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여, 돼지슈퍼를 돌려 달라

[미끄럼틀:한장의정치](18)동네사회 인정상 미국산 쇠고기 안팔아!

사이버정치놀이터 '미끄럼틀'이 오픈했다. 문화연대는 '미끄럼틀'에 대해 "급진적 행복을 찾아 상상력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라고 소개했다. 민중언론참세상은 '미끄럼틀' 중 '한장의 정치'를 기획 연재한다. '한장의 정치'는 "새로운 사회, 급진적 정책을 상상하고 공론화하기 위한 정책칼럼"으로 "만화가, 미술작가, 활동가, 교사, 평론가, 교수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운동과 함께해온 이들이 상상하는 정책칼럼이 게재될 예정"이다.[편집자주]


돼지 슈퍼 아줌마는 반장 아줌마 보다 더 영향력 있는 정보통이었다. 아줌마는 우리 집 다섯 식구의 나이뿐만 아니라 세끼 밥상에 오르는 반찬의 품목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때로는 6학년 4반 반장과 쌈질을 하고 들어와 저녁 식사를 보이콧하고 우울해 하는 나의 이유를 엄마에게 설명하는 대단한 능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 동네는 돼지 슈퍼를 중심으로 관계의 망을 형성했다.

돼지 슈퍼 옆의 정육점은 며칠 후 들어올 소고기의 육질에 대해 일주일 전부터 정보를 제공했고, 그날이 되면 엄마들은 정육점 앞에 줄을 섰다. 그리고 딸내미, 아들내미의 학교생활에 대해 공공연한 정보를 공유했다. 아마 지금도 돼지 슈퍼와 정육점이 건재했다면, 광우병 위험이 있다고 소문난 미국산 수입 쇠고기 같은 것은 동네 인정상 절대 팔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동네 사회였다.

언제 부터인가 동네 슈퍼를 쳐다보지 않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번, 대형 마트에 가서 달걀 한판, 양파 한망, 냉동 식품 한 보따리 등을 소비하기 시작하면서 한 달 생활비는 대략 네 번 정도의 생필품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계산되어졌다. 갓 결혼한 이후 깨끗하고 편리하게 비치된 물품들을 찾아 당연하게 이마트, 때로는 홈플러스, 때로는 롯데마트에서 장을 보게 되었다. 물건이 싸다는 생각과 모든 것을 원스톱으로 소비할 수 있다는 편리함에 길들여졌다. 맛깔스럽게 포장된, 정갈하게 정리된 물품들을 보면서 꼭 필요하지 않은 상품들을 소비하는 여분의 욕망이 과소비와 이어지고 있음을 분명 인지하면서도 대형마트에서 장 보는 일은 일주일의 일과 중 빠지지 않았다. 이렇게 편리한 생활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차도 필요했다. 그래서 결국 없는 살림에 차도 한 대 장만하게 되었다.

국내 최초의 대형마트는 이마트로 1993년 11월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고 한다. 물건이 싸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매출은 급속하게 증가했고, 이마트가 많은 수익을 창출하자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다른 업체들도 할인점 시장에 하나 둘 진출하기 시작, 1996년 유통시장 개방과 함께 현재 국내 대형 마트의 수는 300여개에 육박하는 숫자가 되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재래시장과 지역 영세상인의 몰락을 불러왔고, 전체 소매유통시장 규모 136조원 중 48%이상을 점유하게 되었다.

대자본과 첨단 경영기법, 쾌적한 쇼핑공간과 질 높은 서비스, 저렴한 가격이라는 이미지로 포장된 대형마트는 그 이면에 가격인하에서 밀린 재래시장의 위축, 납품단가 인하로 인한 중소납품 업체 경영 악화, 지역경제 잠식으로 인한 침체와 불균형발전이라는 폐단을 낳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랜드 뉴코아 사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80% 이상의 불안정 고용형태로 인한 노동권 침해까지 다양한 문제들을 낳고 있다.

얼마전 한 다큐프로그램은 캐나다에서 일고 있는 1000마일 운동(약 1600km)을 소개했다. 이것은 지역 내에서 생산된 것을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운동이라고 한다. 운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일주일에 한번 열리는 벼룩시장을 이용해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물품을 필요한 물품으로 바꾸기도 하고 아침마다 직거래장터를 이용해 갓 구운 빵이나 농산물을 구입한다. 물건을 파는 이들은 장바구니를 가지고 온 소비자에게 조금 더 혜택을 주고 있다는데, 이렇게 시작된 운동은 캐나다 전 지역으로 조금씩 그 영역을 넓혀가는 중이라고 한다. 자기 지역에서 생산된 것을 지역 주민들이 소비하고 다시 이를 바탕으로 지역에서의 생산이 가능하게 되는 경제적 순환구조를 가지자는 의도일 것이다.

돼지 슈퍼 아줌마가 돈을 벌면, 아줌마는 그 돈으로 동네 문방구에서 아이들 학용품을 사고, 문방구 언니는 옆집 정육점에서 돼지고기를 샀다. 동네에서 서로 소비자가 되고 판매자가 되고 때로는 생산자가 되는 것이 동네 경제였다. 하지만 이제는 규제 장치 없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대형마트로 인해, 돼지 슈퍼 아줌마도 문방구 언니도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고 말았다. 이들은 0개월 계약서의 캐셔가 되었고, 납품업체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어 끊임없는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러나 동네의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대형마트는 자신들의 이윤을 대자본, 외국자본으로 돌릴 뿐 동네사람들에게 아무런 혜택을 주지 못한다. 결국 신발가게 아저씨도 울면서 동네를 떠났고 돼지 슈퍼도 문을 닫았다.

뿐만 아니라 대규모 마트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판단이 들자, 이들은 SSM(슈퍼슈퍼마켓)이란 이름으로 500평에서 200평까지의 중소형 슈퍼마켓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GS슈퍼마켓, 롯데슈퍼, 킴스클럽 등이다. 이들도 벌써 전국 200여 곳 이상에서 체인점을 오픈한 상태이다. 그야말로 동네를 대자본의 영향하에 싹쓸이하겠다는 의도인데, 현재로써 이를 막을 수 있는 규제 법안은 없다.

영국의 노리치 언탱스로드(Unthank Road)시에서는 시의회가 나서서 테스코 익스프레스(삼성 테스코와 같은 기업이다)의 매장 설립 허가를 반대하는 운동(STOP Unthank TESCO)을 벌여, 테스코의 신청을 불허한 사례가 있었다. 이들은 “테스코 매장이 들어서니까, 곧바로 6개 소매점이 문을 닫았다”면서 우리 상점, 우리 시장을 지키겠다는 주민들의 의지를 모아, 이를 성사시켰음을 자랑스럽게 말했다(한산신문 hansan.newsk.com/ - 재래시장과 대형마트 공존의 길은 없는가 인용).

유통자본의 이윤 추구로 인한 지역 경제의 몰락, 단순한 지역 경제 순환구조의 몰락이 아니라 동네 공동체를 사라지게 만들고, 더 크고 더 많고 더 편리하고자 하는 욕망을 빠르게 순환시키는 결과로 나가고 있다. 문 닫은 돼지 슈퍼 자리에는 몇 년 사이 여러 개의 간판이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하고 있다. 그 사이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동네를 떠났고 이제 추억마저 허물어진 자리에는 모든 것이 낡아버린 채, 사람들의 가난만이 몰아치고 있다. 대형마트여, 내게 돼지 슈퍼를 돌려 달라. 정부는 뭘 하는가, 대형마트 규제하라. 한마디 더하자, 이미 들어선 대형마트는 동네 사람들을 위한 시민문화센터로 전환하라. 더 이상 대형마트 필요 없다. 있는 것도 없어져라.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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