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은 그저 대통령의 동거자일 뿐

[미끄럼틀:한장의정치](9)과도한 사회적 조명 거둬야 하지 않을까?

사이버정치놀이터 '미끄럼틀'이 오픈했다. 문화연대는 '미끄럼틀'에 대해 "급진적 행복을 찾아 상상력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라고 소개했다. 민중언론참세상은 '미끄럼틀' 중 '한장의 정치'를 기획 연재한다. '한장의 정치'는 "새로운 사회, 급진적 정책을 상상하고 공론화하기 위한 정책칼럼"으로 "만화가, 미술작가, 활동가, 교사, 평론가, 교수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운동과 함께해온 이들이 상상하는 정책칼럼이 게재될 예정"이다.[편집자주]

미장원에 가면, 가위, 거울, 고대기, 파마기계 외에도 꼭 볼 수 있는 게 있다. 바로 대부분 머리하러온 사람들이 한두권 정도 보고 가는 여성동아, 레이디경향, 우먼센스 같은 여성잡지들이다. 이 여성잡지는 주로 패션, 음식, 미용, 성생활 체위 등에 관한 시시콜콜한 정보를 싣고 있지만 유독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이혼 선언한 연예인 ○○○의 심경”, “결혼 40주년 정치인 ○○○부부의 인연”, “예식 한 달 앞두고 전격 결혼 발표한 ○○○·○○○ 커플“ 등 유명 방송인이나 정치인들의 가족사다. 이렇게 여성잡지의 핵심은 유명인들의 구구절절한 가족사인데, 재미있는 건 이들 기사는 대부분 방송인들을 다루고 있지만 비교적 지면 할애가 적은 정치인들의 경우는 주로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정치권력의 일면을 드러내는 일이겠지만, 아마도 이러한 정치인 기사의 백미는 영부인에 관한 것일 게다.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 후보를 내조하는 부인의 속사정‘ 기사도 나올 법하고 대선 후에는 새로운 영부인에 대한 소소한 기사거리들이 게재될 것 같은데, 대통령 영부인 취재는 아마도 여성잡지들 모두가 벼리고 있는 별 따기인 듯하다. 여성잡지뿐만 아니라 각종 언론사들도 영부인의 동정을 수시로 살피며 보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영부인은 그저 대통령의 사적 동거자일 뿐이지 않을까. 하지만 남한 사회에서 영부인은 대통령의 그 이상의 대우와 관심을 받으며 응당 그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할 것처럼 기대된다. 또 하고 있기도 하다. 청와대 홈페이지 브리핑은 노무현 대통령 다음으로 권양숙 씨의 일정을 공지하며, 그녀는 ‘국빈’ 방문맞이, 주요 행사장 연설, 이벤트를 진행한다. 대게 이러한 동정은 내조와 소위 착한 정치라 불릴 수 있는 헐벗은 일상 공간에 대한 보살핌으로 나뉠 수 있는데, 이는 남한 사회에서 여성에게 강요되는 혹은 많은 여성들이 스스로 원하는 착한 여성되기를 위한 프로그래밍이다. 특히 권양숙 씨의 개인 캐릭터는 보다 대통령의 그림자 되기를 선호했다고 하는데, 그녀 또한 일전에 "대통령님이 큰 정치를 하고 계시다 보니까 앞에 나설 것까지는 없다는 생각에 조용히 있었다"고 밝힌 적도 있다고 한다. 이 말은 다시 말하면, 영부인으로서 앞에 나설 수는 있지만 남성인 대통령이 앞에서 중요한 일을 하니 조용히 빠져 있었다는 것인데, 가부장제적 인식을 그대로 드러내며 낡은 가족주의의 프레임을 재생산하는 것일 테다.

이렇게 영부인은 결혼주의, 가족주의, 남성중심주의를 위한 가장 정치적인 그러나 일상적인 상징기계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쨌든 대통령이란 제도를 두고 있는 사회에서 이들 동거자에 대한 일정한 공공의 지원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그리고 영부인이란 공식 호칭도 노태우 시절 이후 폐지됐다고는 하지만, 그녀에 대한 과도한 사회적 조명은 거둬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남성정치인을 일방적으로 지원하며 수십년을 살아왔을 그녀에게 오히려 필요한 건 새로운 직업훈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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