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BBK 재수사'.. 신당·한나라 모두 '외면'

노 대통령 '재수사 지시'에 신당 "특검 수용 여부만 밝혀라"

그간 BBK 수사와 관련해 말을 아껴온 노무현 대통령이 정성진 법무부 장관에게 재수사 검토를 지시했다.

"내가 BBK를 설립했다"는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육성과 모습이 담긴 동영상 관련 보고를 받은 노 대통령은 정성진 법무부 장관에게 "검찰이 열심히 수사했지만, 국민적 의혹해소와 검찰의 신뢰회복을 위해 재수사를 위한 지휘권 발동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해철 민정수석이 16일 밝혔다.

노 대통령 "BBK 의혹, 재수사 검토해라"

노 대통령은 또 "현재 국회에서 특검법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여,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가장 실효성 있는 조치를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전해철 민정수석은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가 있었으나, 국민적 의혹이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다"며 "오늘 공개된 이명박 후보의 육성 동영상은 그간 국민이 품었던 검찰수사결과에 대한 의혹을 더욱 더 확대시키고 있다"고 노 대통령의 재수사 검토 지시 배경을 설명했다.

그간 청와대는 BBK 수사와 관련해 입장표명을 자제해왔다. 특히 검찰이 지난 5일 이명박 후보의 BBK 연루 의혹에 대해 모두 무혐의 결론을 내리자 신당은 '검찰 탄핵'을 추진하는 한편, 청와대에 직무감찰권 행사 등을 요구했으나 이에 청와대는 부정적 입장을 피력해왔다.

청와대의 함구에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와 신당은 노무현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날선 대립 각을 형성해오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일각에서는 당선축하금 문제가 포함된 '삼성 의혹'과 'BBK 의혹'을 맞바꿨다는 이른바 '노-명박 빅딜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또 '뇌물 검사' 등 삼성 수사로 궁지에 몰려있는 검찰의 이해관계 역시 같은 궤도를 그리며 이 후보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때문에 이번 재수사 검토 지시는 이 같은 청와대와 검찰에 쏟아지는 항간의 의혹을 불식시키겠다는 노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신당, "늦은 감 있다. 특검 거부권 행사 여부만 밝혀라"

그러나 노 대통령의 이번 재수사 검토 지시에 대해 한나라당의 반발은 당연지사고, 신당 역시 그리 환영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최재성 신당 대변인은 이날 내일(17일)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는 'BBK 특검법안'을 언급하며 "특검법이 통과되면 특검에 의한 재수사가 되는 것"이라며 "검찰에 의한 재수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최 대변인은 이어 "그동안 청와대가 검찰의 BBK 수사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다가 국민 여론과 새로운 증거들이 드러나면서 오늘 재수사를 검토하겠다고 했다"며 "뒤늦은 감이 있고, 국민들이 혼동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신당 측이 사실상 노 대통령의 '재수사 검토 지시'를 일종의 '물타기 시도'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 노 대통령의 뒤늦은 '검찰 재수사 지시'로 이번 사건을 유야무야 넘어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셈이다.

특히 최 대변인은 "재수사를 하라마라 할 것이 아니라 내일 특검법이 통과되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인지 아닌지 노 대통령이 판단만 하면 된다"고 쏘아붙인 대목에선 검찰은 물론이고, 노 대통령도 더 이상 우군으로 신뢰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까지 묻어난다.

그는 "오늘 청와대가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다"며 "내일 특검법이 통과되면 어떻게 할 것인지, 오늘 피력하든지 내일 통과된 후 피력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최 대변인의 이날 발언은 삼성 특검과 마찬가지로 청와대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둔 노 대통령에 대한 경고사격으로 해석된다.

한나라, "재수사든 특검이든 얼토당토않다"

청와대에 대한 신당의 입장과는 별개로 한나라당은 "청와대가 선거 막판에 신당을 지원하겠다는 노골적 선언을 했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박형준 한나라당 대변인은 "청와대마저 범죄자들을 매개로 한 반이명박 동맹에 지원군으로 나섰다"며 "정권 연장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마각을 드러낸 것"이라고 청와대와 신당을 싸잡아 맹비난했다.

그는 "정권 교체를 저지하기 위한 마지막 발악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며 "재수사든 특검이든 모두 얼토당토않다"고 일축했다.

과거의 적으로부터는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을, 또 과거의 우군으로부터는 '적과의 동침'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청와대는 진퇴양난에 빠진 듯 한 모습이다.

검찰, "'이명박 동영상' 재수사 단서 되지 않는다"

한편, '이명박 동영상'과 관련해 검찰은 "재수사의 단서가 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 하고 있어 청와대와 검찰 간 충돌도 우려되고 있다.

이번 수사를 담당한 김홍일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이날 공개된 동영상과 관련해 "BBK 소유주 문제는 객관적 물증, 자금 추적, 참고인 조사를 통해 결론이 내려진 것"이라며 "검찰의 결론에 하등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차장검사는 "기존 동영상 내용이나 인터뷰 내용과 이번 동영상은 별반 차이가 없다"며 "객관적 물증으로 결론이 난 이상 이번 동영상은 재수사의 단서가 되지 않는다"고 재수사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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