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김용철 변호사를 엄호해야 하는 이유

삼성 비자금 폭로의 휘발성과 침묵하는 미디어

이번에는 삼성맨이 삼성 문제를 터뜨렸다. 김용철 변호사는 특정 시점까지 삼성체제를 움직인 핵심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삼성맨이 삼성을 두고 자수서를 하겠다고 나선 이상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가 대선비자금, x파일, 에버랜드전환사채 건과 마찬가지로 모두 삼성권력 커넥션을 본질로 삼는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한 삼성맨의 자수서 의지는 삼성 문제 해결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줄 가능성을 품고 있다. 휘발성이 강하다.

대선비자금은 여야 정치 공방으로 시작되었지만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내 비자금이 야당 비자금에 1/10이 넘으면 대통령직 물러나겠다"고 말하며 서둘러 진화한 적이 있었다. 검찰이 2004년 3월 삼성의 불법 대선자금이 채권 300억 원, 현금 70억 원 등 모두 385억 원으로 드러났다고 수사 중간발표를 했지만 돈의 출처를 밝히지는 않았다. 재테크로 번 돈이며, 재산 내역을 알려주지 않겠다는 삼성을 상대로 더 캐묻지 못했다.

x파일은 신자유주의권력의 태동을 앞둔 시기, 그해 4,9,10월 당시 정경언검 유착의 실체가 폭로된 사건이다. 정부가 삼성이나 총수를 치겠다는 것도 아니었고, 부도난 기업도 아니었다. 김대중 정부가 국정원을 개혁하면서 과거 사람들을 솎아내게 되고, 이 과정에서 x파일은 우여곡절을 거쳐 양심을 가진 한 언론인에게 전달된, 말 그대로 독특한 정세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독수독과라는 말 한 마디로 x파일은 역사의 기억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그해 시민사회단체가 달려들어 만든 x파일공대위도 결과적으로 삼성의 관리를 넘지 못했다.

에버랜드전환사채 건은 지난 1996년 에버랜드가 전환사채를 헐값에 발행, 이를 이재용 씨에게 편법 매각한 사건이다. 이건희 회장 부자의 경영권 승계를 통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가 다져진 것으로 무려 11년 간이나 논란이 되어왔다. 경영권 편법 승계 과정에 이건희 일가와 삼성그룹 차원의 공모가 있었다고 추측되지만 결국 이건희 회장의 수사로 이어지지 않았다.

지난 10년간 삼성은 신자유주의 축적체제의 발전 과정에서, 세계 속의 한국경제라는 블루오션의 스펙타클과 무대 위를 위해 무대 뒤는 마땅히 감추거나 희생해도 된다는 사회적 용인을 조장하는 가운데 쉬지않고 질주해왔다. 대선비자금, x파일, 에버랜드전환사채 등에서 확인된 것은 삼성의 불법이었지만, 삼성의 불법에는 뒤끝이 없다는 신화를 재생산해올 수 있었고, 이 배경에는 예외없이 삼성권력 커넥션 구조가 자리잡고 있었다.

한편 x파일을 통해 드러난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삼성구조조정본부 이학수 본부장-검찰 고위층-이회창 후보 등의 커넥션은 그 자체로 위력적인 권력구조를 의미하지만, 삼성=국민=민족=국가=애국심이라는, 삼성이 조장해온 국가와 자본 동일성의 커넥션이 우리 사회 지배의 실질적인 추동력인지도 모른다.

김용철 변호사의 자수서 소동은 오늘날 우리 사회 주류의 힘, 즉 정경언검의 유착 구조와 국가주의, 자본주의가 유포하는 성장 위주의 지배이데올로기를 정면으로 거스른다. 그만큼 위태하고 애처롭다. x파일의 실체를 폭로하고서도 박수 한 번 받지 못한 이상호 기자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비록 삼성맨으로 삼성의 속사정을 헤아리고 있다 하더라도 상대는 삼성이다. 김용철 변호사가 뇌관을 쥐고 있고 시사인과 한겨레와 천주교사제단이 의기를 투합했지만, 정치권은 침묵하고, 검찰은 미동이 없고, 미디어는 입을 다물었다. 특히 미디어는 본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언론개혁시민연대와 기자협회와 언론노조 등이 언론의 책임을 강조했지만 본능에 따라 작동하는 미디어 구조속에 얼마나 큰 변화가 있을 지 단정하기 어렵다. 김용철 변호사의 자수서는 보잘 것 없는, 아주 작은 해프닝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삼성 임원 한두 명 선에서 꼬리를 자르는 수준에서 머물 것이라는 관망이 나온다. 이 관망이 힘을 얻게 된다면, 우리 사회구성원은 삼성이 제공하는 한국경제의 스펙타클과 성장, 지배이데올로기가 유포하는 환각 속에 더 깊숙이 빠져들 수밖에 없게 된다. 내일 김용철 변호사가 맞이할 운명과 함께 이점이 가장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