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총선에서 조승수 전 의원을 의회에 진출시키며 민주노동당의 텃밭으로 불린 ‘진보정치 1번지’ 울산이 술렁이고 있다.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로 울산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준)이 각각 후보를 내게 되면서 조직의 분열과 배타적지지 방침 혼선을 우려한 민주노총은 양당에 후보단일화를 요구했다. 이 가운데 울산 지역 최대 노조인 현대자동차노조는 “후보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독자 후보를 낼 수도 있다”고 선언했다.
민주노총 울산본부, 양당에 ‘11일까지 후보단일화’ 요구
민주노총 울산본부(본부장 하부영)는 지난 5일 운영위원회를 열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 오는 11일까지 후보단일화 방안 등을 마련해줄 것을 요구하기로 결정했다.
울산본부는 이날 운영위원회에서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가 민주노총의 분열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데 뜻을 모으고 “현재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은 민주노동당을 통한 노동자 정치세력화 실현”이라는 것을 재확인했다.
울산본부는 이어 “울산 지역 내 각 선거구에서 양당이 충돌하는 사태를 방지해 현장 조합원들의 혼란과 분열을 막아야 한다”며 선거구 조정, 후보단일화 등 중재, 조정에 나서기로 했다. 이와 함께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거점으로 일컬어지는 울산 북구와 동구는 ‘진보진영 분열 방지’를 ‘특별히’ 촉구한다”는 의견을 양당에 전달했다.
하부영 본부장은 “양당에 11일 오전 12시까지 협상 시한을 줬고, 오후 2시 운영위원회를 재소집해 중재 조정 결과에 따른 향후 정치방침을 논의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양당이 후보단일화를 성사시킬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다. 그는 “심상정 의원의 지역구인 고양덕양갑에서 민주노동당 최영희 후보가 자진 사퇴하고, 권영길 의원의 지역구인 창원을에서 진보신당이 후보를 내지 않았던 사례를 따라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본부는 각 선거구에서 양당 후보가 ‘겹치기 출마’하는 일만 막아내고, 배타적 지지 방침에 따라 민주노동당 후보를 지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모두 지역구 후보 등록을 완료하지 않은 가운데, 민주노동당에서는 이영희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이 울산 북구 출마 의사를 밝혔다. 울산 남구갑에서는 현역 이영순 의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진보신당은 노옥희 전 민주노동당 울산시위원장을 울산 동구와 북구 중 한 곳에 출마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대차노조, “민노당 후보도, 신당 후보도 지지 안 해”
울산 안에서도 ‘노른자’인 북구는 현대자동차 울산사업장이 있는 곳으로, 이 지역 유권자 70~80%가 노동자다. 2005년과 2006년 보궐선거에서는 비록 좌초됐지만, 민주노동당은 울산 북구 노동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2004년 조승수 전 의원과 두 명의 구청장(1998년 조승수, 2002년 이상범)을 배출했다. “울산 북구에서 현대자동차노조 집행부를 포섭하지 못하면 민주노동당이든 진보신당이든 후보를 내도 별 수가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김태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수석부위원장은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한목소리를 냈던 사람들이 이제 두 개의 정당으로 갈라진 것에 대해 조합원들이 굉장히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에서 각각 후보를 내면 어느 쪽에도 투표하지 않겠다는 조합원들이 다수”라고 현장 내 분위기를 전했다.
김태곤 수석부위원장은 “민주노동당을 통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로 당이 두 개로 쪼개졌지만 당을 떠난 사람들이나 남은 사람들이나 똑같다고 본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지부는 지난 대선 시기 “조합원들은 후보 선출을 위한 거수기에 불과하다”고 민주노동당을 비판하며 배타적 지지 방침 철회를 주장한 바 있다.
그는 “민주노동당 탈당파는 그동안 민주노총의 정치 방침을 일관되게 지지, 옹호해놓고 이제와 민주노동당이 더 이상 진보적이지 않다, 배타적 지지를 유지하는 민주노총이 문제 있다고 하는데 웃기는 소리다”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어 그는 “보수 정치권과 맞서려면 하나라도 뭉쳐도 쉽지 않은 판국인데 별다른 차이도 없는 두 당이 서로 지지해달라 하는 것에 동의하기 힘들다”면서 “우선 양당이 서로 조율해 단일후보를 낼 것을 요구하고, 그렇지 않으면 대의원대회를 열어 현장 노동자를 후보로 내세울 수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민주노동당은 실제 당명에 걸맞은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보수 정치권의 법 개악을 저지하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국회 안에서 노동자들의 정치적 입장을 충분히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의석 수 부족 등 물리적인 한계로 실제 법안이 입안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노동자들의 요구를 끊임없이 제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노동자의 요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답변하지 못했다.
현대자동차지부는 양당 협상 시한인 11일까지 추이를 지켜본 뒤 대의원대회 개최 일정 등을 정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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