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여전히 헌법 위에 서있다

[논설] 핵심 다 누락시킨 삼성 쇄신

1980년대 일본의 나카소네 수상이 리쿠르트 사의 자회사인 코스모스 사의 미공개주식을 불법으로 양도받은 리쿠르트 사건, 1990년대 미국의 엔론 사 분식회계 사건 등 기업의 불법, 탈법, 위법, 편법 사건은 어디에서나 터진다.

일본도 미국도 다 부패하니까 삼성도 괜찮다고 면죄부를 주자는 것이 아니다. 일본도 미국도 삼성도 불법을 저지른다는 것은 자본(주의)에 공통된 문제라는 것이다. 삼성은 그동안 불법, 탈법, 위법, 편법을 넘어 ‘초법’적인 지위를 누려 왔다.

삼성이 특검을 꾸려도 법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은 법 위에 서 있는 참주정 재벌이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겠다고 했지만, 삼성이 헌법 아래로 내려온 것은 아니다. 별 세 개 중 별 하나 떼 냈다고 해서 삼성의 참주 체질이 변하지는 않는다.

한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대의 자본가인 이건희 회장의 모습이 일선에서의 퇴각으로 빛이 바래지는 않는다. 이건희 회장이 기자회견을 했지만, 헌법 위에 서서 자본의 입장을 유지하자는 것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이재용 씨에 대한 경영권 승계 문제, 지주회사 및 순환출자의 문제, 노조 인정의 문제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이 없었거나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핵심은 다 누락시킨 것이다. 세금 포탈에 익숙한 사람들이니 더 뭘 바라겠는가? 재벌 뒤에 CEO 출신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자랑하는 사람까지 있으니 이재용 씨가 CCO 직함 정도 버리는 거야 무슨 대수겠는가? 주변에서는 이재용 씨의 백의종군을 환영한다는 입장이지만 ‘백의종군’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재용 씨의 CCO 사퇴는 절망에 빠진 대다수 민중들이 아니라 자본의 입장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삼성 이건희 회장에 대해 베스킨 로빈스 회장이 되 달라고 주문한 것이 잘못이었는지 모른다.

이건희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버릴 것을 다 버렸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은 사회적 개인으로서, 자본가로서 버린 것이 없다. 이건희 회장이 삼성의 직무와 연관된 직책을 버렸고 홍라희 씨가 미술관 관장직 등을 버렸으며 아들 이재용 씨가 CCO 자리를 떠났지만, 이것은 모두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일 뿐이다. 회사에 사표를 던진 것 외에 무슨 일을 했단 말인가? 이건희 회장의 어려운 결단이니 이재용 씨의 백의종군 환영이라느니 하는 것은 언론의 경박스러움만 보여줄 뿐이다.

삼성 생명이 이건희 은닉주식 저수지였다는 것, 이재용 씨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시세차익이 2조 2천억 원이고 이건희 회장의 시세차익이 2조 2백억 원이었다는 것은 이미 다 밝혀진 사실이다. 이건희 회장이 기자회견에서 삼성이 국민들의 도움으로 컸다고 말한 것은, 이건희·이재용 부자가 시세차익으로 벌어들인 천문학적인 돈이 사실은 어렵사리 이 세상을 살아온 민중들의 것이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사적으로 명의신탁만 해도 불법인 세상에서, 1300개 이상의 차명계좌를 만들어 돈을 은닉하고 탈법, 편법을 일삼은 삼성은 삼성X파일사건 등 외설스러운 행태를 이제는 그만 즉각 중단하겠다는 조치를 내 놔야 한다. 한 두 개의 차명 계좌도 아니고 1,300개가 넘는 차명 계좌를 그렇게 주도면밀하게 은폐시킬 수 있단 말인가? 재벌의 지배구조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한 채 포탈 세액 사회 환원 운운하는 것은 자본가로서 삼성의 경영에 계속 개입하겠다는 의도를 보여줄 뿐이다.

IMF 이후 한국의 기업 중에서 사람을 제일 먼저 자른 것이 삼성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삼성의 신경영이라는 것이, 삼성을 일류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은 그 신경영이라는 것이 미국의 신경제 모델을 베꼈고 그 신경영의 핵심이 무엇보다 혹독한 구조조정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무노조 황제경영, 인력 대량 해고가 신경영의 초석 아니었는가? 대기업으로서 하청기업에 대해 무자비한 단가의 납품을 요구한 것이 삼성이었다는 것도 현장에서는 다 알려진 사실이다. 삼성의 신경영은 말 그대로 20만 명의 삼성 임직원들만을 위한 것이었다.

삼성의 이익은 민중 전체의 몫이다. 사회 환원 운운하며 그 막대한 시세 차익과 축적된 자본 중 일부를 내놓겠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염치없는 짓이고 떡값 검사들에게 뿌린 돈처럼 전 민중에게 떡값이나 내놓겠다는 몰상식한 발상이다. 쌀가게를 했던 삼성이 일류기업으로 큰 것이 국민의 도움이었다고 고백한다면, 삼성은 돈의 분배 과정에서 빠져야 한다. 사회 환원 운운하며 분배 과정을 주도하고 그 과정에서 자기 몫을 챙기고 삼성의 몫은 남겨두겠다는 의도 아닌가? 삼성 스스로 자기 몫을 주장할 근거가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이명박 정권이 신자유주의에 몰입하면서 노골적으로 부자와 가난한 세상을 편 가르는 세상이다. 재벌이 불법으로 챙긴 돈을 떡값으로 민중에게 돌리며 ‘트리클 다운 경제’를 주장하는 것인가? 상위계층이 국가의 부 중 건더기는 다 건져 가고 민중은 나머지 국물만 나눠 먹으라는 얘기가 아니라면, 삼성은 이제 헌법 밑으로 내려와야 한다. 부자간의 가부장적인 자본주의를 폐기하고 자본 밑으로 내려가야 한다. 민중들의 저항에 부딪혀 별 하나 떼려다 별 세 개 다 잃지 않으려면, 재벌 구조부터 혁신시켜야 한다. 이건희 회장의 기자회견으로 삼성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삼성은 자본의 핵심 자리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경영권 세습 의도 폐기, 출자순환 구조 혁신, 노조 설립 인정, 이 세 가지가 삼성이라는 세 개의 별보다 더 중요한 이 시대의 과제다.