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산대로 물을 물대로

운하 백지화를 위한 금강 순례 (3)

지난 3월 22일은 열한 번째 맞는 물의 날이다. 이 날은 금강을 사랑하는 대전충남시도민이 모여 금강운하건설이 백지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모으는 날이기도 했다. 약간 흐린 날씨였지만 200여명의 시민들이 발걸음을 해 주었고 멀리 서천에서도 기꺼이 달려와 준 이들도 있어 풍성하고 따뜻한 날이었다.


박정현 금강운하백지화국민행동 상임운영위원장의 사회로 시작된 기념식. 각지에서 모여든 이들과 함께 ‘금강운하, 난 반댈세’를 외치며 우리의 마음이 하나임을 확인했다. 금강운하는 산을 산으로 두지 않고, 물을 물로 두지 않게 한다는 이상덕 금강운하백지화국민행동 공동대표의 말을 들으며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물길을 내기 위해 산을 파헤치고 수문을 세워 강물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운하는 말 그대로 ‘환경파괴’나 다름이 없다.

갑천변을 누비며 금강운하백지화를 알릴 자전거 홍보단 출정식을 가졌고, 대전여민회에서 준비한 몸짓과 함께 ‘운하철도999’를 함께 배워보았다. ‘운하철도999’는 만화 ‘은하철도999’의 주제곡을 금강운하를 반대하는 내용으로 개사한 곡으로 누리꾼들 사이에 널리 퍼지고 있는 노래이기도 하다.


이 날 아이들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얻은 행사는 운하보다 빠른 세발자전거 대회였다. 아이들은 행사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세발자전거에 올라 맹연습 중이었다. 운하 위를 갈 화물선의 속도가 시속 17km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아이들이 그 짧은 다리로 열심히 굴리는 세발자전거의 속도도 그것보다는 빠를 것이다. 세발자전거로 신나게 잔디밭을 달리고 있는 이 아이들이 만약 운하를 보게 된다면 얼마나 어른들을 어리석다고 생각할까, 애들 세발자전거보다도 느린 걸 엄청난 돈을 들여 만들어 놓았다고 말이다.


큰 붓과 먹물통이 잔디밭 위에 올려지고, 긴 광목천이 깔렸다. 웬만한 행사에서는 볼 수 없는 서예 퍼포먼스이다. 서예가인 바우솔 김진호, 귀원 송인도, 고람 이기승 님이 릴레이로 멋진 글귀를 남겨주었다. 흰 종이에 먹물 스미듯, 이 일을 추진하는 이들의 가슴에도 이 글귀가 새겨졌으면 좋겠다.

“생명의 물, 산은 산대로 물은 물대로, 흐르게 하라”

본격적인 걷기 행사가 진행되었다. 만년동 KBS앞 갑천 둔치에서 엑스포 과학공원 쪽으로 돌아서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코스로 진행되었고, 피켓시위와 운하로 사라질 보물찾기 등을 함께 해 보았다. 걷기 행사를 마치고 출발했던 자리로 다시 모인 이들은 아래와 같은 선언을 하며 우리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금강을 물려주겠노라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강이 살아있다는 증거는 그 힘찬 흐름에 있습니다.
강은 저 혼자 흘러 살아있지 않았습니다.
강은 스스로 제 몸을 굽이쳐서 사람의 삶, 그 터전으로 들어왔고
기꺼이 그 생명과 가진 것을 나누어주며 사람의 생활을 영위하게 해 주었고,
사람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 준 몸과 마음의 모유와 같습니다.

우리 곁을 흐르고 있는 금강 또한 여느 강과 다르지 않습니다.
금강은 기꺼이 우리 삶의 터전이 되어 주었고, 새들의 어머니 품 속이 되었으며, 이 고장의 역사를 묵묵히 바라본 스승과 같이 흐르고 있습니다.
강이 품은 생명력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으며, 그 흘러온 시간은 다시 되돌리거나 앞당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강의 성실함을 배반하는 한가지 사실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바로 금강운하건설입니다. 운하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던 강의 흐름을 막게 될 것입니다.
금강운하는 어머니의 젖가슴에 삽을 대는 것 같이 강이 줄 수 있는 생명력을 파괴하고 강이 기억하고 있는 우리 역사를 되돌릴 수 없게 할 것입니다.
금강운하는 경제의 논리에 빠져 망각해버린 어리석은 이들이 저지르려고 하는 무서운 만행입니다.
그 어리석은 이들의 선두에 대통령이 서서 금강에 삽을 대려하고 있고
그것을 견제하고 금강을 지켜내야 할 이 지역의 파수꾼인 충남도와 대전시는 오히려 부화뇌동하여 이를 도모하려 하고 있습니다.

금강유역에서 살고있는 우리는 이에 대해 모두 분노합니다.
한 번 잃어버리면 다시는 얻을 수 없는 뭇생명들이 죽음의 위기에 처할 것이 눈에 선한데
그들이 목에 힘을 주어 이야기하는 그 경제발전은 우리 살에 와 닿지도 않을 것이 뻔한데
어째서 맹목적으로 운하건설을 강행하려 하는지 우리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더 분노하게 하는 것은
정부도, 지자체도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의지조차 없이 자신들의 의지대로 운하건설을 강행하려는 태도입니다. 마치 이 나라가 누군가의 기업이라도 되는 것처럼, 저들만의 리그를 펼치겠다는 그 뻔뻔스럽고 오만한 태도가 우리들을 더 분노하게 합니다.

금강을 사랑하는 우리는 우리의 생명줄인 금강에 운하가 만들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들의 오만함에 따끔한 회초리를 들 것입니다.
이는 우리들의 금강과 이를 터잡아 사는 이 땅의 뭇생명과 우리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위함입니다.
오늘 금강운하백지화를 바라는 아름다운 행진에 참여한 우리 모두는
금강이 우리를 지나 우리 아이들에게도 흘러갈 수 있도록
금강운하백지화를 선언합니다.

2008년 3월 22일
금강운하백지화를 바라는 아름다운행진 참석자 일동

덧붙이는 말

박은영 님은 대전충남녹색연합 시민참여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 기고는 미디어충청과 동시 게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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