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파병으로 시작해 파병으로 해저무는 참여정부

미국과 비동맹 선언하는 대통령 후보 없나

23일 노무현 대통령의 담화의 핵심은 "어느 때보다도 한미 간의 긴밀한 공조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밝힌 부분이다.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우리의 입장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는 것도 한미 공조의 토대 위에서 가능한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진실이 아니다. 미국에 있어 북핵 문제 해결 과정은 3대 대테러전쟁 전선에 파병해준 대가가 아니라 미국의 잇따른 외교정책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방책으로 풀이된다. 가령 2004년 대규모 파병이 이루어졌지만 부시 정부는 대북 봉쇄정책을 강화했고, 이것이 원인이 돼 2006년 미사일 시험발사와 핵실험으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최근 스페인, 이탈리아가 철군하고, 영국, 호주 등 미국과 최고 수준의 동맹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들도 철군을 서두르고 있지만, 철군으로 동맹에 금이 갔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담화 중 중동지역 정세, 보람, 국익 등을 거론한 대목도 근거나 설득력이 없다. 지난 17일 터키 의회가 쿠르드반군(PKK)을 소탕하기 위한 이라크 공격 승인 결정 후 터키군과 쿠르드반군의 공방이 이어져 확전이 예고되는 상황이다. 확전으로 이어질 경우 자이툰 부대가 주둔한 아르빌 지역도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터에 사람을 내보내고, 다수의 시민이 피랍과 죽음을 거듭하고 그 위험이 온존하는 상황에서 '보람'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이다. 국익도 마찬가지다. 경제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는 주장은 이명박 후보 외엔 동조하지 않는다. 쿠르드 지방정부는 리스크 관리 능력이 없으며, 이른바 후속 자원외교도 부도수표에 가깝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파병 초기 재건사업 컨소시엄에 참여할 예정이던 13개 기업도 입을 다물었고, 이라크에 투자 의지를 가진 기업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기획으로서의 대연정 2탄이라고 한다면 이해는 하겠지만 사태는 그렇지도 않다.

파병 연장을 결정해놓고 '정해진 것 없다'거나 '예정대로 철군한다고 할 수 없다'며 여론 떠보기 멘트를 흘리는 등, 거짓을 포함한 파병 연장 계책은 최소한의 절차적, 도덕적 요소도 갖추지 않는 모습, 이는 할 수 없는 것, 하면 안되는 것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궁여지책이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의 파병 연장 결정에 대해, 이명박 후보가 찬성하고, 정동영 후보가 반대하는 기묘한 형국이 만들어졌다. 애초 파병 사안이 대선 정국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예상이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가 파병을 연장하고, 대선 후보들의 입장이 발표되면서 '경제'를 내건 보수-토건세력의 결집과 '평화'를 내건 개혁세력의 결집이라는 대선 구도에 적지 않는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특히 남북정상선언의 성과를 개혁-평화세력에게 물려줄 것으로 보였던 대선 국면의 평화프로세스도 우여곡절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를 놓고 청와대가 여권 후보들과의 관계 정립을 위해 밟는 수순이라거나, 남북정상회담 성과로 얻은 자신감의 표출이라는 식의 해석은 사후적, 일면적 해석일뿐, 본질을 짚는 분석은 아니다.

개혁과 평화는 참여정부의 키워드이다. 개혁이 선진노사관계로드맵과 한미FTA 관철 과정에서 자본 요구 위주의 신자유주의적 성격으로 점철되었다면, 평화는 특히 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경협을 통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서 실체를 분명히 했다. 특히 2007 남북정상선언은 경제를 통한 평화의 선순환을 국민적으로 확인하고 호의적인 여론을 획득하는데 이르렀다. 그러나 시점을 피하지 못하고 운명처럼 만난 파병 연장에서, 참여정부의 '평화'가 갖는 불안정성과 모순도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되었다.

이 배경에는 역시 미국이 있다. 파병은 참여정부 외교정책의 첫 번째 시험대였다. 수용소 발언은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참여정부가 주창하는 개혁의 정치적 속성이 반영된 것으로 평가됐다. 이후 참여정부는 주한미군 재배치, 전략적유연성 합의, 한미FTA 논쟁에서 미국과의 동맹을 근간으로 한 행보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었다. 파병할 때마다 강조한 현지 '평화' 재건이나 북핵 해결 과정에서 강조한 '평화' 모두 미국과의 공조, 즉 한미동맹 위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 다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이후 북핵 해결 과정에서 대북 봉쇄정책에 변화를 보인다 하더라도 적대적 관계의 완전한 청산으로 이어질 지 여부는 지켜볼 일이다. 북미 수교와 동북아 군사전략의 수정 과정을 지켜본 후에나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 북은 미국의 봉쇄정책 중단과 남을 향한 3대 근본문제 해결 요구에 긴장의 고삐를 늦춘 적이 없었다. 노무현정부는 지금까지 미국과의 공조 위에 경제를 통해 한반도의 평화를 구걸하는 처지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가장 반평화적인 국가와의 동맹 위에서 가장 평화적인 세력인 것처럼 처신해왔고, 파병 연장은 그 왜곡된 평화의 정체를 숨길 수 없음을 입증하고 있다.

자본에 의한 '개혁'과 한미동맹에 의한 '평화'. 이윽고 참여정부의 개혁과 평화는 파병으로 시작해 파병으로 해저문다. 파병에 반대하고 나선 정동영 후보와 권영길 후보는 미국과의 공조에서 얼마나 자유로운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