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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을 앓고 있는 모악산에 다녀와서

[주용기의 생명평화이야기](46) - 모악산행에서 느낀 여러 생각들

  모악산 정상에 들어선 KBS송신탑과 JTV송신탑

지난 1월 27일(일), 모악산 등반에 나섰다. 새만금갯벌과 금강하구, 그리고 연안과 섬 지역을 주로 다니다 보니 산을 등반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다. 몇 일간 집에서 같은 자세로 앉아서 글을 쓰고 자료 정리를 하느라 몸이 굳어지는 것 같기도 해서 운동도 할 겸 숲속을 거닐까 해서 등반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전북 순창이 고향인 나는 산간지역에서 태어나서인지 산이 익숙하다. 어릴 때 뒷산에서 총싸움, 칼싸움하고, 칡 캐기, 밤 따먹기, 그리고 마을 앞 개울가에서 물장구 치고 놀기도 했다. 지금도 수영을 못하지만, 비가 온 뒤 물이 불어난 개울가에서 목욕하러 갔다가 죽을 뻔 했던 기억도 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래서 그런지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만 해도 주로 숲, 산림, 나무, 식물에 관심을 가졌고, 1994년 환경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부터 도시내 공원 주변 고층아파트 규제 운동, 도시내 공원 확대와 나무 심기 운동, 그리고 덕유산, 모악산, 마이산 살리기 운동에 주로 관심을 갖고 활동을 했었다. 도시내 녹색교통운동과 대기오염 줄이기, 쓰레기·물 문제 등 다양한 분야로 관심을 확산시켰고, 이는 결국 도시계획 문제까지, 더 나아가 하천 살리기, 골프장 건설 반대, 국립공원, 도립공원 보존운동 등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새만금 문제도 1994년부터 매년 주요 환경현안 중에 꼭 포함시켜 문제점을 제기하기 시작했으나 어딘지 모르게 쉽게 접근하기 힘든 주제였다.

기존 환경운동 단체에서 나와 독자적인 환경운동과 함께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새만금지역과 연안·해양지역에 주로 관심을 갖다보니 이제는 바다와 연안에 많이 익숙해졌다. 가끔씩 이동 중에 주변을 돌아볼 때마다 저런 문제도 관심을 갖고 다루어야 할 텐데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가끔씩 수질오염이나 골프장 문제, 교통과 도시계획 문제 등으로 전화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다루고 있는 문제만 하더라도 워낙 깊이 있게 탐구하고 현장성 있는 연구가 되지 않고는 어려운 문제라 다른 문제에 깊이 관여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기회가 되면 다른 문제들도 조금씩은 다루고 싶다.

  모악산을 오르는 등산객들

아무튼 모악산을 등반하기로 마음먹고 나서 11시50분경 집을 나섰다. 노동사무소 앞에서 15분 정도를 기다린 후 시내버스 105번을 타고 남부시장 앞으로 이동을 했다. 완주군 구이면 상학마을로 가는 시내버스로 갈아타야 했기 때문이다. 시내버스를 기다리던 도중 갑자기 2년 전에 돌아가신 조문익 선배 생각이 났다. 혹시 오늘 추모행사를 하기로 한 날인가 해서 전준형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어제 추모행사를 했다는 답변을 들었다. 미리 기억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예정대로 모악산을 오르기로 했다.

10여 분을 기다린 후 12시35분경 970번 시내버스를 탔다. 이미 등산객으로 보이는 5명 정도가 버스에 타고 있었다. 혼자 두 좌석을 차지하고 앉았다. 카메라와 책을 옆에 끼고서 말이다. 뒷 좌석엔 제법 나이 차이가 나는 것처럼 보이는 중년 남녀가 큰 소리를 내며 애정표현을 하고 있다. 옆 좌석엔 중년의 아저씨가 짐 정리를 덜 했는지 가방 속을 뒤지고 있다. 잠시 정차한 평화동 정류장에서 한 아주머니와 딸로 보이는 학생이 탔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일요일만 되면 시내버스가 등산객으로 가득 찰 정도로 붐볐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 모악산 살리기 운동에 전념하다시피 해서 모악산을 자주 찾았을 때 본 광경이었다. 우리를 태운 시내버스는 옛길(2차선 포장도로)을 따라 구이방향으로 내달렸다. 새로 만든 전주-옥정호간 4차선 도로를 우측에 두고서 말이다. 지금은 대부분의 차량들이 신도로를 이용하지만 당시만 해도 이 도로만을 이용했었다. 우리나라는 도로 천국이다. 전라북도만 하더라도 웬만하면 4차선 도로가 새롭게 뚫렸다. 도로 과잉상태다. 경기활성화라는 미명하에, 지역균형 발전과 지방분권이라는 미명하에 도로 건설은 가속화되고 있다. 속도의 경쟁에 사람들을 몰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사람들의 정신까지도 느리고 여유로운 마음을 갖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시내버스가 구이중학교 옆으로 난 신도로를 타고 마을을 가로질러 상학마을에서 사람들을 잠시 내리게 하고, 다시 모악산 관광단지 조성사업으로 만들어 놓은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주변에 넓게 조성된 주차장엔 엄청나게 차들이 들어서 있었다. 주로 건강을 위해 등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터인데 이곳까지 편하게 자가용을 타고 온 것이다. 대기오염 물질을 내뿜으면서 말이다.

  장군봉에서 내려다 본 모악산 관광단지 조성사업 지역과 구이저수지

1995년 때인가 완주군이 모악산 관광단지 조성사업을 할 때 조성지 위치변경과 주차장 축소, 그리고 실내수영장, 골프연습장 건설 반대 입장을 냈던 기억이 있다. 실내수영장과 골프연습장은 들어서지 않았지만 1천 대가 넘는 차를 주차할 수 있는 대규모 주차장과 도립미술관이 들어서 있다.

벌써 등산을 하고 내려온 사람들이 가겟집 앞에 좌판을 늘어놓고 술을 파는 곳에 모여 술 한잔씩을 마시고 있다. 등산을 한 후 한 잔 들이키는 맛이 얼마나 좋을까.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적은 돈으로 만족한 하루를 보냈으리라 생각한다. 사람들이 붐비는 가게 앞을 지나가기가 그래서 상학마을에서 올라오는 옛길을 찾았다. 그런데 한 귀퉁이에 모텔이 하나 들어서 있다. 여기까지 모텔이 진출한 것을 보니 씁쓸해 졌다. 새만금지역을 찾는 많은 외국 전문가들이 있는데 그들이 묵을 숙소가 대부분 모텔이다보니, 우리나라가 성적으로 문란한 모습이 일상화된 것처럼 느끼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등산 입구에 다다르자 할머니 대여섯분이 산나물, 개떡 등을 늘어놓고 팔고 계셨다. 계곡에서 내려오는 찬바람을 맞으며 그늘진 곳에 그렇게 쪼그려 앉아 계셨다. 삶이란 이렇게 불공평한 것인지 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차마 사진은 촬영하지 못하고 그 옆을 지나쳤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등산을 했던지 등산로 폭이 차가 다닐 정도로 확장되었다. 부지런한 등산객들이 벌써 등산을 하고 내려오고 있었다. 조금 올라가자 계곡 바위틈 사이로 얼음이 얼어 있었고 그 사이로 계곡물이 흘러 내렸다. 작은 폭포수 같다.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는데 예전에 나무명찰을 달았던 것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예 베어 없어졌는지 산초나무, 초피나무, 화살나무 등도 보이지 않았다. 올해 초 전라북도가 모악산 살리기에 나서겠다고 발표를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추진할런지 궁금해진다.

약간 가파른 숨을 몰아쉬면서 대원사 앞에서 졸졸졸 흘러내리는 물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발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산에서 내려오던 물을 플라스틱 관을 타고 내려오도록 만든 관이 보이지 않았다. 누가 없앴는지는 모르지만 일반 등산객들이 쉬었다 가면서 먹었던 물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이렇게 변하다니 어이가 없었다. 바로 앞에서 대원사 측에서 주최한 불교학교 개최와 새해맞이 밤 행사가 있었음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나무에 매진 채 걸려있었다. 강증산 선생의 대원사에서 득도했다는 안내판과 함께 말이다.

  대원사 경내에서의 여러 가지 풍경들

대원사 경내로 들어서서 먹을 물을 찾았다. 외부인 출입금지라고 쓰여진 빗장걸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시원한 물을 플라스틱 바가지에 담아 마셨다. 속이 시원했다. 많은 사람들이 햇빛이 들어오는 건물 툇마루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잠시 앉았다. 바람이 불지 않아서인지 풍경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고즈넉한 산사는 아니지만 아담했다. 잠시 대웅전 뒷편에 있는 3층 석탑 뒤로 갔다. 경내의 모든 건물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계속 많은 사람들이 절 안으로 들어왔다.

다시 등산을 하기로 하고 경내를 빠져나왔다. 이제 약간 가파른 등산로다. 조금씩 숨이 목에 차올랐다. 나무 사이로 일부 가려지기도 했지만 조금씩 더 올라가자 구이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건너편엔 경각산이 보였다. 수왕사에 다다랐다. 예전에 녹음테이프로 반복해서 들려오던 독경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또 예전에 물이 나오던 곳을 찾으니 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물길이 달라졌는지 아니면 사찰 측에서 물을 막아버렸는지 알 수 없지만 정말 기분 나빴다. 수왕사 안으로 들어가니 파이프에 수도꼭지가 달려있고 그 옆에 플라스틱 바가지가 몇 개 놓여 있었다. 한 모금 들이킨 후 잠시 휴식을 취했다. 어떻게 올렸는지 맥주, 막걸리를 파는 잡상인이 있었다. 등산로 중간에서 등산객들에게 술까지 팔고 있으니 참 돈벌이가 이렇게 무서운가 생각이 들었다.

다시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숨이 가파르게 차오르자, 판소리 단가 중 ‘사철가’를 흥얼거리면서 올랐다. 능선에는 제법 하얀 눈이 쌓여 있다. 신발이 조금씩 미끌렸다. 장군봉에 다다르자, 몇몇 등산객들이 쉬고 있었다. 한참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어떤 등산객이 다가오더니 가래침을 탁 뱉는다. 정말 남 눈치를 보지 않고 막무가내다. 산 정상을 올려다보니, 거대한 송신탑 아래에 몇몇 사람들이 위태롭게 서 있었다. 이제부터는 더 미끄럽다. 난간을 잡고 올라갔다. 정상에 도착하자 벌써 10여 명의 사람들이 앉거나 서 있다.

  모악산 정상에서 바라본 전주시내 모습. 대기오염 물질이 전주시내 상공을 앝게 누런 갈색으로 뒤덮고 있다.

전주시내를 바라보니, 갈색 띠가 층을 이루면서 낮게 드리우고 있었다. 옆에서 이를 보던 사람이 왜 저렇냐고 다른 친구되는 사람에게 묻자, 내가 대기오염 물질 때문에 그렇다고 말해 주었다. 한 JTV 기자가 부인과 함께 올라 왔다. 악수를 했다. 여기에까지 좌판을 벌린 상인이 있었다. 정말 대단하다. 그런데 술까지 팔고 있었다. 배가 조금은 고파서 간식거리를 샀다. 정상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따뜻한 햇빛이 내려쬐는 곳으로 이동을 했다.

KBS와 JTV송신소 건물 사이에 놓인 계단에 걸터앉아 간식을 먹었다. 두 건물을 볼 때마다 10여 년 전 이전운동을 했던 기억이 난다. 1995년에 ‘모악산 살리기를 위한 전북지역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를 구성해서 모악산 정상 송신탑 이전과 금산사 앞에 들어서려던 '모악랜드 조성사업' 추진 반대, 그리고 완주군이 추진한 '모악산 관광단지 조성사업' 부지 이전운동을 했었다. 다행히 모악랜드 조성사업은 금산사 측이 적극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거의 추진되지 못했고, 모악산 관광단지 조성사업은 일부 지역의 건물만이 들어서지 않은 채 강행되었다. 그리고 모악산 정상에 들어선 송신탑은 여러 가지 불명확한 사유로 인해 아직도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다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금산사 경내가 흐릿하게 보인다. 날씨가 좋을 때면 부안 앞바다와 새만금갯벌도 보인다. 조금 있자, 까마귀와 까치 몇 마리가 하늘을 날아다니다가 송신탑 꼭대기 부분에 내려앉았다. 송신탑에서 내다 버린 음식을 먹으려는지 이곳까지 올라온 모양이다.

오후 3시가 돼서 내려가는 길을 중인리 방향으로 하고 발길을 재촉했다. 등산로엔 하얀 눈이 제법 많이 쌓여 있었다. 내려오는 길은 등산객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나무사이로 직박구리 두 마리가 날아다녔다. 조금 더 내려오자 남원에서 교감선생님으로 계시는 분이 올라오고 계셨다. 잠시 반갑게 인사를 하고 내려갔다. 이제야 올라오는 꼬마들이 보였다. 이제야 올라가면 어떻게 하냐며 말을 건냈다. 뒤따라오던 부모가 중간까지만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다가 미끄러져 벌렁 누워버렸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뒤따라오던 아저씨가 천천히 내려가라고 충고를 했다. 내려오면서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정년퇴직을 한 후 1주일에 2∼3일 정도를 모악산 등반을 하고 있다고 한다. 좋은 취미이기는 하나 등산객으로 인해 모악산이 더 몸살을 앓지는 않을까 걱정이 들기도 했다.

절을 두 개 지나서 내려오는데 차량이 다니는 길에서 한 가족이 미끄럼 타기 놀이를 하고 있다. 즐거운 모습을 보니 나도 행복해진다. 내려오는데 송전탑이 늘어져 있다. 볼썽사나웠다. 내려오는데 마을에 정자나무가 그대로 서있고, 할머니 한분이 좌판을 벌리고 있었다. 더 내려오자 중인리에 위치한 주차장에 도착했다. 많은 차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길목에는 ‘모악산 정상회복 범 도민회의 준비위원회’라는 이름으로 ‘KBS는 모악산 정상을 즉각 개방하라!’라고 쓰여진 플래카드가 붙어있었다.

  중인리 모악산 길목에 KBS는 모악산 정상을 즉각 개방하라! 라고 쓰여진 플래카드가 붙어있는 모습

시내버스 정류장까지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많은 승용차들이 먼지를 내며 지나 다녔다. 오래전부터 넓혀지지 않은 채로 시멘트길 그대로 인데 말이다. 나이드신 두 분이 길을 따라 걸어 내려가고 있어서 잠시 몇 마디 여쭈었다. 많은 차들이 왔다 갔다 해서 많이 불편하시죠 그랬더니, “불편이 말이 아니다”며 “차량이 못 다니게 주차장을 아래에다 만들던지 아니면 길 폭을 넓혀주던지 해야 하는데 행정에서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상당히 기분 나쁜 표정이다. 나도 오늘 등산을 했지만 자기만 편하다고 해서 마음대로 하다 보면 다른 주민들이 피해볼 수 있음을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길을 따라 마을 안에는 별장처럼 잘 지어진 집들이 많이 보였다. 이곳 중인리가 공기도 좋고 전주시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아서 거주하기에는 좋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사람만 해도 두 명이나 된다. 유영진 선생님(전통문화고등학교), 한승우 선생(전 인천녹색연합 사무처장, 현재 전주녹색연합 준비 중)이다. 그래서 전화를 해 보았다. 유영진 선생님은 가족과 함께 금산사 주변지역에 있고, 한승우 선생은 무주군 안성면의 골프장 건설 반대투쟁을 하는 마을에 있다고 한다.

시내버스 종점에는 시내버스 3대가 서있고, 주변 음식점엔 술을 건네는 등산객들의 모습이 보였다. 등산을 하고 난 후 한 잔하는 모습이 행복하게 보였다. 모악산을 뒤로 하고 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다리가 제법 뻐근했지만 오늘 하루는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준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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