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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과 북한간 이동물새에 대한 공동 조사를 기대하며

[주용기의 생명평화이야기](52) - 동해안 최북단 탐조기행을 다녀와서

  동해안 최북단에서 탐조기행을 같이한 ‘새와 생명의 터’회원들

지난 3월 8일, 1박 2일 일정으로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해안과 고성군 현내면 대진항을 다녀왔다. 이 장소에서 겨울철에 월동하거나 남쪽에서 월동을 하고 번식장소로 가기 위해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는 새들을 관찰하고 조사하기 위해서다. 이틀간 동행한 일행들은 ‘새와 생명의 터’의 회원 7명이다. 전체 일정 안내는 나일 무어스 대표가 맡았다.

7일 밤에 서산시내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김신환 원장, 그리고 심규식 선생님과 만나 강릉시내 어느 모텔에서 숙박한 다음 8일 오전 6시 반경, 나일 무어스 대표와 만나서 동해안으로 이동 했다. 강릉시 옥계면 옥계항에 도착한 후 해안선을 따라 강동면 해안일대까지 북상하면서 해안과 주변 바다에서 서식하는 새들을 관찰했다.

  정동진역 북쪽으로 1km 떨어진 해안가에서 새들을 관찰하고 있는 나일 무어스 선생님

옛 모습을 잃어버릴 정도로 과도하게 개발되어 버린 ‘정동진역’ 주변지역을 지나 1km 떨어진 북쪽 해안선에 도착했다. 바다 쪽으로 망원경을 설치하고 바다 쪽을 바라봤다. 가마우지와 검둥오리, 검둥오리사촌, 아비, 바다비오리, 큰논병아리 등이 바위에 앉거나 열심히 먹이를 잡기위해 바다 속을 들어갔다 나왔다가 했다. 상당한 수의 바다쇠오리 무리도 떼를 지어 북쪽해안에서 남쪽 해안 쪽으로 내려갔다. 바다 위 표면을 낮게 날면서 말이다. ‘6.25 남침 사적탑’이 있는 곳에서는 말똥가리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도 보았다.

  6.25 남침 사적탑’ 안내판 앞에서 새를 관찰하고 있는 김신환 원장님
우리 일행은 해안에 놓여진 길을 따라 북상하다가 강릉시내를 거친 후 주문진항에 잠시 들렀다. 수리갈매기를 보기 위해서다. 한참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제방 바깥쪽 해안가에서는 어느 해녀가 성게를 잡는지 연신 자맥질을 했다. 그리고 방파제 안쪽에선 그물 손질에 바쁜 어민들의 모습도 보였다.

다시 우리 일행은 국도 7호선을 따라 대진항으로 향했다. 이동하는 도중 떼까마귀 1백여 마리가 무리를 지어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보았고, 어디인지는 모르나 도로변 우측 논경지에선 쇠기러기 5천여 마리가 군데군데 무리를 지어서 벼 이삭을 찾거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월동을 마친 이 새들이 번식장소인 중국과 러시아 동북부 지역으로 북상하고 있는 모양이다.

오후 1시경 고성군 현내면 대진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등대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등대 옆 공터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휴전선 북쪽의 금강산과 삼일포가 흐릿하게 보였다. 바로 앞 북쪽 바다에는 쇠가마우지와 흰갈매기, 아비, 회색머리아비, 큰회색머리아비가 보였다. 잠시 후, 만나기로 약속했던 로버트 뉴린 교수(한국외국어대 영어학부)와 바리 하인리히 씨(호주에서 온 양구지역 학교 영어교사), 김성미 지역 환경운동가가 합류했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새를 관찰하기 위해 대진항으로 갔다. 그런데 포구 안에 폐그물 사이에 큰회색머리아비 한 마리가 죽은 채 발견되었다. 오후 2시반경 낚시 배를 타고 1km 정도 앞바다로 나갔으나, 30분후 엔진이 고장이 나서 급히 연락한 해경배에 끌려 되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다른 배로 나가기로 하고 이날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진항 포구에 죽어있던 큰회색머리아비를 보고 있는 일행들(좌) 대진항안에 앉아있는 갈매기들(우)

대진항에 도착했을 때 갈매기들이 머리 위를 날아올랐다. 나일 무어스 대표는 혹시 흰갈매기와 수리갈매기가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우리 일행들도 하늘을 쳐다보면서 날고 있는 새들을 관찰하기에 바빴다.

  대진항 남쪽해안가 바위 위의 나무끝에 앉아있던 수리갈매기
우리 일행은 대진항 남쪽 해안으로 자리를 옮겨 새들을 관찰했다. 제방 바깥쪽 바다에 있는 바위를 확인하니 수십 마리의 괭이갈매기와 제갈매기가 쉬고 있었다. 이들 무리들 중 수리갈매기가 보였다. 주변을 잘 볼 수 있는 나무막대기 위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제법 가까운 거리였다. 모두들 관찰하거나 사진촬영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잠시 쉬고 있던 수리갈매기가 알아차렸는지 날아올라 배가 정박돼 있는 포구 안쪽으로 들어갔다. 모두들 뒤따라 포구로 향했다. 많은 갈매기들이 바닷물 표면 위에 앉아서 무엇인가 주워먹고 있었다.

배들이 묶여 있는 곳으로 가서 갈매기들이 많이 보이는 바로 옆 배에 올랐다. 한 어민이 낚시 바늘에 무슨 덩어리를 꽁꽁 묶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여쭙고 확인해 보니, 문어를 잡는 낚시바늘에 돼지고기 중 비계덩어리를 묶고 계셨다. 문어가 많이 잡히냐는 물음엔 “아직은 많이 잡히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몇 개의 비계덩어리 조각을 바다쪽에 던지자 갈매기들이 달려들어 앞다투어 먹이를 먹으려 했다. 다른 어민이 다가 오더니 얘기를 나눈다. 이 어민은 어제 하룻동안 70kg정도를 잡았다고 말했다. 나일 무어스 대표가 갈매기 무리들 속에서 수리갈매기를 가리켰다. 1년생인지 2년생인지도 구분해 주었다.

  (좌)문어를 잡기 위해 낚시바늘에 돼지고기 비계덩어리를 묶고 있는 어민, (우)해안가에 떠 내려온 미역을 건져올리는 주민

다시 우리는 대진항 남측해안의 숙소 앞 해안가로 이동을 했다. 철조망이 쳐진 이곳 해안가 바위에도 가마우지 몇 마리와 수많은 갈매기들이 앉아 있었다. 갈매기 도감이 두껍게 별도로 있을 정도이니 아주 다양한 갈매기 종류가 엄청나게 많다고 한다. 어느 갈매기는 미역을 잔뜩 물어 들었다.

점점 날이 어두워지자 마을 숲이 보이는 곳으로 이동을 했다. 나일 무어스 대표가 예전에 이곳에서 수리부엉이를 보았다고 말했다. 마을 뒤편 길로 해서 어두운 산길을 따라 마을 숲으로 올라갔다. 머리 위로 가로지르는 쇠기러기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밤 시간을 이용해 북쪽으로 이동하는 모양이다. 큰 소나무숲 속을 주시하기도 하고 귀를 쫑긋하며 귀를 기울였지만 수리부엉이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수리부엉이 찾는 것을 포기하고 숙소로 갔다. 비용을 지불한 다음 횟집으로 가서 저녁식사를 했다. 2007년 '새만금 도요물떼새 모니터링 프로그램(SSMP)'보고서와 새와 생명의 터 소식지를 참가자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2008년 조사계획에 대해 소개를 하고 적극 동참해 줄 것을 요청드렸다.

숙소로 돌아와 주인이 김치 안주와 함께 내놓은 막걸리 한 잔씩을 나누어 먹으면서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었다. 유럽풍으로 만들어 놓은 펜션식 숙소는 방마다 식사를 직접 해서 먹을 수 있도록 각종 식기도 갖추고 있었다. 맑은 날씨엔 방안에서 바닷가에 있는 새들을 관찰할 수 있다고 한다. 숙소 집 주인은 1층 카페에 작은 망원경도 설치해 두었다.

다음날 우리는 아침 6시반에 일어나 1층 카페에 집주인이 준비해 둔 식빵과 과일, 음료로 아침식사를 했다. 유리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쇠기러기 무리들이 남쪽방향으로 날아갔다. 내려가는 방향을 보니 화진포 방향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북쪽으로 올라갔던 쇠기러기들이 다시 내려온 것 같았다. 바다비오리와 아비, 흰뺨검둥오리들이 바닷가까지 다가와 먹이를 먹고 있었다. 미역과 물고기를 잡아먹는 모양이다.

  검둥오리들

잠시 후 마을주민들이 바닷가로 밀려온 미역을 건져내러 가까이 가자 새들이 달아났다. 먼 바다쪽에서는 바다쇠오리가 무리지어 남쪽방향으로 날아 내려가고 있었다. 숙박집 주인도 관심이 있는지 이것저것을 물어보면서 망원경으로 새들을 관찰했다. 숙소 바로 앞 길가에서 큰부리까마귀가 ‘까악까악’하면서 울어댔다. 정겨운 소리다. 집 마당엔 밥알과 물이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다. 집 주인이 다가와 “이렇게 해 놓으니까 이른 아침에 새들이 찾아와서 먹는다”고 말했다. 새에 관심이 남다른 것 같았다.

우리 일행은 짐을 차에 싣고 남쪽 거진항 근처로 이동했다. 화진포 옆을 지나는데 흰비오리 몇 마리가 길가에서 먹이를 먹다가 놀라 달아났다. 그런데 혹고니는 확인할 수 없었다. “5년 전부터 이곳에 월동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김성미 씨가 말했다. 7년 전엔가 이곳 화진포에서 새해 신년 일출을 보러 왔다가 혹고니 무리를 직접 보았던 기억이 있는데도 말이다.

거진항 근처에 도착했더니 벌써 몇 명의 주민들이 나와 미역 따는 일을 하고 있었다. 바닷가에서 먹이를 먹는 새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흰줄박이오리, 바다비오리 한 쌍씩이 제법 바닷가 가까이까지 다가와 자맥질을 거듭했다. 먹이 먹기에 바쁜 모양이다. 특히 흰줄박이오리 수컷은 정말 아름다웠다. 우리 일행은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망원경으로 관찰하고 사진 촬영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바닷가에서 먹이를 먹고 있는 흰줄박이오리 (왼쪽: 암컷, 오른쪽: 수컷)

아침 9시반에 선장과 약속시간을 맞추기 위해 아쉬움을 뒤로 하고 대진항으로 향했다.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새들을 관찰하기 위해 배를 타고 나가기 위해서다. 숙박집 주인이 배를 주선해 주었는데 선장님이 미역 따는 일 때문에 나가지 못한다면서 다시 다른 선장을 연결해 주었다. 어떤 선장은 “올해로 64세이며, 어업을 시작한지 45년이 되었다. 예전엔 명태가 많이 잡혔는데 바다가 오염되고 남획을 해서 그런지 13-15년전부터 거의 안 잡힌다. 요즘엔 그물로 털기, 자게 등을 잡거나 해녀를 고용해서 미역, 해삼, 전복을 잡고, 미끼를 달아 낚시로 문어를 잡아서 생활한다. 수입이 좋은 사람은 하루에 10만 원, 나이에 따라서는 7-8만 원 정도 번다. 미역 따는 해녀들은 예전엔 제주도에서 온 여자분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지금은 현지 주민들이 배워서 하고 있다. 이 분들도 거의 65세가 넘었고, 제주도에서 와서 살면서 해녀로 있는 분들은 70대가 넘었다. 요즘 미역 양식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에 우리가 따는 자연산도 예전처럼 잘 팔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숙박집 주인이 다가오더니, 점심 먹으라고 우리들 숫자에 맞게 식빵을 박스에 담아 건네주었다. 정말 좋은 분이다.

10시쯤 출발해 오후 1시반경에 다시 포구로 되돌아오기로 하고 출발했다. 이곳은 동해안에서도 DMZ남방한계선과 아주 가까운 곳이라 출항절차가 까다롭다. 오후 1시반까지는 꼭 되돌아와야 한다고 선장이 말했다.

  바닷가에서 먹이를 먹고 있는 바다비오리 (위쪽 : 암컷, 아래쪽 : 수컷)

약간 긴장되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바다로 나갔다. 포구에 있을 때는 바닷바람이 제법 불어 배가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지만, 막상 바다로 나오니 파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해안을 따라 북상하면서 새들을 관찰했다. 바다에 부표들도 떠 있었다. 문어잡이용 낚싯줄을 설치해 놓은 모양이다. 새들이 보일 때 마다 나일 무어스 대표가 새 이름을 대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그 때마다 동승한 참가자들은 망원경과 카메라를 가리키는 방향으로 돌렸다. 나일 무어스 대표가 배 선장님에게 손짓을 하면서 배를 안내했다. 바다비오리와 쇠가마우지가 날아가지도 하고, 큰회색머리아비가 바다 수면에 떠 있기도 했다.

근무교대를 하기 위해선지 멀리서 경비선이 서로 가로 질러 지나갔다.

배를 해안선과 멀어지게끔 운항한 후 다시 해안선과 평행하게 남쪽으로 내려갔다. 얼마쯤 지났을까. 나일 무어스 대표가 “11시 방향으로 300미터 전방에 바다쇠오리 3마리가 있다"고 영어로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휘둥그러지게 눈을 뜨면서 가리키는 방향을 주시했다. 파도가 일렁거려서 잘 보이지가 않았다. 계속 두리번거리는데 드디어 보였다. 새들이 먹이를 먹기 위해 자맥질을 한 후 밖으로 나오기도 하고, 출렁이는 파도에 오르락내리락 했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촬영한 바다쇠오리

내가 사실 바다쇠오리를 처음 본 것은 기름에 절어 죽어있던 새였다. '허베이 스피리트호'의 기름유출 사건으로 인해 섬 지역의 피해를 조사하기 위해 여러 차례 조사를 하던 중 지난 1월 15일, 태안군 가의도라는 섬에서 발견한 것이다. 기름범벅이 되어 죽어 있던 바다쇠오리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후에도 몇몇 지역에서 기름 묻어 죽어있던 아비와 검은목논병아리를 찾기도 했다. 검은 기름에 뒤덮혀 죽어있던 바다쇠오리를 보았었는데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있는 바다쇠오리를 보니 기뻤다. 파도가 출렁거려 색깔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목부분부터 배, 꼬리 부분은 하얀색이고, 머리와 등은 검은색으로 보였다.

다시 항해를 계속했다. 계속 바다쇠오리가 몇 마리씩 무리지어 있는 것이 보였다. 어느 정도 지났을까. 바다를 주시하고 있던 나일 무어스 대표가 다시 큰 소리로 “큰부리바다오리(Thick-billed Murre)가 저기 있다”고 외쳤다. “바다오리와 비슷하지만 주로 미국 알래스카에서 서식하는 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기록되지 않은 종”이라면서 말이다. 한참을 주시하다가 출렁이는 파도 속에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이제는 선장님이 알아서 우리가 새를 잘 관찰할 수 있도록 배를 운전해 주었다. 모두들 정신없이 사진촬영하기에 바빴다. 나일 무어스 대표도 "wonderful! wonderful!"하면서 감격해 했다. 나도 동승자들도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면서 화답했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촬영한 큰부리바다오리 (Thick-billed Murre)

벌써 오후 12시반이 되었다. 다시 남쪽방향으로 항해를 계속했다. 오후 1시가 되자 선장님은 포구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손을 가로저었다.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출발했던 포구로 되돌아 나왔다. 배 대여 비용은 35만 원이었다. 비용이 부담되기는 했지만 모두들 흡족해 했다. 이틀간의 일정 중 최고의 시간이었다. 각자 촬영한 사진을 서로 보여주면서 나중에 ‘새와 생명의 터’ 홈페이지(http://www.birdskorea.org)에 올리기로 했다.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단체 사진을 촬영한 다음 각자 살고 있는 지역으로 떠났다. 새만금지역에 찾아오는 도요새물떼새를 만나기로 하면서 말이다.

그동안 서해안 지역에서 자주 볼 수 없었던 새들을 동해안, 그것도 DMZ근처에서 볼 수 있어서 더욱 뜻깊었다. 더욱이 겨울 월동을 끝내고 번식지로 떠나고 있는 새들을 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남북 통일에 대한 간절한 소망도 가져보기도 했고, 많은 제약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니 더욱 반갑고 고마웠다. 다음 기회에 다시 찾기로 하고 먼 동해바다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남북한 학자들이 공동으로 남한과 북한을 오고 가는 물새들을 공동 조사할 날이 곧 있기를 기대해 본다.

  큰부리바다오리에 대한 도감 설명

한편 나일 무어스 선생님과 나는 김신환 원장님의 차에 따고 강릉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다행히 부산행 버스 시간을 맞추어 도착했다. 나일 무어스 선생님은 3시50분 차를 탔다. 내가 타야할 전주행 버스는 4시40분이었다. 보통 4시간10분이 걸린다고 하니, 9시쯤 도착할 것이라 생각하고 터미널 내 어느 식당에서 늦은 점심 겸 저녁식사를 했다.

버스가 출발 후 피곤해 잠에 들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지났을까 눈을 떠 보니 차가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거의 기어가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관광을 하기 위해 동해안을 찾아 왔다가 서울이나 경기도 방향으로 가는 차들이 많은 모양이다.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 이후로 서해안 전체적으로 관광객 수가 급격히 줄고 동해안 지역의 관광객 수가 늘었다고 들었는데 수많은 차들이 도로에 들어서 있는 것을 보니 실감했다.

전주행 버스는 원래 다니던 노선을 변경해 남원주IC에서 나와 충주행 국도를 탔다. 버스가 높은 고갯길을 넘어 급한 커브 길을 위험하게 내달렸다. 그러다가 새롭게 만들고 있는 원주-대구간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가 다시 충주행 2차선 도로를 탔다. 그러다가 어느새 원평IC에서 중부고속도로로 들었다. 그런 다음 호남고속도로로 해서 전주에 도착하니 9시15분쯤이 되었다. 원래 예정시간보다 그리 늦지는 않았다. 조금은 피곤했지만 뜻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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