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림자 여성의 삶

[칼럼] 아인슈타인이라는 그늘에 갇힌 밀레바 마리치

지난 봄 프랑스 대선에서 사르코지에게 아깝게 패한 세골렌 루아얄은 19살 때인 1972년,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상대로 소송을 건 것으로 유명하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 어머니의 이혼 요구를 받아들이고 위자료와 자신을 포함한 8명 형제의 양육비를 내놓으라고 했다. 결국 루아얄은 10년을 끈 소송에서 이겼다.

‘로라노 복장학원’으로 유명한 로라노(본명 노명자)가 1947년 루아얄과 같은 19살에 갓 이혼한 몸으로 미 군용기를 개조한 비행기를 타고 여의도 공항을 떠나 로스엔젤레스로 패션 공부하러 출국할 때 온갖 비난을 퍼부었던 우리 사회와는 대조적이다.

아인슈타인은 1905년 발견한 ‘상대성이론’ 한 건으로 이후 50년 동안 잘 먹고 잘 살았다.

그러나 상대성이론은 전적으로 아인슈타인 혼자의 창작물이 아니었다. 첫 부인 밀레바 마리치의 수학적 해결이 없었다면 망상에 머물렀을 것이다.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강의하던 마리 퀴리 교수는 아인슈타인을 늘 ‘마리치 아인슈타인’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마리치의 업적을 높이 샀다.

세르비아 출신 밀레바 마리치는 태어나면서부터 고관절 탈골로 평생 장애로 살았다. 16년간 사랑한 한 남자의 부와 명성을 위해 그림자처럼 살아야 했던 그녀에게 명석한 수학적 재능은 독이었는지도 모른다.

1909년 취리히 대학 이론물리학 교수자리 하나가 비었다. 아버지와 함께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에 참여했던 물리학자 아들러는 자신에게 온 제안을 아인슈타인에게 양보했다. 아인슈타인은 아들러가 사는 취리히로 이사 온다. 아들러가 살던 취리히 페스탈로치 거리 37번지는 혁명을 위해 베를린으로 간 로자 룩셈부르크가 살았던 집이다. 아들러의 아내 카챠는 밀레바 마리치, 아인슈타인, 아들러와 함께 민코프스키의 분석역학 강의를 들었던 동료였다.

유명해진 아인슈타인은 1916년 밀레바 마리치와 별거에 들어가고, 결국 1919년 정식 이혼한다. 아인슈타인은 그녀가 결핵을 앓아 다리를 절뚝거린다고 거짓말했다. 고관절 탈골 때문임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이혼할 핑계거리를 찾아야 했다. 밀레바 마리치는 아인슈타인이 근친상간의 둘째 부인 엘자와 사치와 허영으로 살 때에도 아인슈타인을 위해 헌신했다.

마리치의 삶은 이후에도 봉건적 여성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에겐 ‘아인슈타인의 그림자’라는 별명이 붙어 다닌다.

둘 다 똑같이 식민지 지식인으로, 여성으로, 장애인으로 살았던 로자와 마리치의 삶은 1919년을 기점으로 극명하게 갈린다. 마리치가 아인슈타인에게 이혼당한 1919년, 로자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 변절한 사민주의자 프리드리히 에베르트가 보낸 장교에게 암살당해 라인 강에 버려진다.

프로이센(독일)의 식민지 폴란드에서 태어나 소아마비로 마리치처럼 다리를 절뚝거렸던 로자는 스파르타쿠스동맹을 이끌고 실패한 혁명의 불꽃으로 산화했다.
덧붙이는 말

이정호 님은 공공노조 교육선전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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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바 마리치 ,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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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이달

    나 이것 참. 좋은 기사 많은 참세상에 가끔씩 이렇게 삽질하는 기사들이 올라오는군요. 아인슈타인이 그저 "상대성이론" "한 건"가지고 50년 동안 잘먹고 잘 살았다고요? 이 동지. 당신이 말하는 "한 건"이 특수상대성이론입니까, 일반상대성이론입니까? 그럼 아인슈타인이 노벨상 받는 계기가 된 광전효과는 나중에 아인슈타인이 "50년 동안" 잘 먹고 잘 살게 된 것과는 별 관계가 없나요? 원자가 실재하지 않는다고 믿던 당시 학계에 원자 측정의 계기를 마련해준건 그저 농담이겠죠? 브라운 운동은 뭔지나 압니까?

    당장 기사 내리세요. 쪽팔립니다.

  • 고이달

    일반상대성이론에서 밀레바 마리치의 역할을 이렇게 과장하려면 차라리 민보프스키나 로렌츠를 띄워올리세요. 그러려면 리만도 한 몫해야겠지만. 과학사에서 인정받지 못한 여성과학자들이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누구도 부정은 못할겁니다--이런 식으로 아인슈타인의 업적 전체를 뭉개서도 안 돼죠.

    차라리 "소련를 이론물리학의 천국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던 스탈린 얘기나 해보시죠.

  • 고이달

    위에 "민코프스키"입니다.

    왜 파이어폭스로 들어오면 비번 일치하지 않는다는 에러가 뜨는지 참.

  • 불여우

    무식해서 글 내용은 잘 모르겠고,
    저도 파폭쓰는데 잘 되는데요.

  • 고이달

    2.0.0.7에 win xp sp2입니다. 그 전에도 안 됐습니다.

  • 고이달

    온 김에 더 쓰죠.
    1. 특수상대론이 문제라면 마리치보다 로렌츠의 공헌을 더 높게 평가해야 공정할 겁니다.
    2. 아인슈타인이 쓴 일반상대론에 대한 논문은 한 편이 아닌데 이걸 "한 건"이라고 표현은 좀 그렇습니다. 표현뿐만 아니라 마리치의 공헌을 평가하는 방식도 문제가 있습니다. 마리치의 공헌은 주로 아인슈타인이 익숙하게 다루지 못한 리만 기하학의 계산이었는데, 이것만으로 아인슈타인이 마리치의 공헌을 의도적으로 숨기고 "한 건으로 50년 동안 먹고 살 거리"를 만들었다고 한다면, 아인슈타인의 개념 정립에 큰 영향을 준 리만 기하학의 창시자 리만과 시공간 개념을 제안한 민코프스키가 마리치보다 상대론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해야 합니다. 이런 식이면 참세상은 미군의 darpa의 핵전쟁 대비 통신망 프로젝트 ARPAnet으로부터 탄생한 인터넷을 그 매체로 쓰고 있으므로, 미국의 핵전쟁계획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이런 사이비논리도 가능합니다.
    3. 광전효과는 양자역학을 잉태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세웠고, 브라운 운동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설명은 분자의 존재에 확신을 갖지 못한 당시 학계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4. 아인슈타인이 그 선구자였던 양자역학에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데, 바로 epr 패러독스입니다. 이건 마리치 결별 이후 많은 세월이 지난 다음 얘깁니다. 마리치 결별 이후, 아인슈타인은 미국 프린스턴 고등학술연구소에 재직할 때 수학조수를 고용했습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아인슈타인은 머리가 맑은 날에나 텐서를 능숙하게 다뤘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 수학조수 채용 이후 아인슈타인이 이 수학조수의 업적을 가로채거나 이 수학조수가 아인슈타인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물리학이 단지 수학뿐이라면 그렇겠지만, 그렇지 않은 데에 아인슈타인의 업적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런 그의 태도가 많은 물리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고요.
    5. 자기 분야가 아닌 분야를 말할 때 너무 쉽게 말하지 맙시다. 좌파라면 아인슈타인이 매카시즘에도 굴복하지 않은 사회주의자였다는 것쯤은 밝혀야 하지 않을까요? 주제가 여성이니까 그렇지 않다면, 마리치 문제에서 왜 그의 사상은 문제가 안 되고 그의 직업적 업적만 문제 되는지 말해야 할텐데, 솔직히 글쓴이가 이 문제에 대해 답을 가진다고 보지 않습니다. 글쓴이는 분명히 마리치에 대한 1차 문헌을 읽어 보지 않았을 것이 분명한데 -- "분석역학"이 뭔지나 알고 썼는지도 의문입니다, 상대론이 "한 건"이라고 쓴 걸 보니 -- 2,3차 문헌을 읽고 썼다면 출전을 당연히 밝혀야 합니다. 여러 모로 봤을 때, 글쓴이가 참고한(?) 참고문헌과 이 글을 대조한다면 같은 부분이 굉장히 많을 거라는 의심이 갑니다. 표절,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정말 마리치가 남성우월집단인 물리학계에서 정치적으로 제거된 인물인지 더 연구하십시오.

  • 고이달

    이 동지가 정말 주제에 맞는 인물을 고르고 싶으면 생물학자 맥클린톡에 대해 공부하십시오. 그리고 표절하지 말고 1차 문헌을 구해 읽고 동지의 비판적 견해로 칼럼을 쓰십시오.

  • 참세상

    과연 로그인한 상태에서 덧글 삭제가 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방금 문제를 해결하였습니다. 이 문제는 웹 브라우저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서버측 프로그래밍의 오류로 판명되었습니다.(파이어폭스뿐 아니라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도 같은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 그렇군요

    일에 따라서는 한명의 천재가 아닌 협업이 대부분일 텐데 언제나 대표 주자만 이름 남기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명확한 능력과 성과로 남편의 업적에 일조했던 '***의 부인'들이라는 타이틀 자체의 가장 큰 문제점은
    공식적인 협업 집단에조차 속하지 못하는, 결국 사회에서 자연스레 배제되는 영역으로 빠져버리게 만든다는 점 같습니다.

    과학적 이론은 거의 못 알아듣겠으나,
    확실히 밀레바 마리치가 아인슈타인의 부인 자리가 아닌 남자 동료이거나 조수였다면 향후 그 이름의 위치는 상당히 달라지지 않았을 지...
    물론 그대로도 밀레바 마리치는 행복했었을 지 모르고 이름 날리는 게 삶의 척도가 될리 없는 건 당연하지만,
    언제나 의심스러운 점은 사회에 의해 강제되고 조작된 행복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러고보니 예전에 왠만한 과학자들은 다 그냥 성이나 성+이름으로 부르는데 '퀴리부인'은 왜 부인을 붙이는 지 의아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보니 문득 퀴리부인은 정말 대단한 여자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 고이달

    그렇지만 / 무슨 말씀이신지. 과학 얘기를 했는데 과학 얘기를 이해하지 못했다면서 갑자기 "협업"은 뭐고. 위에서도 말했지만, 글쓴이의 논리나 님의 논리대로라면 참세상은 미군, 특히 핵전쟁대비프로젝트와의 "협업"을 통해 얻어진 성과인가요? 맑스가 대영도서관에서 자본론을 저술했으니 대영도서관도 자본론에 큰 기여를 한 것인가요? 제 얘기의 핵심은 저자가 아인슈타인은 부당하게 폄하하고 마리치는 부당하게 띄웠다는 거죠. 일부 페미니즘 과학사가들이 취하는 입장인데, 별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이 글은 이데올로기를 역사를 왜곡한 그 많은 사례에 하나 더 보탠 것에 불과하죠. 그나저나, 아인슈타인의 사회주의 사상은 마리치의 정치적 제거에 어떤 영향을 줬냐니까요? 원래 사회주의란 그런 건가요? 생각있는 사람이라면 이 비꼬는 말에서 사회주의를 물리학으로 바꿔놓고 생각하겠죠. 모교인 epfl에서 학생시절 인정받지도 -- 마리치는 인정받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니 정치적으로 제거되었다고 말하긴 곤란하죠. 그렇게 제거되었으려면 학생시절 그녀의 평가도 아인슈타인에 묻혔어야 하니 -- 특허청 공무원으로 있으면서 혼자 개념 정립에 고군분투한 그를 -- 왜 고군분투인지는 그의 논문들을 직접 읽어 보면 압니다. 참고문헌에 몇개이고 또 참고문헌의 이론을 그가 얼마나 가져다 썼는지 직접 평가해보십시오 -- 이런 식으로 난도질하는 건, 적어도, 비판적인 좌파나 사회주의자의 모습은 아닙니다. 좌파/사회주의자가 언제부터 반지성적인 태도를 가졌죠?

  • 고이달

    개인적으로 페미니즘 과학사 운동과 페미니즘에 기초한 과학 운동을 지적 사기로 봅니다. 이들이랑 친한 애들이 저 유명한 "신과학"이죠. 여성주의적 상상력으로 환원론적이며 남성중심적인 세계관을 가진 주류과학에 도전하겠다. 그런데 결과는? 소련에서 있었던 뤼생코 운동의 현대적 재판이랄까. 좌파나 사회주의자에게 비판(적 정신)을 빼면 시체인데, 이 컬럼에선 그런 면모를 별로 찾아볼 수 없어서 유감이네요. 나름 주류과학계를 응징하려고 했지만 사료 해석부터 잘못됐으니. 아, 가벼운 칼럼이니까 괜찮다고요? 한번 웃고 말죠.

  • 그렇군요

    고이달/이상하네요. 이글의 핵심이 어떻게 과학 얘기인지요?
    '아인슈타인의 과학의 성과 내지는 별 성과 없는데 부풀려졌다'가 핵심이 아니지 않나요?
    저는 아무리 읽어봐도 밀레바 마리치에게 '차라리 로자처럼 살지 그랬니?'라고 읽히는데요.
    님의 말씀처럼 지식과 논리가 보강되면 글의 신뢰성이 향상되겠지만 아무리 봐도 핵심은 잘못 짚으신 게 아닌지?

  • 고이달

    그렇군요 / 독해력이 문제있으시네요, 제 글 어디에서 마리치나 여성과학들에게 로자와 같은 지위를 요구했죠? 이 글이나 제 글이나 모두 과학사에서 그 업적을 공정하게 평가받지 못한 여성들이 있다, 이게 핵심이죠. 따라서 "과학사에서 그 업적"은 과학 얘깁니다. 님은 "과학적 이론은 잘 못 알아듣겠으나"라고 하는데, 내용도 모르면서 뭘 평가해요? 위에서도 밝혔지만, 과학사에 부당하게 다뤄진 여성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에서 다뤄진 마리치는 거기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념을 가진 사회주의자였던 아인슈타인의 과학적 업적과 생애를 부당하게 폄훼하고 있죠. 자본론 얘기나 인터넷과 참세상의 관계는 어떻게 보세요? 그래서 이 글이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뭐, 자본론도 안 읽고 사생활을 들어서 맑스를 "대영도서관에서 작업한 부르주와의 아들이자 색광이면서 미치광이"쯤으로 모는 인간들의 태도와 이 글이 다를 게 뭐가 있죠?

  • 고이달

    아인슈타인의 과학적 업적이 사실은 마리치의 것이거나 그녀가 없으면 아예 나오지도 못할 정도의 것이었는데, 아인슈타인과 그의 추종자들이 그걸 독차지하려고 마리치를 정치적으로 제거했다. 이 글의 핵심 논거입니다. 이게 논파되면 이 글이 얼마나 신뢰성 있나요? 기꺼해야 편견으로 사회주의였던 아인슈타인을 부당하게 폄훼하고 현대 물리학계를 거대한 편견공동체로 만든 것 뿐이죠. 그나마 아인슈타인이 활약하던 무렵 서유럽 물리학계에 좌파/사회주의자들이 많은 건 이 글 어디에도 찾아 보기 힘들군요, 여성혁명가 로자는 등장하지만.

  • 고이달

    아인슈타인에 대해 이 글 비슷한 글을 페미니즘 문헌에서 본 적 있는데, 오바다 싶었습니다. 그 글쓴이도 아인슈타인의 과학적 업적, 사상, 인간적 결점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죠.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이 지금이나 혁명적 이론으로 평가 받지 당시에는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나찌 어용과학자들에 의해 "유대과학"으로 낙인 찍히고 인종적 차별을 받았습니다. 이데올로기로 역사를 왜곡하는 건 좌파나 우파나 공통된 못된 버릇입니다. 그래도 좌파를 자처한다면 아무리 자기편의 얘기라도 비판적 정신으로 그걸 비판해내야겠죠. 이 동지의 글이 두 번 아쉬운 지점입니다.

  • 그렇군요

    고이달/잉????
    님의 글이 아니라 이 칼럼글이 밀레바 마리치에게 '차라리 로자처럼 살지 그랬니?'라고 읽힌다는 뜻인데요.

  • 뭥미?

    밀레바(아인슈타인의 부인)는 1983년 <<엠마Emma>>라는 잡지에 실린 특별기사에서 '상대성이론의 어머니'로 소개되었다. 이 이상한 이야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출처를 확인한 결과, 데상카 트르부호빅규리치 Desanka Trbohovic - Gjuric란 세르비아 여자에게 나온 이야기란 사실이 밝혀졌다. 민족주의 기운이 끓어오르던 때 이 여자는 자기나라 사람인 밀레바 아인슈타인이 유명한 남편이 하는 작업에 커다란 몫을 했다는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었다. 1969년 유고슬라비아에서 나온 그 여자의 책은 1983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그늘 아래>>란 제목으로 독일어로 번역되었는데 이 책에서 데상카는 러시아의 물리학자 아브람 F.조페Abram F.joffe를 끌어들였다.

    그 책에는 조페란 물리학자가 아인슈타인의 논문들 가운데 아주 중요한 세편의 논문 서명이 '아인슈타인- 마리치'로 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인용 자료로 제시된 조페의 책 <<아인슈타인에 대한 기억들>>에는 아인슈타인의 부인이 공동저자였다는 말은 커녕 그 비슷한 말조차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어딘가 다른 곳에서 아인슈타인의 부인과 관련된 이야기로, 학교때부터 수학실력이 너무 형편없었기 때문에 시험에도 통과하지 못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처럼 분명한 사실이 있는데도 세르비아의 여성운동가 센타 트뢰멜 플뢰츠Senta Tromel Plotz는 미국 학술진흥재단이 주최한 학회에서 그 이야기를 함으로써 세르바이의 동화에 다시 불을 지폈다. 그녀의 이야기는 다시 독일의 언론에 새롭게 오르내리게 되었다.



    하인리히 창클, 도복선외 역 <<과학의 사기꾼>>pp.62-pp.63
    =============================
    잘 알지도 못하면 차라리 떠들지나 마라.
    신문사 수준 한 번 저급하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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