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식 유연성과 실리 추구가 남북관계 규정

[이명박시대 전망](7) - 남북관계 전망

이번 선거는 한마디로 정책, 이념, 바람, 관심, 경쟁, 꿈, 이상 등은 눈 씻고 찾아보려 해도 찾아볼 수 없고, 지루하고 일방적인 그러면서 추악하고 더러운 이전투구만 난무한 선거였다. 노무현 학습효과가 상당히 깊게 착근됨에 따라 이명박의 독주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일찍이 예상했던 결과가 그대로 드러난 선거였다. 그럼에도 BBK 사건을 한방이라는 허세를 꾸며 판세를 역전시키려는 무모한 시도는 유권자들로 하여금 썩소를 머금게 했다.

진실과 거짓

이번 대선의 평가에 대해서 많은 부분이 일치하지만 의도된 뒤틀림이 존재하고 있다. 이명박 승리의 일등 공신이 노무현이라는 것은 유치원생들도 모두 아는 상식에 속한다. 노무현의 실정과 실언, 오만과 독선에 대한 냉정하고 준엄한 심판으로 평가하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은 무임승차에 가깝게 거의 절반은 거저먹고 게임에 참가한 것이다.

문제는 이명박의 승리로 권력의 패러다임이 좌파적인 것에서 우파적인 것으로 이동하고 있고, 진보개혁진영의 참패로 평가되는 부분이다. 물론 이러한 용어 사용이 그동안 일반적으로 통용되어 크게 무리가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일반 대중들의 인식 수준은 그렇지 않다. 모든 진보세력을 재래시장 좌판에서 고등어가 팔려나가기를 기다리듯이 입도선매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패배와 이명박 승리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추종하고 신봉하는 일부 세력이 개혁을 기치로 일부 시민단체들과 진보세력들을 결합시켜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소심하고 비겁한 그리고 절망적인 통치 행위의 결과인 것이다. 나머지 진보세력들은 반신자유주의를 내걸고 여야를 비롯한 모든 신자유주의 세력들과의 한 판 승부를 내걸었고 요구했지만 현실적인 패권적 힘의 논리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이들은 반한나라당 전선과 명확한 차별점이 있으며 그 성격과 방향 또한 명확히 다르다. 그러니 이번 선거는 신자유주의 내에서의 좌와 우의 싸움인 것이며, 한마디로 지배블럭 내부의 인물교체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개혁성향 세력들의 패닉상태는 당연한 것이다.

속단 가능한 대선과 새로운 무릎팍 도사

이번 선거에서는 몇 가지 특징이 눈에 띈다. ‘한국대선의 결과에 대한 속단은 금물’이라는 지고지순한 명제가 깨져버렸다. 이명박은 2006년 10월 지지율 1위로 오른 뒤 한 번도 1위를 빼앗기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 결과가 예측 가능할 수밖에 없었던 선거였다. 1987년 대통령직선제 도입 이래 1, 2위 격차가 최대 차이라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그런데 정동영측의 ‘한방 기획’ 이라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하겠는가. 상당히 오만불손하고 방자한 태도 그 자체였던 것이다.

가장 커다란 특징 중의 하나는 아마 경제공화당 ‘허경영 현상’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그의 인기는 그 누구도 넘볼 수 없었으며, 대선 이후에도 하늘을 뚫을 것처럼 계속 올라가고 있다. 네티즌들은 그에게 ‘허본좌’라는 이름까지 붙여주었으며, 강호동을 능가하는 ‘무릎팍 도사’를 연상케 했다. 이러한 허경영 현상은 그의 공약의 실현가능성과 관계없이 정치적 허무주의와 냉소주의에 대한 반증이며,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최저 투표율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 허경영 현상은 현실정치에 대한 진정한 냉소이며, 이에 대한 유권자들의 웃음은 진정한 의미의 썩소인 것이다. 이를 보고 웃지 말아야 할 정치인들이 따라 웃다니 정말 바보가 아닐 수 없다.

남북관계와 한미관계의 이중 변주곡

이명박의 자기 규정이 경제대통령과 실용정부를 표방 했듯이 향후 정권의 성격이 프랑스의 사르코지 정권과 유사한 친미 성장 우선 정권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내부적으로 친자본 반노동적 정책의 지향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고, 외교 안보 정책은 당장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대북관계는 상호주의 원칙을 강조할 것으로 보여 많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당장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문호를 개방할 경우 국제사회와 함께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펼치겠다는 발언이 이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명박의 대북 및 외교안보 분야의 정책 우선 순위가 한참 뒤로 밀려 있다. 이번 선거에서의 한나라당 20대 공약을 보면, 외교 안보 분야는 맨 뒤인 19~20순위에 올라 있다. 그리고 그가 실용주의적 외교를 강조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존의 대북정책인 평화번영정책, 햇볕정책 등을 근본적으로 수정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북한에 대해 상호주의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좋은 말로 하자면 이전의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한나라당의 기존 상호주의를 융합한 정책이 될 것이고, 냉정하게 보자면 무색무취의 정책이 될 수도 있다. 물론 한미동맹 강화는 이들의 성격과 체질에 맞게 본능적으로 추진할 것이다.

대북정책의 상호주의 원칙이 남북관계를 경색되게 만들 우려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유연성의 발휘로 인해 기본 틀을 바꾸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가장 커다란 이유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북핵 6자회담의 지속성을 중단시키는 변수로 작용해서는 안 되며, 6자회담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한국이 적극 관여해 왔기 때문이다. 한나라당도 남북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과거로 회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명박의 ‘비핵개방 3000’ 구상이 실현 가능성을 떠나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는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한반도 평화체제와 관련해 비핵화 문제가 급선무이지만 이 또한 많은 시간을 요하는 것이고 과거의 적대적인 관계로 돌아갔을 경우 발생되는 비용을 천하의 이명박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에너지외교를 강조하고 있는 이명박이 1990년대 초반 현대건설 시절부터 구상했던 중앙아시아~러시아의 시베리아~중국~한반도에 이르는 송유관을 통해 ‘에너지 실크로드’를 추진하겠다는 실용외교를 고려한다면 당연해 보인다. 또한 중소기업이 개성공단이나 해주경제특구를 통한 중소기업의 활로 모색과 남북화해 협력을 통한 경제공동체 형성도 이들에게는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이명박식 실용’은 바로 이러한 것이 아니겠는가.

다만 이명박의 실용과 유연성이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한 남북간 합의된 사항에 대해 속도조절론을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실현 가능성과 타당성 조사 그리고 부가가치 창출 등을 고려하여 시간을 조절하면서 북과의 관계를 설정할 것으로 보인다. 실리사회주의를 추구하는 북과의 한판 실리 전쟁이 흥미를 끄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을 안 할 수 없는 것은 한미동맹 강화가 남북관계 진전에 커다란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이다.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축으로 동북아 정세를 주도하고 지형을 이끌려는 의도가 강하기 때문에 남북관계가 일부 손상을 입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10년 만에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한미 양쪽에서 보수적 코드 맞추기를 위한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이명박과 부시가 지난 12월 20일 전화통화에서 한미 관계 증진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공조를 다짐했다고 한다. 지난 10년간 한미 현안의 상당 부분이 미국 쪽 복안대로 해결됐으면서도 우여곡절을 겪은 한미 관계에 대해 얼마나 반작용이 강하겠는가. 이명박에게는 남북관계보다는 한미동맹이 우선순위인 것은 확실하다.

이명박식 경영이 노무현의 통치방식을 능가할까

그럼에도 이명박의 앞날이 그리 밝아 보이지 않다. 투표율이 역대 대선에서 가장 낮은 것도 문제이지만 오히려 노무현 학습효과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48.7%의 득표율과 500만 표 이상의 차이로 당선되었지만 유권자들의 기대 수준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대처와 관리능력이 취약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배세력과 일반 대중간의 관계에서 정신적 교류가 없으며 상대방의 체온을 느끼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일반 대중들 대부분이 자기 마음속으로 기다려왔던 지도자의 이미지가 현실과 부적합성을 띠게 되면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훗날 이명박의 성과를 놓고 불만과 후회를 하게 되면 땅을 치며 통곡하면서 다시 다른 지도자의 이미지를 상상하지만 역사의 후퇴를 되돌릴 수는 없지 않은가. 자신의 선택에 대한 불만과 후회도 정신적 애정의 교류가 없이 나타난 일종의 생리적 쾌감만의 허무함으로 인해 생기는 비애 같은 것이다.

그래서 감세나 부동산 완화 등 포퓰리즘적 정책을 통해 대중의 지지를 받겠지만 교육, 노동 등의 문제는 양극화나 사회갈등을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면 오히려 레임덕 현상이 더욱 빨리올 가능성 높다. 결국 이명박식 경영이 노무현식 통치 방식을 극복할 수 있을까가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도 정권연장의 꿈을 꾸는 일개 정치인 아닌가.
덧붙이는 말

배성인 님은 본 지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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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 상호주의 , 비핵개방3000 ,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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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아성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노무현 학습효과에 의해 이명박씨를 찍은것은 아니며, 자세히 알지 못하면서 허경영씨의 웃음거리들을 '허무주의'로 내모는 것은 기존의 어떤 현상을 해석할때 편협함과 독단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