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 사장의 집권과 정치구조의 변동

[이명박시대 전망](5) - 정치정세 전망

하인리히 법칙

1:29:300. 이것이 하인리히 법칙이라고 한다. 대형 재해가 발생하기 전에, 적어도 29번의 경미한 사고와 300번의 사전 징후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주로 자연 재해에 해당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300번의 이상 징후를 가볍게 여기다가 대형 재해를 맞게 된다고 한다. 자연 재해와 다른 것이 있다면 정치에서는 알고도 얻어맞는다는데 있다. 최소 300번 이상의 사전 징후가 있었고, 크고 작은 사건들에서 현 집권세력의 몰락과 한나라당의 집권이 예고되었다. 결국, 누구나 예상했던 일은 터지고 말았다.

노가다 사장의 집권
-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 기업자유주의의 도래


이명박의 당선의 핵심 화두를 꼽으라 한다면 그것은 ‘능력’이다. 이명박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그가 보여 준 능력에 있다. 노가다 사장, 건설회사 CEO 출신인 이명박에 대한 기대는 서울시장 때 보여 주었던 청계천 복원공사나 교통체계 개편과 상통하는 힘있는 추진력이었다.(노가다란 표현이 혹시라도 건설노동자들을 폄하하는 말로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범여권이 ‘부패’를 들고 나왔다면 이명박은 ‘정부의 무능’ 즉, 자신의 능력을 무기 삼았다. 때문에 이명박에게서 정치적 위기는 도덕성이나 과거의 추문으로는 나타나지 않았다. 국민의 3분의2가 BBK의 검찰 수사 결과를 믿지 않는다고 하고서 절반의 사람들이 이명박을 지지했다. 대선 막바지 이명박 동영상은 지지를 철회하기보다 거꾸로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최대 변수로 보여지는 BBK 사건은 우선 특검을 통해서 일단락 될 것이다. 특검에서도 기소불가라는 입장이 나오면 그것으로 이 사건은 끝이다. 만약 대통령 취임전 기소되더라도 법원에서 당선된 대통령의 무효판결을 내리는 것은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일이다. 취임 이후에는 기소할 수는 없겠지만 정치권 내에서 소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총선을 앞두고 서로가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흐지부지 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 BBK는 큰 변수가 아니다.

대신 이명박은 대통령으로서 뭔가 보여드리겠다고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 이것이 반노무현 선거로 치러진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에게 부여되었던 사명과도 같은 것이다. 당선되자마자 부시대통령과 가졌던 전화통화는 여보란듯 한 유치함마저 엿보였다(후보시절 이명박 진영에서도 인정한 최대로 민망한 사건이 부시대통령과의 면담 무산이었고, 이 때문에 이들이 무능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야 말로 그를 정치적 위기로 내모는 최대의 자충수가 될 것이다.

이명박이 보여줄 것은 더 많은 규제완화, 더 많은 기업도시, 더 많은 경제개방, 더 많은 민영화, 시장화 일 것이다. 재벌출신 정치인으로서 그는 유세 때마다 기업 활동을 잘할 수 있는 나라, 규제가 없는 나라, 투자 잘되는 나라로 바꾸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당장 재계가 이명박의 당선을 밝혔고 재벌들이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처럼 이명박 신정부의 등장은 단순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편승하는 것을 넘어서 기업자유주의의 본격적인 도래를 의미하는 일이다. 그만큼 노동자 민중의 삶이 고단해 지는 것이다.

87년 체제의 해체와 실용주의의 확산

신자유주의 정책은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구조를 낳게 된다. 상시 구조조정으로 만연한 노동불안정화, 금융팽창에 따른 부동산, 주식, 채권 등 자산시장의 급격한 변동, 공공서비스 민영화로 인한 복지의 후퇴로 인해 다수의 사람들의 삶의 질 저하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도 정치세력의 확장과 신자유주의 지지세력들의 정권교체를 통해 대중의 불만을 정치적으로 수렴시켜 나가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것이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이다. 서로 비슷한 정책들을 갖고 있지만 정치적으로 반목하는 정치집단의 구조를 통해 바닥으로의 질주를 하면서도 대중의 불만을 마무시켰다.

중도세력으로서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은 신자유주의 10년과 같다. 결국 국민대중은 이들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대신 또 다른 신자유주의 세력을 받아 들였다. 신정부는 노골적인 친자본적 기업자유주의 정책들을 공약화 했다. 그런데도 국민대중이 이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은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이 정치적으로 안착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자유주의 넘어선 대안세력의 형성을 구조적 봉쇄한 효과가 들어 먹혔다. 경쟁 체제의 형성과 대안 부재 속에서 홀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을 위한 노력은 실용주의로 나아갔다. 이것이야말로 97년 형성된 신자유주의 지배체제가 성공적으로 구사한 ‘정치의 결과’이다.

이명박의 당선에는 전통적인 보수 지지성향의 유권자 외에 유래없는 20대의 전폭적인 지지, 서울 및 수도권의 지지가 밑받침 되었다. 그렇다고 이들을 전부 보수화 되었다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많은 조사에서 드러나듯 정치적으로 보수화되었기 보다는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에서 고단한 삶의 탈출구를 찾고자 한 것이다. 국민대중에게 민주 대 반민주라는 87년 체제의 패러다임은 이미 낡은 것 또는 무용한 것이다. 대신 실용주의로의 급속한 쏠림을 보였다. 대안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대중의식은 자본에 더 깊이 편입되고 있다. 자본에 더 충실한 정권의 탄생을 불러 온 이유다.

양당제, 다당제? 아니, 1.5정당!

이번 대선과 총선을 놓고 보수의 분열과 개혁진영의 단일화 실패로 인해 양당구조에서 다당제로 가는 길목인가 아닌가가 얘기되고 있다. 87년 체제의 해체와 더불어 다원화된 사회에 맞게 양당구조에서 다당구조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지만 이것은 자유주의 세력들의 주관적 전망일 뿐이다. 다당제나 양당제는 둘이든, 셋이든 세력이 팽팽할 때 얘기다. 그런데 지금 과연 그런 조건인가? 대부분의 후보가 대선에서 완주했고 총선은 대선의 연장전이다. 게다가 대선구도가 그대로 총선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이미 정계개편은 이루어지고 있고 대선은 그 중간 결과로 보면 된다. 때문에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정당 지지율은 변하겠지만 기본 구도의 변화가 예측되지는 않는다.

또한, 한국의 제도정당은 이념정당 형태로는 진입이 거의 불가능하다. 기본적으로 지역에 기반해 있어야 크건 작건 생존해 나갈 수 있다. 최소한 민주노동당과 같이 계급계층에 특수한 기반을 두고 있을 때에만 생존이 가능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문국현의 창조한국당이 제도권에 안정되게 진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비록 기존 범여권과의 차별화를 위해 대선완주를 하였고 민주노동당에 비해 높은 득표율을 거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런 지역기반 없이 형성되었고 그나마 후보의 인지도 때문에 대선에서 일정한 득표가 이루어졌다. 후보보다 더 낮은 당의 인지도를 생각할 때 이들의 총선 전망은 매우 어둡다.

이회창의 보수신당의 경우 얘기가 좀 다르다. 생존 확률이 높다. 영남 일부와 충청권의 지지를 등에 업은 상황에서 보수신당의 가능성은 그만큼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분열되지 않는 한, 보수신당은 국민중심당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미 한나라당과 보수진영으로서는 김종필의 분리와 자민련의 형성 그리고 대선패배라는 10년 전의 실패를 학습한 바 있다. 그래서 오히려 이들은 보수신당 쪽과 경쟁하기 보다는 세련된 방식으로 보수진영의 통합을 추진해 나갈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럼에도 총선에서 보수신당이 일정한 세력을 형성하게 된다면, 향후 정국은 보수 양당의 지배체제로 움직여 나갈 것이다. 어떤 경우든 제도정치권에서 정치전선의 ‘우로 이동’은 필연적이다.

따라서 총선까지 한나라당과 지배분파는 최대한 통합적 방식으로 정국을 운영해 나가려 할 것이다. 일본의 자민련과 같이 다당제도 양당제도 아닌 거대정당 체제로서 ‘1.5정당 체제’의 형성을 목표로 할 것이다. 현재 형성된 정치지형은 이 가능성이 더 높다.

신자유주의 넝마세력, 개혁주의의 몰락

범여권 재편은 불가피해 보인다. 정치구도의 변화없이 총선 패배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친노그룹의 행보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처음부터 노무현 대통령 또는 친노세력들은 범여권의 주요후보들을 죽이는데 골몰해 왔다. 고건, 정운찬, 손학규는 노 대통령이 직접 피를 묻혀 가면서 차례로 죽였고, 선거전에 돌입했을 때는 정동영과도 선을 긋고 문국현까지 따돌리는데 성공했다. 후임대통령이 전임대통령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자신으로서는 후임대통령이 누가 되는가에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다. 정동영과 관계가 틀어졌을 때, 노무현은 ‘한나라당이 집권한다고 해서 나라 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그 대신 참여정부평가포럼을 만들고 세력 구축에 나섰고 총선을 계기로 원내교섭단체 정도의 의원그룹 또는 독자 정당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움직여 나갔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 역시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노무현 퇴임 이후라 하더라도 반노무현 구도는 대선에서 총선까지 이어지리라 보인다. 그렇다고 신정부의 실패나 실수를 갖고 뭔가를 하기에는 대선과 총선 사이의 기간이 너무 짧다.

제도정치권에서 중대선거구제 합의와 같은 커다란 정치적 변화 없이 이들은 전국정당화마저도 힘들게 생겼다. 호남과 수도권 일부에서 지분을 갖는 정도로 지역정당화 될 가능성도 높다. 어찌되었건 국민 다수대중의 생존권 위기 앞에서 무력해진 반부패 전선의 몰락에서 이들은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어 보인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사회를 신자유주의 넝마조각으로 만든 것이 이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노선과 정책이 이명박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해야 한다. 비록 이들이 전국 정당화에 실패하건 성공하건 그것과 상관없이 이후 정책공방 속에서 신정부에 적대적 경쟁보다는 비판적 협력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노동당에 제갈공명은 없었다
- 천하삼분지계라는 신기루


민주노동당의 전략은 천하삼분지계라 할 수 있다. 지난 5·31지방선거 이후 시작된 범여권의 위기, 반노무현 정서를 업은 대안세력으로의 부상, 그리고 FTA 반대, 100만 민중대회 등을 통해 보수-중도-진보의 구도를 확고히 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이번 선거는 프레임 선거라고 한다. 이명박이 경제라는 프레임을, 정동영이 평화 프레임을 들고 나왔을 때 민주노동당은 어떤 프레임도 제시하지 못했다. 확고한 반신자유주의 프레임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도 없었고 시도도 없었다. 정동영이나 문국현의 꽁무니만 쫓아다니면서 반부패를 같이 외치기도 하면서 신자유주의 정권의 이중대로 인식되고 말았다. 애석하게도 민주노동당에는 반신자유주의 프레임을 밀어붙여 천하를 삼분할 제갈공명이 없었던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제안하여 시작하게 된 진보대연합 관련 논의도 민주노동당이 제 손으로 걷는 꼴이 되고 말았고, 100만 민중대회도 보잘 것 없는 형식적 동원 집회로 끝나고 말았다.

코리아연방공화국 논쟁은 둘째치더라도 정치를 정책으로 대체하고, 운동을 법안으로 대신하는 현재의 민주노동당식 운동에서 진보의 전망을 찾는 것은 무망한 일이다. 그리고 총선을 앞두고 분당론이 나돌고 있지만 이는 대선패배의 거친 분노를 표현한 것에 불과할 뿐이다. 기반도 없이 탈당할만큼 어리석지도 않겠지만, 자주파든 평등파든 제도정치에 너무 발을 깊이 들였다.

반신자유주의, 프레임 또는 전선 그리고 당

개혁주의는 몰락했다. 최소한 현재 정치지형으로는 그렇다. 이제 신정부의 등장과 함께 본격적인 기업자유주의가 도래할 것이다. 한국사회의 전반적 위기에서 계급적 위기가 확대되는 상황을 맞이하는 것이다. 벌써부터 방송 민영화를 협박해 왔고, 경제자유구역의 확대, 교육, 의료의 개방을 넘어선 시장화, 자본화가 대통령 당선자의 말대로 진행될 것이다. 친자본, 친기업적 정책이 신정부 아래에서 더 노골화 될 것이다. 결국 사이비 개혁주의가 몰락한 지금, 이명박 정부와 맞설 수 있는 세력은 진보좌파 외엔 없다는 얘기다.

할 일은 처음부터 분명했다. 반신자유주의-사회화 프레임을 확고히 지켜 나가는 것이야 말로 국민대중의 지지와 신뢰를 얻는 길이다. 이제라도 준비를 해야 한다. 먼저 기존 틀을 허물고 반신자유주의-반자본 운동을 지켜 나갈 수 있는 확실한 세력들이 결집하면 된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아직 비는 내리지 않았다. 시간은 우리에게도 있다.
덧붙이는 말

홍석만 님은 진보전략회의 운영위원장으로, 사단법인 참세상 사무처장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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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 총선 , 대선 ,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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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똥개

    대충 읽었지만 되지도 않는 말 갖다가 붙이느라 힘 낭비말고 잠이나 자라 엉아 말 들어

  • 건설노동자

    (노가다란 표현이 혹시라도 건설노동자들을 폄하하는 말로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표시는 해두었지만 "노가다"라는 말을 사용한 의미는 뭔가요? 그냥 무의식적으로 사용한 것 같지는 않고...글쓴이의 마음속에 익숙한 힘든일 하는 사람에 대한 무관심과 냉대인 듯해서 편치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