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의 ‘고질병’에 대한 정책과 대안이 필요하다

[미끄럼틀:이와중에문화정책](5)2007대통령선거 문화연대 정책공약 제안 : 체육

한국의 선거가 언제 정책선거였던 적이 있었겠냐마는, 이번 선거는 특별히 더 심각하다. 정책, 공약, 비전 등의 낱말은 선거의 한켠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오직 ‘BBK’라는 영어 알파벳만이 선거판을 지배하고 있다. 한미FTA, 비정규직 차별 등 한국사회의 당면한 현안이자 근본적인 구조개편을 의미하는 이슈에 대해 말하는 후보는 소수에 불과하다. 몇 %의 경제성장, 몇백만 개의 일자리를 말하는 후보는 있지만, 우리들 중 그 누구도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심지어 자신이 내 건 공약조차 지키지 않는(노무현 정권을 보라!) 한국의 선거 현실에서 우리는 왜 정책을 말하려 하는가? 한 마디로 말해 “이 와중에 웬 문화정책”인가. 이는 각 후보진영에 대한 정책제안이기도 하지만, 이 보다는 우리들 자신에 대한 ‘공약’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문화적 권리의 증진과 문화적 삶을 확대하기 위한 문화정책의 현안과 전망을 구체화하고, 이후 문화운동의 과제로 삼겠다는 다짐, 즉 ‘공약’인 것이다.

[이 와중에 문화정책]은 ① 문화일반, ② 예술, ③ 청소년-문화교육, ④ 미디어, ⑤ 체육 등 총 5회에 걸쳐 연재될 계획이다. 이번에 제안되는 문화정책 과제를 통해 문화정책의 현안과 과제를 확인함과 동시에 공공적이고 민주적인 문화정책의 필요성까지도 논의될 수 있기를 바란다.
-[기획연재를 시작하며]

시쳇말로 ‘월드컵’과 ‘올림픽’을 모두 개최한 나라 아니던가. 체육계에 드리운 채 걷히지 않는 암울한 그림자를 말하기에 앞서 푸념이 앞선다. 탁구채 하나로 온 국민을 울고 웃게 했던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이 있었고, 나가기만 하면 금메달을 싹쓸이 하는 쇼트트랙이 있으며, 월드컵 4강과 WBC 4강에 빛나는 우리의 축구와 야구가 있지 않은가. 사실 지난 수십 년 간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몇몇‘위대한 대한건아들’이 투혼을 앞세워 나아가면(= 엘리트 체육을 발전시키면), 덩달아 우리도 좋아질 거라고(= 생활 체육도 발전할 것이라고)... 하지만 ‘86아시안게임’을 개최한 지도 20년이 넘었건만, 또 월드컵을 개최하고 4강에 든 지도 5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아니 달라진 게 없지는 않다. 한강변에 조깅트랙도 생겼고, 약수터에는 운동기구도 마련되었으며, 주말 마다 조기축구회는 ‘성업(?)’을 하고 있다. 또한 수십만 원 대의 인라인스케이트를 살 정도의 경제적 여유만 있다면, 여의도 공원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달라지지 않은 상황이란 건 무엇인가? 앞서 ‘체육계에 드리운 암울한 그림자’로까지 표현한 상황이란 과연 무엇일까? 체육계의 고질적인(?) 현안이 되어버린 3가지 문제를 짚으면서, 대선과 관련한 문화정책의 과제를 생각해 본다.

피라미드를 연상시키는 학원체육

학원체육은 마치 ‘피라미드’와 같다. 박지성, 이승엽과 같은 클래스의 선수가 되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 아니 대부분의 학생 선수들에게는 프로가 되는 것, 국가대표가 되는 것, 대학에 가는 것조차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 마냥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경쟁의 과정에서 탈락한 선수들은, 그 동안 제대로 된 교육 한 번 받아보지 못한 상황에서 운동 이외의 삶에 적응하는데 힘들어 하고 있다. 더욱 문제인 것은, 이 과정에서 가히 ‘인권유린’에 가까운 학대가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폭력, 선수학대, 학습권 박탈, 스카우트 비리, 돈거래, 합숙 등 가히 ‘인권유린’ 혹은 ‘청소년학대’라는 말이 적합할 만큼 학원체육은 병들어 있다. ‘상급학교 진학’이라는 지상목표를 위해 아이들이 학대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4강제도(소속팀이 4강에 들어야만 대학입학을 허용하는 제도)의 문제점이 지적되고, 상급학교로의 진학에 일정 수준 이상의 학력 기준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정책 대안이 제시되었지만 아직 변화는 미미하기만 하다. 2003년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참사(2003년 3월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 화재로 초등학교 축구부원 8명이 목숨을 잃고, 17명이 중상을 입은 사고)와 같은 해 있었던 레슬러 김종두 군의 사망사건(전국체전 출전을 앞두고 평소 체중 54kg에서 46kg으로 무리한 감량을 시도하다 숨진 사건) 등 연이은 사건사고에도 불구하고, 학원체육의 병폐는 근본적으로 치유되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4강에 들어야만 상급학교 진학이 보장되고, 학부모의 후원금으로 운동부의 존립이 좌우되는 현실에서 학원체육은 고질적인 승부지상주의와 이기기 위한 시합만을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피라미드와 같은 학원체육의 병폐를 없애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4강입상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그리고 고교 및 대학 진학시에 요구되는 학력평가의 최저점수를 점진적으로 상향조정하여 학생선수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고, 학생 선수들의 수업시간 중 훈련을 불허하고, 수업참여를 의무화하는 등의 추가적인 조치가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농사 대신 골프를!

‘00 공화국’이라는 말이 많다. ‘삼성공화국’, ‘부패공화국’ 등. 그렇다면 체육정책과 관련해서는 어떤 공화국이 어울릴까? 단연 ‘골프공화국’이다. 2007년 7월 현재 전국에는 총 263개의 골프장이 운영 중이며, 100개의 골프장이 건설 중이다. 합쳐서 363개의 골프장이, 전 국토의 약 0.2%를 뒤덮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정부에서 골프장 확대의 필요성을 제기할 때마다 인용되는 일본을 살펴보자.

일본에 무려 2,440개에 달하는 골프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간이 골프장, 퍼블릭 코스 등이 많아 면적으로 따지자면 국토의 약 0.04%가 골프장이다. 국토 대 골프장 면적으로 따지자면, 한국은 일본에 비해 다섯 배의 ‘골프장 집약도’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골프장 집약도’가 높다고 해서 ‘골프공화국’이라고까지 말하는 건 무리가 아니냐고 대번 지적할 수 있겠다. 그런 분들은 다음의 사례를 참조하시길 바란다. 정부가 발표한 <2단계 서비스산업 경쟁력강화 종합대책>에는, 골프장 확대를 위해 ‘ 경작환경이 열악한 농지를 농민이 자발적으로 주식회사를 결성하여 현물 출자한 지역에 대중골프장을 건설을 지원(부담금 세금감면, 부대시설 설치 규제개선 등을 통해 건설비용 절감 및 수익성 확보 도모)한다’는 내용이 있다. 농사짓는 대신에 골프장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말 ‘골프공화국’에 어울릴만한 어이없는 정책이 아닐 수 없다.

골프 인구가 늘어났다고는 하나 골프는 여전히 일부계층이 즐기는 고급엘리트스포츠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스포츠는 국민 여가생활의 중요한 항목이지만, 여전히 스포츠에 접근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이 높을뿐더러 지역간 소득간 격차도 큰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생활스포츠 인프라 확충 등 사회 전계층의 건강과 여가생활 증진을 위한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골프장 공급 확대 정책은 정책의 형평성, 예산사용의 우선순위 등에서 문제가 크다. ‘골프장 공급 확대’의 이름 아래 진행되고 있는 각종 세제 혜택과 국고 지원 계획을 철회하고, 신규 골프장 건설 인가 전면 중단, 그리고 골프장에 대한 문화환경영향평가 실시 등의 대책이 시급하게 요구된다.

지자체의 로또, 국제스포츠이벤트!

지자체의 3수! 대학입시도 아니고 지자체가 무슨 3수냐고? 얼마 전 강원도가 동계올림픽 유치 3수에 도전하겠다고 나섰다. 최근 한국의 지자체들은 국제스포츠이벤트 유치를 위해 앞다투어 나서고 있다. 이미 대구와 부산이 각각 세계육상선수권대회와 아시안게임을 유치한 상황에서, 강원도가 평창 동계올림픽을, 부산은 2020년 하계올림픽을 유치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전북은 세계사격선수권대회, 동계아시안게임, 세계레슬링선수권대회를, 전남은 포뮬러1대회와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제주는 동아시아대회를 유치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국제스포츠이벤트를 유치하기만 하면 ‘지자체 주민의 대동단결(?)’로 지자체장의 명예는 드높아지고, 이에 따라 중앙정부의 막대한 예산을 ‘따는’데도 커다란 도움이 되니, 그야말로 1석2조, 1석3조의 효과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국제스포츠이벤트 유치에 나선 지자체들이 표면적으로 밝히는 유치 신청의 이유는 바로 ‘지자체의 국제사회 내 위상 증대’와 이를 통한 ‘관광객 유치’, ‘경제 활성화’ 등이다. 하지만 스포츠이벤트를 통한 관광객 유치 효과는 미미하거나 없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월드컵 경기와 아시안게임을 치른 부산의 경우, 2000년 163만 명이던 관광객 수가 월드컵과 아시안게임 직후인 2002년에 200만 명으로 잠깐 늘어났지만, 2003년에는 147만, 2006년에는 141만 명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관광객은 한 번의 스포츠이벤트로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관광자원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경제효과 또한 제한적이고 한시적이다.

사실 지자체가 밝히는 경제적 효과에는 경기장, 도로, 숙박시설 등 개최 기반시설에 쏟아 부어야 할 엄청난 비용까지가 포함되어 있다. 이로 인해 겉으로 보기에는 지자체가 밝히는 경제효과란 것이 마치 지역에서 온전히 벌어들일 돈처럼 보이지만, 이는 눈속임에 불과하다. 결국 시민들이 시설비용을 고스란히 부담해야만 할 뿐이다. 3수까지 하며 동계올림픽 도전을 선언한 강원도는 문제가 심각하다. 올림픽 유치에 매달린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평가하는 여론이 일고 있는 가운데, 강원도는 올림픽 유치를 위한다며 알펜시아 리조트 건설이라는 1조 4천억짜리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벌이면서 이를 위해 부족한 재원을 수천억원의 지방채로 충당하고 있다(참고로 강원도의 연간 예산은 2조 5천억원임). 이대로 가다가는, 남발하게 될 지방채 발행이 결국 공공요금의 인상 등을 통해 강원도민에게로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무분별한 국제스포츠이벤트 유치에 대한 검증을 강화해야 한다. 지자체가 국제스포츠이벤트 유치를 신청하는 경우, 시설 확충에 대한 문화환경영향평가 및 경기장 사후활용방안 등에 대한 사전 조사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대규모 경기장 건설로 인한 환경파괴를 방지하고, 민간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연구용역을 의무화함으로써 유치 신청 이전에 지역 단위에서 실질적인 사전 의견수렴과정을 거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스포츠이벤트 유치를 마치 ‘로또’처럼 여기는 지자체들의 관행을 뿌리 뽑아야 한다.

대통령 선거다. 하지만 ‘BBK’를 제외한 어떠한 것도 대선의 이슈가 되지 못한 채, 대선 후보들의 체육정책은 가장 현안이라 할 수 있는 문제들은 제외한 ‘복지공약’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권영길 후보를 제외하면, ‘월드컵’과 ‘올림픽’을 모두 개최한 나라에 걸맞는(?) 체육정책을 내세우는 후보는 단 한 명도 없다. 이대로라면 앞으로의 5년도 지난 10년, 20년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관전’만 하기에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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