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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바지 겨울을 보내고 있는 계화도갯벌

[주용기의 생명평화이야기](50) - 눈 가리고 아웅식 모래먼지 방지시설 설치

  메말라 버린 계화도갯벌에 골을 파고 염생식물 씨앗을 뿌린 모습

지난 3월 4일 화요일, 부안 계화도를 다녀왔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소속 신부님들을 비롯한 실무자 등 20여 명과 함께 동행을 했다. 3주 전에 새만금사업의 진행상황과 물막이 완료 이후 변화상에 대해 직접 현장을 방문해 확인해 보고, 설명을 들은 뒤 주민들 삶의 변화에 대해서도 직접 얘기를 듣고 싶다는 제안에 따른 것이다.

오전 11시 부안터미널에서 만나 승합차에 동승하여 계화도로 향했다. 부안 읍내를 지나면서 부안 핵폐기장 유치 반대 투쟁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 부안사회의 상황, 그리고 당시 부안성당이 반핵의 성지로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을 설명을 했다. 부안 계화 간척지에 난 도로를 지나갈 때는 계화간척지가 언제, 어떤 계기로 해서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섬진강댐 수몰지역 주민들이 계화도로 이주해 오면서 당시 원주민과의 갈등 상황 등에 대해서도 설명을 했다.

먼저 살금마을 앞 계화도 갯벌로 이동을 했다. 갯벌이 보이기 시작하자 차창 밖을 바라보고 있던 한 신부님이 “갯벌이 왜 이래”하시며 말을 잇지 못하신다. 주민들이 조개를 잡으러 드나들던 갯벌 입구에는 ‘비산먼지를 줄이기 위해 염생식물을 심었으니 불법 채취를 금지합니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혹 주민들이 내걸었는가 하고 자세히 보았더니, ‘한국농촌공사’라는 명칭이 쓰여 있었다. 대부분의 새만금갯벌이 모래뻘갯벌이여서 물막이 이후에 공기 중에 노출된 갯벌이 마르게 됐고, 이곳이 모래사막처럼 변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바람이 불 때면 황사바람처럼 모래바람이 날려 인근 주민들에게 생활상의 피해를 주었다. 이로 인해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들의 민원이 많아지면서 한국농촌공사 측에선 어업에 종사하던 일부 주민들을 동원하여 일부 지역에 염생식물 씨앗을 뿌리거나 지푸라기를 엮어 만든 지푸라기 펼침막을 갯벌에 덮기도 했다. 기껏해야 공기 중에 드러난 갯벌지역 중 아주 적은 면적만을 이렇게 한 것이라 말 그대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올해도 봄이 다가오고 있으니, 또 이같은 일들을 벌일 것이다.

  바람에 날리는 모래를 줄이기 위해 설치하고 있는 그물망

또 농촌공사측에선 물막이 이후 드러난 갯벌의 한 켠에서 지난해 겨울과 가을에 보리와 고구마를 심었고, 여기서 생산량이 얼마나 되는지를 조사하는 연구도 했었다. 그런데 올 봄에는 고구마가 마치 아주 잘 된 것처럼 일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고구마가 자라는 동안 몇 차례 현장을 찾아가 확인한 바 있는데 아예 잎이 타들어간 것도 많았고 고구마가 열려도 아주 작았다. 그런데도 이런 어이없는 보도가 된 것으로 보면, 이것도 한국농촌공사측에서 제공한 자료를 그대로 인용했을 것이리라.

계화도 갯벌을 찾은 이날은 황사바람이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지만, 제법 바람이 거세서 추위까지 느껴졌다. 다시 차량을 타고 갯벌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우리가 도착한 지역은 예전엔 바닷물이 잠겨 있었던 지역인데 이 날은 메마른 상태로 있었다. 물막이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수문조작을 통해 바닷물 양을 조절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도착한 그 시간엔 바닷물을 상당히 많이 밖으로 빼 버린 것이다.

잠시 내려 주변을 둘러 본 후 갯벌을 빠져나와 미리 점심식사를 예약을 해 놓은 식당으로 이동을 했다. 계화도 포구를 지나 양지마을 앞에 있는 식당이다. 조개구이와 백합죽을 먹기 위해서다. 식당은 비닐을 덮어 만든 건물로서 계화도 장승구 청년회장의 소유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장승구 씨가 조개구이용 조개들을 수조에서 꺼내 쟁반에 담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벌써 일부 조개들은 속살이 드러난 채로 붉은색 양념장이 발라져 있었다. 쟁반에 올려진 조개는 키조개, 농조개, 가리비조개, 굴, 백합, 소라 등이다. 키조개와 농조개, 가리비조개는 새만금방조제 안에선 이제 거의 잡히지 않는 종이다. 아마도 다른 지역에서 구입해 왔을 것이다. 차마 여쭈어 보지는 못했다. 임기가 다 되어 다른 사람이 청년회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올해도 청년회에서 주관해서 봉수제를 간단히 지냈다고 말한다.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갯벌과 바다 쪽을 둘러보는데 거센 파도가 넘실대는 바닷물 색깔이 검붉은색이다. 수문을 닫아 놓은 지 며칠 된 모양이다. 사진으로 현재의 바닷물 색깔을 그대로 기록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몇 장을 촬영했다. 방파제 쪽에선가 누군가 걸어 나오고 있어 다가가니, 어떤 나이 드신 분이 백합을 담는 ‘끌망’을 매고 있었다. 오늘도 거센 파도와 거센 바람 속에서도 일을 나갔다 오신 것이다. 바닥에 솟아 부은 것을 보니 백합이다. 그리 많지가 않았다. 이 정도면 얼마나 되냐고 묻자, “3만 원 정도 벌었다”면서 “아침 6시 반에 나가서 지금 이 시간(12시)에 나온 것이다”고 말했다.

  바닷물이 빠진 갯벌에 나가서 백합을 잡아 나와 고르고 있는 아주머니들

군산 하제 앞의 ‘오전풀’(바닷물이 빠진 갯벌을 지역별로 주민들이 붙여서 부르는 이름)에서 잡으셨단다. 방파제 끝에 아주머니 네 분이 백합을 바닥에 펼쳐놓고 크기별로 나누고 있었다. 조금 전 아저씨와 같이 나갔다 오신 것 같았다. 춥지 않냐는 물음에 “얼음이 얼 때도 나갔는데”라며 “이 정도도 나가 잡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얼마나 벌으셨냐는 물음에 대부분 “4-5만 원 벌었다”며 “바닷물이라도 계속 유통시켜주면 이 정도라도 수입을 계속 올릴 수 있을 텐데”라며 힘없이 말했다.

“건강하십시오”라고 인사를 하고, 식당으로 갔다. 벌써 연탄불에 구운 조개들이 거품을 내며 벌어지고 있었다. 조개와 백합죽을 많이 주어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 갯벌 배움터 ‘그레’로 이동을 했다. 고은식 씨(본인이 개인적으로는 부를 때는 형님이라고 부른다)가 문을 연 채 기다리고 있었다. 갯벌 배움터 ‘그레’는 고은식 씨를 주축으로 해서 계화도에 거주하는 아주머니 몇 분이 힘을 합쳐 예전에 김 가공공장 이었던 곳을 빌려 수리해서 커다란 방과 사무실, 식당 등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새만금사업으로 인해 생계가 막막해진 계화도 주민들이 서로에게 힘이 되기 위해 대화를 나누는 장소이자, 갯벌체험이나 새만금갯벌을 살리기 위해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고 숙식도 할 수 있도록 빌려주는 장소이다.

필자가 먼저 새만금갯벌의 생태적·문화적 가치와 새만금사업의 진행 상황에 대해 설명을 했고, 이어서 고은식 씨가 새만금사업으로 인해 주민들이 겪는 고통과 여러 가지 피해상황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고은식 씨가 말한 내용 중 최근 상황에 대해 “최근 계화도 주민들이 농촌공사측에 등기부 등본을 제출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면서 “우리 주민들의 삶을 빼앗아 간 농촌공사에게 여전히 자신들의 삶을 맡기고 있어 문제다”고 말했다.

1시간 남짓 강연과 대화를 나눈 후 신부님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고은식 씨와 함께 차를 타고 계화도갯벌로 들어갔다. 오전에 갯벌에 들어왔을 때 멀리서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작업하는 광경을 보았다. 모래먼지 날리는 찻길을 따라 들어가자, 20여 명의 사람들이 갯벌에 들어와 1m 높이의 말뚝을 세워서 박고, 200m 정도의 길이로 가로x세로 각각 3cm 정도 되는 그물망을 치고 있었다. 한 나이 드신 할머니에게 여쭈었더니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설치한단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어이가 없는 일이다. 이 정도의 그물망을 가지고 바람에 날리는 모래를 줄이겠다니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어떤 할아버지에게 매일 나오시냐고 물으니, “오늘 처음 나왔다”면서 “하루 일하면 5만 5천 원 받는다”고 말했다. 날리는 모래를 줄이기 보다는 주민생계 대책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것 같이 보였다.

다시 되돌아 나와 계화도포구로 이동했다. 포구엔 배들이 가득 정박해 있었다. 선주회 사무실에서 몇몇 어민들이 잠을 자거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 주민은 “조개도 없고 해서 놀고 있다”면서 “(주용기 씨가) 나하고 같이 죽었어야 방조제가 막히지 않았을 텐데”라면서 농담을 했다. “몇 달 전부터 새조개가 많이 나와서 수입이 되었는데 지금은 별로 없다. 새조개는 죽뻘(주민들이 부르는 명칭으로 물컹물컹한 뻘)이 쌓인 곳에 주로 서식하며, 방조제가 막힌 후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주는 선물이다. 이제는 새조개가 별로 나오지 않아 이제 어업은 거의 끝났다고 보면 된다”면서 “최근에 몇몇 주민들이 고창지역의 갯벌까지 가서 죽합을 잡는다”고 말했다.

포구에선 방금 조개잡이를 하고 들어왔는지 바닷물을 끌어 올려 호스로 그물에 뿌려대고 있었다. 왜 저렇게 물을 뿌려 대냐고 묻자, “그물에 달라붙은 죽뻘을 털어내고 있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새만금 방조제 안에 얼마나 많은 죽뻘이 쌓였는지 짐작하게 했다. 어선으로 가까이 다가가 확인해 보았다. 조금 후 포구로 어선이 바다를 가르며 들어왔다. 주민들이 “너배기 배“라고 부르는 4.9톤짜리 어선이다. 어선 가판에서 나이드신 두 명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새조개 15망(그물망 한망 당 15kg, 1kg 당 5천원)을 도매상에게 넘겼고, 집으로 들고 가던 그물망에 꽃게와 배꼽, 피조개를 모두 합쳐서 10kg 정도 담겨져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한 주민이 ”기름이 두 드럼 (25만원 정도)이 들었다고 보면, 두 사람이 각각 10만 원 정도 수입을 올린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바로 옆 어선에선 부부가 열심히 배를 수선하고 있었다. 어민들은 웬만하면 직접 그물을 만들거나 조개잡이용 펌프 제작 등 어선에 장착할 장비들을 만든다. 경비가 적게 들고 직접 어업을 하면서 상황에 맞게 장비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옆 어선에서도 한 어민이 파랑색 페인트칠을 하고 있었다. “이제 새조개도 별로 없고 해서 방조제 밖으로 나가서 문어잡이를 해 보려고 한다”면서 “밖에서도 얼마나 잡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곳을 떠날 수도 없고 해서 이렇게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페인트 칠을 마친 어민과 30분 남짓 그동안 어업을 하면서 살아온 얘기를 선주회 사무실에서 나눌 수 있었다. 올 정월 보름날에도 “풍어제를 올리셨냐”는 물음에 “이제는 바다에서 별로 잡힐 것도 없어 작년만큼 크게 하지 못하고 간단하게 했다”고 답했다. 선주회 사무실 입구 문 위에는 하얀색 실타래가 감긴 명태 한 마리가 걸려 있었다.

  조개를 잡아 나온 후 그물망에 달라붙은 죽뻘을 떨어내고 있는 모습

바다생물들이 사라지니 어민들의 삶도 힘들어지고, 오랫동안 유지돼 오던 지역문화도 사라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항상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생물다양성은 곧 문화의 다양성과 같다”고 말이다. 생태계가 파괴되고 생물들이 사라지면 그것에 직간접적으로 의존해 오던 주민들의 삶의 문화도 바뀌게 되고, 결국 다양한 삶의 문화가 바뀐다는 것이다. 새만금갯벌과 연안을 돌아보면서 생태변화와 어민들의 삶의 변화를 조사하고 기록하면서 없어지거나 사라져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으며, 자괴감마저 들기도 한다.

이제 마지막 추위가 지나가고 나면 생명이 움트는 봄이 성큼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새만금에는 생명의 봄, 평화의 봄이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새만금에도 다시 깃들기를 빌면서 어두워지는 밤길 속을 가르며 버스를 타고 전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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