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중산층, 정신의 중산층

[칼럼] 삶의 질만큼 피폐해진 생활의 기준

우리 국민들은 올 봄 동아일보의 국민의식 여론조사에서 42%가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답했다.(동아일보 07년 3월30일 1면)

외환위기 전에 우리 국민 스스로가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60∼70%에 이르렀다. 그러나 지난해 한 언론조사에서 이 비율은 42%까지 떨어졌다.(경향신문 07년 8월31일 30면)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 8월 중산층을 4개 그룹으로 세분화해 이들의 소비특성을 분석한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월평균 소득 350만∼419만 원의 가구를 ‘전형적인 중산층’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일, 건강, 가족을 고르게 중시하는 균형적 가치관을 가진 계층’으로 정의했다.

이런 주관적 조사에서 지난 40년 동안 41~86%의 우리 국민이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중산층에 대한 객관적 척도는 없다. 대부분 재산이나 수입에 따라 중산층을 나눈다. 그러나 중산층은 경제, 문화, 정신의 기준을 모두 갖춰야 한다.

퐁피두 전 프랑스 대통령이 정책으로 추구했던 ‘카르테 드비(생활의 질)’은 바로 프랑스 중산층의 기준이다. △외국어 하나를 구사하고 △스포츠 하나를 즐기고 △악기를 하나 다루고 △옆집과 다른 그 집만의 요리를 하나 갖고 △공분을 일으키는 사회문제에 의연히 참여할 줄 알아야 한다. 문화를 중시했다.

영국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중산층의 조건은 정신을 중시한다. △페어플레이 △자신의 주장에 떳떳할 것 △나만 생각하는 독선을 부리지 않을 것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게 강할 것 △불의, 부정, 불법에 의연할 것 등이다. 여기서 ‘자신의 주장에 떳떳할 것’은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제 아우와 자식들이 비정규직인데도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노동자를 향해 노조 하는 놈들 다 때려 죽여야 한다는 논리적 모순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사대부의 청빈철학이 지배했던 조선조 중기 중산층 개념 역시 재산보다는 문화와 정신 쪽에 방점을 찍었다. 중종 때 판서를 지낸 김정국은 돈만 생각하는 한 친구에게 부친 편지에서 당시 중산층이 갖출 조건을 아래와 같이 적었다.

‘두어 칸 집에, 두어 이랑 전답이 있고, 겨울 솜옷과 여름 베옷 각 두어 벌 있을 것’이라고. 재산의 조건이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게 서적 한 시렁, 거문고 한 벌, 햇볕 쬘 마루 하나, 차 달일 화로 하나, 늙은 몸 부축할 지팡이 하나, 봄 경치 찾아다닐 나귀 한 마리면 족하다.’ 문화의 조건이다.
‘의리를 지키고 도의를 어기지 않으며, 나라의 어려운 일에 바른 말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떳떳한가.’ 이것은 정신의 조건이다. 우리 조상들도 삼위일체의 중산층 조건을 사용했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죽이고 등극하자 그 길로 속세와 인연을 끊어버린 매월당 김시습이나 고향에 낙향해 30년을 눈 뜬 장님으로 산 생육신 이맹전은 모두 정신의 중산층이었다. 밥 먹는 숟가락마저 모자라 차례를 기다려 밥을 먹었을지언정 이맹전은 정신의 중산층이다.

월 평균 소득 얼마로 중산층의 기준을 삼는 오늘의 우리와는 격이 다르다.
덧붙이는 말

이정호 님은 공공노조 교육선전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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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이... 결론부까지 가지 못하고 끊어져 버린 느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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