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것이야말로 진짜 삶, 침묵은 곧 죽음!

[대선후보들, 성소수자 인권과제 좀 들어보슈](9) - 성소수자가 말하는 대선

쌀쌀한 바람이 불었던 지난 일요일, 대학로에는 무지갯빛 옷을 입고 무지개 색깔의 엽서와 떡, 피켓과 징검다리 조형물을 가지고 수십 명이 모여들었다. 대선 전 마지막 일요일에 이들이 벌인 것은 “2007 대선 차별 없는 세상! 평등사회를 향한 무지개 징검다리 만들기” 캠페인이었다.


우리 ‘차별금지법 대응 및 성소수자 혐오, 차별 저지를 위한 긴급 공동행동’(성소수자 긴급행동)이 대선을 맞아 준비한 이 캠페인은 앞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성소수자 인권 과제로서 ‘2007 대선 성소수자 10대 요구안’을 알리는 자리였다. 또한 차기 대통령과 정부가 다양성과 인권을 존중해야 하며 시민들이 그럴 수 있는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고 외치는 행사였다. 두 시간 동안 진행된 이 캠페인에서 참가자들의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고 열정은 뜨거웠다. 시민들도 주머니 속의 손을 빼어 우리가 준비한 무지개 엽서와 무지개떡을 받아들고 한참을 관심 있게 살펴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참가자들은 각자 확성기로 요구안을 알리고 구호를 외치며 무지개 징검다리 조형물을 건너가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해 가는 퍼포먼스를 진행하며 화기애애하게 행사를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의 모습이 자꾸만 흑백 사진 속 컬러 빛깔처럼 낯설어 보였다.


경제가 발전하고 가족이 행복하면 그만인가?

성소수자 긴급행동은 대선 기간 동안 활발한 활동을 벌여 나갔다. 10대 요구안을 만들어 대선 후보들에게 전달하고 시민들에게 알리는 것 이외에도 각 후보들에게 청소년 성소수자, 성소수자 관련 인권 교육,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등 성소수자 당면 과제에 대한 질의서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열두 후보 중 민주노동당 권영길, 한국사회당 금민, 무소속 이회창 후보 등 세 후보만이 답변을 주었던 것이다. “이성애만이 정상”이라며 동성애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후보도, 가족 정책에서 비전을 제시하겠다는 후보도, 사람 중심을 외치는 후보도 모두 침묵으로 일관했다. 답변을 준 이회창 후보 역시 인권과 기본권 침해에 대한 물음에 “동성애=문란”의 편견을 가지고 답변에 임했다. 앞서 차별금지법과 관련한 질의 역시도 권영길, 금민, 정동영 후보만이 답변을 보내 왔었다.

진보 정당 이외의 후보들의 이러한 모습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인권 이슈 중 하나인 성소수자 인권 과제에 대한 무관심을 보여준다. 결국 이는 대선 후보들이 국가가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인권과 다양성을 무시하고 챙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것은 지난 일요일의 캠페인이 낯설었던 이유와도 관련된다. 대학로에서 우리는 경제 살리기와 행복한 가족, 강력한 국가 등의 슬로건이 적힌 플래카드와 유세, 그리고 부정 의혹에 대한 규탄 속에서 캠페인을 벌여야 했다. 결국 대선 시기 모든 의제가 오직 ‘경제’와 ‘가족’으로 표상되는 물질적이고 중산층적인 일상의 안락함을 향하고, 대선 후보의 참과 거짓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이 상황에서 ‘인권’과 ‘다양성’은 아예 대선 담론의 틈바구니에서 설정조차 되지 못했던 것이다.

성소수자들은 묻는다. 정말로 대통령과 정부가 만들려고 하는 살기 좋은 사회가 단지 경제가 발전하고 가족이 행복한 사회인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오히려 경제적인 문제에 상관없이 모두가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을 때, 가족 구성원으로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그 개인으로서 행복할 때, 경제 문제도 가족 문제도 해결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인권과 차별 없음과 다양성과 조화이다. 바로 우리 성소수자들이 인권과 다양성을 매우 중요한 대선 의제로서 제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소수자들은 알고 있다. 침묵은 곧 죽음이라는 것을..

그래서 성소수자들은 말한다. 이 사회의 억압을 온몸으로 일상과 공적 생활 속에서 견뎌내야 하는 성소수자들이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진정으로 살기 좋은 사회라고. 그러므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사회구성원들이 전반적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마련되어야 하며, 전면적인 인권 교육을 실시해야 하고, 성소수자들이 가족구성권에 있어, 군대에서, 에이즈 예방 정책에서, 성폭력 제도에서, 또 트랜스젠더/성전환자, 청소년, 여성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피해를 입지 말아야 한다고, 이 폭발적인 정치의 장인 대선에서 우리는 말한다.

정치적인 것의 힘은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대통령으로 표상되는 정부가 가지고 있는 힘이기도 하다. 이것이 대선의 중요성이다. 대선 후보들의 부정적인 시각과 대선에 대한 냉소를 넘어 우리는 나서야 한다.

바로 내일이 대선이다. 대선 후보를 선택할 때 우리는 인권과 다양성을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가를 가장 먼저 판단해야 한다. 진정으로 자유와 평등, 인권과 다양성을 옹호한다면 투표소 안팎에서, 기표 도장을 들든 들지 않든 우리의 확고한 의지로, 또 주위에 대한 설득으로 그 가치를 빛나게 하는 힘을 보여줄 때다.

아직 늦지 않았다. 움직이고 말하자.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싸우는 것이야말로 진짜 삶이며, 침묵은 곧 죽음이라는 것을!
덧붙이는 말

오가람 님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으로, 성소수자공동행동 대선대응팀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