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대안과 욕망을 돌파해야 미래가 보인다

[진보논평] 학벌사회에 대안은 없다

진보전략회의(준)는 한국사회 주요 전략아젠다에 대한 진보적 정책생산을 목표로 모인 연구자, 활동가들의 전략네트워크이다. 사회운동의 통합적 활동이 가능하도록 운동과 운동을 이어주고 지역, 부문, 현장에서 운동기획을 자극하고 촉진하는 역할을 표방하고 있다. 진보전략회의(준) 회원들이 주요한 사안에 대해 발표하는 '진보논평'을 민중언론참세상에 게재한다.- [편집자 주]


대안이 홍수처럼 넘실거리고 있다. 연말에 예정되어 있는 대통령 선거에서 자기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문제로 드러난 현실에 대하여 다양한 모색과 실천이 대안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대안생리대와 같은 생활용품, 대안적인 먹을거리나 주택, 재생과 자연치유를 통한 대안적인 의료, 자연력을 이용한 대안에너지, 가족의 형태를 새롭게 구성하는 대안가족, 삶과 노동의 상품화를 거부하는 대안화폐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심지어는 현재의 방식으로 이윤율 저하를 극복할 수 없으니 이윤을 새롭게 창출할 수 있는 대안적인 투자방안까지 주장되고 있다.

모두가 대안을 표방하고 있지만 이들을 하나의 범주로 규정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현상으로부터 출발하는 문제의 분석과 이에 대한 진단, 처방의 지점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분명한 이유는 현재의 체제에 대한 극복의 수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대안과 현실과의 접촉면에서 보면 대상세계보다는 자기의 변화를 통해 문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거나, 지향하고자 하는 가치를 중심으로 이탈의 공동체를 구성하는 대안이 있는가 하면, 현실에 대하여 직접적인 충격을 통해 균열을 내는 행동을 목표로 하기도 한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면 대안(Alternative)은 대체(Substitute)와 뒤섞여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현실에 대한 반응의 심도로 볼 때, 새로운 안을 제시하는 수준의 대안보다는 새로운 것으로 바꾼다는 의미의 대체가 훨씬 더 실천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대체라는 표현이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대체에너지 문제를 보자. 대체에너지는 석유의 대체물(代替物)로서의 연료로 석유자원의 고갈에 대비하여 개발하고 있는 에너지다. 화석에너지의 소진에 대비하기 위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에너지원의 개발은 시급한 문제이며, 그것이 연소되어버리는 에너지가 아니라 재생가능한 자연력을 이용한 것이라면 환영할 일이다. 게다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최근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바이오매스에 이르면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 더 많은 곡물이 소모되고 이로 인해 더 많은 인류가 기아와 식물종 다양성 파괴로 위험에 다다를 수 있다.

정작 문제는 약탈적이고 공격적인 무한에너지 소모전이 지속되는 현실의 자본주의에 있다. 과잉생산 무한 소비를 부추기는 이윤체제, 공해배출권마저 상품으로 거래하는 자본의 폭력을 그대로 둔 채 에너지원을 석유에서 자연력이나 바이오에너지 등으로 대체하는 것은 문제 해결의 대안이 될 수 없으며 예상되는 파국의 눈가림에 불과할 뿐이다.

대안의 홍수는 대안교육으로 흘러 들어간다.

학교붕괴 운운하며, 공교육의 위기를 지적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경쟁과 효율성이 부족한 학교 체제를 바꾸고, 평준화를 해체하여 소비자의 선택권을 확대하고, 교원평가와 성과임금제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이들은 대학교육을 넘어 무상의무교육기관인 초중등교육마저 철저하게 벽을 세워 그들만의 철옹성을 구축해가고 있으며, 탈법적인 조기 유학 붐을 일으키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 영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나 유용한 도구라기보다는 획득해하고 소유해야 할 그 자체이다. 한국에서는 파장이 증폭되어 영어는 세계화시대의 생존전략이라며, 영어평가를 통해 점수와 등급으로 모든 학생 아니 국민 모두를 서열화하고 있다. 영어 점수와 등급은 삶의 전 단계에서 차별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한국에서나 유명한 토익이나 토플은 대학입시 전형자료를 넘어 국제중이나 특목고 등 중등과정 진학에서의 주요한 변별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심지어는 왜 그러해야 하는지에 대한 함의도 밝혀지지 않은 채 공무원 임용이나 취업이나 승진에서 벽과 관문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런 한국사회 교육 문제를 자각한 이들은 조기 유학과 같은 개별적인 선택이 아니라 대안교육이나 대안학교 건설운동을 벌여왔다. 이제 10여년을 경과하고 있는 대안학교 또는 대안교육운동은 급속도로 팽창해 왔으며, 다양한 실천으로 그 영향을 확대해 왔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공교육의 문제가 해결될 전망이 보이지 않는 한 대안학교의 설립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대안교육이 이렇게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사정은 그렇지만은 않다. 2007년 입시가 끝나고 난 후 서울대학에 합격생을 내서 일약 유명해진 대안학교가 있다. 정작 문제는 그 학교의 이념이나 교육활동이 그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있으며, 학교도 그것을 자랑으로 내세우지 않는 데에 있다. 그런데도 언론이나 학부모들은 학교의 다양한 교육활동이나 헌신적인 열정이 아니라 단지 서울대학에 합격생을 낸 것에만 열광하고 있다.

학벌사회가 대안학교와 대안교육을 분탕질하고 있는 셈이다. 일그러진 욕망이 공교육은 물론 대안학교마저 대학입시라는 관문을 돌파하기 위한 통로로 만들고 있다. 심지어는 경쟁과 서열을 부정하고 대체하려는 대안학교마저 서열화하고 있다.

대안교육마저 대학서열체제와 대학입시로 서열화하는 학벌사회에 탈주공간은 없다. 대안학교가 대학입시를 두고 제도 학교와 경쟁을 하고, 교육소비자들이 입시의 우회로나 지름길로 대안학교를 선택하게 된다면 더 이상은 대안이 아니다.

대안학교마저 수렁으로 밀어 넣고 있는 한국사회, 한국교육의 문제의 근원은 학벌사회다. 학벌사회와 이를 재생산하는 토대인 대학서열체제, 이의 절차적 기제인 대학입시로 인해 한국사회는 지속가능성에 위기인 상황에 놓여있다. 교육 때문에 부동산이 오르고, 교육이 너무 고통스러워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

대학서열이 학벌서열이 되고 어떤 학벌을 획득하느냐가 신분이 되는 전근대적인 사회구조에서, 사교육비 경쟁은 결국 소유의 정도로 국민의 등급을 나누게 된다. 이것은 지위의 대물림이 되어 지금의 양극화 구도를 고착화한다. 일류대 학벌 간판을 살 수 있는 극히 소수를 제외한 전 국민에겐 오직 박탈과 고통만이 있을 뿐이다.

학벌사회에 대안은 없다. 학벌사회는 이러저러한 얕은 계책으로 무너질 만큼 허술하지 않다. 개별적인 학교나 학부모와 학생의 결단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 정교한 매트릭스는 학벌의 수식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문화예술인조차 치장을 요구하며, 그들을 송두리째 벗겨 놓고 있다. 학벌사회의 틀을 그대로 둔 대안은 학벌사회의 성공적인 진입이거나 학벌사회 외부로의 이탈과 다를 바 없다.

학벌타파, 대학평준화, 입시철폐를 더 이상 몇몇 교육운동가들의 상상이나, 또는 일부 단체의 주장이 아니라 현실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더 이상은 선출된 정부의 임기안에 시도하지도 않을 장기적인 과제 목록에 남겨두지 말아야 한다. 지금 당장 입시폐지와 대학평준화를 실현하기 위한 국민운동을 벌여나가야 한다.

입시철폐 운동, 대학평준화 운동은 단순히 학생과 민중의 고통을 경감시킨다는 소극적인 의미를 넘어 교육의 기본적 성격을 재규정해 나가는 운동 즉 교육의 사유화를 지양하고 교육의 공공성을 높여 나가는 운동, 소모적인 경쟁을 지양하고 개인과 사회의 지적 - 문화적 역능을 고양시키는 운동, 대안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운동이다.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운동본부(http://edu4all.kr)가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현실을 애써 외면하지 말자. 학벌사회에 대안은 없다. 학벌사회의 근원지인 대학서열체제를 타파하는 이외에는. 대학서열체제를 유지하는 근원적인 장치이자 교육을 위기로 몰아넣는 입시체제를 부수기 전에는.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다.
덧붙이는 말

이철호 님은 학벌없는사회 정책위원장으로, 진보전략회의 회원으로 일하고 있다.

태그

입시 , 대안교육 , 대학평준화 , 진보전략회의 , 입시폐지 , edu4all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이철호(진보전략회의.학벌없는사회)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에공

    그러하지요. 더 이상 유의미한 대안이 없다?! 맞지요. 맞는 거지요. 정면돌파하는 거지요. 대안을 찾기보다, 할벌의 벽을 깨부수는 오늘의 투쟁이 필요한 시기 맞습니다, 맞고요!!!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기획연재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