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담회가 대안을 모으는 토론이 아닌 만큼, 14일 진행된 진보전략회의(준)의 1차 집담회에서는 현주소, 책임, 역할 등 다양한 생각들이 쏟아져 나왔다. 미국의 사례를 볼 때 현재의 교육정책이 몰고 올 폐해는 분명해 보인다. 그렇기에 집담 과정에서는 한국 사회의 '고등교육' 즉 '대학교육'을 중심으로 학문의 주체들이, 현실적 조건에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들이 개진됐다.
주 발표를 맡은 최갑수 서울대 교수는 '미국의 기업자유주의와 고등교육 재편'이라는 주제로 Clyde W. Barrow의 저작인 '대학교육과 자본주의 국가(Universities and the Capitalist State)'의 주요 내용을 요약해 설명했다. 아울러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국립대 법인화 추진 과정, 경영형 총장제, 최근 대학의 이사회 구성에 따른 '기업형 연구 대학으로의 전화' 과정들을 비유해 설명했다.
▲ 진보전략회의(준) 1차 집담회의 모습 |
최갑수 교수는 "국가론의 관점에서 미국의 대학변화를 추적한 이 책은 구체적인 사례 소개가 많은 흥미로운 자료"라고 강조하며, 19세기 말까지 자율적이었던 대학이 이후 수십 년간의 과정을 거치면서 어떻게 대학의 자율성을 상실해 가고, 교수들이 자신의 노동(학문 탐구)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며, 정신노동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설명했다.
문제는 대학 선생, 교수들이 '정신노동자'로, 노동계급의 한 분분으로 전락했다는 점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서서히 나타나는 학문 자율성의 침해, 재계의 요구가 관철되고, 스스로 검열하게 되면서, 미국의 지식 세계가 불완전하고 불안정하게 재편됐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1860년대부터 1930년대에 이르는 기간 동안, 미국 대학의 이사진 구성의 변화와 미국의 기업형 연구대학으로의 전환 과정. 그리고 대학의 이사진으로 대거 영입된 은행가, 법률가, 기업가 들이 내놓은 '대학의 경제적 효율화를 위한 기업의 경영기법 도입'의 과정. 그리고 이 같은 재계의 이해관계가 고등교육에 관철되는 흐름 등.
미국의 대학 교육에 테일러의 과학경영, 사업공학, 효율성 운동 등이 도입 돼 교육과 연구에서 경비 산출을 평가할 수 있는 계산법까지 등장하면서 강의의 표준화, 지식의 표준화, 기업합리화의 연장선상에서 대학의 구조조정, 학과 통폐합, 교수의 노동자화 등의 일련의 과정들이 진행되게 된다.
그리고 대학의 차별화와 대학 경쟁체제가 도입되면서 수많은 대학들이 등장하지만 실제로 좋은 대학이 성장하기 보다는 의도적으로 몇몇의 대학들이 육성되는 형태로 미국 교육이 재편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핵심은 기업의 이해에 의해 대학이 재편되고, 이에 저항하는 교수들은 해직당하거나, 기업에게 민감한 문제나, 사회 도덕적으로 민감한 문제들에 입을 다물게 됐다는 것이다.
이 책은 구체적 사례로, 전 브라운 대학 총장직을 역임했던 벤자민 엔드류스 교수나, 존 R 코먼스 교수가 해직된 사례 그리고 미국대학교수협회(AAUP)가 만들어 지고 허망하게 연금안에 타협하면서 평가제를 수용하게 된 예를 들었다.
최갑수 교수는 "해직되거나, 교수직 계약 갱신 과정에서 이사진의 비위를 맞춰야 하니, 당시의 교수들은 학문의 자유 보다는 교수직에 안주하며, 기업 자유주의에 투항했던 것"이라고 지적한 책의 내용을 강조했다.
경제학 교수가 정치 제도에 대해 발언권을 가질 수 없도록 서로의 학문 영역이 고립되고, 학교의 비리를 폭로할 경우 해교 돼, 처벌을 받는 것이 너무 당연해 침묵을 해야 하는 기가 막힌 시스템이 등장한 셈이다.
최갑수 교수는 "대학의 교육과 학문이 비판적 성찰을 할 수 있기 위해서 대학을 문명적 가치로 끌어올리려는 교수단의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우리 대학은 학문탐구의 독일식 모형의 근대대학을 온전히 정립하지 못한 채, 무한 경쟁에 휘말린 상태"임을 역설했다.
아울러 "우리의 대학이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대외적으로 종속된 상황"이라며 "특히 한국의 대학이 문명의 생산 공간으로 성찰적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