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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베이스피리트호의 기름유출과 삼성의 무책임

[주용기의 생명평화이야기](47) 삼성중공업과 허베이 스피리트호가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

  기름파도가 밀어 닥치고 있는 만리포 해수욕장 (2007년 12월 9일)

국내 사상 최대의 해양생태계 파괴 상황이 발생했다. 지난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이던 12월 7일, 태안반도로부터 8km 떨어진 바다에서 대형 유조선(허베이 스피리트호)의 옆 부분이 파손되면서 대략 10,500여 톤의 엄청난 기름이 바다로 유출됐기 때문이다.

12월 9일 기름유출 사고 이후 이틀만에 찾은 만리포 해변에선 검은 기름파도가 수없이 밀려오는 모습을 목격하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넋 놓고 바닷가에 앉아 있거나 엄두를 못내고 한숨만 쉬고 있던 주민들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이후 정부측의 기름확산 방제작업이 부실하게 진행되면서 해류를 타고 남하한 기름 덩어리들이 전북과 전남지역을 거쳐 제주도 위 추자도까지 확산되었다. 서해안 전체가 기름폭탄을 맞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엄청난 유화제를 뿌려 방제작업을 함으로서 바다 표층에서 눈에 띄지 않도록 했지만, 바닷속과 밑바닥으로 내려간 기름들은 향후 수온이 올라가면서 다시 확산될 가능성까지 예측되고 있다

서해안 전역에 환경재앙을 일으킨 유조선 회사와 삼성중공업

이와 같이 서해안 전역에 환경재앙을 일으킨 유조선 회사와 삼성중공업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검찰도 누가 더 책임 큰지를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하고 있어 피해를 받은 주민들의 불만은 심각한 상황이다.

사고발생 당시의 상황을 재연해 보면 이렇다. 삼성중공업 크레인선을 끌고 가던 주 예인선 t5호의 철사줄(와이어로프)가 끊어지면서 크레인선이 유조선을 들이받음으로서 유조선에 구멍이 나서 기름이 유출됐던 것이다. 이 같은 어처구니 없는 사고가 발생할 때 몇가지 이해할 수 없는 의문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즉 풍랑주의보에도 불구하고 자기 무게의 수십 배가 넘는 크레인을 철사줄 두 개로 끌고 출항한 점, 충돌하기 전 한두 시간 전에 이미 유조선 충돌에 대한 경고를 받았는데도 회항·정지·피항 등의 조치를 포기하고 항해를 계속한 점 등은 일반인의 법 감정으로 보기에도 '무모하다' 고 밖에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무모한 항해가 과연 선장에게만 책임을 떠넘길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박경신 교수(고려대 법과대학)는 '시사IN 20호(2008년 2월 5일)'에 기고한 글에서 "외국의 판례에서 볼 때 선장이 무모한 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업무 환경을 제공하거나, 선장의 잘못된 습성에 대해 관리감독을 하지 않는 것도 선주 자신의 무모한 행위라고 판단한다. 영국에서는 과속의 습관이 있고, 새로운 레이더에 익숙하지 못한 선장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않은 것도 '선주 자신의 행위'로 인정한 판례가 있다" 면서 "평소에도 선장이 이와 같은 항해를 할 때 단독으로 결정을 내려왔다면 그 선장의 무모한 행위가 '선주 자신의 행위'인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박 교수는 "과연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고 임대료가 6천만 원을 넘는다는 크레인의 운송 과정에서 선장이 출항부터 충돌까지 모두 단독 결정을 했는가 하는 점이다"며 "만약 그렇다면 항해의 '결정권자'인 선장의 행위는 선주 자신의 행위가 된다. 그래서 삼성중공업의 '중과실 입증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밝혔다.

검찰도 삼성중공업 예인선단 3명과 삼성중공업을 업무상 과실 및 해양오염방지법 위반으로 기소했다고 한다. 상법 746조는 '선주 자신이...손해 발생의 염려를 의식하면서 무모하게 한 작위 또는 부작위에 의한 피해'에 대해서는 책임제한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더욱이 와이어로프가 생산된 지 12년이나 지난 제품(1995년 동경제강)이라는 점과 출항 전에 제출하는 예인선 안전검사서 제출 때 다른 철강회사 제품 증서(2004년 k제강의 제품증서)를 제출했다는 것이다. 와이어로프가 1~2년만 사용해도 부식돼서 교체를 해야 하는데, 12년 동안 보관된 와이어로프를 반년 정도 사용했다면 내구성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따라서 이 같은 삼성중공업의 중과실이 입증되면 선주 자신이 직접 배상에 나서야 할 것이다.

  태안군 의항리 해안가에 밀려온 기름제거 작업을 하고 있는 의항리 주민들 (2008년 1월 5일)

피해주민들, 삼성중공업 법적 책임은 물론 도의적 책임 다 할 것 요구

이러한 사실들이 검찰 수사에 의해 밝혀지고 법적인 책임을 묻게 된다 하더라도 일반 국민들과 피해주민들은 삼성중공업의 도의적 책임을 다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도 삼성중공업은 검찰의 공식적인 수사발표 이전엔 아무런 공개사과나 도의적 책임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모 그룹인 삼성그룹은 말할 것도 없다. 사고발생 당시 피해주민들은 삼성중공업, 삼성그룹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출하지는 않았다. 일단 기름제거 작업이 우선할 수밖에 없었고, 삼성중공업이 일말의 양심을 갖고 책임을 통감할 줄 알았다.

그러나 유조선 회사와 삼성중공업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과 방송들도 삼성중공업의 과실여부에 대해서는 거의 보도를 하지 않고 대부분 기름제거 작업에 참여한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상과 미담에 대해서만 대대적으로 보도를 했다. 이젠 몇몇 언론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방송과 언론에서는 현지 상황을 전하는 보도가 거의 나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태안군 의항리 해안가에 밀려온 기름제거 작업을 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2007년 12월 16일)

그러면서 생계가 막막해진 피해주민들은 들끓기 시작했다. 작년 말까지만 하더라도 도로변에 삼성을 질타하는 현수막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단지 민중단체가 현장 기름제거 봉사활동을 하러 왔다가 붙여 놓고 간 현수막만 가끔씩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기름유출 사건이 발생한지 50여 일이 지나면서 기름유출 사고를 일으킨 삼성을 질타하는 현수막이 태안군 전역을 뒤덮기 시작했다. 피해 주민들에 의해서 말이다. 더욱이 생계가 막막해진 3명의 주민이 음독과 분신 등으로 자살하면서 삼성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의 자살은 결국 정부와 기름오염 사고를 일으킨 삼성중공업과 허베이 스피리트호가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

이 같은 안타까운 일이 벌어진 이후로도 별로 달라지는 일이 없자, 지난 1월 23일엔 태안군민 4천여 명이 서울로 상경하여 서울역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갖기도 했다. 이때 주민들이 들고 있던 피켓에는 '삼성은 미술품 팔아 태안굴밭 매입하라' , '타살된 태안바다 삼성그룹은 살려내라' , '사람죽인 삼성그룹 참회하라 배상하라 ' , '무한책임 무한보상 삼성그룹 약속하라' 등 삼성을 질타하고 보상책임을 다 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들이었다. 선량하게 바다와 갯벌만 바라보며 살아왔던 주민들이 삼성과 검찰에 대한 분노와 불만이 얼마나 심각한 지를 엿볼 수 있었다.

법원의 최종 판결이 삼성측의 과실로 판결이 난다 하더라도 실제 배상이 이루어지기 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같이 주민생계 대책뿐만이 아니라, 파괴된 생태계를 복원하는 노력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하겠다. 파괴된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는 상당한 기간과 막대한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삼성은 기름유출 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은 물론 도덕적 책임을 통감하고 피해주민들의 생활대책과 생태계 복원대책에 나서야 하겠다. 만약 이를 방기한다면, 태안지역 주민뿐만이 아니라 전 국민적인 비판여론이 더욱 가열차게 일어 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정부 또한 기름유출 사고를 일으킨 허베이 스트리트호와 삼성중공업 등 선주들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의 예산으로 미리 피해주민 생계지원에 나서야 하겠다. 또한 생태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함께 생태계 복원에도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한편, 기름에 오염된 새들에 대해 나일 무어스 대표(새와 생명의 터)와 본인이 공동으로 2007년 12월 19일과 20일 양일간 조사한 결과 (오염개체수 333마리)와 단독으로 2008년 1월 5일에 조사한 결과(오염개체수 42마리)를 보면 얼마나 광범위하고도 심각하게 생태계에 피해를 주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기름에 오염돼 죽은 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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