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권에 대한 진지한 도전

[미끄럼틀:한장의정치](1)“친권”이란 녀석은 억압적이야

사이버정치놀이터 '미끄럼틀'이 오픈했다. 문화연대는 '미끄럼틀'에 대해 "급진적 행복을 찾아 상상력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라고 소개했다. 민중언론참세상은 '미끄럼틀' 중 '한장의 정치'를 기획 연재한다. '한장의 정치'는 "새로운 사회, 급진적 정책을 상상하고 공론화하기 위한 정책칼럼"으로 "만화가, 미술작가, 활동가, 교사, 평론가, 교수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운동과 함께해온 이들이 상상하는 정책칼럼이 게재될 예정"이다.[편집자주]

한국 사회에서 가정은 건드리기 어려운 성역이다. 여성에 대한 폭력을 비롯해서 가정 안에서 여러 가지 인권침해들이 발생하고 있음에도, 주류적인 논의에서 가정은 여전히 지원하고 보호하고 회복해야 할 대상에 가깝다.

그중에서도 특히 가정 안에서 친권자(부모 혹은 다른 보호자)가 어린이·청소년에게 행사하는 친권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많지 않다. 아동학대나 방임에 관해 운동을 하는 단체에서 친권제한 제도나 관련 외국 사례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특수한 ― 혹은 소위 ‘부적합’한 ― 친권자에게서 친권을 제한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다. 즉, 아동학대나 방임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친권 자체의 성격에 대한 문제 제기보다는 친권이 ‘잘못’ 행사되거나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때 그 친권을 어떻게 제한하고 박탈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게다가 이런 형태의 주장은 때로는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의 양육권만을 불평등하게 제한하는 데 악용되기도 한다.

어린이·청소년들의 주체적이고 조직적인 움직임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 래디컬(radical)하기 때문일까? 아직까지 친권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나 일상적인 친권자-어린이·청소년 관계에 대한 문제의식은, 사람들이 건드리기 어려워하는 영역으로 남아있다.

현재, 권리이자 의무라고들 하는 이 “친권”이란 녀석은, 많은 부분 어린이·청소년들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억압하는 한편으로는 친권자에게 과도한 책임을 떠넘기는 것으로 기능하고 있다. 많은 청소년들이 현재의 생활이나, 진로 문제, 종교 문제 등에서 친권자들의 지나친 간섭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보호자들은 양육이 어렵다고 이야기하며 사회적인 양육 보조, 시설, 상담 시스템 등이 필요하다고 한다.

기존의 정책들은 보호자들의 입장들 중 일부를 반영하여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 혹은 여성들의 권리를 신장시키기 위해서 보육시설을 확충하고 가정을 지원하는 방향을 추구해왔다. 그러나, 내가 대통령 후보라면 나는 좀 더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정책으로 “친권 축소”를 공약으로 내놓을 것이다.

“친권 축소”란 단지 법률상으로 규정되어 있는 “친권”의 범위를 축소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포괄적으로, 권리이자 의무인 사회적인 “친권” 자체를 축소시키고 사회적인 것으로 이양하겠다는 의미다. 이는 어느 친권자를 두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양육 환경을 겪게 되는 것을 막고 양육과 교육 문제를 더 사회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며, 어린이·청소년들이 사회경제적 약자이기 때문에 친권자와 가정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동시에 이는 양육 책임이 친권자에게 대부분 부여되는 불합리함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며, “친권 축소” 정책은 소위 ‘미혼모’들이 양육에 곤란을 겪어서 임신중절을 결정하게 되거나 하는 사회문제 또한 개선해줄 것이다.

△사회적 공동양육 시스템 도입과 점진적 확대 △부모가 어린이·청소년을 ‘분리’하지 못해서 일어나게 되는 갈등이나 문제를 방지하고 친권자가 어린이·청소년들과 적절하게 관계맺게 해주기 위한 소위 ‘부모교육’과 상담 체계의 강화 △어린이·청소년들의 경제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한 청소년 생활 보조 제공 및 노동 기회 확대 △어린이·청소년들이 가정을 벗어나거나 뛰쳐나오더라도 주거가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지역사회의 시설이나 시스템 확립 △친권자(대개 부모)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기 위한 교육·보육 시설 ― 이런 것들이 생각해볼 수 있는 “친권 축소”를 위한 정책들이다.

“친권 축소”는 단지 법률에 나와있는 친권의 범위를 축소하자는 것이 아니라 가정 안에서의 친권자와 어린이·청소년의 관계, 그리고 그에 관련된 사회경제문화적 구조를 바꾸기 위한 정책이다. 지금과 같은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핵심적인 재생산 영역 중에 하나인 가정을 새롭게 재편하는 것은 비록 매우 민감한 일이더라도 필수적인 것이다. 만일 우리가 현재 가정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인권침해, 불평등, 억압의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또는 사회를 좀 더 평등하고 자유롭고 인권적인 형태로 바꾸고자 한다면, 이러한 변화는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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