한 요점을 담은 것이다.

그러나 김영남 위원장은 "그 길에는 외풍도 있을 수 있고 역풍도 있을 수 있습니다. 좌절과 시련도 있을 수 있습니다. 굳건한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해 온갖 도전을 이겨내고 격변하는 정세 속에서 역사의 기회와 민족의 진로를 자주적으로 열어나가야 합니다"라고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장차 민족 경제공동체가 형성되면, 우리를 중심으로 중국, 러시아, 일본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의 큰 시장이 연결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위에서 함께 번영을 누리면서 동북아시아에 협력과 통합의 질서를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대목과 김영남 위원장이 "서로의 이해와 믿음에 기초해 민족을 먼저 생각하고 그 외의 모든 것을 지양시켜 나간다면 북남은 더욱 힘있게 진전될 것이며 나라의 통일과 민족의 번영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는 대목도 비교된다.

만찬사를 두고 단순 비교를 하기 어려운 점은 분명 있다. 그러나 오찬 발언에서 언급된 노무현 대통령이 느낀 '벽'은 역시 세 가지 의제에 접근하는 기본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노무현 대통령이 경협에 무게를 두고 차분하고 실용적인, 즉 실리적인 접근을 한 데 비해, 김정일 위원장은 회담 일정 연기와 같은 카드를 써가면서도 '민족과 통일' 문제를 더 강조한 걸로 보인다는 점이다. '실리'가 '대의'를 넘기에 벽은 높았고 노무현 대통령은 그걸 실감하지 않았나 싶다.

답례만찬 분위기가 차분했다는 것은 이의 현실적 반영인지도 모른다. 곧 만들어질 '선언'도 차분한 수준, 그러니까 낮은 수준의 선언이 나올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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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 남북정상회담 , 김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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